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02화 (402/1,307)

# 402

사랑하는 이의 곁에 아름다운 여자들이 득실거리는 것이 마뜩찮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님이라는 칭호와 살갑게 대하는 현수의 태도에 그만 폭발하고 만 것이다.

현수는 지현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이윽고 이야기는 끝났다. 하지만 의혹에 찬 눈빛은 여전했다. 어서 이실직고하라는 표정도 마찬가지이다.

“식사부터 할래요? 아님 이야기부터 들을래요?”

“……! 식사부터 할게요. 현수 씨 이야길 듣고 나면 식욕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배가 많이 고팠거든요.”

“좋아요. 식사부터 해요.”

현수는 지현이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베란다로 나갔다.

하늘하늘한 휘장 저쪽엔 시원한 잔디밭이 보이고, 그 끝엔 정성스레 가꾼 과실수들이 서 있다. 그 앞엔 하늘을 닮아 파란빛을 내는 수영장 물이 넘실거린다.

베란다 밖 수영장 곁 파라솔이 만든 그늘로 들어간 현수는 이야길 어찌 풀어야 할까 싶어 고심했다.

어펜시브 참 마법을 걸면 간단할 일이다. 하지만 평생을 같이 해야 할 여자에게 그러긴 싫다. 라세안, 아니, 라이세뮤리안이 제 맘에 든 여자들에게 가끔 써먹던 수법이기 때문이다.

“으으음……!”

현수는 깊은 고뇌에 빠진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기 때문이다.

전능의 팔찌 안쪽에 새겨진 브레인 리프레시 마법 덕분에 비약적으로 지능이 좋아졌지만 이럴 땐 평범한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너무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에 지현은 씩씩하게 음식을 먹었다. 본능적으로 미구에 닥칠 싸움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투 전에 배를 채우는 의식을 진행한 것이다. 이러니 평소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식사를 마치게 되었다.

그러고 창밖을 보니 현수가 멍한 표정으로 수면을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게 무엇이든 오늘 결판을 내야 한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이다.

똑, 똑, 똑!

아주 작은 노크 소리였다. 그리곤 이쪽에서 출입을 허락한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이 스르르 열린다.

두 여인이 들어선다. 연희와 이리냐다.

조각 같은 미모의 여인들이다. 게다가 늘씬하기까지 하다.

지현은 특히 연희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예뻤던 탓이다.

이리냐의 얼굴도 보았다. 요즘 TV만 켜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광고에 나오는 바로 그 여인이다.

본인은 모르지만 한국에선 이리냐의 브로마이드가 불티나듯 팔린다. 늘씬한 몸매와 뇌쇄적인 미소, 그리고 아름다운 미모가 거의 모든 청년의 마음에 불을 지핀 때문이다.

잠시 이 둘의 출현에 시선을 주었던 지현이 먼저 입을 떼었다.

“두 분은…….”

지현의 음성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언니!”

“반가워요. 큰 언니.”

“네……?”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이다. 게다가 환히 웃고 있다.

한국 속담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다. 지현은 저도 모르게 말을 이었다.

“아! 네에. 저도 반가워요.”

“언니, 언니가 지현 언니죠? 전 연희예요.”

“큰 언니, 저는 이리냐라고 해요.”

“아! 네에. 권지현 맞아요.”

같은 순간, 현수는 깊은 고뇌 때문에 상념에 잠겨 있느라 둘의 출현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표정의 변화 없이 여전히 수면만을 초점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요? 말도 안 돼!”

말을 마친 지현이 화를 버럭 내곤 밖으로 나간다.

“응……?”

느닷없는 큰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던 현수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지현을 보았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연희와 이리냐가 있었다.

“지현 씨!”

현수가 서둘러 쫓아 나갔지만 지현은 벌써 아래층을 다 내려가 현관 밖으로 나가는 중이다. 너무도 화가 나 가지고 왔던 캐리어 등을 내버려 둔 채 몸만 빠져나가는 것이다.

지현은 방금 전 연희와 이리냐로부터 현수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에 더 들을 것도 없어서 큰 소리를 내고 나온 것이다.

“지현 씨……!”

서둘러 쫓아 나간 현수가 지현의 손목을 잡았다.

“이거 놓으세요. 제가 그랬죠? 여기에 하렘 차렸다고요.”

“지현 씨!”

“저, 현수 씨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세상에 어떻게……. 내 가방 주세요. 당장 귀국하겠어요.”

“지현 씨! 내 말 좀 들어봐요.”

“아뇨. 안 들을래요. 가방이나 주세요.”

찬바람이 씽 분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듯 지현은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은 감성이 이성을 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어떤 말로도 설득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 알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현수는 2층으로 올라가 지현의 소지품을 찾았다. 연희와 이리냐가 이제 어쩌면 좋으냐는 표정을 짓고 있다.

“괜찮아, 좋아질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

현수의 말에도 연희와 이리냐는 자신들의 성급함이 일을 망쳤다는 자책감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괜찮다고 했잖아. 그러니 마음 쓰지 마. 알았지?”

둘의 대답도 듣기 전에 현수는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디뎠다.

“가요. 공항까지 태워다 줄 테니.”

“아뇨! 그냥 택시 불러주세요.”

여전히 냉랭한 지현이다.

“여기 치안이 별로 안 좋아요. 혼자 택시 타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태워다 줄게요.”

“됐어요. 현수 씨랑 같이 가기 싫어요.”

“……!”

“가방이나 어서 주세요.”

한국 속담에 시앗을 보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현재 지현이 느끼는 분노는 본처가 남편의 사랑을 식게 한 첩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끼는 정도이다.

