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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357화 (357/1,307)

# 357

그의 사망 이후 대통령은 모든 권력을 자신의 앞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곤 의욕적으로 국가 건설에 나서는 중이다.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도 많았다.

허수아비나 다름없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일들은 국민들의 시선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대통령이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공직자의 부정부패 일소였다. 그 결과 다수의 공직자들이 교도소로 향했다.

제나위 총리 밑에서 뇌물이나 받아먹던 인물들을 잡아넣은 것이다. 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

첫째, 그 자리에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채워 넣어 권력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권력자가 아닌 국민들을 위한 통치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에게 약품과 관련된 일을 맡기려는 것은 부패하기 쉬운 부분에 청렴성을 주기 위함이다.

외국인이 다른 나라의 주요 자리를 갖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을 예로 들자면 독일인이지만 한국에 귀화한 이참(Bernhard Quandt)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 사람은 현재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다.

대통령은 현수를 이보다 더 크게 쓸 생각이다. 그렇기에 에티오피아 국적을 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현수는 힘이 있는 나라의 국민이다.

에티오피아의 관료라 할지라도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과 독대할 정도로 가깝다면 다른 권력자들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부정부패가 만연한 공직 사회의 그 어느 누구도 현수를 상대로 압력을 넣거나 뇌물을 바라진 못할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두 번에 걸친 의료봉사 행위이다.

지금껏 있었던 평범한 의료봉사였다면 국민과 언론의 시선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현수는 단신으로 아디스아바바에 와서 코리안 빌리지를 찾았다. 그리곤 의사들이 포기한 환자들까지 모조리 살려냈다.

뿐만 아니라 자비로 콜레라 백신을 접종해 주기까지 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전쟁 당시 도움을 주었던 것에 대한 보은의 의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언론들이 좋아할 말이다.

당연히 대서특필되었고,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감동받았다.

그 결과, 기오르기스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일에 그야말로 모범 답안 같은 인물이 된 것이다.

현수가 의약품 유통 부분을 장악하면 다른 분야에도 그것을 적용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현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의 기다림은 비서실장의 재출현과 동시에 끝났다.

“대통령님, 의무장관님 오셨습니다.”

“아, 어서 모시세요.”

“네.”

비서실장이 나가고 40대 후반쯤 되는 인텔리가 들어선다.

“부르셨습니까?”

“네, 이쪽에 앉으십시오. 아! 이쪽은 내가 전에 말한 세인트 킴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로마우 바이할 의무장관이오.”

대통령은 이춘만 본부장과 의무장관을 소개하려 했는데 장관이 먼저 현수에게 손을 내민다. 이에 고개 숙여 예를 갖추려던 현수가 얼른 두 손으로 악수를 했다.

“네에? 아, 반갑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야기만 듣고 대체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상당히 젊은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아주 호감 어린 미소를 짓는다.

“네, 세인트 킴이라는 칭호는 좀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냥 미스터 킴, 또는 김현수라 불러주십시오.”

“네, 본인이 원하시면 그렇게 해드려야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 앉는다.

“바이할 장관.”

“네, 대통령님.”

“킨샤사에 천지약품이 있다는 거 알죠?”

“물론입니다. 천지약품은 저희가 본받아야 할 롤 모델로 여기고 있습니다.”

“여기 두 분이 천지약품의 공동 대표라오. 그리고 저분의 성함은…….”

한국 이름이 어려운지 대통령이 잠시 말끝을 흐린다.

이때 이춘만 본부장이 나섰다.

4장 방탄복 만들기

“반갑습니다, 바이할 장관님. 이춘만이라 합니다.”

“아, 네. 저도 무척 반갑습니다. 두 분을 직접 뵙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군요.”

그야말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대통령과 의무장관, 그리고 현수와 이 본부장 모두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미스터 킴, 복안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네, 대통령님. 저희는 이곳 아디스아바바에 천지약품 지사를 설립하여…….”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천지약품 지사를 설립하겠다고 하자 대통령은 대통령궁 근처의 토지를 무상 불하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코리안 빌리지 인근으로 장소를 확정했음을 알렸다. 이에 의무장관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코리안 빌리지는 아디스아바바 외곽에 위치한 빈민촌 가운데 하나이다. 당연히 사회 기반 시설 확충이 미미한 지역이다. 이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현수는 한국이 에티오피아에 보은한다는 의미로 그만한 장소가 없음을 피력했다. 두 나라 우애 증진의 표상 같은 역할을 할 것이란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아울러 직원을 뽑을 때 코리안 빌리지 주민들을 우선적으로 채워 넣을 것임도 미리 말했다.

이것 역시 은혜를 갚는 것의 일환이라 둘러댔다.

하지만 이것엔 두 개의 노림수가 있었다.

첫째는 진짜 은혜를 갚는 일이다. 그리고 둘째는 장차 있을 공무원들이 취직 청탁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천지약품에 취업하는 사람들에겐 주거를 제공하고, 가족에겐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하여 발생되는 이익금 중 일부는 일차적으로 코리안 빌리지 환경 개선 사업에 쓰겠다고 했다.

