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
“물론입니다. 가장 먼저 전화 드리겠습니다.”
지르코프는 만족스럽다는 듯 편한 웃음을 짓는다.
“하하! 감사합니다. 참,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셨더군요.”
“에구, 유튜브에 뜬 영상을 본 겁니까?”
“배우로 착각할 지경입니다. 하하!”
“남세스럽네요.”
지르코프와의 환담은 두 시간 정도 이어졌다.
나이를 떠나 둘은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쉽사리 이루어진 우정이다.
지르코프가 가고 난 뒤 현수는 지하 작업실로 내려갔다.
각종 마법 실험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공간이다.
사방의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은 웬만한 폭발쯤은 거뜬히 견뎌낼 방어 마법진과 강화 마법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항시 쾌적함을 느끼도록 실내 기온은 25℃가 유지되도록 항온 마법진을 새겨두었다.
“락! 실!”
문을 닫고 봉쇄 마법까지 걸었다. 이제부터 할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며 보안까지 철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강화 마법이 걸려 있는 문을 파괴하려면 대전차 로켓 RPG 수십 개가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흐음, 이제 준비가 되었나?”
드워프들이 만든 금괴를 꺼내 쌓아놓고 보니 7,120개이다. 하나당 12.5㎏이니 메드베데프가 원했던 89톤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따로 1톤에 해당하는 80개를 더 꺼냈다.
드워프들의 솜씨를 믿지만 순도가 떨어진다는 판정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7,200개를 쌓아놓고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는 시험 삼아 몇몇 개를 꺼내 부피를 측정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일찍이 유레카를 외쳤다.
그가 살던 시절 왕이 아르키메데스에게 명령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관이 순금인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왕관을 제조했던 사람이 금을 빼돌리고 은을 섞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왕은 왕관을 녹이거나 손상을 입히지 않은 상태로 확인하라는 조건을 붙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물 속에서 자기 몸의 부피에 해당하는 만큼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이에 흥분하여 옷도 입지 않은 채 왕에게 뛰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그때 외친 말이 바로 유레카이다.
이 말은 ‘알았다, 발견했다’라는 뜻이다.
현수 역시 같은 방법으로 금괴의 순도를 계산했다.
그 결과 99.9%에 거의 근접한 것 같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럴 만한 정밀 계측 기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양은 넉넉하니 부족하다면 금괴를 더 꺼내주면 된다.
현수는 쌓여 있는 금괴 중 하나를 골라 마법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새긴 것은 소환 마법진이다.
러시아 정부가 로스차일드 뱅크에 금괴로 부채를 상환한 이후 회수하기 위함이다.
로스차일드는 다른 유태 자본과 협조하여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다.
한국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이다. 이것은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중앙은행(FRB)은 미국 정부 소유가 아니라 개인 소유이다.
거대 금융 자본인 록펠러, 골드만삭스, 로스차일드가 주요 소유주이다. 셋의 공통점은 유태 자본이라는 것이다.
이 은행은 상장 기업이 아니므로 회계상 외부 감사 의무가 없다. 또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장하여 어느 정부에서도 감사할 수 없었다.
이 은행은 달러화를 제 마음대로 발권한다. 다시 말해 원하기만 하면 무한정으로 달러화를 인쇄하여 유통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잣대로 통화 정책을 결정하며, 공개 시장 조작, 할인율, 연방 기금 금리 등을 입맛에 따라 결정한다.
뭔가 이상해도 많이 이상하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항간엔 암살당한 두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의 죽음이 달러화 발권력을 회수하려는 것 때문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미국 대통령을 두 번이나 죽인 셈이다.
아무튼 유태인들의 지독한 이기심을 증오하는 현수이기에 순순히 거액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생각이다.
따라서 로스차일드에게 상환된 금괴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현수의 아공간으로 소환되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모든 빚을 갚은 뒤이므로 그 손해는 고스란히 로스차일드가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액수는 당연히 천문학적이다.
2013년 10월 현재 금 1온스당 1815.67달러이다. 1온스가 약 28.35g이므로 89톤의 황금은 약 314만 온스이다.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57억 120만 3,800달러이다.
다시 한화로 환산하면 물경 6조 2,000억 원이 된다.
로스차일드는 분명 엄청난 재산을 가진 거대 자본이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57억 달러가 넘는 돈이 공중분해 된다면 속 좀 상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현수가 아주 유용하게 사용해 줄 계획이다.
“에이, 기왕 빌리는 거 한 2,000톤쯤 빌리지. 그럼 6,000톤을 갚게 되었을 텐데.”
현수는 3조 8,400억 달러쯤 벌어들일 기회를 잃었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 정도는 충분히 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환마법진이 다 그려지자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퍼펙트 트렌스페어런시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
어떤 조사를 하더라도 마법진이 드러나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다음엔 금괴를 차곡차곡 쌓았다.
“퍼펙트 카피!”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괴들에 마법진들이 그려지곤 사라진다. 이제 남은 건 마나이다.
일정 기간 동안 마나가 머물러야 소환 마법이 작동된다. 그렇기에 금괴 하나하나를 마나로 코팅했다.
켈레모라니의 비늘 덕분에 마나 부족 현상은 겪지 않았다. 그래도 7,200개나 되는 금괴를 일일이 코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휴우! 이제 끝이군.”
번쩍이는 황금을 본 현수는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이제 남은 건 이걸 러시아로 반입하는 것이다.
마법으로 가져가는 건 안 된다.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심한 끝에 이실리프 농산이 드모비치 상사로 수출하는 과일과 야채인 것으로 위장하기로 했다.
