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
연기파 배우 김명민이 성웅 이순신 역할을 맡았던 ‘불멸의 이순신’은 104부작이다.
‘전능의 팔찌’는 이보다 훨씬 긴 156부작으로 제작된다. 워낙 할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1년 반 동안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이 되면 거리에 인적이 끊긴다. 정시에 다녀야 하는 버스와 지하철만 다닐 뿐 택시와 자가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수능을 앞둔 고3 교실에서도 야간 자율학습을 멈추고 드라마를 방영한다. 안 그러면 모두 도망쳐 버리기 때문이다.
현수는 이 드라마에도 카메오 출연을 한다. 천지건설 신형섭 사장 역할이다.
결국 ‘전능의 팔찌’는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인 87.6%를 끝으로 마감된다.
어쨌거나 1년 반 동안 매 주말마다 온 국민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대하드라마가 끝나던 날 방송국 홈페이지는 마비된다.
즉시 2부를 만들어서 방영하지 않으면 방송국을 폭파해 버리겠다는 협박이 다수이다.
김현석 작가의 홈페이지도 몸살을 앓는다. 즉각 2부를 집필하라는 요구가 대다수이다.
이 밖에 ‘전능의 팔찌’는 유례없는 가격에 팔려 외국에서도 방영된다. 지구 이야기도 그렇지만 판타지 세상 이야기가 외국인들의 흥미를 끈 때문이다.
지금껏 가장 비싸게 팔린 드라마는 2011년 일본에 팔린 드라마 ‘사랑비’였다. 장근석과 윤아 주연 드라마이다.
총 20회로 회당 4억 5천만 원씩 90억 원을 받았다.
둘 다 한류스타로 이름을 날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능의 팔찌’는 회당 8억 원씩 1,248억 원이란 엄청난 가격에 팔린다. 이건 일본이나 지나에 팔린 게 아니다.
태국과 베트남에서 각각 구입한 가격이다. 이 밖에도 전능의 팔찌는 여러 나라에 팔려간다. 매출 총액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약 1조에 달할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 결과 이인철 PD는 또 한 번 특별 진급을 하게 된다. 물론 보너스도 왕창 받는다.
아무튼 현수의 외도는 끝이 났다. 문제는 티저 영상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현수는 그런 것을 모른다.
촬영을 마친 현수는 이인철 PD와 스태프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 방송 출연 기념으로 한턱낸 것이다.
이날 저녁, 티저 영상을 긴급 제작하여 홈페이지에 올린 이인철 PD는 다음 날 드라마국장의 호출을 받는다.
“여어, 이 PD! 영상 잘 보았네. 좋더군.”
“그러셨습니까? 감사합니다.”
“김현수 전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군에 있을 때 같은 곳에서 복무했습니다.”
“아, 그래? 근데 말이야, 혹시 김현수 전무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수 있을까?”
“네? 왜요? 드라마국에서 김 전무와의 인터뷰를 왜……?”
이인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드라마 국장이 약간은 비굴한 웃음을 짓는다.
“그게 말이야, 연예국과 보도국 국장이 자꾸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해서 그러네.”
작년에 이인철이 속한 KBC에선 파업이 선언되었다.
사장의 친정부적인 언론 활동 때문이다. 해도 너무한다고 판단한 직원들은 언론으로서의 제 역할을 주장하며 파업했다.
그때 국장들은 철저한 사장 편이었다. 그렇기에 도와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게 아마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해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는데 단호하게 거절하더군요.”
물론 현수와 이런 대화는 나눠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 한번 해보게. 그래야 내 면이 좀 서지 않겠나? 알았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 친구 성품이 한번 아니라고 결정지으면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거든요.”
이 말 역시 이인철이 제멋대로 지어낸 것이다. 그리고 현수에게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을 할 생각도 없다.
