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60화 (360/1,307)

# 360

“네, 그럼 조심히 살펴서 가세요.”

“또 뵙겠습니다.”

박동현 대표가 전철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현수는 운전석에 앉았다.

“흐음, 앞으로 잘 지내보자.”

부르르르릉!

시동을 걸고는 서서히 출발시켰다. 아직 손에 익지 않아 약간은 조심스런 마음이 든 때문이다.

오늘 나온 새 차인데 어디 긁히기라도 하면 짜증이 날 것이다. 그렇기에 속력을 내지 않고 천천히 목적지로 향했다.

마침 서비스로 장착해 준 내비게이션이 있었기에 천지섬유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수의 차가 공장 입구에 당도하자 경비원이 다가온다.

“어서 오십시오. 어떻게 오셨습니까?”

“김국환 연구실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러시다면 잠깐 하차하시어 방문록을 작성해 주십시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김현수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차에서 내려 경비실에 들어가 방문록을 작성하는 사이에 경비원이 김국환 실장과 통화를 한다.

제법 보안이 철저한 회사인 듯싶다.

“이제 들어가도 됩니까?”

“네. 저쪽의 파란 건물 보이시죠? 저기가 연구동입니다. 주차는 건물 앞에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연구실장님께서 내려오신다니 현관에서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현수가 차를 몰아 연구동 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경비원은 방문록을 들여다본다.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청년이 멋진 스포츠카를 끌고 왔다.

처음 보는 엠블럼인데 아무래도 비싼 외제차 같다. 하여 천지섬유 회장님의 아들인가 싶어 그러는 것이다.

그러다 방문록에 적힌 이름과 직책을 보곤 탄성을 낸다.

“헐!”

신문과 방송에서 그토록 떠들어대던 월급쟁이의 신화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였던 것이다.

“흐음, 그런데 건설 전무님이 섬유 연구소장님은 왜 만나러 오신 거지?”

경비원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나 이내 상념을 지웠다. 자신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김국환 실장입니다.”

“아, 네에, 반갑습니다. 김현수라 합니다.”

현수가 명함을 건네자 김 실장 역시 명함을 준다.

가볍게 악수를 하곤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목적으로 오신지 몰라 일단 응접실로 모십니다.”

“네에.”

현수는 복도 양쪽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섬유 샘플을 둘러보며 김 실장의 뒤를 따랐다. 응접실이라 쓰인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차를 내온다.

건강에 좋은 생강차로 향이 좋았다.

“저를 찾으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에서 섬유질을 분리해 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현수가 디오나니아의 잎을 꺼내자 흥미롭다는 듯 바라본다. 그냥 가져오기엔 너무 커서 가로세로 50㎝ 정도 되게 자른 것이다. 커터 칼 같은 걸로는 어림도 없어 바스타드 소드에 오러를 입혀 잘라냈기에 반듯하다.

무게는 불과 100여 g이다.

“이건 뭡니까?”

“콩고민주공화국 정글에서 채취한 식물의 잎사귀입니다. 정글도로 베어도 잘 베어지지 않아 가져왔습니다.”

“그래요? 겉보기엔 선인장의 잎사귀 같은데……. 제가 커터 칼로 잘라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근처에 있던 커터 칼을 꺼내 디오나니아의 잎사귀를 조심스럽게 베어본다.

그런데 칼날이 잘 들어가지 않자 힘을 주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칼은 좀처럼 잎사귀를 파고들지 못했다.

“이잇!”

“저도 그걸로 해봤는데 잘 안 되더군요. 방향을 바꿔도 그렇고요. 게다가 억지로 베어낸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흠집이 사라집니다.”

“흠집이 저절로 사라진다고요?”

“네, 두 시간만 지나면 흠집이 사라집니다. 천천히 시험해 보십시오.”

“전무님 말씀대로라면 대단한 식물이군요.”

“네. 여기서 섬유를 얻어낼 수 있다면 방탄복이나 방검복의 재료가 될 것 같아 채취해 왔습니다.”

“좋은 의견이십니다.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어요.”

“그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외국에서 섬유를 수입하는 일이 줄어들고, 국산 방탄복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천지섬유를 떠난 현수는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예상대로 다섯 개의 엔진이 놓여 있다.

“흐음, 조금씩 바꿔보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

소매를 걷고는 이내 작업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결재를 받으러 들어왔던 은정이 슬그머니 나가는 것조차 모를 지경이다.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진동한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전화가 걸려온 것이라면 진동이 계속될 텐데 딱 두 번만 몸살을 앓고는 침묵한다.

확인해 보니 메시지가 들어와 있다.

현수 씨, 시간 날 때 전화 주세요.

“흐음, 지현 씨구나.”

번호를 확인하곤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컬러링이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로 바뀌어 있다.

“현수 씨, 저 지현이에요.”

“네, 문자 주셨네요.”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이 있으신가 해서요.”

“저녁에요?”

“네, 어머니께서 현수 씨랑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셔서요.”

“저녁 식사요? 근데 어머니라니요? 지현 씨 어머니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뇨. 우미내 어머니요. 오늘 어머니와 함께 장을 봤거든요. 갈비찜이랑 잡채, 그리고 꽃게탕 만들고 있어요.”

“네에? 어, 어디서요?”

너무나 당황스런 대답이었기에 현수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어디긴요. 우미내에 있는 집이지요.”

“네? 뭐라고요?”

현수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크게 대꾸했다.

이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이어 전화 속의 음성이 바뀐다.

“현수냐? 엄마다.”

“어머니!”

“잔말 말고 퇴근하는 대로 곧장 집으로 오너라. 아버지도 곧 오신다 하니 웬만하면 윗사람에게 말하고 지금 들어와.”

“……!”

