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82화 (382/1,307)

# 382

지르코프는 저녁까지 먹으며 환담을 나눴다.

지르코프는 아버지를 잃은 이리냐의 후견인이다. 현수가 보스의 귀빈이며, 이리냐가 현수의 여인이기에 자청한 것이다.

매월 제법 많은 용돈을 주었다고 한다.

이리냐는 그 돈을 모아두었다가 현수가 입을 양복과 와이셔츠, 그리고 구두, 선글라스, 넥타이, 커프스 버튼, 허리띠 등을 쇼핑했던 것이다.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인간관계가 부드럽고 오래가는 법이다.

현수는 조만간 출시될 NOPA와 홍익인간에 관한 이야길 했다.

광범위 진통제인 홍익인간과 CRPS 환자들에게 구원을 줄 NOPA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 장담했다.

내친김에 미라힐Ⅰ과 미라힐Ⅱ, 그리고 청향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그 결과 지르코프는 러시아 의약품 유통 시장으로 진출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한국의 질 좋은 의약품을 독점한다면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오늘 참으로 유익한 만남이었습니다.”

“네에, 저도 좋았습니다.”

“보스,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안녕히 가세요.”

“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현수와 연희, 그리고 이리냐의 배웅을 받은 지르코프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따르르릉―!

“네에, 메드베데프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나직한 저음이 인상적이다.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오! 미스트르 킴! 반갑습니다.”

현수는 상대가 진심으로 반가워함을 느꼈다. 음정과 음색 자체가 확연하게 달라졌던 것이다.

“그간 안녕하셨지요?”

“하하! 네에, 덕분에 잘 지냅니다.”

“보내주신 서찰은 잘 받았습니다.”

“오! 그래요?”

메드베데프는 더 길게 묻지 않았다.

“제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네에? 서찰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어떻게……?”

지르코프가 언제 어떻게 출국했는지 보고받은 바 있기에 이토록 빠른 결정에 놀란 것이다.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최대의 국영 가스 회사인 가스프롬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가스프롬은 러시아 국내 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며, 전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 기업이다.

메드베데프는 가스프롬의 회장으로서, 그리고 러시아의 총리와 대통령으로서 엄청난 금액을 주물렀다. 하지만 6조 원에 달하는 지출을 이토록 쉽게 결정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다만 제게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지요?”

“올해 안이라면 미스트르 킴이 편한 시간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십시오.”

통화를 마친 현수는 테라스에 나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공간에 있는 히데요시의 황금은 쉽게 환금할 수 없다. 국제 금 시세를 요동치게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마냥 쌓아두고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드워프들에게 황금 75톤을 금괴로 정제해 달라는 요구를 한 바 있다.

그걸 돈으로 바꿔 이실리프 농산 등의 조성에 사용하려 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제작 완료되어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현수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곧장 아르센 대륙으로 차원이동했다.

“디멘션 트랜스퍼!”

샤르르르르릉―!

마나의 향기 속에서 현수의 신형은 안개처럼 스러졌다.

4장 노동의 대가는 맥주

“아차! 맥주!”

아르센 대륙에 당도한 현수는 얼른 아공간을 살폈다.

다행히 적지 않은 양이 있다.

“휴우! 있기는 있네. 흐음, 다음에 올 땐 맥주 좀 넉넉하게 가져와야겠군. 아차, 오늘 날짜가 며칠이지?”

급한 마음으로 차원이동을 하는 바람에 날짜 지정을 못한 현수는 얼른 노트북을 꺼냈다.

이동하는 날짜를 기록해 놓지 않으면 말이 맞지 않는 현상이 발생되기 때문에 차원이동을 할 때마다 꼭 확인해야 한다.

자칫 혼자서 멍청한 소리를 하는 이상한 놈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흐음, 지난번에 차원이동 한 게 7월 29일이었어. 지구에 머문 날짜는 10월 2일부터 8일이었으니까 이곳은 8월 4일쯤 되겠구나. 아차, 여긴…….”