컨테이너에 금괴를 넣고 환상 마법을 쓰면 해결될 것이다.
생각난 김에 즉시 밖으로 향했다. 피터스 가가바가 따라붙었으나 괜찮다고 돌려보냈다.
현수는 차를 몰고 곧장 시내 외곽으로 향했다. 마타디항 쪽이다. 그곳에 컨테이너 야적장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2010년 통계 자료를 보면 콩고민주공화국은 수출 65억 달러, 수입 74억 5천만 달러이다. 무려 9억 5천만 달러나 적자이다.
이러다 보니 반입된 컨테이너가 상당히 많다.
몹시 더운 지방인지라 한국처럼 사무실로 썼다간 살짝 익는 수가 있다.
그렇기에 중고 컨테이너의 가격은 상당히 저렴했다.
컨테이너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을 가보니 상태별로 야적해 놓았다.
상은 거의 새것이고 중도 그런대로 괜찮다.
현수는 야적되어 있는 컨테이너 가운데 상태가 좋은 1,000여 개를 매입했다. 값을 깎아주면 바로 돈을 준다고 하니 불렀던 값의 반만 내라고 한다.
기분 좋게 돈을 주니 언제든 와서 가져가라며 환히 웃는다.
“현수 씨!”
“뭐 샀어요?”
오는 길에 연락을 받고 시내 중심부인 곰베 지역으로 향했다. 연희와 이리냐가 쇼핑을 마쳤다면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이다.
“그냥 뭘 좀 샀어요. 그나저나 여기 음식 맛있게 하는 데가 있다면서요?”
“그랜드 호텔의 스테이크가 좋지. 갈까?”
“네에, 좋아요.”
연희가 먼저 팔짱을 끼자 기다렸다는 듯 이리냐도 팔짱을 낀다. 양쪽에 동서양의 미녀를 거느린 현수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호텔로 향했다.
콩고민주공화국 국민 대다수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린다. 하여 외국인이 보이면 꼬맹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구걸을 한다. 하지만 현수의 곁까지 다가오진 못했다. 열여섯 명이나 되는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연희가 묻는다.
“언니는 언제 온대요?”
“곧 도착할 거야. 오늘 밤 아니면 내일쯤 올 거야.”
“어떻게 생긴 분인지 궁금해요.”
“저도요.”
이리냐도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셋은 영어로 대화 중이다. 다른 언어로는 셋이 한꺼번에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 한국에서 화물 안 왔어?”
“쉐리엔이라면 오늘 아침에 왔어요.”
“아, 그래? 얼마나 보냈지?”
“한 사람이 일 년은 먹을 분량이에요.”
“그래? 알았어.”
셋은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그리곤 곧장 방탄 리무진을 타고 저택으로 향했다.
리무진의 앞과 뒤, 그리고 옆까지 경호 차량이 주행했기에 혹시 있을지 모를 저격을 완전 차단하고 있었다.
아무튼 저택에 당도한 시각은 밤 8시 경이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여인이 벌떡 일어선다. 권지현이다.
“현수 씨! 저예요!”
“아! 지현 씨!”
현수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서자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쪼르르 달려온다.
“오느라 힘들었죠?”
“아니에요. 현수 씨 만날 생각을 해서 그런지 하나도 안 피곤해요. 근데 이 집은 뭐예요?”
“누가 선물해서 받은 거예요.”
“네에? 뭐라고요? 이 큰 집을요?”
“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연희와 이리냐는 베이지색 투피스를 입은 권지현과 현수가 대화를 시작하자 슬쩍 사라진다. 아직은 끼어들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리사는 아니다.
“주인님, 저녁 식사 어떻게 할까요?”
현수는 알리사를 바라보는 대신 지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지현 씨, 비행기에서 몇 시에 내렸어요?”
“여섯 시쯤…….”
지현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현수가 말을 자른 까닭이다.
“알리사, 1인분만 준비해 줄래?”
“네, 주인님!”
알리사가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물러난다. 콩고어로 한 말이기에 연희와 이리냐 역시 현수가 한 말의 의미를 모른다.
“지현 씨, 장거리 비행에 힘들었을 텐데 일단 올라가요. 식사 준비되는 동안 좀 쉬어요. 짐은 어디에 뒀어요?”
“저기.”
지현이 가리킨 곳엔 큼지막한 여행용 캐리어 하나와 작은 가방 하나가 놓여 있다.
“미스터 가가바, 가방 좀 부탁해.”
“네, 보스!”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가바가 눈짓을 하자 경호원 가운데 하나가 냉큼 캐리어를 들고 이 층으로 오른다.
“가죠.”
“네.”
지현은 낯선 곳에 있는지라 연신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이 커다란 저택을 선물 받았다는데 믿어지지 않아서이다.
“여기가 제 방입니다.”
“우와! 방이 엄청 크군요.”
“네, 조금 크죠? 앉아요.”
“네.”
현수의 손짓에 소파에 앉은 지현은 긴장한 빛을 띤다.
지금껏 살아왔던 곳과는 전혀 다른 낯선 곳에 단둘만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수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주말마다 우미내 마을에 가서 장차 시부모가 될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다.
물론 할아버지의 코치를 받은 결과이다.
아무튼 현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 뜨거운 키스 한번 못 나눠본 사이이다. 그렇기에 단둘만 남겨지자 혹시 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긴장한 것이다.
소파에 앉아서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뭔가 어색하고 편치 않아서이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현수가 입을 열었다.
“지현 씨, 식사 후에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네? 누굴……?”
지현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감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듯하다.
『전능의 팔찌』 제17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