티저 영상을 찍어준 것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쩝, 아무튼 말이나 한번 해보게. 그리고 영상, 진짜 괜찮았어. 난 웬 배우인가 했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국장실을 나온 이인철은 피식 웃음 지었다. 상황에 따라 대번에 바뀌는 국장의 간신 같음을 비웃는 것이다.
“흐음, 이제 슬슬 아르센에 가봐야지? 이번엔 확실히 작살낸다. 기다려라, 라이세뮤리안!”
이를 바득 간 현수는 전능의 팔찌를 살펴보았다. 마나석이 거의 다 충진된 듯 짙은 회색이다.
현수는 체이탁 저격소총을 꺼내 들었다. 총알도 살폈다. 마법진이 제대로 새겨져 있는가를 최종 확인하려는 의도이다.
잠시 후, 전능의 팔찌를 확인한 현수는 서둘러 결계를 걷어냈다. 이곳은 덕항산 동굴이다.
전능의 팔찌를 얻었던 바로 그곳이다.
“좋아, 확실하게 복수해 주지. 마나여, 나를 아르센으로 데려다줘.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또 한 번 안개처럼 스러진다.
복잡하고 피곤한 도시 생활을 떠나 바캉스를 가는 기분이었기에 사라지는 현수의 얼굴엔 웃음이 배어 있었다.
* * *
“흐음, 확실히 공기가 달라.”
아르센 대륙에 당도한 현수의 첫마디였다. 이곳은 현수가 라수스 협곡에 들어와 사흘이나 헤맸던 바로 그곳이다.
오늘은 아르센력으로 따졌을 때 7월 26일이다.
한국 같으면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이 두려울 만큼 뜨거운 여름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리 덥지 않다. 워낙 울창한 수림이 많아서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당연히 없겠지. 놈은 여긴 모르니.”
교토삼굴(狡?三窟)이란 말이 있다.
꾀 많은 토끼는 도망갈 구멍을 세 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말로, 교묘한 지혜로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한다는 뜻이다.
라이세뮤리안에게 300파운드짜리 컴파운드 보우로 저격을 했다가 실패했다. 그때 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수십 번의 텔레포트를 했다.
그때에도 이 장소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왔을 때 놈이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는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다.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충진시키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워낙 마나가 풍부한 곳인지라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수는 텔레포트하여 최초로 놈을 저격했던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절로 탄성이 나온다.
“헐!”
그곳은 완전한 폐허였다.
현수가 있던 곳으로부터 뒤쪽으로 무려 500여 m는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 없다.
용암만큼 뜨거운 화염의 브레스가 휩쓸고 간 결과이다.
울창했던 숲은 뜨거운 브레스에 휩싸여 증발되었고, 바위는 녹아내렸다. 기화되었던 암석이 다시 응결하여 유리질로 변한 곳도 보인다. 반들반들해 보이는 곳들이다.
“엄청나군!”
화염의 브레스가 얼마가 가공할 위력을 지녔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한 현수는 일단 자리를 옮겼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기에 놈의 시선이 미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다시 한 번 텔레포트할 좌표를 확인했고, 차원 이동에 필요한 전능의 팔찌를 살폈다.
그리곤 체이탁을 꺼내 들었다. 소음기와 22배율 줌이 가능한 고배율 스코프까지 달려 있다.
다음엔 408 체이탁 전용 탄환을 장전했다. 플라이와 헤이스트, 그리고 오토믹 붐 마법진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최대 장탄수인 일곱 발을 장탄하고는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켰다.
마지막으로 전용 PDA를 꺼냈다.
종합적 기상 상태 파악에 사용되는 Kestrel 4000 전자 장비와 목표까지의 거리 측정기 Vectror Ⅳ와 같이 쓰이는 것이다.
잠시 후 총알을 발사하면 총알 속도나 소음기의 상태를 측정해서 NXS 5, 5―22X 스코프에 나타나게 해줄 것이다.