현수는 얼른 몸을 낮추고 사방을 살폈다. 라이세뮤리안이란 빨간 도마뱀이 노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변엔 없는 듯하다.

“휴우! 다행이군. 하마터면……. 일단 여길 뜨자.”

숲 속으로만 한참을 이동해 당도한 곳은 드래고니안 마을 부근이다. 조심스레 이 마을 인근까지 온 이유는 마나 유동을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드래고니안은 마법을 익힌 자들이 많으므로 이곳에서의 마나 유동은 라이세뮤리안이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이다.

어쨌든 사방을 살펴 안전함을 확인한 현수는 곧장 드워프들이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했다.

쿵, 쿵, 쿵―!

“누구냐?”

“빌모아 일족의 손님인 하인스입니다.”

“하인스? 아, 그 하인스? 흐음, 하인스라면 환영하네.”

삐이꺽―!

육중한 문이 열리면서 나는 소음이다.

“에구, 명색이 장인 종족이라면서 어찌 경첩에 기름칠은 안 하고 사십니까?”

현수의 타박에 드워프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그건 맥주가 부족해서야. 자네가 주고 간 맥주가 어찌나 맛이 있는지 다들 그거 재현해 낸다고 난리네. 그러니 경첩에 기름칠할 시간이 없는 게지.”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현수는 아공간에서 재봉틀 기름을 꺼내 경첩에 몇 방울 떨구었다.

“이제 소리가 덜 날 겁니다. 그리고 앞으론 이걸 쓰세요.”

드워프가 문을 흔들었지만 소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켈켈, 이렇게 좋은 게 있었으면 진즉에 내놓지. 아무튼 준 것이니 잘 쓰겠네.”

드워프 종족은 절대 사양하는 법이 없다더니 정말 그런 듯 재봉틀 기름을 받아 한쪽에 잘 놓는다.

“그나저나 제가 부탁드렸던 것은 다 되었습니까?”

“그럼, 맡긴 게 언젠데……. 벌써 다 되었네. 안으로 들어가게.”

“네, 이건 목마를 때 드십시오.”

현수가 건넨 시원한 캔맥주를 받아 든 드워프는 곧바로 따개를 따곤 단숨에 들이켠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목젖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캬아아아! 그래, 이 맛이야!”

드워프가 진심 어린 감탄사를 터뜨릴 때 현수는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몇 발짝 떼지도 않았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이보게, 하인스, 맥주! 시원한 맥주 좀 주게. 응?”

“에구, 빌모아 가문의 대를 이을 뻔한 케린도 빌모아님께서 왜 대낮부터 맥주 구걸을 하십니까?”

“맥주! 자네가 주었던 그 시원한 맥주 맛이 너무 기막혀 그러네. 그러니 꿍쳐둔 거 있으면 좀 주게.”

“하하, 네에. 여기 있어요.”

“켈켈, 고맙네. 역시 자네뿐이야.”

케린도 빌모아 역시 단숨에 목을 축인다.

“나, 나도…….”

“나도 주시게.”

“오오! 맥주다! 오리지널 맥주가 왔어!”

“진짜? 이보게, 하인스, 나도 하나 주게. 응?”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드워프들이 마치 좀비처럼 달려든다. 그들의 시선은 케린도 빌모아가 들고 있는 캔에 집중되어 있었다.

일전에 현수가 준 맥주는 일족에게 골고루 분배되었다. 물론 연배에 따른 차등 지급이다.

그런데 양이 넉넉하지 않아 80세 미만에겐 한 방울도 지급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빌모아 가문의 장로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애들은 가라! 어린 녀석들이 벌써부터 맥주 맛을 알면 안 되니 썩 꺼지거랏!”

“그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것들이 어디 벌써부터 맥주를 마셔? 80 안 된 놈들은 싹 빠져.”

나이 80에 어린애 취급을 받은 드워프들은 침만 삼켰을 뿐이다. 그래도 개길 순 없다.

할아버지, 큰아버지, 큰삼촌에게 어찌 개기겠는가!

