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80화 (380/1,307)

# 380

“제가요? 콩고민주공화국 대표팀에요?”

“그렇다네. 우리 국적도 갖고 있다면서? 그럼 당연히 대표팀 선수가 될 수 있네.”

“에이, 농담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그리고 저 축구에 별 관심 없어요.”

말을 마친 현수는 코치가 뭐라 하기도 전에 라커룸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이보게.”

코치가 막 현수의 어깨를 잡아당기려 할 때 가가바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곳은 선수 이외에 출입 금지입니다.”

“뭐라고? 자넨 누군가? 내 앞을 왜 막아?”

“나는 김현수 사장님의 보디가드입니다. 그리고 이곳부턴 선수 이외엔 출입금지입니다.”

“자네, 내가 누군지 모르나?”

“압니다. 대표팀 코치라는 걸. 하지만 더 이상의 접근은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가가바의 굳은 표정을 본 코치는 힘없이 돌아선다.

20여 분 후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가장 높은 단상엔 당연히 본사팀 선수들이 올라가 있다. 시상은 천지약품 이춘만 공동대표가 했다.

잠시 후, 귀빈석으로 돌아온 현수를 본 가에탄 카구지가 진심 어린 시선으로 묻는다.

“자네, 정말 축구선수인 적이 없나?”

“하하, 네. 군대에 있을 때 공을 차본 게 다예요.”

“끄으응!”

“허얼! 프로 뺨치는데도 아마추어라니 말도 안 돼!”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과 조셉 투윙크 건설국장이 침음을 내뱉는다. 정말 대단한 실력이라 느낀 때문이다.

“네, 정말입니다.”

단합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한 축구 결승전은 천지약품 소매점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끝났다.

시상식 때엔 모두가 기립박수를 쳐 줬고, 당연히 대회 MVP는 김현수로 선정되었다.

“현수 씨! 정말 멋졌어요!”

“자기야, EPL 진출을 고려해 봐요. 베컴이나 호날두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요.”

저택으로 먼저 돌아와 있던 연희와 이리냐가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한다.

둘은 조금 아까 끝난 결승전 녹화 장면을 다시 보는 중이다.

천지약품 소매점들의 첫 번째 단합대회를 기록하기 위해 모든 경기 장면이 녹화되었던 것이다.

이번 경기에서 현수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청난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소드 마스터에 이른 체력이 밑바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셋은 단란한 한때를 보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곤 커피 대신 쉐리엔 주스를 즐겼다.

왠지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하여 매일 한 잔씩 마신다고 한다. 물론 아직은 그 효능을 모르고 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막내인 이리냐가 받았다.

3장 러시아에서 온 서찰

“자기야, 지르코프 보스가 면담을 요청하는데 어쩌죠?”

“지금 온대?”

“그러고 싶대요.”

“그럼 오라고 하지, 뭐. 오랜만에 같이 식사나 하게.”

“네, 알았어요. 그럼 오라고 할게요.”

이리냐가 통화하는 사이에 연희가 스르르 안겨온다. 현수는 어깨를 당겨 조금 더 깊숙이 보듬어주었다.

“어머님은 언제 출국하신대?”

“지금 정리하고 계신가 봐요. 그거 다 마치면 곧장 오신대요. 참,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 직원들이 찾아와서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대요. 모두 현수 씨 덕이라며 고맙다 전해 달라 하셨어요.”

“고맙기는, 당연한 일이잖아. 이제 곧 장모님 되실 테니 잘해 드려야 하잖아. 안 그래?”

“장모… 님이요?”

연희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장모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장모님이 아냐?”

“아, 아뇨. 그러니까 괜히 기분이 조금 이상해서요.”

연희가 뭔가를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자 부드럽게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앞으로 잘 모실 테니 걱정하지 마. 알았지?”

“고마워요. 저도 잘할게요.”

현수는 연희의 이마에 부드럽게 키스를 하곤 일어났다.

지르코프가 왜 오는지는 몰라도 그를 맞이하기 위한 복장을 갖추기 위함이다.

“하하! 이거 오랜만입니다.”

“네에, 어서 오십시오.”

지르코프가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청했기에 현수 역시 환히 웃어주었다.

“오랜만이에요, 보스.”

“이리냐도 오랜만이야. 행복해 보여서 좋네.”

“보스 덕이에요.”

이리냐는 정말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호오, 대단한 미인이십니다.”

지르코프의 시선을 받은 연희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찌 되었든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곧 제 아내가 될 사람입니다.”

“그럼……?”

이리냐는 어찌 되느냐는 표정이다.

“여긴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국가 아닙니까.”

“하! 그럼……. 하하! 이거 축하합니다. 이런 미인들과 함께하니 행복하겠습니다.”

“네에, 무척 행복합니다.”

현수는 연희와 이리냐의 어깨에 두 손을 두른 채 환히 웃었다. 조금의 가식도 섞이지 않은 미소이다.

“보스, 식사 전이지요?”

이리냐의 물음에 지르코프가 환히 웃는다.

“이 집 음식이 입에 맞았는데 저녁도 주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미스터 지르코프는 언제든 환영이니까요.”

넷은 담소를 나누며 만찬을 즐겼다.

가가바를 비롯한 경호원들과 지르코프를 수행하고 온 마피아 단원들은 내내 집 밖에서 경호를 했다.

지르코프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만찬 내내 웃음을 선사했다.

식사 후 자리를 옮기자 연희와 이리냐는 자연스럽게 둘만 남기고 사라졌다.

“미스터 지르코프, 정말 화기애애한 만찬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 제게 용무가 있다 하셨는데, 그게 무언지요?”

