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
“아군이 강하면 누가 좋겠어?”
“그야 우리가 좋죠.”
“그래! 근데 아니군. 가자. 조만간 큰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보고가 있었으니 오늘부터는 비상근무야.”
“하아, 네에. 알겠습니다.”
죠반니 남작의 뒤를 따라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자 라세안이 웃긴다는 표정을 짓는다.
“너무 예의가 없지? 바로 말투를 바꾸잖아.”
“지금 우린 평민이니까. 이 새끼 저 새끼 안 했으니 다행이지. 안 그런가?”
“그래도 기분 나쁜데 가서 몇 대 쥐어 팰까?”
“에구, 아서게. 괜한 분란 만들지 마. 우린 곧 떠날 거니까.”
쿵, 쿵, 쿵!
“누구요?”
“문 좀 열어라. 죠반니 기사단장님의 전언이 있다.”
“어떤 놈인지 말이 좀 짧지?”
“그래도 참아.”
문을 열러 가던 라세안이 투덜거린다. 물론 현수는 말렸다.
삐이꺽―!
“단장님께서 너희들의 영지 방문 목적이 뭔지 물으셨다.”
“우린 지나가는 길손이오. 하룻밤 쉬면 내일 아침에 떠날 것이란 말이오.”
“그럴 줄 알고 이렇게 전하라 하셨다. 당분간 케발로 영지는 봉쇄된다. 영지 내의 모든 용병은 용병 사무실에 들러 임무를 배정받아야 한다.”
“그게 무슨 말이오?”
“조만간 영지전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무기를 쓸 줄 아는 자는 모두 동원되어야 하므로 날이 밝는 대로 용병 사무실로 가도록 해라.”
“거절하면 어찌 되오? 우린 급한 일이 있어 이곳을 떠나야 한단 말이오.”
“거절은 없다. 적의 영지에 붙으면 우리 영지에 해가 되니……! 지엄하신 영주님의 명이니 찍소리 말기 바란다. 참, 고용에 대한 비용은 지불한다. 단, 성실치 못하거나 물러서는 자는 군령에 의한 처벌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헐, 이거야 원!”
라세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동안 기사는 할 말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려 나가려 한다.
“근데 영지전이 언제 시작된다는 겁니까?”
“그걸 어찌 알겠나? 조만간 시작되기는 한다. 고용 수당은 영지전 발발 시각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그럼 열흘을 기다려도 시작 안 되면 어찌합니까?”
“그러진 않겠지만 열흘을 공치는 거지. 그럼 이만!”
기사는 즉시 몸을 돌려 나간다.
“이건 완전한 억지군. 열흘 기다렸다가 딱 하루 전투를 하면 하루치 수당을 주겠다는 거잖아.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가서 확 받아버릴까?”
“아서! 영지전 벌어진다는데 괜히 건드려 놓으면 적의 첩자로 오인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럼 귀찮아지잖아.”
“끄응!”
라세안이 웬일로 별다른 토 달지 않고 얌전히 찌그러진다.
“참, 오늘 밤엔 나 혼자 있을 것이네. 혹시라도 마나 유동이 느껴지더라도 개의치 말아주기 바라네.”
“알았네. 그럼 나는 이만 내 방으로 가지.”
라세안이 문을 나서는 순간 현수는 전능의 팔찌를 확인했다.
“어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나가 벌써 다 채워졌어?”
마나 집적진 안에 들어가 한참을 모아야 할 마나가 어느새 완충되어 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켈레모라니의 비늘이 가진 효용임을 현수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아무튼 시간은 절약되어 좋네.”
현수는 문을 잠갔다. 그리곤 이곳의 좌표를 기록해 놓곤 곧장 텔레포트했다.
* * *
“흐음, 다 되었을까?”
쿵, 쿵, 쿵!
“누구슈?”
“하인스입니다.”
“아! 빌모아 일족의 귀빈 하인스? 어서 오시게.”
어느새 현수는 드워프에게 환영받는 인사가 되어 있었다.
“촌장님 계시지요?”
“그럼. 곧장 내려가 보시게. 근데 가기 전에 뭐 하나 줘야 하지 않겠나?”