속으론 엄청 욕했지만 겉으론 얌전히 찌그러졌다.

그렇다 하여 나머지 드워프들이 넉넉하게 마셨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워낙 애주가들인지라 병맥주 3,000병과 캔맥주 2,000개는 코끼리에게 준 작은 비스킷일 뿐이다.

아무튼 드워프 일족은 현수가 주고 간 OB, CASS, HITE 맥주의 맛을 잊지 못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장본인을 만났으니 너도나도 달려든 것이다.

“잠깐만요! 일단 족장님을 만나 뵐게요. 그게 먼저잖아요.”

“끄응! 할 수 없지. 모두 길을 터.”

누군가의 말에 홍해바다 갈라지듯 인파가 갈라지며 통로가 생긴다. 현수를 바라보는 드워프들의 눈에는 애원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냥 가지 말고 가는 동안에라도 하나씩 떨궈 달라는 표정이다.

“안녕하십니까, 족장님?”

“오오! 어서 오시게. 그렇지 않아도 자넬 기다렸네.”

“하하, 네에. 맥주 때문이시죠?”

“그래, 있지? 그렇지?”

족장 역시 한국산 맥주에 매료된 듯하다.

“네, 맥주는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부 드렸던 금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되긴, 벌써 다 만들었지. 일단 확인하게.”

“네, 그러죠.”

족장의 말대로 75톤에 이르는 금괴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감사합니다.”

하나를 들어 살펴보니 지구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고맙긴, 대신 맥주를 주지 않았는가!”

“저어, 족장님.”

“왜?”

현수의 은근한 음성에 족장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런 금괴를 더 만들어주실 수 있죠?”

“그럼. 이젠 이력이 붙어 시간도 얼마 안 걸리네.”

“그럼 제가 금을 조금 더 내놓겠습니다. 그걸 이것처럼 만들어주십시오.”

“그러지. 얼마나 만들어주면 되겠는가?”

“급하게 만들 건 15톤 정도고, 나머진 조금 시간이 걸려도 됩니다.”

“알겠네. 해주지. 대신 맥주 많이 내놓게.”

“하하, 그럼요. 물론입니다. 가서 창고에 꺼내 놓겠습니다. 참, 빈병은 다 모아놓으셨죠?”

“그럼. 그게 없으면 더 못 산다면서? 하나도 깨지지 않았네.”

“잘하셨습니다.”

현수는 금괴 75톤을 아공간에 담았다. 그리곤 병맥주 3,000병과 캔맥주 2,000개를 꺼내 주었다.

“이거 조금 더 없나?”

흐뭇한 표정으로 쌓여가는 맥주를 바라보던 족장의 말이다.

“네?”

“무기가 필요하다면 만들어주겠네. 우리 케린도 일족이 만드는 무구가 인간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는 알지?”

“그럼요. 아주 귀한 물건 취급 받지요.”

“자네가 원하기만 하면 어떤 병장기든 만들어주겠네. 대신 맥주를 많이 공급해 주게.”

족장은 일족의 맹세까지 깬 것임을 설명하곤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다.

현수 입장에선 드워프가 만든 무기가 필요 없다. 아공간엔 본인이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완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무기들을 손봐주실 수도 있습니까?”

“인간들이 만든 거?”

“네. 족장님이 보시기에 조금 조악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습니다.”

“흐음, 일단 꺼내보게.”

족장은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공간 속의 무구들을 꺼냈다.

현수가 꺼낸 것은 데니스 알만 드 유카리안 백작의 지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갑옷, 창, 검, 마갑, 투구 등이다.

카이로시아가 억류되어 있을 때 구하러 들어갔다가 눈에 뜨여 가져온 것이다.

“헐, 이런 쓰레기를…….”

하나하나 살피던 족장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조금 조악하지요?”

“조금? 조금이 아니라 이건 쓰레기일세. 하여간 인간들이란… 솜씨도 없으면서 이런 걸 어떻게……. 재료가 아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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