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59화 (359/1,307)

# 359

받아쓰기할 자세를 갖춘다.

“여기 이거 보이시죠?”

“네, 무슨 선인장 잎사귀 같은데 엄청 크군요.”

높이 2m, 폭 1.3m짜리 잎사귀에 가시가 촘촘하게 박혀 있어 위험해 보인다.

“이 식물에서 섬유질을 추출해 내고 싶습니다. 이 차장님은 천지대학에 아는 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이 일을 해주실 분을 소개해 줄 수 있는지요?”

“……!”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건설회사에서 할 일은 아니기에 이 차장은 잠시 대꾸하지 못했다.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이기에 현수는 말없이 기다렸다.

“흐음,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을 주시면 따로 알아보고 보고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에구, 바쁘신데 괜한 부탁드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전무님이 알아보라고 하신 거니 확실히 알아봐 드려야죠. 한 시간 내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리죠.”

이준섭 차장이 나간 후 현수는 또 다른 상념에 잠겼다. 할 일은 많고 몸은 하나인지라 자꾸 생각이 엉켰다.

머리가 좋아져서 나쁜 점은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연관된 다른 일들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골치가 아프다. 그렇기에 탕비실에서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셨다. 이때 전화가 울린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우웅―!

“전무님, 인사부 이준섭 차장입니다.”

전무실을 나간 지 10분도 안 되는데 벌써 알아본 모양이다.

“아, 벌써 알아보신 겁니까?”

“네, 천지섬유 연구실에 의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계열사 중에 천지섬유가 있었군요.”

현수는 깜박 잊고 있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나 이건 현수의 실수가 아니다.

천지그룹에 많은 계열사가 있다는 건 안다. 이때까지는 관심이 적어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스무 개 이상이 있다.

그중 전자, 통신, 화학, 정유는 업계 1∼2위를 다툰다. 천지건설은 현수가 따온 두 개의 일감으로 1위에 우뚝 섰다.

반면 천지물류, 천지섬유, 천지플라자 등은 유명하지 못하다.

그렇다 하여 매출액이 적다는 것이 아니다. TV 광고 등에 노출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다.

어쨌거나 천지섬유에서는 여러 종류의 섬유를 생산한다.

식물성 섬유인 면[Cotton]과 마[Lynen], 동물성 섬유 모[Wool]와 견[Silk]을 양산한다.

뿐만 아니라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 폴리우레탄 같은 합성섬유와 재생섬유인 레이온, 그리고 반합성섬유인 아세테이트도 생산한다.

이 밖에 카본섬유 등을 양산해 내는 기업이다.

다시 말해 거의 모든 섬유를 만들어낸다. 도산하려던 작은 회사들을 병합하면서 덩치가 커진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차장의 보고는 이어진다.

“천지섬유 연구실 전화번호는 032―45XX―99XX이고요, 실장님 연락처는 010―78XX―12XX입니다. 실장님 성함은 김국환입니다. 제가 연락을 드려놨으니 전화하시면 곧바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식사 한번 같이 하시죠.”

“네, 연락 주시면 언제든 나가겠습니다.”

‘흐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지?’

통화를 마친 현수는 곧장 김국환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띠리링! 띠리리링!

꽤 오랫동안 전화기를 들고 있었는데 받지 않아 끊으려 했다. 하여 전화기를 내리는데 누군가의 음성이 들린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김국환 실장님이신가요?”

“네. 그런데 누구십니까?”

“저는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입니다.”

“아, 전무님. 조금 전에 이준섭 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희에게 의뢰하실 일이 있으시다고요?”

“네, 만나 뵙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괜찮으신지요?”

“뭐, 저야 늘 연구실에 있는 사람이니까 언제든 오시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여긴 천지건설 본사입니다.”

“흠, 한 시간 반쯤 걸리겠군요. 네, 좋습니다. 오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거기 위치는…….”

위치를 확인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누군가 노크를 한다.

똑, 똑, 똑!

“네, 들어오십시오.”

들어선 사람은 서른을 갓 넘긴 듯한 사내였다.

“안녕하세요? 업무지원팀 이창만 대리입니다.”

“아, 그래요? 무슨 일이죠?”

“전무님께서 주문하신 차가 도착했습니다.”

“아, 그래요? 마침 잘되었네요. 차는 어디에 있죠?”

“지하 3층 주차장에 당도해 있습니다. 인수해 주셨으면 해서 올라왔습니다.”

“알겠습니다. 내려가죠.”

지하 3층에 당도하니 덩치 큰 사내가 서성이고 있다.

“아니, 박 대표님? 박 대표님이 어떻게 여길…….”

뜻밖의 인물은 울림네트워크 대표이사 박동현이었다.

“그야 전무님 차 가져다 주려고 왔지요.”

“네? 박 대표님이 직접이요?”

“직원들이 워낙 바빠서요. 가장 안 바쁜 제가 왔습니다.”

이창만 대리는 둘의 대화를 듣고 한 발짝 뒤로 빠진다. 자신이 끼어들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참, 이 대리님, 인수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건가요?”

“네. 차는 제가 확인했습니다.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주세요. 하죠.”

현수는 더 볼 것 없기에 인수자란에 사인을 했다.

“이 대리님,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아, 네에. 알겠습니다. 이만 물러갑니다.”

이 대리가 물러간 후 현수가 입을 열었다.

“작동 방법은 가는 동안 배우면 안 될까요?”

“네?”

“제가 지금 급히 출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렇습니다.”