은연중 자신과 현수가 이미 부부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미내의 예비 시부모님으로부터 며느리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현수는 찬바람이 도는 지현을 보곤 힘없이 가방을 건넸다.

“그럼 경호원으로 하여금 데려다 주게 할게요. 여긴 택시 부르기도 힘드니.”

“좋아요. 마지막 호의는 받아들이겠어요.”

말을 마친 지현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자세로 돌아선다.

잠시 그녀의 등을 바라보던 현수는 힘없는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곤 피터스 가가바에게 지현을 공항까지 데려다 주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물론 경호팀을 가동시키라 하였다.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도 애정 문제에 있어 이런 다툼이 있기에 가가바는 많은 걸 묻지 않았다.

잠시 후, 현관 앞에는 세 대의 차가 준비되었다.

“지현 씨! 모처럼 먼 길 오게 했는데 이런 결과가 빚어져 미안합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

뒷좌석에 앉은 지현은 아무런 대답 없이 시선을 앞쪽에 주고 있다. 물론 입술은 굳게 닫혀 있다.

“미스터 가가바! 공항으로 모시게.”

“네, 보스!”

쿵―!

부우우웅―!

현수가 뒷문을 닫자 선두 차량이 서행으로 빠져나간다.

뒤를 이어 지현이 탄 리무진이 가고, 후미의 경호 차량 또한 따라 나간다.

차들이 저택의 정원을 벗어나자 현수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현수 씨! 미안해요. 괜히 나서서…….”

“아냐, 괜찮아. 그러니 마음 쓰지 마.”

현수가 미안해하는 연희의 교구를 슬쩍 당겨 품에 안았다.

어느새 눈물 젖은 얼굴이 되어 있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든 때문이다.

사실 연희가 이렇게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먼저 만난 것도 연희이고, 현수가 오매불망하던 존재도 연희이다.

지현이 우미내 부모님의 환심까지 사지 않았다면, 그리고 권철현 고검장 부부와 할아버지까지 있는 식사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면 지현은 그냥 도움을 준 여인일 뿐이다.

이리냐와의 관계도 그렇다. 현수는 연희가 있기에 이리냐를 어떻게든 떼어놓으려 했다.

자살미수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리냐는 지금쯤 이 저택에 없을 것이다.

지르코프로 하여금 데리고 가도록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 없는 연희가 자신 때문에 눈물짓고 있으니 마음이 아팠다.

“연희 씨! 나는 정말 괜찮아. 그러니 이러지 마. 알았지?”

“현수 씨! 난 언니 맘 알 것 같아요. 그러니 이러지 말고 어서 따라가요.”

“……!”

“가서 사정을 다 말하면 그러면……. 흐흑!”

“그래요. 어서 가서 데리고 오세요. 지금 언니도 울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어서 따라가세요.”

이리냐까지 끼어든다.

“으음……!”

현수는 내심 이렇게라도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 당장은 지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지만 나중에 더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수 씨! 어서 가요. 네? 가서 언니 데리고 와요. 내가, 아니, 우리가 잘 설득할게요.”

“화가 많이 나서 어려울 거예요. 그러니 그냥…….”

현수가 포기하려는데 연희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지금은 놀라고, 화도 나고 해서 그러는 거예요. 여자 마음은 여자가 잘 알아요. 아마 언니도 지금쯤 이러고 간 거 후회할 거예요. 그러니 따라가 봐요. 네?”

“네에, 그래요. 어서 가세요.”

두 여인의 계속된 채근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알았어. 그렇게 할게.”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리냐가 안쪽으로 들어가 경호 2팀을 불렀다. 곧이어 세 대의 차가 현관 앞에 당도한다.

“같이 가요.”

“그래요. 나도 갈게요.”

연희와 이리냐까지 탑승한 차가 출발한 것은 지현이 떠나고 10분쯤 지나서이다.

“아이, 대체 어디까지 간 거죠? 왜 언니가 탄 차가 안 보이는 거예요?”

킨샤사의 시가지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도로가 있다. 그렇기에 공항까지 어느 길을 택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도로를 주행하던 중이다.

콰아아앙―!

인근에서 갑작스러운 굉음이 터져 나오더니 시커먼 연기가 치솟기 시작한다. 그 순간 선도차량이 급정지한다.

끼이이익―!

“여기는 1호차! 전방에 테러 발생! 다시 한 번 말한다. 전방에 테러 발생! 2호차는 즉시 회차하라. 회차하라.”

“……!”

경호 2팀장의 음성에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전면을 두리번거리려는데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두루루! 두루루루루!

피용! 콰아앙! 피용! 콰아앙!

기관총 소리에 이어 유탄발사기라도 사용하는 듯한 소리가 난다.

“어서 회차하라. 어서 회차하라.”

“보스! 차를 돌려야겠습니다.”

말을 마친 경호원은 현수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후진 기어를 넣는다.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3호차는 벌써 차를 돌려놓은 상태이다.

이제부턴 컨보이(Convoy)하는 선도차량이 되기 때문이다.

위이이잉―! 끼익! 덜컥! 위이이잉―!

급후진에 이어 브레이크음이 터져 나오고, 기어 변속 소리와 더불어 차가 튀어 나간다.

“보스! 길을 바꿔 공항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세 대의 차는 쏜살같은 속도로 다른 길을 찾아 이동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행위를 반복해야 했다.

또 다른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이번에 일어난 것은 반군으로 보이는 이들에 의한 관공서 테러이다.

아랍에서나 볼 수 있던 폭탄 실은 차량에 의한 테러이다. 관공서 건물이 반파되고 화염이 솟았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반군이 관공서에 이어 가까이 다가갔던 현수의 차에 총격을 가하려는 순간 경호팀이 소지한 기관총이 먼저 불을 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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