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83화 (383/1,307)

# 383

“어떻게든 손을 봐주십시오. 대신 맥주 많이 드리겠습니다.”

“정말인가?”

“네. 한 점당 맥주 열 병 어떻습니까?”

“한 점당? 갑옷, 창, 검, 마갑, 투구 하나에 열 병?”

족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가 꺼내 놓은 갑옷만 1,500벌이다.

창은 700자루, 검은 1,000자루이다. 여기에 투구 1,500개와 마갑 700개가 있다. 이 밖에 전투 시 팔목을 보호하는 완호갑도 있고, 정강이 보호를 위한 각반도 있다.

이것까지 전부 하나씩으로 치면 총 8,000여 점이다. 하나당 맥주 열 병이면 무려 8만 병이나 된다.

그 정도면 온 일족이 대취한 상태로 몇 달은 보낼 수 있다.

“적습니까? 그럼 하나당 막걸리 두 병 더 어떻습니까?”

“막걸리? 그게 뭔가?”

족장의 눈이 커져 있다. 무엇이냐는 표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에 얼른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마트에서 파는 포기김치도 꺼냈다.

내친김에 사발을 꺼내 막걸리를 따라주곤 포기김치를 손으로 쭉 찢었다. 물론 물티슈로 손을 씻은 뒤이다.

“일단 한잔 들이켜 보십시오.”

“그러지. 근데 이거 색깔을 왜 이렇게 뿌연가?”

색깔 때문에 조금 망설여지는 듯하다.

“그게 술이 좀 진해서 그런 겁니다. 영양가도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래? 그럼 자넬 믿고 한번 맛을 보지.”

족장은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입에 넣고는 잠시 맛을 음미한다. 그리곤 괜찮다는 듯 나머지를 들이켰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캬아아아아!”

족장은 맛이 기막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 아∼ 하십시오.”

“아? 그래, 아―!”

현수가 손으로 찢은 김치를 넣어주자 우걱우걱 씹는다. 그런데 표정이 오묘하게 바뀐다.

처음엔 ‘이게 뭔 맛이지?’ 하는 표정이다. 그러다 약간 매운맛을 느꼈는지 눈을 찡그린다.

그리곤 김치의 깊은 맛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러다 꿀꺽 삼키고는 입안에 남은 향을 음미한다는 듯 눈을 감는다. 입을 다문 채 코로 숨을 내쉬니 그윽한 풍미까지 느껴지는 모양이다.

“흐으음, 세상에 이런 것이……! 오오! 이게 뭐라고? 막걸리?”

“네. 제가 사는 코리아 제국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죠. 뿌연 건 막걸리고, 안주로 드신 건 김치라는 겁니다.”

“호오, 이거 좋네. 좋아, 거래하지.”

“하하, 네에. 그럼 거래 성사되었습니다.”

“자네가 이렇게 좋은 걸 준다니 우리도 선심을 쓰겠네. 철광석과 석탄, 그리고 숯 등을 구해오게. 그럼 더 많은 갑옷과 병장기를 만들어주겠네.”

현수는 족장의 말을 정중히 거절하려 했다.

조금 전 손을 봐달라던 갑옷 등은 장인이 될 테세린의 영주 로니안 자작에게 줄 선물이다.

유카리안 영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무장하여 잃었던 영토를 되찾는 데 쓰라는 뜻이다.

그런데 번뜩이는 상념이 있었다. 아드리안 공국군에게 드워프가 만든 무구를 제공하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이룩하고 가진 것 거의 전부가 멀린 덕분이다.

그의 후손들이 안정적으로 국가를 유지하게 하려면 적절한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적 자원도 중요하지만 갑옷과 검 등도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청동기 문명을 가진 자들은 철기 문명을 이룩한 이들에 의해 정복당했다.

이곳 아르센 대륙 역시 힘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드워프가 제작한 무구들은 전력 보강의 의미가 있다.

“알겠습니다. 재료는 제가 구해오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설명해 주십시오.”

현수가 적극적으로 나오자 족장은 눈빛을 빛낸다. 더 많은 맥주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이야기가 끝난 후 현수는 막걸리 1,000병과 포기김치를 꺼내주었다. 일종의 선수금인 셈이다.