문을 지키던 드워프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짓는다.
“하하! 자아, 시원한 맥주 여기 있습니다.”
캔맥주 여섯 개짜리 한 묶음을 건네자 얼른 받아 품에 감춘다. 그리곤 혹시 누가 볼까 싶어 주변을 살핀다.
드워프 입장에선 지금 횡재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곧장 촌장의 처소로 이동했다.
“촌장님, 저 왔습니다.”
“아! 어서 오시게, 우리의 친구 하인스!”
“금괴는 다 되었지요?”
“그럼. 20톤은 진즉에 완성했고, 추가로 15톤을 더 만들어두었네. 지금 가져갈 텐가?”
“그러죠. 그걸 가져가야 맥주랑 막걸리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그래? 그럼 얼른 가져가게. 저기 있네.”
촌장이 가리킨 곳엔 번쩍이는 금괴가 가지런하게 쌓여 있다.
모든 것을 아공간에 넣고는 곧장 돌아 나왔다.
“나머지 금괴도 금방 해주겠네. 그리고 전에 맡겼던 인간들의 무구도 손보는 중이네. 근데 그건 계약을 다시 해야겠어.”
“네? 왜요?”
“누구 솜씬지는 몰라도 너무 조악해. 갑옷과 방패는 방호력이 떨어지고, 검과 도끼 등은 경도가 너무 낮아. 전투를 하다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겠어.”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죠?”
“다 녹여서 새로 만들고 있네.”
“헐! 그 많은 걸요?”
“어쩌겠나! 그러니 계약 조건을 변경하세.”
“좋아요. 어떻게 하면 되죠?”
“무구 한 점당 맥주 열 병은 그대로 하고 막걸리만 한 병 더 추가해서 세 병으로 하세.”
말을 해놓고도 혹시 거절할까 싶어 그러는지 눈치를 본다. 인상된 것은 무구 한 점당 막걸리 한 병 추가이다.
어찌 거절하겠는가!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아예 이렇게 해요. 전에 제가 맡긴 무구의 총 수가 8,000여 점이죠?”
“정확히는 8,132점이네.”
“좋아요. 그거에 대한 대가로 맥주 81,320병과 막걸리 24,396병. 계산하기 복잡하니 맥주 8만 2,000병과 막걸리 2만 5,000병을 며칠 내로 드릴게요.”
“정말? 정말 그렇게 줄 건가?”
“어차피 드릴 거잖아요. 빌모아 일족의 명예가 있으니 엉터리로 만들진 않을 거니까요. 안 그래요?”
촌장은 현수의 립서비스가 매우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럼, 그럼! 자네, 우리 빌모아 일족을 제대로 파악했구먼.”
“그러니 먼저 주나 나중에 주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래 주면 고맙지. 참, 시원하게 해서 줄 거지?”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는 듯 촌장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제작해 달라는 무구들에 대한 재료를 가져올 때 그것에 대한 대가도 같이 가져올게요. 여러 번 나눠 드리면 번거로울 테니까요. 그죠?”
“그, 그것도? 그래 주면 정말 고맙지.”
촌장은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일단 이렇게 해요. 검, 방패, 갑옷, 투구, 그리고 각반, 완호갑을 각기 3만 개씩 제작해 주세요.”
“헐, 3만 개씩이나?”
“네. 제가 공급해 줘야 할 군대가 있거든요.”
“누굴 침략하려는 건가?”
혹시라도 자신들이 만든 무구가 인간 세상에 나가 피를 부를까 싶어 묻는 말이다.
“아뇨. 공격을 받는 입장이에요. 병사의 수효도 열세구요. 제가 파악하기로 상대는 30만 정도 되는 거 같아요.”
“그래? 그럼 10대 1이군. 그렇다면 병력의 열세를 만회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
“잘 만들어주시면 고맙지요.”
“좋아, 만들어주지. 자네의 부탁이니까 만드는 거네.”
“감사합니다. 그것에 대한 대가는 꼭 치르겠습니다.”
“오히려 내가 고맙네. 자네 덕에 맛있고 시원한 맥주를 원없이 마시게 생겼으니 말이네. 헐헐헐!”