“우리 레드 마피아에도 파벌이 있다는 거 아십니까?”

“파벌이요?”

“레드 마피아는 현재 다섯 보스에 의해 지배됩니다. 세력 분포로 분류하면 2강 3약으로 나누어볼 수 있죠.”

“2강 3약……. 그렇다면 절대 강자가 최소 둘이란 뜻이군요.”

“그렇죠. 모스크바를 지배하는 알레세이 이바노비치 보스와 쌍벽을 이루는 보스가 하나 더 있습니다.”

“……?”

현수는 조용히 귀만 기울였다. 가만있어도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2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은 보리스 유리 칼리니첸코가 지배하고 있죠.”

“……!”

“냉정히 평가하면 이바노비치 보스보다 조금 더 큰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보다 더 큰 세력이라는 것이 감잡히지 않았기에 현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르코프의 말은 이어졌다.

“보스의 오랜 숙원은 일인자가 되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스는 분명 이바노비치일 것이다. 그런데 듣고 보니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현수 본인은 암흑가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길 제게 하시는 이유는 뭔지요?”

“현재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드모비치 상사와 월 5천만 달러 수준의 거래를 하고 있죠?”

“맞습니다.”

“이실리프 무역상사도 돈을 벌겠지만 그 거래를 통해 보스 또한 적지 않은 이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현수는 진심으로 기분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래 상대자의 이익은 둘 사이의 호감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을 느꼈는지 지르코프 또한 웃음 짓는다.

“김현수 사장님께서 좋은 물건을 보내주신 때문이라 보스께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정말 기분 좋은 이야기네요. 그런데요?”

지금까지의 대화는 의례적인 것일 것이다. 이런 말을 하려 러시아에서 교통 불편한 킨샤사까지 오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왜 찾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에 현수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최근 한국에서 쉐리엔이란 다이어트 보조제가 발매된 것으로 압니다. 김현수 사장님이 과반 주주인 대한약품에서 나온 거지요.”

“맞습니다. 이리냐가 모델을 했습니다.”

“네, 저도 광고 영상을 보았습니다. 아주 멋진 CF더군요.”

“그렇게 봐주셨다니 다행입니다. 근데 쉐리엔 이야긴 왜?”

“보스께서 그걸 취급하고 싶어하십니다.”

“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당연히 드모비치 상사를 통해 러시아에 공급할 계획입니다.”

현수는 한참을 뜸 들였지만 이제야 의도를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지르코프가 정색하며 입을 연다.

“보스께선 쉐리엔의 유럽 판매권을 요청하셨습니다.”

“네?”

현수의 반문을 어찌 된 영문인지 설명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지르코프의 상세한 배경 설명이 이어진다.

현수의 요청에 따라 쉐리엔의 CF는 이리냐를 모델로 했다.

대한약품의 민윤서 사장은 이리냐와 현수의 인연이 보통이 아닐 것이란 짐작했다. 하여 상당히 많은 양의 쉐리엔을 무상으로 공급해 주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사 제품의 CF모델에게 제공하는 양보다 많았다.

이중 과반은 이리냐의 강력한 후원자인 지르코프에게 보내졌다. 그의 부인과 딸에게 주라는 뜻이다.

지르코프는 그중 절반을 모스크바로 보냈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그걸 아내와 딸, 그리고 정부(情婦)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너무나 놀라웠다. 살이 쑥쑥 빠지는 것 같음에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하여 보다 자세한 평가를 요구했다. 그리곤 쉐리엔의 가치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토록 갖고자 했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찾은 것이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레드 마피아지만 금력이 약하면 부하들을 건사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알렉세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관장하는 보리스 유리 칼리니첸코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제2도시이기 이전에 항구도시이다. 보리스는 이곳의 항구를 장악했다.

하역과 선적 일을 하는 사람 거의 전부가 레드 마피아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많은 밀수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보리스는 레드 마피아의 일통을 노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원을 이루지 못한 것은 강력한 경쟁 상대인 알렉세이 때문이다.

아무튼 보리스는 알렉세이와의 금력 차이가 더 벌어지는 3년쯤 후에는 소원을 이룰 것이라 낙관하고 있다.

러시아의 교역 규모가 커지면서 점점 벌어들이는 액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세이는 금력의 차이를 메울 방법을 다각적으로 모색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쉐리엔을 접한 것이고,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드모비치 상사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 공급하는 것만으로 막대한 부를 형성시킬 수 있다.

여기에 전 유럽의 공급권까지 가지면 보리스와의 격차를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숨에 역전까지 가능하다.

그렇기에 현수와의 안면이 많은 지르코프를 급파한 것이다.

“흐으음!”

모든 설명을 들은 현수는 턱을 괴었다. 생각해 볼 문제이기 때문이다. 눈까지 지그시 감은 채 반응이 없자 지르코프의 엉덩이가 들썩인다.

이번 임무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듣고 왔다. 그런데 혹시라도 거절하게 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이번 일은 협박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보스는 절대 위협적인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참 마법의 위력이다.

현수가 고심하는 표정을 짓자 애가 닳은 지르코프가 말을 잇는다.

“보스께선 향후 3년간을 요구하신 겁니다.”

“3년간이요?”

“제가 알아보니 대한약품은 유럽에 어떠한 판매망도 갖추지 않고 있습니다. 상품을 공급하려면 직접 유통망을 갖추거나 현지 유통업계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건 맞습니다.”

현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유통망 때문에 고심하던 차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등 선진 유럽엔 비만 여성이 바글바글하다.

모두 쉐리엔의 열렬한 추종자가 될 사람들이다. 그런데 공급시키는 것이 여의치 않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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