기본 사거리가 2㎞를 넘으니 화살처럼 시험 발사를 해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언젠가 현수가 본 디스커버리 채널 중 ‘Future Weapon’이 있다. 체이탁이 등장했는데 2,313m 떨어진 곳의 철판 몇 겹을 관통시키는 장면이 있었다.
현수가 있는 곳으로부터 라이세뮤리안의 레어는 약 2㎞이다. 충분히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현수는 총을 거치시키고 엎드려쏴 자세를 갖췄다. 그리곤 8써클 마법인 헬 파이어의 마나 배열을 확인했다.
총을 쏘았는데 만일 놈이 느낀다면 전과 같이 워프해서 올 것이다. 도착과 동시에 화염의 브레스를 뿜을 것이고, 안티 매직 필드 마법을 구현시킬 것이다.
그에 대응하여 준비한 것이다.
자리를 잡고 엎드려 있은 지 여덟 시간이 지났지만 놈은 보이지 않았다. 현수는 최근의 과제였던 엔진에 관한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몸은 엎드려 있지만 머릿속은 수많은 수식이 오갔다.
각종 경우의 수를 따졌고, 그것을 해결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마법 확인 작업이었다.
밤을 꼬박 샜다. 다음날 아침, 한국식으로 따지면 오전 5시 30분경 드디어 레어 밖으로 놈이 나왔다.
전과 달라진 점은 주변을 살핀다는 것이다. 현수는 현재 스나이퍼 위장 중이다. 주변과 거의 동화되다시피 하기에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현수를 느끼지 못한 듯하다.
안전하다 판단했는지 놈이 전처럼 체조 비슷한 몸짓을 한다.
방아쇠에 손을 얹은 현수는 스코프를 통해 보이는 놈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잠시 전율했다.
거대한 덩치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복수심마저 잃은 것은 아니다.
스코프로 놈의 머리를 노렸다.
총알이 두개골을 뚫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머리를 노린 것은 심장의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부상당한 맹수가 더 사나운 법이다. 그렇기에 한 방에 깨끗이 보낼 생각으로 뇌를 노린 것이다.
호흡을 멈춘 채 방아쇠만 조용히 잡아당겼다.
푸슝―!
아르센 대륙 최초로 인간이 만든 병기가 총알을 토했다.
408 체이탁 전용 총알의 총구 속도는 1,066㎧이다. 그런데 PDA로 계산된 결과는 1,213㎧이다.
마법의 영향으로 늘어난 모양이다.
어쨌거나 발사된 총알이 라이세뮤리안에게 당도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1.65초 정도 된다.
방아쇠를 당기고도 고개를 들지 않은 현수는 스코프를 통해 놈을 지켜보았다.
과연 예민하기는 엄청 예민한 놈이다. 발사와 거의 동시에 시선을 돌린다. 그리곤 입술을 달싹인다.
“배리어, 배리어,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콰앙! 피융! 퍼억! 꽈앙!
꽈르르르르릉―!
세 개의 배리어를 연속으로 뚫고 들어간 탄환은 마지막 앱솔루트 배리어를 뚫지 못한 듯하다.
놈의 몸이 아닌 전면에서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현수는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또 당겼다. 첫 발로 해결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앱솔루트 배리어는 뚫지 못했다.
과연 앱솔루트라는 말을 붙일 만하다.
효과 없음에도 두 번째와 세 번째 총알을 발사한 이유는 시간 벌기용이다.
“오픈 아공간!”
시커먼 아공간이 입을 벌리자 체이탁을 던져 넣었다.
“아공간 닫아!”
현수는 속으로 계산을 했다.
‘하나, 둘, 셋!’
“헬 파이어!”
현수의 입에서 ‘파’ 자가 나올 때 10m 전면에서 강력한 마나 유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어’ 자가 끝나 마법이 발현되려던 바로 그 순간 라이세뮤리안의 거대한 덩치가 눈앞에 나타났다.
화아악―!
“으읏! 블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