현수는 황금도 꺼내 놓았다. 전보다 많은 양이기에 족장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대체 얼마나 많은 황금이 있느냐는 말에 웃어주었을 뿐이다.

“흐음, 라이세뮤리안과의 일이 끝나지 않으면 뒤꼭지가 개운치 않을 텐데 런처를 어디서 구하지?”

드워프 마을을 떠난 현수는 고심했다. 마땅한 화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공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K―6로 갈겨대고, 놈이 코앞에 당도했을 때에는 PP―19 (Bizon) 기관단총으로 공격했다.

그럼에도 끄덕없는 걸 보면 대책이 안 선다.

“K―6 같은 화기로도 안 되는 걸 보면 드래곤이 세긴 세군.”

지구에 살던 공룡이었다면 이미 걸레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드래고니안 마을 인근까지 당도하였다.

그런데 멀지 않은 갈림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온다. 보아하니 같은 방향으로 길을 가게 생겼다.

“응? 누구지? 드래고니안인가?”

붉은 머리인지라 언뜻 든 상념이다.

“……!”

상대도 현수를 봤는지 눈을 크게 뜬다. 잠시 멈칫하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온다.

“여어! 안녕하십니까?”

“누구… 신지요?”

스스럼없이 다가선 사내가 아는 척을 한다. 하지만 현수의 기억엔 이런 얼굴을 한 드래고니안은 없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해서요. 제가 아는 분이신가요?”

“허어, 이거 섭섭하군요. 일전에 뵈었는데……. 하긴 나와는 대결을 하지 않았으니……. 반갑습니다. 라세안입니다. 그쪽은 하인스님이시죠?”

“네? 아! 네에, 라세안님. 레뮈님과 형제지간이시죠?”

현수가 환히 웃으며 손을 내밀자 잠시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을 짓더니 손을 잡는다.

악수는 이 세상의 예법이 아닌지 조금 어색해하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왼손은 상처를 입었는지 붕대를 감고 있다.

“하인스님, 이 마을을 떠난 지 꽤 되었는데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겁니까?”

“하하, 그게… 사실은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아! 미혹의 숲에서 헤매셨군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여기까지……? 여긴 거기서 꽤 먼데…….”

“네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많이 헤맨 결과입니다. 한데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흘을 꼬박 혼자서 걸었기에 약간 심심하던 차이기에 물은 말이다.

“나도 세상 구경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아! 그렇군요. 그럼 라수스 협곡 너머로 나가려는 건가요?”

“네, 현재로썬 그렇게 해볼 생각입니다.”

“그럼 잠시 동행하게 되겠군요.”

라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갑시다.”

둘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점심때는 육포를 씹으며 걸었다. 저녁이 되자 호젓한 곳을 골라 야영 준비를 했다.

아공간에서 텐트를 꺼내자 라세안의 눈이 커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간 확장 마법을 걸고 침대 두 개를 꺼냈다.

현수가 밖으로 나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라세안은 침대를 꾹꾹 눌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체 뭐로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처럼 푹신푹신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은 때문이다.

“이봐, 하인스! 저건 대체 어디서 구한 건가?”

오는 동안 나이가 동갑이라 하였기에 말을 트고 있다.

“아, 저거? 저건 여기선 못 구하는 물건이야.”

“못 구해?”

“그래.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못 사는 물건이지. 어때? 괜찮지?”

“그래. 정말 푹신푹신한걸. 근데 그건 뭔가?”

현수가 탁자 위에 꺼내 놓은 야외용 가스레인지를 본 라세안의 눈이 또 커진다.

파란색 불이 똑같은 높이로 올라오는 것이 이색적으로 느껴진 모양이다.

“아! 이건 가스레인지라는 거야. 음식 조리할 때 쓰는 기구지.”

말을 하면서도 현수의 손은 분주했다. 오랜만에 캠핑 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때문이다.

현수가 준비하는 음식은 삼겹살이다. 상추와 깻잎, 그리고 참기름과 소금, 후춧가루 등도 꺼내 놓았다.

마늘과 막장, 그리고 김치도 꺼냈다.

다른 쪽에선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고, 그 곁에선 압력밥솥의 추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라세안은 삼겹살 구워지는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현수는 싱긋 웃어주고는 계속해서 손을 놀렸다.