“아, 네. 마침 잘되었네요. 저도 전무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타시죠.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 좀 부탁드립니다.”

5장 나 어떡해?

스피드에 탔다. 스포츠카인지라 차고가 낮다는 느낌이다.

부우웅! 끼이익! 부우우웅! 끼이이익! 부우우우우웅!

좌석 뒤쪽에서 배기음이 들리는데 생각보다 시끄럽지 않다. 몇 번의 회전으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온 노란색 스피드가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주행 중이던 차들이 약간씩 거리를 뗀다. 흔치 않기에 외제차인 것으로 오해하는 모양이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물어내야 할 돈이 엄청나다.

지금은 훨씬 덜해졌지만 예전엔 벤츠의 사이드 미러를 망가뜨리면 국산 소형차 한 대 값을 지불해 줘야 했다.

언론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현재에도 외제차의 수리비는 국산차에 비해 5.3배나 더 든다.

이러다 보니 앞차가 외제차이면 차선을 바꾸는 것이 속편하다. 추돌하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의 스피드는 곧장 천지섬유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가는 동안 각 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별로 어렵지 않다.

모든 설명을 마친 박동현 대표가 입을 연다.

“전무님, 대체 엔진을 어떻게 하신 겁니까?”

“연비 측정을 해보신 겁니까?”

“네. 스피드의 공식 주행 연비가 리터당 9.4㎞입니다. 그런데 이 차 연비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좋아지긴 한 거죠?”

“끄으응!”

박동현 대표는 침음부터 낸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하루 종일 연비 측정만 했습니다. 물론 전문가가 운전을 해서 연비가 더 나왔을지 모르지만 시내 주행 평균 연비가 무려 31.8㎞입니다. 세상에 이런 차 없습니다.”

“흐음, 생각보다 덜 나왔네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네?”

박 대표의 말꼬리가 심하게 올라갔다.

“내 목표는 리터당 최하 100㎞는 달리는 거거든요.”

“헐! 리터당 100㎞라니요?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러니까 목표지요.”

현수가 웃음 짓자 박 대표가 말을 잇는다.

“어젯밤 이 차 엔진 내려서 직원들이 샅샅이 확인해 봤습니다. 기존 엔진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저에게만이라도 비밀을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궁금해서 어젯밤 잠도 못 잤습니다.”

박동현 대표의 말은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 차량 인계를 위해 본인이 직접 온 것도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런 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엔진은 울림네트워크에도 제공이 될 거예요. 그러니 궁금하더라도 조금 참으세요.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니니.”

“네에? 리터당 31.8㎞나 달리는데도요?”

이번에도 박 대표의 말꼬리는 심하게 올라갔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리터당 100㎞는 달리게 하고 싶다고요. 기름값도 비싼데 연비가 좋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끄으응!”

박 대표는 또 한 번 침음을 냈다. 그리곤 입을 연다.

“정말 이 엔진을 우리 회사에 제공해 주실 겁니까?”

“네. 하지만 개량이 더 필요하니 엔진 몇 개를 더 보내주십시오. 전처럼 이실리프 무역상사 사무실로요.”

“알겠습니다. 즉각 조치하지요.”

말을 마친 박 대표는 블루투스를 이용하여 회사에 연락했다.

스피드에 장착될 엔진 다섯 개를 즉시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보내라는 내용이다. 현수도 통화할 수밖에 없었다. 엔진 다섯 개가 갈 것이니 받아놓으라고 했다.

가는 동안 박 대표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참, 김형윤 상무, 출장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아, 그래요?”

“김 상무가 김 전무님을 뵙고 싶다고 하더군요.”

“네, 선배님이시니 제가 찾아봬야지요.”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저희 울림네트워크는 여러 회사가 있습니다. 울림정보, 울림네시스 등입니다.”

“그래요?”

“이번에 울림네트워크에서 자동차 사업부를 분할하여 울림모터스로 만들려 합니다.”

“……!”

남의 회사 일이기에 현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김형윤 상무를 울림모터스의 사장으로 보내려 합니다.”

“그런가요?”

현수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는 선배를 사장으로 내정하면 자신과의 인연이 길어질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래야죠.”

“이번에 분사를 하면 저희 주식의 일부를 김 전무님이 매입해 주실 수 있는지요?”

“주식을 매입해요?”

“네. 돈이 추가로 드는 건 아니고, 저희에게 선지급했던 돈만큼 주식을 드리는 건 어떨까 해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주식에 욕심이 나서도 아니고 선지급했던 돈을 빨리 회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별 생각 없이 한 말이다.

하지만 훗날 울림모터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면서 현수는 또 한 번 떼돈을 벌게 된다.

현재는 액면가 500원짜리 1주당 가격이 불과 273원이다. 그런데 12,676,900원으로 급상승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울림모터스는 분사를 하면서 박동현 대표 지분 45%, 김형윤 상무 지분 10%, 그리고 현수의 지분 45%로 나뉜다.

현수가 개조된 엔진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중 일부가 시장에 흘러들게 되면서 울림모터스의 지분율은 조정된다.

박동현 대표는 28%, 김형윤 상무 9%, 현수 45%, 나머지 18%는 주식 투자자들이 갖게 된다.

박동현 대표와 김형윤 상무는 현금이 필요하여 주식을 매도했지만 현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에 지분율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덕분에 현수는 실질적인 사주가 된다.

“여기까지 태워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서울까지 가려면 교통편이…….”

“괜찮습니다. 전철 타고 가면 되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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