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04화 (404/1,307)

# 404

“아냐, 굳이 그럴 필요 없네. 어차피 1차 산물인 농산물 수출엔 세율이 낮으니 그래 봐야 푼돈이거든.”

“알겠습니다. 일단은 수출을 하고 나중에라도 적절한 보답을 하겠습니다.”

“하하! 농담이네. 오늘 천지약품 무료급식소가 하나 더 늘었다는 보고를 받았네. 우리를 위해 이토록 애써주는데 그 정도는 봐줘야지. 안 그런가?”

“그저 호의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통화를 마친 현수는 곧장 시장으로 나가 과일과 채소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하기에 좌판에 있는 것들을 거의 모두 매입했다. 시장 상인들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한꺼번에 모조리 사는 게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매입한 것들은 컨테이너에 담겨 공항 쪽으로 보내졌다. 경호원들까지 동원된 일이기에 금방 끝났다.

과일 매집이 끝난 후 현수는 공항으로 향했다. 장관의 전화를 받았는지 관계자가 나와 응대한다.

현수는 컨테이너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말한 대로 과일과 채소뿐이다.

“어서 오십시오. 안드레이 파블류첸코 중령입니다. 이쪽은 부조종사인 로만 아르샤빈 소령입니다.”

“반갑습니다. 김현수라 합니다.”

“탑승하시지요. 화물 적재가 끝나는 대로 이륙하겠습니다.”

“네.”

중령의 안내에 따라 안내된 곳은 승무원 객실이다. 화물기인지라 창문도 없고, 좌석도 몇 개 없다.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어젯밤 무리해서 잠이 부족한데 잘 되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중령의 시선은 곁에 있는 이리냐에게 향한다. 어젯밤의 무리라는 게 뭔지 짐작한다는 듯 웃음을 짓는다.

“에구,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잠을 조금 설쳤다는 뜻입니다.”

“하하!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무튼 양해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네에.”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컨테이너들이 탑재되고 있었기에 탑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륙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심심하시면 조종석으로 오셔도 됩니다.”

혹시나 해서 보낸 부종사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이제 좀 잘 거거든요.”

“네에,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착륙하면 오겠습니다.”

부조종사가 나가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이리냐! 도착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쉬어.”

“네에, 그러지 않아도 그러려고요.”

사방이 꽉 막힌 공간인지라 마땅히 할 일도 없던 이리냐가 현수의 한쪽 팔을 껴안고는 고개를 기댄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났다. 활주로를 박차고 오른 수송기가 안정 고도에 접어들자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슬립! 락!”

이리냐를 재우고 승무원 객실의 문까지 잠갔다. 이제부터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현수는 뒷문을 열고 화물칸으로 향했다. 그리곤 컨테이너의 문을 열었다.

“아공간 오픈!”

시커먼 공간이 열린다. 현수는 박스에 담긴 과일 및 채소들을 하나씩 넣기 시작한다.

파인애플이 담긴 박스 하나가 아공간으로 사라지면 12.5㎏짜리 금괴 하나를 꺼냈다.

한꺼번에 컨테이너 안의 내용물을 아공간에 담으면 무게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는 비행 중인 화물기에 영향을 끼친다.

감각 예민한 조종사라면 금방 눈치채고 화물을 확인하러 올 것이다. 그렇기에 일대일 교환 방식으로 컨테이너의 내용물을 바꿔치기하는 중이다.

“어휴!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군.”

거의 중노동이기에 현수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박스가 끝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모든 내용물이 바뀌었다.

컨테이너 안에 있던 야채와 과일은 아공간으로 사라지고, 황금빛 번쩍이는 금괴들이 바닥에 깔린 것이다.

“잠시 후, 이 수송기는 모스크바 인근에 위치한 브이코보 공항에 착륙합니다. 안전벨트를 매주시기 바랍니다.”

브이코보 공항은 1933년에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공항은 군사공항 위주로 운용되었다.

이후 가까운 국내선들이 이용하는 공항으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임시 폐쇄 조치가 내려져 현재는 사용치 않는 공항이다.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사안의 중대성과 보안을 고려하여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무사히 착륙하였다는 멘트를 듣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좁고 갑갑한 곳에 계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아이구, 아닙니다. 덕분에 편히 잤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수와 이리냐는 기장의 안내에 따라 트랩을 밟고 내려섰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현수를 맞이한 것은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데니소프이다.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일 때 비서실장을 했던 인물이다.

“먼 길 오느라 애쓰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푸틴이 재집권한 후 재무장관직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이지만 현수를 대함에 있어 추호의 거만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정중해서 현수가 미안할 지경이다.

아무튼 데니소프의 안내를 받아 리무진에 탑승하자 차는 금방 출발한다. 그러는 동안 화물 수송기에 담겨 있던 컨테이너들이 트레일러에 실린다.

물론 민간이 아닌 군용 트레일러이다. 이것들은 모종의 장소로 옮겨진 뒤 로스차일드에게로 은밀히 보내질 것이다.

내놓고 처리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로스차일드에서도 원하는 일이다.

89톤이나 되는 황금이 시중에 흘러나왔다는 소문이 들면 자신들이 보유한 금값이 하락하게 된다.

