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94화 (394/1,307)

# 394

투정하듯 눈물을 닦는 작은 생명체는 아련한 시선으로 골드 드래곤을 바라보고 있다.

“좋아, 네 이름은 뭐니? 그리고 넌 뭐라 불리는 생명체지?”

“난 숲의 요정 아리아니야. 켈레모라니 주인님의 시녀지.”

“켈레모라니라면 저기 있는 저 골드 드래곤?”

“그래. 위대하신 존재지, 내 주인님은.”

“좋아, 그럼 몇 가지만 물어볼게. 우선…….”

현수의 물음에 아리아니가 대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곳은 골드 드래곤의 레어 중 한 부분이다.

그리고 켈레모라니는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길 원했던 드래곤이다. 소드 마스터와 9써클 마법까지 모두 익힌 뒤 일족과의 모든 교류를 끊고 오로지 육체 단련에 들어갔다.

그렇게 삼천 년을 보냈다. 그 결과 모든 비늘은 늘 광택이 났고, 비늘마다 빼곡한 마법진이 그려지게 되었다.

보존 마법과 청결 마법진 등이다.

켈레모라니는 가디언들로 하여금 레어에 먼지 한 톨 내려앉을 수 없도록 매 시간 청소를 하도록 했다.

모든 것은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고,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켈레모라니는 일종의 완벽주의자였고, 결벽증 증상을 가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깨끗한 삶은 삼천 년이나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애써 가꾼 육체가 흩어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또한 레어에 가득한 각종 보물을 누군가 발견하여 가져가는 것도 원치 않았다.

하여 레어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곳에 강력한 결계를 쳤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교묘한 결계이다.

누구든 이 숲에 들어오면 자욱한 안개와 어우러진 환상 마법의 영향을 받도록 만든 것이다.

켈레모라니가 죽은 직후 라수스 협곡에 자리를 잡은 라이세뮤리안이 이곳에 대해 잘 모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튼 골드 드래곤의 주위에 배치되어 있던 가디언들은 3,0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나둘 생명을 다하게 되었다.

이들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레어 밖에 조성된 무덤으로 향했다.

레어를 오염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그렇게 다 사라지고 남은 건 아리아니뿐이다. 숲이 있는 한 무한한 생명을 지닌 숲의 요정이기에 남은 것이다.

아리아니는 어떠한 생명체이든 레어 근처로 접근하면 그러지 못하도록 저지하거나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다.

물론 농담이었다. 공격력이 형편없다는 걸 켈레모라니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의 명령은 절대 복종해야 한다. 그렇기에 현수 일행이 다가올 때 은밀히 다가가 다른 곳으로 유도하려 했다.

그런데 곧장 호숫가로 다가오자 레어로 이동했다. 이곳의 존재를 아는 것들이라 여기고 숨어 있다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전후 사정을 모두 들은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네 주인님의 몸에는 손대지 않을게. 대신 여기를 둘러보는 건 괜찮지?”

“그래. 하지만 더럽히진 마. 청소하기 귀찮으니까.”

주인이 죽은 후에도 청결을 유지하려는 아리아니의 노력이 가상했기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구경만 할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 자리를 옮겨도 안 되고. 알았지?”

“그래,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천천히 레어 구경을 했다.

삼천 년 동안 가다듬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듯 정말 아름다운 레어이다. 벽마다 보석을 박아 문양을 새겼다.

환상적인 곡선을 지닌 유려한 디자인이다.

현수는 레어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았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엿보였던 때문이다.

각종 무구와 보물이 수집되어 있는 보물 창고도 가보았다. 석재로 만든 진열대 위에 가지런하게 정리정돈되어 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름다운 것들이다. 하지만 만져 보진 않았다. 아리아니가 질색할 것 같아서이다.

눈요기를 실컷 한 현수는 마지막으로 골드 드래곤의 사체 곁으로 다가갔다. 비늘에 새겨진 마법진들을 구경하기 위함이다.

사체와 약 열 발짝쯤 떨어진 곳에 당도했을 때이다.

장중한 음성이 귓전을 울린다.

