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
“뭘 그렇게 오래 계산하나? 그건 5,000,050,000! 정리하면 5십억 5만이네.”
“…자네 미리 계산해 놓은 문제를 낸 거지?”
“아니. 그럼 자네가 문제를 내게.”
“좋아, 1부터 50만까지의 합은?”
이건 계산 못할 것이란 표정을 짓고 있는 라세안을 본 현수는 피식 웃고는 숫자를 말하기 시작했다.
“125,000,250,000. 그러니까 1,250억 25만이네.”
“……!”
숫자로 대답한 후 정리까지 해준다. 라세안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난 조금 앞서 걷겠네. 정답인지 아닌지 계산해 보게.”
말을 마친 현수가 앞서 나갔지만 라세안은 여전한 속도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는 엄청난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찌 쉽게 답이 나오겠는가!
몇 시간이 지나도록 라세안은 정답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둘의 대화는 끊겼다.
그렇게 점심도 거른 채 걷고 또 걸었다.
저녁나절, 현수와 라세안은 다프네가 사는 마을 인근에 당도했다. 저녁밥을 짓는지 연기가 피어오른다.
“맞군. 1,250억 25만.”
“그걸 여태껏 계산한 거야? 내 고향에선 열다섯 살짜리도 1분이면 계산하는 걸.”
“뭐?”
자존심 팍팍 긋는 소리지만 라세안은 노발대발하지 못했다.
아까 1부터 10만까지 더한 값을 현수는 10초 만에 내놓지 않았던가! 따라서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다.
“좋아, 어떻게 계산하여 그토록 빠른 건가?”
“이쯤해서 하나 묻겠네. 수학이란 대체 어떤 학문인가?”
“수학? 그야 숫자와 관련된 학문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곳이 내 고향보다 문물이 뒤떨어진 것이네.”
“……?”
당장 실력 차를 느꼈기에 라세안은 유구무언인 듯 눈만 껌벅이고 있다.
“수학이란 복잡다단하고 어려운 현상 속에서 규칙을 찾아 간단명료하게 밝혀내는 학문이네. 아까 자네가 냈던 문제를 예를 들자면 1부터 50만까지 다 더하는 것에 규칙이 있네.”
“규칙? 어떤 규칙?”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다.
“맨 앞의 1과 맨 끝의 50만을 더하면 50만 1이네. 맞지?”
“그렇지.”
“두 번째 수인 2와 끝에서 두 번째인 499,999를 더해도 50만 1이지? 그리고 세 번째 수 3과 끝에서 세 번째 수 499,998을 합해도 50만 1이네.”
“그, 그렇지!”
“이렇게 한 쌍씩 묶으면 합이 50만 1인 숫자가 25만 쌍이 되네. 그러니 50만 1 곱하기 25만을 하면 1,250억 25만이란 계산이 나오네. 이런 게 수학이지.”
“끄응……!”
“내 고향에선 이런 수학을 초등학생, 그러니까 열두 살쯤 된 아이들도 하네.”
“끄으응!”
라세안은 침음을 낼 뿐이다.
“그런 수학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무기네. 여기선 무구라고 하지. 예를 들어 K―6라는 무기가 있네. 철판도 뚫을 위력을 지닌 거지. 한번 보겠나?”
라세안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그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 얼른 대답한다.
“보, 보여주겠는가?”
“보는 게 뭐 어렵겠는가!”
현수가 K―6를 꺼내자 라세안의 눈빛이 달라진다.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외상이라는 것을 입게 만든 놈이기 때문이다.
“이건 어떻게 작동되는 건가?”
현수는 대답 대신 탄띠를 걸었다.
“저쪽에 저 바위 보이지?”
현수가 손짓으로 가리킨 바위는 대략 3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집채만 한 것이다.
“저걸 겨냥하고 쏠 테니 잘 보게.”
“그, 그래.”
현수는 총알이 제대로 장전되었는지를 확인하곤 목표물을 가늠했다. 그리곤 지체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마치 곁에서 대포가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요란하게 터져 나오자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곧이어 바위가 터져 나가기 시작한다.