“알았지? 너 좋아하는 갈비찜 만들려고 새아기하고 장까지 봐왔으니까 늦으면 안 된다. 알았지?”

뚝―!

어머닌 할 말만 하시곤 전화를 끊어버리신다.

“헐! 이게 대체 무슨……. 끄응, 미치겠네.”

현수는 좌불안석이 되어 이리저리 서성였다. 그러다 문득 시계에 시선이 미쳤다.

저녁 7시 32분!

저녁 식사도 잊은 채 엔진 개조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아까 은정이 들어왔던 것은 식사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으려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 열중해 있어서 묻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집에 안 들어가면 미움 받겠지? 제기랄, 어쩔 수 없군.”

현수는 곧장 집으로 출발했다. 물론 스피드를 몰고 갔다.

부우웅! 부우우우웅―!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에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하여 나직한 엔진음이 그대로 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소리가 약간 이상하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든다.

‘흐음, 이것 때문에 연비가 제대로 안 나온 건가? 흡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거야, 아님 배기가 어려운 거야?’

신경을 집중시켜 엔진음을 들고 있자니 어느새 우미내 마을이 보인다.

띵똥―!

“현수냐?”

“네, 어머니.”

텅―!

문이 열린다. 현수는 안으로 들어가 차고의 셔터를 올렸다. 새 차를 밖에 세워두긴 싫었기 때문이다.

차를 넣고 안에 들어가니 음식 냄새가 그득하다.

“왔냐?”

“네, 아버지.”

어느새 귀가하신 모양이다.

“오늘 네 엄마와 새아기가 고생이 많았다. 너하고 나 먹인다고 낮부터 음식 장만하느라 애썼다고 한다.”

“그래요? 근데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걸 몰라서 물어?”

“네. 무슨 날이죠? 혹시 제가 중요한 날을 잊은 건가요?”

“에구, 이 녀석아!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날짜 가는 건 확인하고 살아라. 오늘 네 생일이잖아.”

“……!”

달력을 보니 진짜 그렇다. 현수는 세월 가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신다.

“이제 밥 먹어야 하니 편한 옷 입고 내려오너라.”

“네, 아버지.”

현수는 양복을 벗고 집에서 입던 트레이닝복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걸 입지는 않았다. 무릎 툭 튀어나온 트레이닝복 입은 모습을 지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캐주얼한 것으로 갈아입고 내려왔다.

어느새 거실에 커다란 상을 꺼내놓았고, 음식이 그득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권지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웃으며 고개를 까닥인다. 하여 웃는 낯으로 고개를 숙여줬다.

이걸 본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멋대가리 없는 녀석 같으니! 애인이 집에 왔으면 아는 척을 해야지, 엄마 있다고 내외하는 거냐?”

“그런 거 아니에요.”

어머니의 핀잔에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긴, 다 보인다, 이 녀석아. 저렇게 예쁜 아가씨를 감춰놓고 한 번도 안 보여주다니. 나쁜 놈 같으니. 그동안 엄마 아빠가 너 장가 못 갈까 봐 얼마나 속 태웠는지 알아?”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도 한 말씀 하신다.

“그래, 그건 네 엄마 말이 맞다. 나이 삼십이 다 되도록 여자 한번 안 사귀었으니 어찌 장가가는 걸 걱정하지 않았겠냐? 하지만 이제 되었다. 새아기가 마음에 쏙 든다.”

‘헐……!’

권지현이 부모님에게 만점을 받은 모양이다.

한편 권지현은 장차 시부모님 될 분들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두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다.

“자, 얼추 준비되었으니 이제 앉아서 먹자. 새아가, 너도 어여 앉아라.”

“어머,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니 먼저 앉으세요. 저는 꽃게탕 가져올게요. 아버님도 앉으시구요.”

“허험! 오냐. 그럼 그래 보자.”

아버지가 먼저 자리에 앉으셨다.

“어머니, 어머니도 앉으세요. 그래야 저희가 불편하지 않단 말이에용.”

지현은 그간 감춰두었던 애교까지 부린다.

“그래? 새아기 마음이 불편하면 안 되지. 알았어. 내가 먼저 앉을 테니 꽃게탕 얼른 가져오너라.”

“네, 어머니.”

지현이 휑하니 주방으로 가자 부모님의 시선이 뻘쭘하게 서 있는 현수에게 향한다.

천지건설에선 하늘같은 전무이사님이고, 이실리프 상사와 이실리프 무역상사에선 대표이사 사장님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에선 절대 주주이고, 울림네트워크와 극동솔라파워에선 언제나 환영받는 귀한 손님이다.

아르센 대륙에선 비록 사기이기는 하지만 코리아 제국의 백작이고, 8써클 대마법사이다. 거기에 소드 마스터이며 보우 마스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 우미내 집 안의 현수는 아직 장가 못 가 부모 속이나 썩히는 아들일 뿐이다.

“앉아, 이 녀석아!”

“그래, 어여 앉거라.”

부모님의 채근에 어쩔 수 없이 앉았다.

그런데 자리 배치가 묘하다. 부모님이 나란히 앉았으니 이제 지현이 오면 현수의 곁에 붙어 앉게 된다.

현수는 내심 꺼림칙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때 지현이 꽃게탕을 가져오며 입을 연다.

“아버님, 꽃게탕 냄새가 정말 좋아요. 어머니 음식 솜씨가 너무 좋으신 거 같아요.”

“그래? 새아기 말대로 냄새가 좋구나.”

“분명히 맛도 좋을 거예요. 그쵸?”

지현의 말에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입을 헤 벌리고 웃는다. 이때 지현의 시선이 어머니에게로 옮겨간다.

“어머니, 나중에 이거 만드는 법 좀 꼭 가르쳐 주세요. 네?”

“그래, 식 올리고 나면 하나하나 가르쳐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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