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81화 (381/1,307)

# 381

하여 어찌할 것인지를 고심하는데 지르코프의 말이 있었다.

“보스께선 3년이 지나면 쉐리엔의 유럽 유통망을 기꺼이 양도할 것입니다.”

“……!”

“물론 러시아의 유통망은 제외됩니다.”

“대한약품과 상의해 본 후 답변해 드리지요.”

“긍정적이었으면 합니다.”

“하하, 물론입니다. 아마 대한약품의 민 사장님도 큰 반대는 하지 않을 겁니다.”

“네에.”

지르코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하다. 현수는 빙그레 웃어주었을 뿐이다.

“참, 이걸 전한다는 걸 잊었습니다.”

지르코프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밀봉된 편지이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이 즐겨 사용하던 촛농을 가문의 문장으로 누른 것이다. 겉봉을 보니 ‘김현수 친전’이라 쓰여 있다. 물론 러시아어이다.

“이건……?”

“메드베데프 총리가 보낸 친필 서한입니다.”

“네에?”

현수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온다는 걸 알고 내게 전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수는 곁에 있던 나이프로 편지의 한쪽을 틔어냈다.

안에 든 것을 펼쳐 보니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친애하는 김현수 씨에게.

그간 잘 있었는지요?

일전엔 테러로 인한 피해로 경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급한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여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연락처를 드렸기에 곧 통화될 줄 알았으나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러시아에서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위기에서 저를 구해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참, 전에 그려주셨던 몽타주 덕분에 테러리스트와 그 일당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서한을 보내는 이유는 비밀리에 요청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략>

편지의 내용은 꽤나 장황했다.

소비에트연방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는 대내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대외적으로는 글라스노스트(개방)라는 실용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보리스 옐친(Boris Nikolayevich Yeltsin)이다. 옐친이 집권한 이후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1997년 말부터 시작된 동아시아 금융 위기의 여파가 러시아에 밀어닥치게 되었던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1998년 8월에 러시아는 루블화의 평가 절하, 그리고 루블화 표시 외채에 대해 90일간의 모라토리엄, 곧 지불 유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 경제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져든 것이다.

당시 물가 상승률은 약 80%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89개 지역 가운데 22개 지역에서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뿐만이 아니라 일부 지역의 경우, 기아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처럼 경제가 악화를 거듭하면서 서민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국민의 20% 정도가 극빈층에 속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그날그날 최소한의 식료품을 걱정하며 살아야 했다.

병들고 쇠약해진 러시아를 맡아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은 사람은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집권 직후 푸틴은 망가져 버린 러시아 경제를 파악하곤 개탄했다. 스스로 러시아가 이류 국가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당시 러시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달러였다.

하지만 오랜 적인 서방에 손을 내밀 생각은 없었다. 하여 은밀한 공작 하나를 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교전 중인 적에게도 돈을 빌려준다는 로스차일드 뱅크에서 막대한 돈을 빌린 것이다.

2000년 6월 로스차일드 뱅크와 만기 15년짜리 계약이 체결되었다. 당시 빌린 금액은 황금 30톤에 해당하는 돈이다.

이를 빌려주면서 로스차일드는 상환할 때 같은 무게의 금괴로 지불해 줄 것을 요구했다.

돈이 급했던 푸틴은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금값이 무섭게 치솟기 시작했다.

2013년 10월 현재 금값은 당시의 다섯 배로 뛰어올랐다. 적지 않은 이자도 이자지만 원금이 다섯 배로 늘어난 것과 다름없다.

얼마 전, 로스차일드는 푸틴에게 이른 상환을 요구했다. 만기를 2년 정도 남겨둔 때였다.

이에 곤란하다는 뜻을 보냈다. 그만한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빼는 게 쉽지 않다.

과거와 달리 상당히 투명해진 정책 때문이다.

하여 난색을 표했더니 로스차일드에서는 2013년 12월 31일 이내에 상환을 해줄 경우 6조 원에 해당하는 금액만 받겠다고 했다.

불과 1년 6개월 사이에 상환해야 할 원금의 40%가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고심 끝에 러시아 경제인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곤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전 같으면 강력한 카리스마로 단숨에 제압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인들도 당하고만 있지 않을 수단을 강구해 둔 뒤였다. 갖가지 핑계를 대고 모조리 빠져나간 것이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자신들의 기업만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푸틴은 이를 갈았다. 그리곤 총리가 된 메드베데프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현수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레드 마피아의 모스크바 보스가 그를 통하여 콩고민주공화국에 적지 않은 양의 무기를 들여보냈다는 것이다.

현수는 잉가댐 공사를 수주했고, 초장거리 고속도로 공사도 따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큰 농장을 조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이야기되었다.

이 정도면 사업 시작 전부터 자금 조달을 위한 은행 대출 등을 알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실리프 상사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은행 빚이라곤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담보로 한 것 이외엔 없다.

