# 355
웨이터의 도움을 받아 이 본부장을 룸까지 업고 올라갔다.
침대에 눕히고 구두를 벗겼다. 상의도 벗기고 넥타이를 풀었다. 다음엔 허리띠를 풀어주었다.
요즘 운동 부족이었는지 아랫배가 불룩 나와 있다.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하긴 부인도 없이 혼자 계시니 외로우셨겠지.”
잠든 이 본부장을 바라보는 현수의 눈에 측은함이 배어 있다. 만년 과장일 때 부인과 자식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는지에 대해 여러 번 들은 때문이다.
“에효, 돈이 원수다. 그깟 돈이 뭐라고. 본부장님, 기왕 이렇게 된 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말을 마친 현수는 자신의 룸으로 향하려다 멈췄다. 그리곤 뒤돌아서서 이 본부장에게 다가갔다.
“더 깊은 잠에 빠질지어다. 딥 슬립!”
마나가 스며들자 이 본부장의 몸이 완전히 늘어진다.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심적인 긴장감이 있었나 보다.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릉―!
맥문을 잡고 마나를 흘려 넣자 영활한 뱀처럼 이춘만 본부장의 체내로 스며든다.
“흐음, 심장은 괜찮고, 폐도 괜찮네. 비장은 기능이 저하되었다고? 췌장도 그러네. 역시 간에 무리가 가고 있었네.”
진단 결과 이춘만 지사장은 일부 장기 기능 저하와 더불어 고혈압과 고지혈증 증상을 가지고 있다.
복부 비만이며 무좀 때문에 고생하는 모양이다. 양말 여기저기가 진물로 젖어 있음이 보인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아공간에서 회복 포션을 꺼내 반을 따랐다.
반병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온 음료를 약간 섞은 뒤 복용시켰다.
“흐음, 이제 마무리를 해야지? 마나여,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어 저하된 장기의 기능을 일깨워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혈관 내의 불순물과 몸에 좋지 않은 콜레스테롤을 빠르게 분해해 낸다. 그것 때문인지 땀 비슷한 것이 체외로 배출되어 악취가 풍긴다.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을 벗길걸. 쩝, 할 수 없지.”
이춘만 본부장의 체질 개선 작업은 꽤 오래 걸렸다.
덕분에 걸치고 있던 옷 전부는 물론이고 침대 시트까지 악취를 풍긴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킨 후 에어 퓨리파잉 마법까지 구현시켜야 했다.
두 시간쯤 지난 후 이 본부장은 발가벗게 되었다. 일차로 워싱과 클린 마법을 걸어 의복 및 시트를 세탁했다.
그것만으론 부족하여 정화 마법까지 걸었다.
룸서비스를 불러 새 시트로 갈았고, 세탁을 부탁했다.
“흐음, 이상하다. 본부장님이 일종의 환골탈태 같은 걸 한 건가? 여태껏 이런 적 없었는데… 왜 그랬지?”
현수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처음 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춘만 본부장이 최근에 복용한 것과 연관이 있다. 이사 임명장을 받던 날 이 본부장은 부모님 댁으로 갔다.
오랜만에 뵙는 부모님이다.
하여 가기 전에 수소문하여 산삼 세 뿌리를 샀다. 두 분만 드시라고 하면 사양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이 비싼 걸 어찌 먹겠느냐며 안 잡수시겠다고 한다. 하여 세 뿌리를 모두 달여서 셋이 공평하게 먹자고 했다. 그제야 받아들이셨다. 하여 산삼 한 뿌리를 복용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이 본부장이 복용한 것은 100년 가까이 된 천종산삼이다.
평상시에 영양제나 약을 거의 복용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상당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여기에 회복 포션이 추가되었고, 리커버리 마법까지 구현되자 급작스런 체질 개선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체내 노폐물이 배출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쉐리엔 캡슐로 비만만 잡으면 오래 사시겠지.”
현수가 생각을 정리하려는 찰나 벨이 울린다.
띵동! 띵동!
3장 아디스아바바의 천지약품
“누구세요?”
이춘만 지사장은 내일 깨우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호텔 직원이라 생각했기에 암하라어로 물었다.
“저어, 리야 아스토우라고 하는데 혹시 김현수 씨를 뵐 수 있을까요?”
“리야? 리야 아스토우 양?”
현수는 더 생각할 것 없이 문을 활짝 열었다. 거기엔 반가운 얼굴이 서 있다.
“아스토우 양!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아아! 맞군요. 코리안 빌리지에 이춘만이라는 분이 오셔서 저를 찾았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그래서 여길 왔는데 한 분이 더 투숙했다고 해서 와본 겁니다. 반갑습니다, 성자님.”
“엥? 성자님이라니요?”
“이곳에서 코리안 성자라 불린다는 거 잊으셨어요? 정말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잖아요.”
“에구, 그래도 성자라니, 신성을 모독하는 겁니다. 아무튼 반가워요. 안으로 들어올래요, 아님 밖으로 나갈까요?”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기에 객실로 아가씨를 불러들이는 것이 적합지 않아 제안한 것이다.
“이 호텔 음식 맛이 좋다더군요. 저 퇴근하고 곧바로 오느라 저녁을 굶었거든요.”
“그래요? 그럼 내려갑시다.”
잠시 후 현수는 또 한 번 저녁 식사를 했다. 혼자 먹으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식사 후 후식으로 이곳에선 찾아보기 힘든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그제야 리야가 눈빛을 빛내며 바라본다.
몹시 허기졌던 모양이다.
“사실 오늘 일이 너무 바빠 점심도 걸렀거든요.”
“아, 그래요? 일도 일이지만 먹는 걸 잘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이 상하지 않죠.”