단순히 깨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폭발되어 바깥으로 쏟아지는 형국이다. 하긴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중기관총으로 갈겨댔으니 당연한 일이다.
“……!”
라세안은 얼어붙은 듯 표정이 굳어 있다.
어마어마한 위력에 깜짝 놀란 것이다. 이런 걸 고작 배리어로 막으려 했던 자신이 어리석다는 느낌까지 든다.
정말 운이 좋았기에 손만 다쳤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처음부터 앱솔루트 배리어로 방어를 했어야 한다. 얕보다 당했으나 정말 운이 좋은 셈이다.
현수는 슬쩍 라세안을 바라보았다. 굳은 표정을 보곤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그리곤 AT―16 미사일을 꺼냈다.
“그건 뭔가?”
방금 사용한 K―6 총탄보다 확연하게 크기에 물은 것이다.
“이건 미사일이라는 것이네. 사거리는 6∼9㎞, 속력은 2,000∼2,175㎞/h(마하2) 정도 되지. 이거 한 방이면 웬만한 동산 하나는 금방 뭉개지지.”
물론 뻥이다. 하지만 현수의 표정은 태연자약이다.
“사, 산이 뭉개져?”
“방금 쏜 총탄의 위력에 곱하기 10,000 정도를 하면 되네.”
이것도 뻥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
라세안이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레이저 유도 Kh―25ML 전술 공대지 미사일을 꺼냈다.
“그건……?”
라세안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요것보다 월등한 위력을 보이는 거네. 이거 한 방이면 동산이 아니라 산도 무너뜨리지.”
“헐! 산을?”
“그래. 저기 저쪽에 절벽이 보이지?”
“그, 그래.”
“저기에 대고 한 방 갈기면 저쪽은 그냥 평지가 될 거야.”
“평지……?”
라세안은 또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6장 삽질하는 드래곤
“이것 말고도 더 강력한 것들도 있네. 하지만 그건 안 보는 게 좋을 거네.”
“왜지?”
“칼 들고 설치는 게 우스워질 거니까. 소드 마스터 10만 명이 있어도 한 방에 모두 저승으로 보낼 위력을 가지고 있네.”
“소드 마스터 10만 명을 한 방에? 정말인가?”
“그래. 그걸 만일 라수스 협곡 중앙부에 놓고 터뜨리면 어찌 되는지 아나?”
“혹시 평지가 되나?”
“잘 아는군. 그런데 그렇게 되는데 불과 수초밖에 안 걸리네. 웬만해선 도망도 못 간다는 뜻이지.”
“흐으음!”
라세안을 나직한 침음을 낸다. 현수는 현재 너무도 태연자약한 표정이다. 그렇기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때문이다.
만일 K―6가 아닌 미사일로 자신에게 공격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니 끔찍하다.
아무리 결계를 쳐 놓고 온갖 마법진으로 튼튼하게 만든 레어라 할지라도 단숨에 폐허가 되었을 생각을 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지경이다.
“그, 그런 게 많나?”
“당연히 많아야지. 안 그러면 영지는 물론이고 나라까지 잃게 되니까.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항상 충분히 비축하고 있네.”
“……!”
“내 고향인 코리아 제국은 저쪽 세상에선 제법 강한 자에 속하네. 하지만 주변을 둘러싼 국가들이 워낙 강대해서 힘을 못 쓰기도 하지.”
현수는 한국의 주변 정세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국을 코리아 제국으로 앙숙 관계인 재팬 왕국, 호시탐탐 침공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지나 제국, 그리고 러시아 제국과 아메리카 제국 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실제 있는 나라이고, 실제의 관계를 이야기했더니 아주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 저쪽은 얼마나 크냐는 질문에 아르센 대륙보다 크지 않겠나 싶다는 뜻을 전했다.
호기심 많은 라세안은 현수가 왜 멀고 먼 이곳까지 왔는지를 물었다.
