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97화 (397/1,307)

# 397

현수가 먼저 밖으로 나가자 주점에 있던 손님이 몽땅 따라나선다. 자고로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가장 신나지 않던가!

“짜식! 몸매도 호리호리한 계집 같은 것이. 덤벼! 덤비란 말이야, 쨔샤!”

덩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수의 신형이 쇄도했다. 그리곤 그의 왼쪽 팔을 잡고는 업어치기 한판을 시도했다.

휘이잉! 파앙―!

“……!”

불과 2∼3초이다. 현수가 달려들어 150㎏은 족히 나갈 신장 2m짜리 덩치를 바닥에 메다꽂는 데 걸린 시간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의 결과 덩치는 그대로 기절했다. 구경하러 나왔던 사람들은 얼이 빠졌는지 기절한 덩치와 현수를 번갈아 볼 뿐 아무도 소리 내지 않는다.

탁, 탁―!

현수가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주점 안으로 들어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들어선다. 덩치와 그 일행만이 밖에 있을 뿐이다.

“벌써 처리한 거야?”

현수가 나가기 직전에 꺼내 놓은 진로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던 라세안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당연한 거 아냐? 술에 취한 놈이라고.”

“하긴, 그런 놈한테 힘쓰는 게 아깝지. 그나저나 스테이크 식겠어. 어서 먹어.”

라세안의 말에 현수는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이쪽 테이블을 바라보던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속삭인다.

“저 체구로 그 덩치를 집어 던지다니 힘이 엄청난가 봐.”

“그러게. 허공으로 붕 떴다가 떨어지는 순간 기절했어.”

“사람 겉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군. 근데 저치 정체가 뭘까? B급 용병을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거 보면 A급은 되겠지?”

“설마 용병계에 돌풍을 일으킨 특급 용병 토마스가 아닐까?”

“특급 용병 토마스? 맞아. 전장의 학살자라는 토마스도 저 사람처럼 호리호리하대.”

“그리고 보니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군. 젊고 호리호리하고 허리춤에 칼을 찼으니 전장의 학살자가 분명하군.”

“머리 색깔은 다른데? 토마스는 금발이잖아.”

“요즘 대륙에 염색하는 게 붐인 거 몰라?”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였다고?”

“그래. 보아하니 전장의 학살자 토마스가 맞는 거 같다. 몸조심하자. 괜히 대들었다가 작살나는 수가 있겠어.”

아르센 대륙엔 일종의 관행이 있다. 귀족은 허리춤에 칼을 차고, 용병들은 대개 등에 꽂고 다닌다.

물론 이건 관행일 뿐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다닌다.

귀족은 본인이 귀족이라는 티를 내는 것이고, 용병들은 거만한 귀족 따위완 다르다는 뜻으로 그러는 것이다.

아무튼 현수의 무의식적인 습관 때문에 엉뚱한 사람으로 오인되고 있다. 하지만 굳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기에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이로 인한 득도 있다.

더 이상 이쪽을 힐끔거리는 눈길이 없다는 것이다. 특급 용병 토마스는 얼마 전에 나타나 전쟁용병으로 활약한 바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북쪽의 두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토마스가 참전한 국가가 승리를 쟁취했다.

그 결과 무려 700만이 넘는 노예가 발생되어 요즘 노예 값이 똥값으로 떨어지고 있다.

패전국의 국민 전체를 노예로 삼은 것이다.

아무튼 토마스는 개전 초기 상대국의 자랑이었던 소드 마스터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취했다. 당연히 상대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었다. 그 결과 파죽지세로 진격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아드리안 공국과의 전쟁이 뜨뜻미지근해졌는데 전장의 학살자가 우리 미판테 왕국을 위해 싸우러 온 걸까?”

“글쎄?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전장의 학살자가 우리 편에 선다면 소드 마스터가 하나도 없는 아드리안 공국은 금방 무너질 거야.”

“이 사람아, 아드리안 공국이 지금 소드 마스터가 있어서 버티는 줄 아나?”

“그럼 아냐?”