이윽고 모든 음식이 준비되자 상을 차렸다.

“자! 앉아. 이 음식은 내 고향에서 즐겨 먹던 거야. 이렇게 해서 이렇게, 그리고 이걸 이렇게 한 다음에 이렇게 먹는 거야. 한번 먹어봐.”

푸짐하게 한 쌈을 싸서 자신에 입에 넣는 시늉을 하곤 라세안의 입에 넣어주었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려 받아먹은 라세안의 눈은 잠시 후 동그래진다. 현수가 이곳 아르센 대륙에 와서 여러 번 보았던 ‘세상에 이런 맛이!’라는 바로 그 표정이다.

“어때? 맛있지?”

“우욱, 우우우욱!”

“아, 입에 있는 건 다 먹고 말을 하게.”

“우욱, 우우우욱!”

“다 삼키고 말하라니까. 참, 삼겹살엔 이게 빠지면 안 되지.”

현수는 아공간에서 시원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곤 잔에 따라 건넸다. 라세안은 대체 무엇이냐는 표정이다.

“내 고향의 술이야. 이걸 먼저 들이켜고 한 쌈 싸서 먹어봐.”

“후와, 이게 뭔데 이렇게 맛이 있는 거지?”

황급히 우물거려 간신히 삼킨 라세안이 소주가 담긴 잔을 받으며 한 말이다.

“삼겹살이란 거네. 자, 다시 한 번 싸줄게. 먼저 이걸 들어. 그런 다음에 이걸 얹고, 요건 이렇게, 저건 이렇게, 그리고 요걸 찍어. 그리고 이걸 얹고…….”

현수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꼭 기억해야 한다는 듯 눈빛을 빛내며 바라본다.

“자, 이렇게 되었으면 그거, 그래! 그거 술이야. 한 번에 쭈욱 들이켜 봐.”

“쭈우우욱! 캬아아! 우와! 이거 되게 좋은데? 신선해!”

“그치? 자, 이제 이걸 먹어봐.”

또 한 쌈을 받아 든 라세안은 얼른 씹기 시작한다.

우걱우걱! 우걱우걱―!

볼살이 씰룩이는 동안 표정이 또 오묘해진다. 현수는 모처럼 유쾌한 기분이 되어 삼겹살 한 쌈을 싸서 먹었다.

결국 소주는 세 병이 나왔다. 둘이서 한 병 반씩 마신 셈이다.

식사를 마치곤 곧장 인근 개울로 향했다.

오늘은 8월 7일이다. 아무리 숲이 울창한 아르센 대륙이고 라수스 협곡 안이라 하지만 더운 날이다.

이런 날 하루 종일 걸었기에 제법 많은 땀을 흘렸다. 그러니 씻으러 간 것이다. 먼저 칫솔질을 시작했다.

치카치카! 치카치카!

“이보게, 그건 대체 뭘 하는 건가?”

“이거? 음식을 먹고 이를 잘 닦지 않으면 나중에 이빨이 썩어 고생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네. 하여 내 고향에서는 하루에 세 번 이렇게 이를 닦지. 한번 해보겠나?”

“설마 네 입속을 드나들던 그걸 주려는 건 아니겠지?”

라세안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하, 물론 아니지. 새 걸로 주지. 자, 여기에 이걸 이렇게 짜서 묻힌 다음에 내가 했던 대로 하게.”

“좋아.”

치약 묻힌 칫솔을 받아 든 라세안은 현수가 하던 대로 칫솔질을 시작했다.

치카, 치카, 치카.

“우욱! 매, 매워! 뭐야? 왜 이렇게 매워? 독약 아냐?”

“독약? 그럼 난 왜 괜찮은 건데?”

양치질을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던 현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때 매운 기운이 느껴졌는지 라세안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웨엑! 너무 매워! 퉤퉤, 퉤퉤퉤!”

서둘러 입안을 헹군 라세안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맛있는 거 먹여놓고 독살하려던 것 아니냐는 뜻이다.

“그거 하고 나니 왠지 입안이 상쾌한 것 같지 않나?”

“상쾌? 어? 그러고 보니…… 흐음!”

라세안은 생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 드는지 나직한 침음을 낸다. 혀로 입안을 굴리는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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