이에 코리아 제국에서도 큰 영지를 차지하고 있는 영주로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스스로 모험의 길을 떠났다고 했다. 더 강력한 마법을 찾아 떠났다고 한 것이다.
“근데 혼자 온 거야? 제국의 백작 정도 되면 수행기사 등이 꽤 많았을 텐데. 왜 혼자야?”
“본시 많은 수행원이 있었지. 그런데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났네. 그 결과 모두 죽고 나 혼자만 남았다네.”
“아! 그랬군.”
라세안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소드 마스터에 8써클 마법사라면 그 정도 고난은 능히 견뎌낼 것이라 짐작한 모양이다.
“근데 목표는 이뤘나?”
라세안의 뜬금없는 물음이다.
“여기 와서 귀한 분을 만났네. 그분께 많은 걸 배웠지. 그런데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하시더군. 그래서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네.”
“아! 그래? 그것만 해결되면 떠날 건가?”
라세안은 현수를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서운 무기들이 있어 겁이 나기는 했지만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떠나야지. 그전에 할 일이 하나 더 있네.”
“뭐지?”
“내가 이곳 라수스 협곡을 찾은 이유는 협곡 저쪽에 있는 아드리안 공국으로 가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여기 사는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이라는 존재를 만나기 위함도 있었네.”
“그, 그래? 왜지?”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이곳에 와 들어보니 드래곤은 마법의 조종, 마나의 생명체, 중간계의 조율자라는 칭호를 듣고 있더군.”
“위대한 존재라는 것도 있다구.”
“그래, 그것도 들어보았네.”
말하기도 바쁜데 귀찮게 왜 끼어드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라세안이 얼른 정색하며 말을 돌린다.
드래곤치고는 참 옹색한 모습이다.
“아무튼, 그래서?”
라세안은 분위기를 바꿨으니 어서 빨리 생각을 말하라는 표정이다. 현수는 부러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연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 고향엔 드래곤이 없네. 하지만 이곳엔 있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강력한 마법이 있다면 배울 생각으로 왔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기 있다고 해서.”
“그래서?”
“만나면 정중히 청해보려 했는데 보자마자 공격을 하더군.”
“으음……!”
라세안은 대꾸 대신 침음만 삼켰다. 확실히 그랬던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공격을 당했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하여 처음엔 활로 공격을 했지. 내 고향에서 제법 명궁 소릴 듣거든.”
“활? 활로 드래곤을 공격해서 될까?”
“화살촉에 오러를 실어 공격해 보았네만 위력이 약해 실패했지. 하여 총으로 공격을 했네.”
“그건 뭣에 쓰는 총인가?”
라세안은 저도 모르게 실체를 고백하고 있었다. 현수는 모르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그건 대물 저격총이라는 것으로 총 중에선 위력이 제법 강하지. 장거리 사격도 가능하고. 마법을 인챈트해 보니 이곳에선 사거리가 3㎞는 될 듯하네.”
현수는 말하면서 약간씩 뻥을 쳤다. 그래야 요놈의 드래곤이 겁을 집어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후와! 엄청난 사거리군.”
자신의 감각 밖이기에 라세안은 진땀을 흘렸다.
현수가 재차 공격하려 마음먹으면 감지할 수 없어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느낀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마법사나 기사들 상대로 사용하면 무적이지. 그들에겐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공격하는 것이니까.”
“그래, 인정하네. 그 정도면 어떤 마법사나 기사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네.”
라세안은 배리어를 뚫고 들어오던 총탄을 생각하곤 부르르 떨었다.
조금만 더 방심했으면 두개골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아무튼 그걸로도 실패를 했네. 해서 아까 보여준 K―6와 기관단총으로 공격을 했지.”
“그, 그래서?”
라세안은 상처 입은 손을 슬쩍 등 뒤로 돌렸다.
눈치 빠른 현수는 이제야 그때의 공격으로 이놈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여 피식 웃고는 아공간 속의 AT―16를 다시 꺼냈다.
“다음엔 이걸로 해보려고. 그래도 안 되면 레이저 유도 Kh―25ML 전술 공대지 미사일을 쓸 생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