“이런 무식한 놈! 아드리안 공국을 우리 미판테 왕국과 쿠르스 왕국, 그리고 엘라이 왕국 이렇게 삼국연합이 완전히 포위하고도 공격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글쎄?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먹고살기도 바쁜데.”

“귓구멍 닦고 잘 들어 미·쿠·엘 삼국 연합이 아드리안 공국같이 코딱지만 한 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실리프 마탑의 마법사들이 총출동했다는 소문이 나돌아서야.”

“이실리프 마탑? 그런 것도 있어? 내가 아는 마탑은 아드리안 공국에 있는 그 이름도 허접한 영광의 마탑과 테리안 왕국의 실론의 마탑, 그리고 라이셔 제국의 혈운의 마탑이야,”

“자넨 반쯤 아는군. 대륙엔 일곱 개의 마탑이 있어. 아니, 이젠 하나가 늘어서 여덟 개가 되었지.”

“여덟 개? 다른 건 알 필요 없지. 혈운의 마탑 마탑주이신 헥사리온 대마법사는 7써클 유저셔. 그래서 혈운의 마탑이 아르센 대륙 최강이지. 안 그런가? 그런데 겨우 듣보잡인 이실리프 마탑이라니?”

“이런 무식한 놈! 그러니까 네가 만날 무식하단 소릴 듣고 사는 거야. 너 알어? 이실리프 마탑의 탑주이신 멀린 대마법사가 9써클 마스터였다는 걸?”

“뭐어? 9써클 마스터? 7써클이 아니고?”

“그래. 9써클 마스터는 7써클 마스터와 100대 1로 붙어도 이기는, 아니, 차원이 달라 비교 자체가 어려워.”

“이실리프 마탑주가 9써클이라고?”

“예전엔 그랬어.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헐! 9써클이라니!”

지금껏 헛소리를 지껄이던 녀석의 입이 닫힌다.

길거리의 코흘리개 꼬맹이도 7써클과 9써클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이실리프 마탑의 마법사들이 총출동했다는 소문이 번졌어. 그래서 삼국연합이 함부로 진격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왠지 알아?”

“왜, 왜 그러는데?”

헛소리를 지껄이던 녀석의 음성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9써클 미티어 스트라이크 한 방이면 왕국의 수도가 사라지네. 8써클 헬 파이어 한 방이면 웬만한 기사단은 그냥 먼지로 변해 버리지. 그런데 감히 아드리안 공국을 공격해?”

“……!”

“죽고 싶어 환장하면 그럴 거야. 그래서 우리 미판테 왕국과 쿠르스 왕국, 그리고 엘라이 왕국이 서로 먼저 공격해 보라고 미루고 있는 중이라고.”

“끄으응!”

“아무튼 이실리프 마탑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야. 아직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나타나기만 하면 전 대륙의 이목이 쏠리게 되지. 그러니 헛소리 지껄이지 마. 이실리프 마탑의 마법사들이 자네가 한 헛소리를 듣고 이곳 케발로 영지를 먼지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으으, 알았어. 미, 미안해.”

헛소리를 지껄이던 장한은 잔뜩 겁을 먹은 듯 주눅 든 표정이다. 이에 상세히 설명을 하던 사내가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 말조심하자고. 저기 있는 사람들이 이실리프 마탑의 마법사였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었으니까. 알았어?”

“그, 그래.”

“알았어. 조심하지.”

“누가 뭐랬나? 알겠네. 앞으론 주의할게.”

주점의 분위기는 금방 숙연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와 라세안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손님, 목욕 준비 다 되었습니다.”

“아! 그래? 수고했다.”

꼬맹이에게 1실버를 던져 주자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설마 시중드는 시녀를 덮칠 건 아니지?”

“자제할 생각이네. 있는 것 건사하기도 귀찮거든. 여자들이란 뭘 그렇게 해달라는 게 많고 갖고 싶은 게 많은지 번거롭기만 하네.”

“잘 생각했네. 자, 가세.”

둘이 계단을 딛고 올라가자 누군가 슬며시 주점을 빠져나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오랜만의 목욕을 즐겼다.

“휴우∼! 이제야 개운하군.”

아공간에서 이태리타월을 꺼내 때를 한 꺼풀 벗겨내니 상쾌한 기분이 든다.