현수가 계획하고 있는 농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최소 1조 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만한 돈은 웬만한 대기업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자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돈이 어디에 있든가 대줄 사람이 확정되었다는 뜻이다.

그 돈을 빌리자는 것이 푸틴의 생각이다.

대가는 남, 북, 러 가스관 연결 사업권이다.

이전에 논의되었던 내용은 연간 750만 톤씩 30년간 공급이다. 이를 대폭 늘려 연간 1,000만 톤씩 50년간 가스를 공급해 주면 한국은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좋을 것이다.

북한의 경우는 매년 1억 5천만∼2억 5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된다. 국제적인 경제 제재를 당하고 있는 현재에 이만한 돈이면 북한 경제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러시아는 한국까지 가스관 연결 사업을 위해 북한이 진 구소련의 채무 110억 달러(약 13조 원)의 이자 유예는 물론 90%를 탕감해 주면서까지 사업에 강한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극동 아시아에 강력한 군세를 가진 한국을 우방으로 만들 찬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한 이유는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에 이어 김정은의 불안한 체제 장악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복안은 이렇다.

현수에겐 최소 1조 원 이상 동원 가능한 자금이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천지그룹과는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연희가 이 회장의 손녀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두그룹 후계자 중 하나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들만 제대로 동원할 수 있다면 6조 원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인도 유태인처럼 돈 벌기에 집착한다. 하지만 유태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정도가 무언지 알고 있으며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돈을 벌고 싶어하지만 남들을 쥐어짜면서까지 벌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경제적 동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잽(Jap)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로스차일드와의 계약처럼 상대의 약점을 잡은 무리한 요구는 없을 것이다.

현수를 택한 두 번째 이유는 보안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수는 한국에서만 유명한 인물이지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물론 신화창조 티저 영상이 나오기 전의 평가이다.

아무튼 현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한 때문이다. 쉽게 말해 되면 좋고 안 되어도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보낸 것이다.

메드베데프와 푸틴은 현수가 제안을 받아들일 확률을 10%대로 보고 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업을 뒤로 미루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제안한 것이 바로 가스관 연결 공사이다. 여기에 철도 연결 공사까지 언급되면 확률은 대번에 30%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에서 바라던 바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로스차일드와의 계약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푸틴은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이었으니 금값이 오를 것이란 것이 뻔하던 시절에 한 계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도의 보안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편지를 태우고 내용을 잊어달라고 쓰여 있다.

현수는 한참 동안 서찰의 문구를 음미했다.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다.

지르코프는 내용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푸틴의 최측근으로부터 제대로 된 경고를 받은 때문이다.

레드 마피아가 강하기는 하다. 하지만 푸틴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렇기에 찍소리 않고 바라만 보고 있다.

뭔가 심각한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순간 현수의 뇌리로 수많은 상념이 스쳤다.

로스차일드가 어떻게 태동되었고 어떻게 금융가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가한 시간에 섭렵한 수많은 서책 덕이다.

한국은 1997년 말에 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대내적인 것과 대외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내적인 이유는 허술한 관치금융 체제, 무능한 정부의 예산 낭비이다.

또한 대기업들의 분식회계와 과도한 차입 부실 경영, 그리고 당시 사회 전체에 만연된 경제적 무능력과 부패, 책임 의식 실종에 의한 결과이다.

대외적인 이유로는 퀀덤 펀드의 창시자인 세계적 투기꾼 조지 소로스를 필두로 1990년대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들어왔던 외국인의 투기성 자본이 일시에 빨려 나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외화가 남아돌자 해외여행 등을 통해서 그것들을 모두 소비해 버렸다.

그 결국 외국인들이 반환을 요구했을 때 외화가 없어서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잘못된 경제 정책을 입안하여 도산한 기업의 수가 27,268개에 이른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경제적 능력을 잃은 가장들은 이혼당했다. 하여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모든 불행의 근본은 무능한 정부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미운 놈이 바로 조지 소로스와 같은 유태 자본이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자본을 빼감으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행과 아픔을 주었다.

푸틴에게 돈을 빌려준 로스차일드 역시 유태 자본이다.

메드베데프가 요구한 액수는 약 6조 원 정도 된다. 달러화로 환산하면 약 54억 3,400만 달러이다.

국제 금 시세는 현재 1온스당 1,725달러 정도 된다.

이대로 환산해 보면 약 89톤의 황금이다.

아공간엔 이보다 훨씬 많은 황금이 있다. 그걸 활용할 생각을 하느라 잠시 상념에 잠긴 것이다.

“이것에 대한 내 의견은 누구에게 전하면 되죠?”

“받으신 명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편지를 태웠다. 지르코프는 내용이 궁금했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게 신상에 이롭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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