“인연자여! 나는 골드 드래곤 켈레모라니 라수스 에이페 컨페드리안 브지에텐토가리니안이라 하네.”

“……!”

“그대의 눈에 지금 나의 아름다운 육체가 보이는가? 삼천 년을 가다듬은 내 몸은 아직도 아름다운가? 혹시 다 썩어 뼈만 앙상하진 않은가? 부디 멀쩡하길 바라네.”

“……!”

현수는 골드드래곤의 잔념이라는 것을 알기에 묻거나 대꾸하지 않았다. 지구로 치면 녹음한 걸 틀어놓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내게 접근했음은 내 가디언이 모두 사라졌거나 죽은 뒤겠지? 내 마나 하트가 탐나서 접근했는가?”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나 하트라는 게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걸 탐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연자에게 당부하노니 내 사체를 보존해 주게. 마나 하트는 내 아름다운 육체를 유지시켜 주는 근원이네. 그러니 탐욕을 버려주게.”

“……!”

“창고에 있는 보물도 가급적 안 건드렸으면 좋겠네. 수천 년간 수집했고, 갈고닦아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느라 손톱이 빠질 지경이었네.”

“……!”

“나의 아름다운 육체를 본 것만으로 만족할 순 없는가? 인연자여, 부디 나의 아름다운 레어가 보존되도록 해주게.”

이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의념은 없는 듯했다. 현수는 가까이 다가가 비늘마다 새겨진 마법진들을 살폈다.

정말 별의별 마법진이 다 새겨져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예술품 반열에 오를 정도이다.

하지만 손을 대진 않았다.

모든 것을 살핀 현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영면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바라시는 대로 이곳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염려 놓으시고 푹 쉬소서.”

말을 마친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뒤돌아 나갔다.

“가는 거야?”

“그래. 잘 있어.”

“이제 안 올 거야?”

“네 주인님은 그걸 원하는 것 같은데?”

“너라면 또 와도 돼. 아무것도 안 건드렸으니까.”

“그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놀러 올 수도 있어. 잘 있어.”

현수가 아리아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 할 때였다.

“이거 받아.”

“그건 뭔데?”

“주인님이 레어를 방문하고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존재가 나타나면 주라고 했던 거야.”

“그래?”

아리아니가 건넨 것은 드래곤의 비늘이다.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두께는 5㎜쯤 된다. 골드 드래곤의 그것이라 그런지 찬란한 금빛이다.

이것을 받아 손에 쥐는 순간 켈레모라니의 또 다른 잔념이 귓전을 울린다.

“나의 당부를 들어준 고마운 존재에게 선물을 주네. 이건 모든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켜 주는 아티팩트이네. 이걸 자네의 심장에 가져다 대게.”

“마법을 증폭시켜 주는 아티팩트?”

“응! 그걸 심장에 대면 작동된다고 하셨어. 주인님이.”

“그래? 고마워.”

“심장에 대봐.”

“그래.”

말을 마친 현수가 드래곤의 비늘을 심장 부위에 가져다 대자 아리아니의 입술이 달싹인다.

“마나여, 드래곤의 친구에게 선물을 주어라!”

샤르르르르릉―!

연분홍 마나가 아리아니로부터 발원하여 비늘로 스며든다. 그 순간 비늘이 현수의 피부 밑으로 녹아든다.

잠시 후, 현수의 전신에서 연분홍빛이 확산되었다가 사그라졌다.

“어라, 이건?”

현수는 조금 전과 달리 전신에 충만한 마나를 느끼곤 대경실색했다. 너무나 많은 마나 때문이다.

“그건 주인님이 1,000년 동안 모은 마나야. 정제하고 또 정제해서 정말 순수한 마나가 되었지.”

“아! 그래서……. 고맙군. 귀한 선물을 받았네.”

“이제 자기는 내 친구야. 그러니 가끔 놀러 와.”

“그래, 시간 나면 오지.”

“이제 내 본모습을 보여줄게.”

“뭐?”

현수의 물음이 이어지기도 전에 아리아니의 몸에서 희뿌연 빛이 뿜어진다. 그러더니 점점 커진다.

