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9
운동장에 나가 몸을 푸는 동안 두 여인의 시선은 현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언니, 자기야 운동 잘해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등산은 그런대로 잘했는데 공은 잘 차는지 모르겠어.”
“이겼으면 좋겠다. 그죠?”
“그럼. 이길 거야. 본사 체면이 있잖아. 상금도 제일 많고. 안 그래? 다른 자잘한 것 이기는 것보다 낫잖아.”
“호호, 네에.”
둘은 별도로 마련된 귀빈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수는 준결승 후반에 투입되어 한 골을 넣었다. 누가 보면 전형적인 뻥 축구이다.
11명 가운데 10명이 수비만 했다. 본사팀을 만만히 본 상대는 전원 공격을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본사팀 선수들은 필사적으로 수비를 했다. 발로 축구를 한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혼전 중에 누군가 센터링을 했다.
혼자 센터 서클 부근에 있던 현수는 지체없이 공을 찼다. 그런데 그게 골인이 되었다.
어이없는 골이다.
상대팀 골키퍼가 많이 전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본사팀이 밀렸다.
어떻게든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어야 이기는 상대팀의 파상 공세가 이어진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동점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1대 0 본사팀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화끈한 공격 축구를 기대했던 관중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한 골을 넣은 이후 현수까지 수비에 가담하였기 때문이다.
경기를 하면서 관중석에 앉아 있는 셀레마니와 여러 번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녀석은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린다.
이에 싱긋 웃어주었을 뿐이다.
결승전이 있기 전까지 초청 가수 레이 레마, 파파 웸바, 웨라슨, 마누 디방고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콩고민주공화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유럽까지 알려진 가수라는 것이다.
아무튼 모든 공연이 끝났다. 이제 피날레를 장식할 축구 결승전이 시작되려 하자 모든 관중이 함성을 지른다.
그런데 다분히 본사팀을 겨냥한 듯한 구호가 터져 나온다.
“공격 축구! 공격 축구! 공격 축구!”
“우리는 화끈한 축구를 보고 싶다! 들리는가, 본사팀?”
관중들이 이렇듯 한목소리를 내는 것엔 이유가 있다.
본사팀과 상대할 7구역팀엔 셀레마니 이외에도 콩고민주공화국 축구 대표팀 선수 네 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세 명은 1군이고, 나머지 하나가 2군 선수이다.
이에 반해 본사팀은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11명 중 두 명만 콩고민주공화국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축구 선수였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튼 한국과 콩고민주공화국 대표팀 간의 경기처럼 여겨졌기에 이처럼 환성을 지르며 7구역팀을 응원하는 것이다.
“나야 축구 경기의 전술을 잘 모르니 뭐라 말하지 않겠네. 최선을 다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이춘만 공동대표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자자, 결승전에서는 아까처럼 수비 위주가 아닌 공격 축구를 합시다. 하지만 너무 공격적이면 곤란합니다. 상대팀에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있으니까요.”
“네에? 정말요?”
모두 몰랐다는 표정을 짓는다.
“네, 다섯 명이나 됩니다. 아무튼 저와 홍 과장님, 그리고 김 대리 이렇게 셋만 공격에 나서겠습니다. 여러분은 가급적 우리 진영에 포진해 있으십시오. 그리고…….”
현수는 팀원 하나하나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참! 홍 과장님과 김 대리도 너무 많이 치고 올라오지는 마세요. 수비에 적극 가담해 주시구요.”
“알겠습니다.”
홍 과장과 김 대리가 무거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상대의 만만치 않은 전력 때문일 것이다.
“자아, 파이팅 한번 외치고 경기에 임합시다.”
“아싸! 아싸! 나가자! 이기자! 파이팅!”
“와와와와와와!”
본사팀 선수들이 각기 자기 자리를 찾아 그라운드로 뛰어 나가자 요란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본사팀을 응원하기 위한 소리가 아니다.
7구역팀원들 역시 막 포진하기 시작했던 때문이다.
“결승전이지만 친목 경기이니 두 팀 모두 신사적으로 경기에 임해주실 거죠?”