촌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태어난 이래 지금처럼 기쁜 때가 없었던 때문이다.
하긴 오늘 받을 맥주 8만 2,000병과 막걸리 2만 5,000병이면 몇 년은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아드리안 공국군을 위한 무구 18만 점에 대한 대가로 맥주 180만 병과 막걸리 54만 병을 받게 된다.
이 정도면 몇 십 년, 아니, 어쩌면 백 년은 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에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드워프 마을을 떠난 현수는 곧장 차원이동을 시도했다.
“마나여, 나를 지구로 귀환시켜 줘. 디멘션 트렌스퍼!”
샤르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또 한 번 안개처럼 스러진다.
* * *
“흐음, 잘 도착했군.”
현수는 킨샤사에 위치한 저택 지붕임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날짜를 확인해 보니 지구를 떠났던 다음날인 2013년 10월 9일 오후 2시이다.
거실 밖으로 나가니 알리사가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알리사는 어린 시절의 바네사 윌리암스(Vanessa Williams)와 흡사하다.
1983년에 미스 USA가 되었던 여인이다. 흑인으로선 사상 최초의 일이다. 하지만 잡지에 실린 누드사진이 빌미가 되어 타이틀을 반납했다.
후에 가수로 데뷔하여 포카혼타스의 OST인 ‘Color of the wind’를 불렀다. 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활약 중이다.
아무튼 알리사는 흑인치고는 상당히 매력적인 미녀이다.
“주인님, 언제 들어오셨어요?”
“음, 방금 전에. 연희와 이리냐는?”
“두 분 사모님께서는 쇼핑 나가셨어요.”
“경호팀 따라갔지?”
“그럼요. 두 팀이 나갔어요.”
“알았어. 전화 좀 가져다줄래?”
“네, 주인님!”
잠시 후 현수는 지르코프와 통화를 하고 있다.
“미스터 지르코프, 상의할 일이 있어 만났으면 합니다. 어디서 만날까요?”
“마침 저택으로 가는 중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조금 있다가 보죠.”
전화를 끊고는 이런저런 사항들을 점검하고 메모했다. 그리곤 서울로 국제 전화를 걸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건 것이다. 두 분 모두 아주 잘 계시다.
다음엔 이실리프 상사 민주영 실장과의 통화이다.
먼저 점검한 내용은 인력 충원 상태이다.
상당히 많은 분야의 전문 인력이, 그것도 다수가 필요하기에 민주영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긴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을 변별해 내기가 어찌 쉽겠는가!
하여 비용이 들더라도 헤드헌터 업체를 이용하라고 했다.
두 번째는 확보된 인력 송출에 관한 내용이다.
상당수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보내졌고, 계속해서 출국하는 중이라는 답변이다.
그중 몇몇 관심 가던 사람들에 대해 물었다.
일본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김나윤과 그녀의 부친 김상용, 그리고 현수에게 도술을 가르쳐 달라던 정승준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이미 출발했다.
역전회에 소속되어 있던 어깨들은 현재 모종의 장소에서 오광섭의 책임하에 열심히 훈련 중이다.
이들은 이실리프 농산의 보안을 책임지는 업무를 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내로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출국할 예정이다.
오광섭의 부친 오대준은 예전에 같이 목부 일을 했던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노후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보내려 한다.
열심히 영어를 배우고 있는 고강철과 일가족은 에티오피아로 출국할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농장 개설을 위한 벌목 장비와 얻어진 임산물을 재활용할 장비 수배가 어떤지를 확인했다.
포크레인, 페이로더, 불도저, 덤프트럭 등 각종 중장비 상당량을 확보하여 이미 선적한 상태라고 한다.
덕분에 국내 중장비 시장이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새것은 물론이고 중고까지 싹쓸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배는 지앙뤼지 아폰테 사장의 MSC 사의 것을 이용했다. 물론 핸들링은 신세계마리타임에서 한다.
다음엔 이실리프 무역상사와 통화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러시아로 보내질 약품의 양이 점점 늘어나 물량을 수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하여 이은정 실장 재량하에 새로운 거래처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거래하고 싶어하는 제약사가 많았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업무량이 점차 증대하므로 새로운 사원도 뽑으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