“네에, 알겠습니다. 한데 성자님, 왜 마을로 안 오시고 여기 묵으십니까? 저희 마을이 불편해서 그러신 거죠?”
“아뇨. 여기 일행이 먼저 와 있어서요. 내일 아침에 마을로 가려던 참이에요.”
“아, 그래요? 그런데 먼저 오신 분이 무슨 약품 회사를 차리신다고 하던데 그건 무슨 소리인가요?”
“나하고 내 일행은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에서 천지약품이라는 도매 약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킨샤사에 있는 천지약품 알아요.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어요. 수익금의 절반을 무료 급식소 운영에 쓰는 본받을 만한 기업이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회사 사장님이 성자님이셨군요. 역시 성자님이세요.”
“에구, 내 일행이 제안해서 그 일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성자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조금 남세스럽네요.”
“어머, 아니에요. 성자님을 성자님이라 부르지 뭐라 불러요? 이렇게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영광이에요, 저는.”
현수는 말을 더 해봐야 들어줄 것 같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지난번 여기 왔을 때 기오르기스 대통령님께서 아디스아바바에서도 같은 사업을 해보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셨어요?”
“네. 그래서 여기서 해보려고요.”
“아, 그래서 오셨구나.”
“천지약품 사무실은 코리안 빌리지, 또는 그 인근에 내고 싶어요. 가급적이면 코리안 빌리지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할 거구요.”
“……!”
“그러면 마을 사람들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낙후된 환경과 열악한 여건 때문에 건강마저 지키기 힘든 곳이 코리안 빌리지이다. 여기에 가난이라는 요인까지 안고 있다. 제대로 된 직장이 적어 실업률이 높은 까닭이다.
“왜 저희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나요?”
어느새 리야 아스토우의 눈에 촉촉함이 엿보인다. 감동 받은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이 전쟁에 휩싸여 있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목숨 걸고 도와준 우방입니다. 이젠 우리가 살 만해졌으니 도와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
“돌아가시면 촌장님께 말씀드려 우리가 쓸 땅을 부탁드려 주세요. 약품 도매를 하려면 사무실도 커야 하고 창고도 많이 필요합니다.”
“……!”
“그게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것이니 불편하지 않을 곳으로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토지 대금은 지불할 겁니다. 이곳의 시세는 잘 모르지만 알아서 제시해 주시면 지불하겠습니다.”
“……!”
리야 아스토우는 현수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존경과 감동의 빛이 어려 있다.
“건물을 지어야 하니 적당한 건설회사도 소개해 주십시오. 이곳에 없는 자재라도 필요하다고 하면 공수해서라도 지원하겠다고 해주시고요.”
이 말을 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리야 아스토우는 호텔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물론 택시비는 현수가 지불해줬다. 밤늦게 돌아다니다 혹시 화를 당할까 싶어 배려한 것이다.
“천지약품 아디스아바바 지사가 생기면 발생된 수익금으로 일단 코리안 빌리지의 환경 개선에 써야겠구나. 그리고…….”
상념이 꼬리를 물 것 같자 얼른 다이어리를 꺼냈다. 그리곤 이곳에서 할 일들을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킨샤사와 이곳은 상황이 다르다. 가장 먼저 사무실과 창고 등을 지어야 한다.
기왕에 짓는 것이니 제대로 된 건물을 올릴 생각이다.
다음엔 코리안 빌리지 사람들을 포함한 직원을 뽑는다. 이때쯤이면 고강철과 그의 가족이 오게 될 것이다.
천지약품에서 발생된 수익금 중 일부는 코리안 빌리지의 주거 환경을 바꿀 것이다. 생철로 지은 집들을 모두 밀어내고 쾌적한 주거가 가능할 연립주택을 지어주면 좋아할 것이다.
다음엔 생활 여건 개선이다.
학교를 지을 수 있으면 짓고, 지원해 줄 생각이다. 교육을 시켜서 천지약품 직원으로 쓰면 서로 이익이다.
이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킨샤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할 생각이다.
물론 세금은 단 한 푼도 떼어먹을 생각이 없다.
이 모든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에티오피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끄응! 어펜시프 참 마법을 대통령에게 걸어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현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사업상 이득을 위한 마법을 건다는 게 마뜩치 않아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일단 버틸 때까지는 버텨보자.”
다이어리를 덮고 샤워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모든 것이 쾌적해서 괜스레 기분이 좋다.
“흐음, 아르센에도 이런 호텔이 있으면 좋겠다.”
현수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밤하늘에는 밝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고, 구름은 바람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 * *
“어서 오십시오, 성자님!”
나이가 70은 넘은 촌장이 반색하며 허리를 꺾는다.
“네, 그간 안녕하셨지요? 건강은 어떠세요?”
이전의 촌장은 녹내장을 앓고 있었다.
안압의 상승으로 인해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 공급에 장애가 생겨 시신경 기능에 이상을 초래하는 질환이다.
가족력이 있거나 평소 안압이 높은 경우, 또는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 질환 및 근시를 가진 사람에게서 발병률이 높다.
그 결과 시력을 잃게 된다.
의료 지원이 낙후된 에티오피아의 경우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녹내장은 한국에서도 못 고치는 병이다.
촌장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코리안 빌리지에 살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형편이 나아 병원을 다녔기에 아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녹내장이 완치되었다. 그러니 보기만 하면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는 것이다.
“아이고, 성자님이 치료해 주셨는데……. 병원에서 어떻게 완치된 거냐고 물어봅니다. 고치지 못하는 병이라고 하면서. 고맙습니다.”
“아, 네.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모든 게 성자님 덕분입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이춘만 본부장은 멍한 표정으로 현수의 뒤를 따랐다. 방금 전 코리안 빌리지에 당도한 이후 줄곧 이런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