잠시 후 드러난 모습에 현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헐!”

30㎝쯤 되던 아리아니는 170㎝쯤 되는 늘씬한 미녀로 변모되어 있었다. 게다가 아주 늘씬하다.

속된 말로 쭉쭉빵빵이 바로 이런 것이다.

현수가 한눈에 이런 걸 알아본 이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이었기 때문이다. 희디흰 날개를 슬쩍 펼쳐 보이는데 이건 뭐 완전한 천사였다.

“나 어때? 예뻐?”

“응? 으응. 다음에 만날 때도 이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근데 이건 내 선물이야.”

말을 마친 현수는 아공간에서 여성용 의류들을 꺼내 놓았다.

팬티, 브래지어, 그리고 티셔츠와 원피스이다.

간단히 사용법을 가르쳐 주곤 얼른 입혔다. 너무 민망하여 시선 둘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꺼내 놓은 옷이 조금 작았는지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긴 마찬가지이다.

“근데 네 이름은 뭐지?”

“나? 난 하인스야. 하인스 멀린이라고 해.”

“알았어. 선물 고마워. 천 년 만에 처음 받았어. 주인님 돌아가시고 처음이거든.”

아리아니가 기쁨에 겨운 웃음을 짓는다. 너무 아름다워 하마터면 와락 껴안을 뻔했다.

현수는 나중을 기약하고 일단 자리를 떴다. 이러다 사고 칠까 싶은 마음이 든다. 그만큼 매혹적이었던 것이다.

다시 어두운 동굴을 되짚어 나오는 현수의 뇌리엔 온통 아리아니의 나신이 어른거렸다. 그러다 충격적인 아름다움이란 것이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0장 뜻밖의 선물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혹시 사고 났나 했네.”

“아! 안에 수중 동굴이 있어 거길 수색하느라고.”

“그래? 동굴이 있어? 뭐가 있었어?”

“아니, 아무것도. 근데 또 수색해야 해?”

“뭐가 있으니 찾아보긴 해야지.”

“아까 우리가 본 게 체구가 작았지?”

“그래. 한 요만했던 것 같아.”

라세안은 손바닥을 벌려 30㎝쯤을 가늠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대로 본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봤어. 근데 그렇게 작은 거 하나 있어봤자 뭘 하겠어? 안 그래?”

“하긴… 너 없는 동안 주변을 살펴봤는데 여긴 안개가 자욱한 거 빼면 별 다를 게 없어.”

워낙 교묘하게 해놓은 결계인지라 라세안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 그럼 이제 그만 조사하고 가던 길 가자.”

“그러지, 뭐.”

라세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의 말대로 별것 없다 판단한 때문이다.

일행은 이날 밤을 호숫가에서 보냈다. 텐트를 치고 삼겹살을 구웠으며, 소주를 마셨다. 다프네의 두 볼이 붉게 달아오를 때쯤 침대로 돌아간 셋은 꿀 같은 잠을 잤다.

잠자리에 든 현수는 골드 드래곤의 비늘마다 새겨져 있던 마법진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골드 드래곤 켈레모라니가 자신이 알고 있는 1써클부터 9써클까지 모든 마법을 기록했으니 천금보다도 귀한 마법서나 마찬가지이다.

거의 대부분 용언 마법이기에 멀린의 그것과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한 것이다. 이때부터 현수의 뇌리는 두 마법의 차이를 계속해서 연구한다.

그럼으로써 두 마법 사이의 경계를 조금씩 좁힌다.

다시 말해 인간의 마법과 드래곤의 마법을 하나하나 비교해 가는 귀한 시간을 보냈다.

현수는 심장 부근으로 스며든 드래곤의 비늘이 어떤 효능을 지닌 것인지 모른다. 그저 마나만 충만한 것으로 알고 있는 그것은 사실 상당히 여러 역할을 하게 된다.

첫째는 체내 마나 밀도를 조종하는 효용이 있다.

비늘에 새겨진 정제 마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기존에 존재하던 체내 마나까지 정제시킨다.

그렇기에 마법을 구현시키면 이전에 비해 배 이상의 효력을 나타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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