특별 초빙된 국제심판의 말에 현수와 셀레마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둘의 시선은 상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셀레마니가 호전적인 눈빛으로 쏘아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식 웃어주고 돌아섰다.
삐익! 삐이익―!
호각 소리가 나자 셀레마니가 공을 뒤로 돌리고는 즉각 전방으로 튀어 나간다.
그와 동시에 홍 과장과 수비수 하나가 따라붙는다. 7구역팀의 골게터인 셀레마니를 밀착 수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탁월한 주력과 능숙한 몸놀림으로 이내 두 사람을 따돌리고는 텅 빈 공간으로 뛰어든다.
이때 상대팀 수비수의 센터링이 시도되었다.
뻐엉―!
공은 셀레마니가 뛰어드는 전방으로 날아간다.
셀레마니는 이제 곧 상대방 진영을 마음껏 휘저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지 여유있는 표정으로 사방을 살폈다.
이때 쏜살처럼 쇄도하는 인영 하나가 보인다. 현수이다.
셀레마니는 바닥을 맞고 튀어 오르는 공을 장악하기 위해 몸의 방향을 바꿨다. 현수의 쇄도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그 순간 뭔가가 눈앞을 스친다. 그리고 앞에 있어야 할 공이 사라졌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 떴던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그 순간 함성이 터져 나온다.
“와아아아아!”
시선을 돌려보니 조금 전 곁에 있던 현수가 벌써 중앙선을 넘어서 있다.
국가대표 수비수 둘이 달려들었지만 간단히 돌파되었다.
둘을 제친 현수는 오른쪽에서 쇄도하는 홍 과장에게 패스를 했다. 세 녀석이나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타깃을 잃은 셋이 홍 과장 쪽으로 튀어가는 순간 공은 김 대리를 거쳐 다시 현수에게 패스되었다.
이때 현수는 왼쪽 골포스트 인근까지 쇄도한 상태이다. 김 대리의 패스와 동시에 앞쪽으로 튀어 나갔다.
간단하게 업사이드 라인을 돌파한 현수는 날아오는 공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곤 돌고래가 수면을 박차고 오르듯 튀어 올랐다. 수비수 하나가 같이 뛰었지만 머리 하나 이상 더 높다.
워낙 근력이 좋기 때문이다.
철렁∼!
7구역팀 골망이 흔들린다. 현수의 이마를 맞은 공이 반대쪽 골포스트에 맞고 안쪽으로 들어간 결과이다.
“……!”
“와아아아아!”
기쁨의 환성을 지르는 사람들은 본사팀뿐이다. 7구역팀을 응원하던 사람들 모두 입을 벌린 채 일어서 있다.
7구역팀이 골을 먹어서가 아니다. 방금 전의 골은 EPL에서도 가끔 볼 정말 멋진 헤딩이었기 때문이다.
골키퍼가 막으려 했지만 워낙 속도가 빨라 허공에 헛손질을 할 정도이다.
“와아아아아아!”
뒤늦은 함성이 터져 나온다. 7구역팀에 패해 결승에 오르지 못했던 팀들이 있는 곳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개념이 적용된 듯하다.
공은 다시 센터 서클 안에 놓였다. 셀레마니는 순식간에 한 골 먹은 게 억울하다는 듯 현수를 노려본다. 그러거나 멀거나 현수는 뒷짐 진 손의 손가락 둘을 폈다.
시작과 동시에 어떻게든 인터셉트할 테니 홍 과장과 김 대리 모두 튀어 나가라는 뜻이다.
심판이 손짓하자 셀레마니는 습관처럼 공을 뒤로 돌렸다. 그 공이 뒤쪽에 있던 선수의 발에 닿는 순간 현수가 튀어 나갔다.
“어어∼!”
상대 팀 선수가 당황하는 사이에 공을 장악한 현수는 지체없이 오른쪽 빈 공간으로 찼다.
그곳으로 김 대리가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오른쪽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공과 상관없는 쇄도이기에 상대팀 수비수들은 중앙으로 쇄도하는 홍 과장과 드리블하고 있는 김 대리 쪽으로 쏠린다.
