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
“그거 하나면 산이 무너진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그런데 이 녀석은 다른 것과는 조금 다르네.”
“달라? 무엇이 다른데?”
상대가 사용할 병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 바싹 다가앉는다.
“레이저 유도라는 말이 뭔지 아나?”
“당연히 모르지. 자네에게 처음 듣는 말이네.”
“레이저 발사 장치라는 것이 있는데 이걸로 겨냥만 하고 있으면 미사일이 궤도를 바꾼다는 뜻이네.”
“그게 무슨 뜻인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세상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드래곤이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다.
“이걸 라이세뮤리안이라는 드래곤을 겨냥하고 쏠 경우 상대는 두 가지 움직임을 보일 것이네. 하나는 블링크 마법으로 슬쩍 피하는 거지.”
“다른 하나는 워프겠지.”
라세안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표정이다.
“그래. 나에게 반격할 생각이라면 그 둘 중 하나야.”
“텔레포트를 해버리면 자네를 볼 수 없으니 그렇겠지.”
“그런데 레이저로 유도를 하면 날아갔던 미사일이 표적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네.”
“뭐어?”
“한번 공격을 하면 목표에 적중할 때까지 추적하는 놈이라는 말이네. 배리어나 앱솔루트 배리어만으론 이 녀석의 위력을 감당해 내기 힘들 것이네.”
“산이 뭉개질 정도면 그렇겠지.”
라세안은 심각한 표정이다. 여기에 쐐기까지 박았다.
“뭐 이것 갖고도 안 된다면 더 강력한 놈을 써야지.”
“다른 놈은 뭔가?”
“그건 핵배낭이라는 것이네. ‘Special Atomic Demolition Munitions’의 약자로 SADM이라고도 하지. 무게는 30㎏ 정도밖에 안 되지만 위력은 1㏏ 정도네.”
“그게 뭔 소린가?”
아르센에선 들어보지 못한 단위인지라 모르는 것이다.
현수는 내심 실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1㏏이면 조금 아까 보여주었던 Kh―25ML 전술 공대지 미사일 위력의 1,000만 배쯤 된다는 뜻이네.”
물론 이것도 뻥이다. 그러면 어떤가!
여기서 핵배낭 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뻥을 쳤다. 내친김에 은근한 협박을 덧붙였다.
“그걸 쓰면 라이세뮤리안 근처까지 갈 일도 없고, 있는지 없는지 살필 필요도 없네.”
“왜지?”
“타이머가 부착되어 있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터뜨릴 수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워낙 위력이 강하니 레어에서 한 5㎞쯤 떨어진 곳에 설치하면 되니까 가깝게 갈 일도 없지.”
“5㎞ 밖?”
“그래. 그리 크지도 않으니 그냥 풀숲에 쑤셔 박거나 땅을 파고 살짝 흙으로 덮어놓으면 눈치 못 챌 것이네. 마나를 쓰는 게 아니니 디텍션 마법으로도 못 찾지.”
“그게 터지면 어찌 되나?”
“어찌 되긴, 라수스 협곡은 지도에서 지워지는 거지. 여긴 아무도 들어와서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될 거야. 모든 생명체는 증발될 거고.”
“……!”
라세안의 안색이 확실히 창백해진다. 겁을 먹은 것이다.
현수는 혹시 몰라 아공간에서 배낭 하나를 꺼냈다.
백두마트 등산복 코너에서 전시용으로 속에 신문지를 잔뜩 구겨 넣은 것이다.
“이게 그건데, 여기 있는 이걸 잡아당기면…….”
찌이이익―!
현수가 지퍼를 잡아당기자 소음이 난다.
“자, 자네 왜 이러나?”
“아, 시범을 보여주려고. 여기 이걸 이렇게 잡아당기고 여기 있는 이 끈을 잡아당기면…….”
말을 하며 피켈을 고정시키는 고무줄을 당겼다.
“그, 그러면?”
“이게 천천히 움직이네. 그래서 원상태가 되면 ‘콰앙―!’ 하고 터지는 거지.”