일련의 작업이 성과가 있으면 킨샤사와 마찬가지로 빈민을 위한 무료 급식소를 곳곳에 설치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다 마음에 든다면서 역시 세인트 킴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의무장관 역시 상당히 여러 번 고개를 끄덕여 동의함을 표해주었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 의견을 내놓는다.

“참, 우리가 알기로 천지약품은 소매 약방을 개설할 때 시험을 본다고 했습니다. 사실인가요?”

“물론입니다. 약품은 건강에 도움이 되라고 만든 거지만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더 큰 화를 불러들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약을 취급할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한 후에야 소매 약방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은 훨씬 넘어야 한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일이니까요.”

“타당한 의견입니다. 그런데 의약품의 종류가 상당히 많습니다. 단순히 시험 한번 보고 그걸 취급하게 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의무장관다운 물음이다. 이에 이 본부장이 나선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저희 천지약품은 모든 소매 약방에 투약 지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투약 지침서라니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네, 투약 지침이란…….”

이춘만 본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킨샤사에서 처음 소매 약방을 개설했을 때엔 여러 문제가 발생되었다. 약의 성분은 물론이고 투약 방법 등을 자세히 모르기에 발생된 일이다.

이에 고심을 한 이 본부장은 책자 하나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약방에 오면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다.

두통이라 하면 그게 급성인지 만성인지, 전체가 아픈지 일부분만 아픈지를 묻는다.

그에 따른 항목을 찾으면 어른과 아이, 임산부인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항목이 있다. 그다음 항목은 어떤 약을 어떻게 투약하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읽을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약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하나의 지침서를 만든 것이다.

이 본부장은 마침 지니고 있는 것이 있다면서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냈다. 제목을 보니 ‘천지약품 투약 지침서’라 쓰여 있다.

“와아! 대단하군요!”

책자를 받아 펼쳐 본 의무장관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콩고민주공화국의 공용어인 불어와 콩고어로 기술되어 있어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모양만으로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또 한 권의 투약 지침서를 살피던 대통령이 입을 연다.

“바이할 장관, 이 정도면 사업을 시작해도 되지 않겠소?”

“물론입니다. 다만 우리에게도 이런 투약 지침서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걸 주시면 저희가 번역하여…….”

바이할 장관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현수가 나선 때문이다.

“바쁘실 텐데… 그건 당연히 저희가 할 일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작업해서 보여 드리지요.”

“아, 그래주시겠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표정이다.

“미스터 킴, 언제든 우리 의무부로 사업 신청서를 제출해 주시오. 받는 즉시 수리할 것이오.”

“네, 사무실과 창고를 짓는 즉시 제출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건물을 짓는 동안 우리 의무부 옆의 건물 하나를 비워주겠소. 그곳을 쓰면 될 것이오.”

“편리를 봐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추진토록 하겠습니다.”

“이렇듯 일이 척척 진행되니 기분이 좋소이다. 이런 날 그냥 지나칠 순 없죠?”

현수가 환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때 대통령이 인터컴을 든다.

“비서실장, 파티 준비 다 되었는가?”

“네, 대통령님. 지금이라도 오시면 됩니다.”

소리가 커서 모두 똑똑히 들을 정도다.

대통령이 두 손을 으쓱하며 든다.

“다들 들었으면 가시죠.”

“하하, 네에.”

넷은 파티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가벼운 식사를 했고, 포도주도 한잔씩 했다. 그러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알고 보니 바이할 의무장관은 대통령의 처조카였다.

두뇌는 명석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외국 유학은 못했고 아디스아바바 대학 로스쿨을 졸업했다고 한다.

작년에 의무장관이 되었으며, 의료 분야에 아직 모르는 점이 많으므로 도와달라고 한다. 당연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대통령은 현수와 이춘만 본부장에게 에티오피아 국적을 부여할 것이며, 사업하는 동안 불편부당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직통으로 전화하라고 했다.

파티가 끝난 후 현수와 이 본부장은 의무장관을 따라 의무부로 향했다. 큰 줄기가 결정되었으니 이제 세부 사항에 대한 이야길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했던 공무원 가운데 하나가 천지약품을 의무부 직속 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을 고려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되면 공공기관에 준하게 되므로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과잉 충성인 듯하다. 그렇기에 현수가 나서서 정리했다. 엄연히 외국인이 운영하는 영리법인이니 법인세 면제는 말도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약품 도매가격에 관한 토론에서도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하여 콩고민주공화국과 거의 같은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되었다.

천지약품에 많은 이득이 발생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의 절반 정도가 에티오피아를 위해 쓰인다는 것을 알기에 의무부 직원들이 흔쾌히 동의한 결과이다.

이 밖에도 소소한 부분에 대한 의견들을 주고받았다. 그 모든 것은 이춘만 지사장의 다이어리에 기록되었다.

역시 꼼꼼함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자리가 파할 무렵 이춘만 지사장이 슬그머니 의견 하나를 내놨다. 의무부 공무원들이 추천을 해주면 가산점을 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말은 안 하지만 모두들 고무된 표정이다. 소매 약방을 하면 돈이 벌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라 함은 읽고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본인이 그러하다면 형제 또한 그럴 것이다. 따라서 이 지사장의 이런 제안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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