오른쪽 구석을 향해 뛰던 현수가 중앙 쪽으로 좁히는 동안 홍 과장은 오른쪽 골포스트 쪽으로 뛰어갔다.
이때 김 대리가 공을 띄웠다.
“홍 과장님!”
현수는 날아오는 공을 보면서 홍 과장을 불렀다. 그리곤 마치 제기차기를 하듯 공을 차올렸다.
골키퍼의 손에 닿지 않을 높이로 올라간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홍 과장 쪽으로 간다.
그곳엔 아무도 없다. 모두 현수 쪽으로 몰린 때문이다.
날아온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한 홍 과장은 2002년 월드컵 대 포르투갈 전에서 박지성이 그러했듯 왼발 강슛을 날렸다.
물론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론 아주 엉성한 폼이다. 그럼에도 공은 쉽게 골라인을 넘어갔다. 골키퍼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출렁∼!
“와아아아아!”
설명은 길었지만 현수가 공을 인터셉트하여 김 대리에게 날렸다가 이것이 골로 이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 초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한 골을 얻은 것이다.
관중석의 환호가 이어질 때 가에탄 카구지는 평소 축구에 관심이 많던 건설국장 조셉 투윙크에게 시선을 준다.
“국장, 저거 봤나? 골도 골이지만 김 사장의 자로 잰 듯한 패스! 공이 가슴 높이에 떨어지도록 찬 거야. 조사해 봐. 김현수 사장 혹시 축구 선수 출신이었던 거 아냐?”
“그러게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놀라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저런 패스를 할 수 있죠?”
같은 순간, 관중석에 앉아 있는 한 인물 역시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 국가대표팀 코치이다.
“흐으음, 정말 대단하군. 저 선수는 분명 프로가 아닌데 마치 프로처럼 골을 넣도록 만들어주는군.”
홍 과장의 골도 멋졌지만 현수는 그렇게 되도록 모든 수비수를 자기 쪽으로 쏠리게 했다.
그리곤 텅 빈 공간에 패스를 해서 연습 경기하듯 마음 놓고 슛을 때릴 완벽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잠시 후 공은 다시 센터써클 안에 얌전히 놓이게 되었다.
셀레마니는 여전히 현수를 노려본다. 이에 피식 웃음 지으며 손가락 넷을 펼쳤다. 일명 스프링 작전을 하자는 뜻이다.
“이번엔 꼭……!”
셀레마니가 뒤로 찬 공은 곧바로 패스되었다. 혹시 또 빼앗길까 싶어 공을 뒤로 돌린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공을 받은 선수가 다른 선수에게 패스를 하면서 7구역팀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파상공세를 퍼붓던 7구역팀의 공이 혼전 속에서 본사팀 수비수에게 굴러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전방을 향해 뻥 찼다. 그와 동시에 수비에 가담했던 현수가 튀어 나가기 시작한다.
스톱워치가 없어 측정할 수는 없지만 100m를 9초쯤 돌파할 어마어마한 속력이다. 곧이어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된다.
셀레마니는 그 자리에 선 채 멍하니 현수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조차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리고 공에 대한 지배력이 좋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는 순간 골키퍼가 슈팅 각도를 줄이기 위해 튀어 나온다. 이를 침착하게 살핀 현수는 슬쩍 제치고는 툭 차 넣었다.
출렁∼!
7구역팀의 골망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와아아아아아∼!”
원맨쇼에 대한 환성이다.
콩고민주공화국 국가대표팀 코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선수들을 마치 초등학생 다루듯 하는 현수의 실력에 질린 것이다. 셀레마니 역시 고개를 흔든다.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본사팀이 이겼다. 최종 스코어는 5대 0이다.
후반전 내내 현수가 수비에 가담한 결과이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슛 두 개를 막아냈다. 둘 다 셀레마니가 찬 공이다.
너무도 어이없었는지 셀레마니는 한참 동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골키퍼까지 제쳤는데 막아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경기가 끝나 라커룸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다가선다. 셀레마니와 내기 축구를 했을 때 심판을 맡았던 대표팀 코치이다.
“이, 이보시게.”
“네? 저요?”
“그래. 자네, 우리 축구팀에 들어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