현수는 버섯구름을 손으로 표현해 냈다. 라세안은 현수의 손에 들린 배낭의 지퍼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고무줄을 놨음에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여 한마디 하려는데 현수가 먼저 입을 연다.
“아! 이건 시범이라 작동이 안 되는 거네. 사실은 이걸 잡아당기기 전에 여기 있는 이것들을 차례로 당겨야 하네. 그 순서가 맞지 않으면 안 터지지.”
말을 하며 배낭에 달린 지퍼들을 보여주었다.
모두 일곱 개의 지퍼가 있다. 순서에 따라 미리 열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위력을 지닌 화기이니 당연한 보안 조치일 것이다.
“그, 그거 얼른 집어넣게. 잘못해서 여기서 터지면…….”
라세안은 자신의 레어가 뭉개지고, 자식들인 드래고니안이 모두 죽고, 후손들이 증발되는 상황을 상상하고는 진저리를 친다.
“아무튼 난 라이세뮤리안이라는 드래곤과 친선을 맺기 위해 왔는데 싸우게 된 건 유감이야. 그래도 어쩌겠는가. 먼저 공격을 했으니 반격을 해야지.”
말을 하며 AT―16 미사일을 들었다 놨다 했다.
“아, 아마 그런 사실을 알면 화해하자고 할 거야. 그러니 이제 반격할 마음 품지 말게. 라이세뮤리안도 당하곤 못사는 성미거든.”
“그래 봤자 핵배낭 하나면 끝인데?”
아르센 역사상 최초로 드래곤이 협박당하는 현장이다.
라세안은 이마에 솟은 진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아, 아무튼 자네와 싸울 맘은 없을 거야. 내가 장담하네.”
“그래?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지?”
“내, 내가 드래고니안이 아닌가! 내가 잘 말씀드리겠네.”
“그래? 그럼 자네 덕 좀 볼까?”
“그, 그래! 내가 꼭 말을 하겠네. 그러니 이제 그런 것들은 좀 집어넣게.”
“뭐, 그러지.”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사일과 배낭을 아공간에 넣었다.
“그나저나 여긴 다프네가 사는 마을 인근이군.”
“다프네를 아나?”
“전에 두 번 보았네.”
“그, 그래?”
라세안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과거를 회상하는 표정을 짓는다.
“두 번 다 오크에게 공격을 당할 때였네. 신세 좀 지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지.”
“아! 그랬구만. 어쨌거나 저 마을은 들러야 하네.”
“왜지?”
“미혹의 숲을 지나려면 저 마을 사람이 필요하거든.”
“자네도 길을 모르는 건가?”
“내가 거길 지나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냥 플라이 마법으로 이동하면 되는걸.”
“참, 자넨 몇 써클 마법산가?”
“나? 나, 나는 8, 아니, 7써클 마스터네.”
드래고니안 중에 7써클을 넘긴 자가 없기에 이렇게 말을 바꾼 것이다.
“아! 그래? 그럼 그렇게 했겠군.”
“자네도 마법사이니 훌훌 날아서 가는 건 어떻겠나?”
“그래도 되겠지만 그냥 걸어서 가려 하네. 가다 만드라고라라도 있으면 채취하게.”
“만드라고라? 그건 뭐에 쓰게?”
“마나 포션을 좀 만들어두려고. 그리고 약효가 뛰어나니 다른 약을 만들 때도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현수가 생각하는 약은 기력이 떨어진 노인에게 활력을 부여하는 신약이다. 물론 대한약품에서 만들어 팔 생각이다.
문득 떠오른 약 이름은 ‘펄펄’이다.
이름 그대로 복용하면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 앓기만 하던 노인이 펄펄 날아다닌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드라고라가 기력 회복에 특효가 있을 것이란 추측을 한 것이다.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라세안은 문득 현수의 요구를 맞춰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연스레 한숨이 나온다.
“에구, 내 팔자야.”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현수는 이를 들었다. 그렇기에 아주 나직한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후후, 넌 이제 내 쫄따구야. 크크크.”