“워싱! 클린! 워싱! 클린! 데시케이션(Desiccation)!”

벗었던 의복을 마법으로 세탁해 다시 걸쳤다.

“오랜만에 커피 한 잔 해야겠군. 라세안은 다 씻었나?”

말 마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라세안이 들어선다.

“벌써 씻었지. 근데 뭘 먹는다고?”

“커피라고 있어. 저쪽 동네에선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라 불렸던 거네.”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그거 진짜로 있어? 응? 그거 있으면 나도 나눠 주게. 이상하게 그거 구하기 참 힘들거든.”

라세안의 이 말은 사실이다.

오래전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는데 급한 용무 때문에 은근한 접근이 어렵던 때가 있었다.

그때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가 있었다면 쉽게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귀하다는 말처럼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벌써 여러 번이다.

그리고 지금껏 한 번도 구하지 못했다. 필요한 때가 지나면 관심을 껐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라세안의 레어엔 아이를 낳고도 잠자리를 거부하는 여인이 하나 있다. 어느 왕국 공작가의 영애이다.

한사코 거부하는 그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된다. 드래곤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그래서 현수의 말에 반색을 한 것이다.

‘으이그, 이놈의 동네는 하여간 인간이나 드래곤이나……. 나 말고 딴 수컷들은 다 이러나? 쯧쯧!’

현수는 얼굴까지 벌게진 라세안을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사내가 되어가지고 그런 거나 바라다니……. 그런 거 없으면 안 돼? 자력으로 해결하라고.”

“끄응! 아무튼 그거 좋아. 커피라고? 그거 한번 먹어보자.”

“미리 말하지만 그냥 커피야!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랑 비슷하기만 할 뿐 그런 효과가 없는 거니까 기대하지 마. 알았어?”

현수의 다소 퉁명스런 말에도 라세안은 찍소리 않는다. 이제 어느 정도 훈련이 된 듯싶다.

“알았어. 주기나 해봐.”

“그럼 잠깐 기다려.”

아공간에서 커피와 설탕, 그리고 프림을 꺼낸 현수는 생수를 꺼내 마법으로 물을 데워 커피를 만들었다.

“자, 마셔봐.”

“흐으으음!”

향을 맡아본 라세안이 눈을 가늘게 뜬다. 이건 대체 어떤 맛일까 기대된다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천천히 커피를 즐겼다.

‘후후! 너,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을 떠올리며 현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런 걸 보면 악동 기질이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순진한 라이세뮤리안은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커피의 향과 맛에 흠뻑 빠져들었다.

프림과 설탕 조절을 잘 해서 부드러우면서도 달달한 맛이 나도록 만든 결과이다.

다 마시고도 또 달라 해서 두 잔이나 더 만들어주었다. 이로써 오늘 밤에 잠 못 자는 건 확실해진 것이다.

그렇게 커피를 즐기고 있을 때이다.

쿵, 쿵, 쿵―!

“누구십니까?”

“케발로 영지 기사단장 죠반니 남작이다! 문을 열어라!”

“…잠깐 기다리시오.”

방문 목적을 알 수 없기에 고개를 갸웃거린 현수가 문을 열자 갑옷을 걸친 기사가 서 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특급 용병 토마스가 누군가?”

“네?”

“영지에 급한 일이 있어 고용하고자 하니 신분을 밝히시게.”

“네? 아, 신분이요. 저는 하인스라는 C급 용병이고, 이쪽은 라세안이라는 B급 용병입니다.”

“전장의 학살자가 아니고?”

“아닙니다.”

“그럼 용병패를 내놔봐.”

반공대였던 말이 완전한 하대로 바뀐다. 약간 기분 나빴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곳에선 신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의 용병패를 살핀 죠반니 남작은 몸을 돌린다.

“쉬는 걸 방해해서 미안하다.”

“네에.”

남작과 기사들이 돌아가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길, 전장의 학살자라고 해서 얼른 온 건데. 특급 용병 토마스였으면 얼마나 좋아?”

“단장님, 특급 용병 토마스를 고용하면 뭐가 좋아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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