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5
둘째는 자가 마나 충진이다. 현수가 쓰는 만큼 24시간 내내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인다. 물론 정제된 순수 마나이다.
그 결과 이제 차원이동할 때마다 결계를 치고 마나를 모으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마나를 쓰는 즉시 원상태가 되도록 최우선적으로 보충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강력한 심장 보호 기능이다.
드래곤의 비늘 자체가 상당한 방호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강화 마법, 반탄 마법, 경량화 마법,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진까지 그려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총탄 정도는 거뜬히 막아낸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위기의 순간에 저절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현수는 현재 전능의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 이것 자체에도 착용자 보호를 위한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진이 있다.
따라서 위기가 닥치면 두 겹의 앱솔루트 배리어가 쳐진다.
하나는 9써클 마스터에서 10써클로 접어들려던 인간 마법사 멀린이 심혈을 기울여 그려놓은 마법진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마법이 구현되도록 최상급 마나석이 마나를 공급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같은 9써클 마스터이지만 차원이 다른 골드 드래곤이 그려 넣은 마법진이다.
이 마법이 구현될 때엔 비늘에 축적시켜 놓은 순수 마나가 결계를 유지시켜 준다. 무려 1,000년 동안 모은 것인지라 벙커버스터가 곁에서 터져도 끄떡없을 정도이다.
아무튼 현수는 비늘로 인해 바디 체인지에 버금가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것은 일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진행된다. 그리고 이것의 완성은 체내의 모든 마나가 순수해지면 그때 시작될 것이다.
“자! 이게 출발하지.”
아침 메뉴는 선지해장국이었다. 라세안은 입맛을 다시며 한 그릇만 더를 주구장창 외쳤다.
다프네 역시 배가 볼록 튀어나오도록 해장국을 먹었다.
식사 후 현수는 다프네와 산책을 했고, 라세안은 설거지를 했다. 클린 마법 한 방이면 되지만 부러 시킨 것이다.
아무튼 안내자가 있었기에 미혹의 숲을 지나치는 것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라세안 덕에 몬스터는 구경도 못했다. 귀찮은 것들이 다가설지 모른다는 말에 존재감을 드러낸 때문이다.
미혹의 숲을 모두 지나치는 데 걸린 시일은 아흐레이다. 9일간 동행하면서 현수는 라세안과 아주 친밀해졌다.
그런데 이 친밀은 문제가 있는 친밀이다.
길을 가면서 라세안은 무기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때마다 드래곤 정도는 간단히 사냥된다는 이야길 했다.
왜 자꾸 드래곤 사냥을 언급하느냐는 말에 이곳 아르센에선 가장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대꾸를 해서 입을 막았다.
아무튼 전차, 다연장포, 공격 헬기, 전투기, 항공모함, 그리고 우주 무기에 대한 것을 듣고는 겁먹은 표정이 역력해진다.
당연히 ‘신의 회초리’도 이야기했다.
우주에서 지상으로 길이 6m 정도 되는 텅스텐 탄자를 쏘는 이것은 미티어 스트라이크에 버금갈 위력을 보유했다고 했다.
따라서 라수스 협곡 정도는 금방 파괴된다는 말에 파랗게 질린 표정이다.
자신을 위협하는 무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곳도 공격 가능하느냐는 말에 현수는 아공간에 있던 텔레비전 리모컨 하나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리곤 그게 아르센 대륙 위쪽에 떠 있는 신의 회초리 발사 장치라고 뻥을 쳤다.
이에 라세안이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짓자 엄포도 놓았다.
이곳 라수스 협곡은 자신에게 브레스나 뿜어대던 라이세뮤리안이라는 드래곤이 있는 곳이니 보복할 겸 하나를 떨궈보겠다고 한 것이다. 당연히 질색하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라고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리모컨을 조작하려 하자 아예 애걸복걸하는 표정이 된다.
이때부터 라세안은 현수 앞에서 설설 기는 존재로 전락했다.
하지만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가!
한낱 인간에게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다.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라세안은 현수를 제압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앱솔루트 배리어를 치고 안에서 명상에 잠긴 현수를 보게 되었다.
지난 며칠간 현수는 왠지 몸이 이상하다 느꼈다. 걷고 또 걸으면 피곤해져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늘 생생한 활력이 느껴진다. 다시 말해 피곤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이를 이상히 여겨 점검 차 들어앉은 것이다.
그리곤 체내 마나를 완전히 개방해 보았다. 이상하게 마나가 많은 것 같아서이다.
그때 라세안은 현수가 보유한 무지막지한 마나량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1,000년 이상은 모아야 할 마나량이 느껴진 것이다.
하여 드래곤의 폴리모프인지 가늠해 보았다.
아니다. 분명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엄청난 마나를 보유하고 있기에 여러 번의 바디체인지를 겪은 결과라 판단했다.
그리고 현수의 나이 역시 1,000살이 넘었다고 생각했다. 마나는 속성으로 모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라세안은 이제 현수를 공격할 마음을 버렸다.
그랬다가 잘못되면 라수스 협곡이 평지로 변하는 불상사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혹의 숲을 지나치면서 다프네와 현수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주로 다프네가 묻고 현수가 대답하는 것이다.
물론 코리아 제국의 문물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다 코리아 제국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면에선 여자가 더 대접받는 사회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현수가 당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혹의 숲에 발을 들여놓은 지 닷새가 되던 날이다.
“근데 말이에요, 그때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죠?”
“네?”
“처음 저희 마을에 오셨을 때요. 그날도 오크의 습격이 있었잖아요.”