현수의 나직한 중얼거림을 라세안은 듣지 못했다. 조금 전에 보았던 핵배낭 때문이다.
현수의 심기를 어지럽히면 라수스 협곡이 사라진다. 그러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라세안은 저도 모르게 현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족보상 드래곤이 인간 아래로 내려가는 괴사가 아르센 대륙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다 왔군.”
“그래. 자네도 이 마을 알지?”
“그럼. 가세.”
둘이 목책으로 다가가자 누군가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린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난 라세안이라…….”
라세안과 거의 동시에 현수도 입을 열었다.
“얼마 전 방문했던 하인스입니다.”
“아! 하인스님. 어서 오십시오.”
라세안이란 이름보단 하인스가 더 먹히는 동네인가 보다.
현수는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자신들을 낳아준 아버지보다 더 반기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여기엔 자그마한 오해가 있다.
라이세뮤리안은 인간 여자들을 납치하여 많은 자식을 낳도록 했다. 당연히 아들도 있고 딸도 있으며 간혹 쌍둥이도 태어났다.
이렇게 하여 낳은 자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드래곤의 형질이 더 많이 유전된 자식과 인간의 형질이 더 강한 자식이다. 이상하게도 중간은 별로 없다.
수정되는 과정에서 유전자끼리 대결이라도 하여 그중 더 센 쪽이 형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양이다.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은 인간의 형질이 강한 쪽은 주로 여성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들은 드래곤의 유전자가 강하게 나타나고, 딸은 인간적이라는 뜻이다.
물론 드래곤 쪽의 여성도 있고, 인간 성향의 남성도 있다.
어쨌거나 같은 드래고니안이지만 어릴 때부터 차이가 너무나 극명하게 나타나므로 자연스럽게 나뉘어 성장한다.
남성으로 태어난 드래고니안들이 여성을 핍박하기 때문이다.
종종 근친상간이라 할 수 있는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여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다.
라이세뮤리안은 같은 자식이지만 아들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렇기에 일 년에 한 번은 레어로 불러 마법도 가르쳐 주고 검술도 전수해 준다.
하지만 이곳 여자들은 먼발치에서나 슬쩍 살펴보고 가는 게 전부이다. 아주 가끔 오크들의 개체수가 너무 많이 불어나면 딸들이 피해 입지 않도록 솎아주는 게 전부이다.
아무튼 라이세뮤리안은 이 마을이 생긴 이래 발을 들여놓은 적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딸들이지만 얼굴도 모르는 것이다.
삐이꺽―!
문이 열리고 둘이 들어서자 여인의 눈이 커진다.
라이세뮤리안을 알아본 것이다. 얼굴을 알아서가 아니라 엄청난 마나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무어라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기도 전에 라이세뮤리안의 전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절대 말하지 말도록! 아는 척도 말고! 안에 있는 아이들 전부에게도 전해. 아, 대답도 하지 말고. 어서!’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안으로 뛰어갔다. 아버지인 라이세뮤리안이 당도했음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난리가 났다. 마을의 모든 여인들이 헐레벌떡 달려온 것이다. 그녀들의 귀로 라이세뮤리안의 전음이 전해진다.
“하인스에게 내가 드래곤임을 절대 밝히지 말라. 또한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임도 말하지 말라. 대답도 하지 마라.”
여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오십시오.”
고개를 깊숙이 숙여 예를 갖추는 미모의 30대 중반 여인은 이 마을의 촌장이라 할 수 있는 루디 언니이다.
“네, 반갑습니다.”
현수는 부러 환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이들의 미묘한 불편함을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참, 하인스님, 우리 마을을 위해 신기한 기구를 만들어주셨는데도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덕분에 생활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
대체 뭔 소린가 싶어 라세안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을 때 현수의 입이 열린다.
“하하, 편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온 김에 하나 더 만들어 드릴까요?”
“아! 그,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펌프는 하나고 쓸 사람이 많아 골치 아프던 차다.
루디 언니는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이라는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숙인다.
현수가 만들어놓은 물 펌프 덕분에 많은 면이 편해지고 좋아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