그렇기에 은밀히 건네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무튼 차로 이동하는 동안 데니소프가 정중히 고개 숙인다.

“총리와 대통령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구, 감사는요. 제 능력에 닿는 일이라 가능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아무튼 도움이 되니 다행입니다.”

리무진은 경찰차의 에스코트와 경호 차량의 호위 속에서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미스트르 킴!”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김현수 씨!”

“아!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그리고 총리님!”

현수가 공항에 당도한 시각은 대략 오후 8시이다. 그리고 지금은 9시에 가까운 시각이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총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현수는 얼른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자아, 이쪽으로…….”

메드베데프의 손짓에 따라 복도 안쪽의 방으로 들어가니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먼 길 오는 동안 제대로 접대를 못했습니다. 아직 식전일 테니 같이 식사나 합시다.”

“감사합니다.”

현수는 또 한 번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했다.

잠시 후, 현수는 푸틴, 메드베데프, 그리고 데니소프와 동석한 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은 맛이 있었고, 식사 시중을 들어주는 비서실 여직원 덕에 부족함 없이 배를 채웠다.

그러는 동안 많은 찬사를 들었다.

자신들의 요청에 대해 거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어 고맙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빠른 시간 내에 금괴를 준비해 준 것이 두 번째이다.

식사하는 동안 다가왔던 비서실 직원이 푸틴의 귀에 현수가 가져온 황금에 대해 보고를 했다.

순도 99.9%짜리 금괴 89톤이라는 보고이다.

이후의 대화는 가스관 연결 공사에 대한 것이 주가 되었다. 받을 것 받았으니 줄 것은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약속도 한다.

“가스관 연결 공사도 천지건설에서 맡게 되는 겁니까?”

“일부는 그렇게 하겠지만 어찌 전부를 하겠습니까? 러시아 건설회사와도 같이 일을 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래주면 우리야 고맙지요.”

메드베데프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턴키베이스로 천지건설에서 수주하는 걸로 하죠. 그걸 부분별로 나눠 공사하면서 적절히 쪼개주면 될 겁니다.”

메드베데프 총리의 말이다.

한편, 푸틴은 별말이 없다. 몹시 폼을 잡는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이를 보았는지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카리스마 작렬이다. 하지만 현수 역시 한 카리스마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별다른 영향은 받지 않았다.

“미스트르 킴! 왜 웃습니까?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긴요? 왜 날 보고 웃죠?”

푸틴이 끼어들었기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통령님에 대한 소문이 생각나서요.”

“나에 관한 소문? 그게 뭐죠?”

“진짜인지를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선 대통령님이 독살에 대한 우려가 편집증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결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현수는 얼른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편집증이 있다는 말을 한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푸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흐음, 그게 거기까지 소문이 났답니까? 하여간 소문이란…….”

“죄송합니다.”

현수가 다시 사과했다. 이에 푸틴은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사실인걸요. 나의 집권에 대해 반감을 품은 이들이 워낙 많으니 당연히 조심해야 해서 그런 겁니다.”

푸틴은 독살에 대비하고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이야길 꺼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방금 전 현수의 뇌리를 스친 두 가지 상념이 있다.

하나는 푸틴의 막내딸인 예카테리나 푸티나(26, 애칭 카챠)가 한국인 제독의 차남과 핑크빛 소문이 났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바로 기사화되었다. 둘의 결혼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가 있었던 것이다.

푸틴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만한 루머에 러시아 대통령이 나설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독은 즉각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혹시 양국 관계에 누를 끼칠까 싶어서이다.

그 보도가 진실이었는지 여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언론사들의 일방적인 기사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른 하나는 현수가 독극물을 탐지하는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린은 영국의 건국왕인 아더를 위해 엑스칼리버만 만든 게 아니다. 국왕이 된 이후 혹시 있을지 모를 독살을 대비하여 하나의 아티팩트를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아더가 한시도 손을 떼지 않던 엑스칼리버에 장착되었다. 손잡이에 박혀 있던 작은 보석이 그것이다.

이것에 손을 대면 반경 5m 이내에 독극물이 있을 때 ‘찌르르’한 느낌을 주도록 되어 있다.

현수에게 있어 푸틴은 외국의 대통령이다.

체첸과의 전쟁과 독재 등 내부적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현수는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여러 가지를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푸틴이 집권한 이후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정치적으론 안정되었다. 재벌들의 편을 들어주거나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굴복시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독재를 한다.

그럼에도 현수가 호감을 가진 이유는 이전의 한국의 대통령과 너무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엔 재벌의 눈치나 보고, 그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하려 함에도 철퇴를 가하지 못한 대통령이 있다.

국민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과 파벌의 이익만을 위해 정의를 호도하던 언론이 비호하던 인물이다.

아무튼 현수의 말에 푸틴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아는 한국인 중엔 독극물 탐지 기술이 있는 분이 있습니다.”

“독극물 탐지 기술?”

들어 본 적 없는 말이기에 푸틴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네, 어떻게 만드는 건지는 모르지만 오래된 기술인데 그걸 몸에 지니고 있으면 반경 5m 이내에 독극물이 존재할 경우 소지자에게 신호를 보내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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