“그렇죠.”
“그때 화살이 다 떨어질 때쯤 제게 그러셨어요. ‘다프네 양, 여기 화살이요’라고요.”
“내가 그랬어요?”
“네. 기억 안 나요? 그때 화살 창고에서 화살을 꺼내 나눠 주셨잖아요.”
“아! 맞아요. 그때 그런 거 같네요.”
현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전에 제 이름을 알려 드린 적이 없어요.”
“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신 거죠?”
“네? 그,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현수는 일순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프네의 말이 이어진다.
“네. 분명히 그전엔 제 이름을 모르셨어요.”
“아! 그랬구나.”
“그날 전 라이사 언니와 계곡에서 목욕을 했어요. 그때 어떤 마법사가 몸을 숨긴 채 꽁꽁 얼린 뱀으로 언니를 놀래켰구요.”
“……!”
현수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다프네가 말을 잇는다.
“그날 제 알몸을 본 사람이 하인스님인 거죠? 그때 언니가 절 부르는 걸 듣고 제 이름을 알게 된 거 아니에요?”
“그, 그게……!”
현수는 가물가물한 기억이었지만 다프네의 말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머리가 너무 좋아져서 나쁜 것이다.
“설마 제 알몸을 보려고 거기서 기다린 거예요?”
다프네는 현장에 있던 마법사가 현수라 단정하곤 눈빛을 빛낸다. 어서 대답하라는 표정이다.
“아닙니다. 그날 내가 먼저 목욕을 했어요. 그리고 이동하던 중 우연히 다프네 양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내 알몸을 보긴 했다는 거죠?”
“…네. 미안합니다. 하지만 고의는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됐어요. 그동안 몹시 궁금했거든요. 그 사람이 하인스님이라니 한편으론 다행이에요.”
“네? 그게 무슨……?”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쯤해서 대화가 끝났다. 현수는 등줄기를 적시는 식은땀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언제 어떤 요구를 할지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참, 미혹의 숲 안에서 둘은 내기의 결판을 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승자 다프네, 패자 현수이다.
현수가 부러 져 준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드시 이겨 골탕을 먹여주겠다 생각했었다.
내기에 앞서 다프네는 라세안에게 오크 머리통만 한 나무를 던져 달라는 부탁을 했다.
현수가 이걸 맞추는 것이다. 기회는 세 번이고 한 번이라도 맞추면 현수의 승이다. 단, 화살이 박혀야 한다.
아무튼 다프네의 신호에 따라 약 50보 앞에서 라세안이 나무둥치를 던졌다. 현수의 실력이라면 이보다 훨씬 작은 것이라도 백발백중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한 번도 과녁에 적중시키지 못한 것이다.
원인은 라세안이다.
첫 번째는 시속 150㎞인 슬러브였다.
야구로 치면 슬라이더와 커브의 중간 꺾임으로 횡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종적인 변화가 큰 변화구이다.
당연히 못 맞췄다. 직진을 생각했던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시속 150㎞짜리 커브였다. 워낙 낙차가 컸기에 현수의 화살은 목표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세 번째는 시속 110㎞짜리 스플핏핑거 체인지업이다.
포크볼의 변형 체인지업으로 횡적인 변화와 떨어지는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갑자기 속도가 확 떨어지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 실패하고 말았다.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현수는 다프네의 소원 하나를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여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을 정리해서 대답하겠다고 하며 생끗 웃는다.
괜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사내가 한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기에 언제든 소원을 말하라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프네는 아직 그 소원을 말하지 않고 있다.
“자아! 이제 미혹의 숲은 벗어났군.”
“그러네. 다프네 양 여기까지 안내해 주느라 애썼어요.”
“네에.”
다프네는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는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나? 나는 당분간 자네와 동행했으면 하네.”
“나하고? 나 조금 멀리 가야 하는데?”
현수의 말에 라세안은 고개를 끄덕인다.
“멀어도 괜찮네. 어차피 유람 삼아 나온 것이니.”
“뭐, 그렇다면 당분간 동행하지. 그나저나 다프네 양은 이제 마을로 돌아갈 건가요?”
“아뇨. 못 가요.”
의외의 대답에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네? 왜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엔 두 분이 계시니까 몬스터들의 습격이 없었지만 저 혼자 가면 틀림없이 달려들 테니까요.”
“그럼 아예 못 돌아가는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언니들이 석 달 후에 올 거예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러 나와야 하니까요.”
석 달 후라면 몹시 추운 연말쯤이다.
아무튼 다프네 마을은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품목들이 있다. 소금과 철광석이다.
아버지인 라이세뮤리안은 인간과의 접촉을 엄히 금했다. 하지만 소금 없이 어떻게 사는가! 소금이 결핍되면 저혈압과 구토, 그리고 쇼크 반응 등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일 년에 한 번 이것들을 구입하러 대대적인 이동을 한다. 혼자서는 미혹의 숲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가져오는 건 약초이다. 아무튼 그때가 되기 전까지 다프네는 알아서 살아야 한다.
다프네가 머물 곳은 라수스 협곡 거의 끝에 위치한 오두막이다. 마을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하러 이동했을 때 머물기 위해 지어놓은 것이다.
일행이 오두막에 당도한 것은 아르센력으로 9월 4일이다. 다프네 마을을 떠난 날로부터 25일째 날이다.
“여기가 다프네 양이 머물 오두막이군요.”
허름한 오두막을 본 현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1년에 한 번 하루나 이틀 머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너무도 허름했던 때문이다.
“네에. 조금 허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