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08화 (408/1,307)

# 408

“미스트르 킴은 이리냐의 남편이 될 거야.”

“네? 이리냐요? 이리냐가 누구죠?”

“우리 딸, 오늘 새로 얻은!”

“네에……?”

베르세네바의 눈이 커진다. 그 순간 오늘 오후를 완전히 망쳐 버린 온갖 망상들이 한꺼번에 정리된다.

남편이 얻었다는 젊고 예쁜 여인은 첩이 아니라 수양딸이다. 그리고 드모비치 상사의 주요 거래처 가운데 하나인 한국의 이실리프 무역상사 대표 김현수는 그녀의 남편이다.

베르세네바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하는 순간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장모님!”

“아……! 네에.”

얼떨결에 인사를 받는 아내를 본 이바노비치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하하! 하하하하!”

“치이, 당신이 제대로 설명을 안 해줘서 그런 거잖아요.”

“그나저나 애들은? 왜 안 와? 늦는대?”

“아뇨. 제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왜?”

“젊고 예쁜 아가씨가 가족이 되었다면서요? 애들에게 새엄마가 생기는 건 줄 알고 연락도 안 했어요.”

“뭐라고? 날 뭐로 보고……!”

베르세네바의 솔직한 대꾸에 이바노비치가 표정을 굳힌다. 마피아의 보스답게 강렬한 포스와 카리스마가 뿜어진다.

“내가 언제 바람피운 적 있던가?”

“아, 아뇨. 미안해요. 여보! 다신 안 그럴게요.”

곧바로 꼬리를 내리는 베르세네바이다.

이바노비치는 분명 피도 눈물도 없는 마피아의 보스이다. 그럼에도 가정만은 소중히 여기는 애처가로 소문나 있다.

정부가 있음에도 늘 가정이 우선이었다. 베르세네바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때 문이 열리며 여인 하나가 들어선다. 이리냐이다.

슈퍼모델을 꿈꿀 만큼 늘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만으로도 모든 게 커버된다. 여기에 이름난 명품이 더해지자 더없이 우아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 이리냐. 어서 오너라.”

“……!”

이바노비치가 이리냐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을 때 현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이리냐는 평범한 의류만 입었다.

그런데 얼굴과 조화되는 세련된 디자인의 의복이 더해지자 요염함, 정숙함, 우아함이 더해진다. 여기에 백치미까지 가세하여 순간적으로 현수를 뇌쇄시킨 것이다.

“어, 어서 와요.”

베르세네바 역시 이리냐의 미모에 놀랐는지 말을 더듬는다.

“처음 뵈어요.”

“그래요. 우선 앉아요.”

“네.”

이리냐가 조신하게 자리에 앉는 동안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지난 몇 시간 동안의 변신이 사람을 다시 볼 만큼 컸기 때문이다.

“험험! 오늘은 새 딸이 생긴 날이야. 그러니 마음껏 들자고.”

“네!”

이바노비치의 건배 제안에 모두가 잔을 들었다. 그리곤 즐거운 만찬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올가와 나타샤 부부가 등장했다. 새로 생긴 동생을 보기 위함이다.

모두 친화력이 대단했다. 그 결과 만찬이 끝날 때쯤 이리냐는 진짜 막냇동생이 되어 있었다.

* * *

“우와……! 너무 예뻐요.”

지난 7월 28일 이바노비치로부터 선물 받은 저택에 당도한 현수와 이리냐는 입을 딱 벌렸다.

너무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저택은 대지 1만 평, 건평 2천 평짜리이다.

널찍한 침실 10개와 화장실만 12개이다. 이중 8개엔 샤워시설뿐만 아니라 자쿠지도 설치되어 있다. 이밖에 10만 권의 책을 소장할 수 있는 서재와 수영장, 그리고 오디토리움 등도 있다.

1층은 층고만 10m 정도이다. 2층과 3층 역시 천정이 매우 높다. 하여 밖에서 보면 거의 7층 높이가 된다.

제정 러시아 시절 공작이 머물던 곳이라 그렇다.

안방이라 할 수 있는 70여 평짜리 룸엔 킹사이즈 침대가 있었다. 여전히 반투명 휘장이 처져 있고, 최상품 침구가 세팅되어 있지만 오늘과는 달랐다.

전에는 다소 휑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 현수와 이리냐의 눈에 비치는 룸의 풍경은 확실히 다르다.

전에 없던 집기와 장식품들이 채워져 있고, 수많은 꽃송이로 장식되어 있다. 플라워 아티스트의 세심한 손길을 받은 듯 아늑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꽃이 싱싱한 걸로 미루어 짐작건대 지난 몇 시간 사이에 꾸며진 것이 분명하다.

“자기야, 정말 멋지지 않아요?”

“그래. 그렇군.”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잠시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감상했다. 장미, 튤립, 수선화, 백합 등 여러 종류의 꽃이 형형색색 자신만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뽐내고 있다.

“자기야 샤워부터 해요.”

“그래. 그럴게.”

현수가 샤워실로 들어가는 동안 이리냐의 눈빛이 빛난다. 오늘 밤 반드시 역사를 이루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이곳이 어찌 바뀌었나이다. 하여 이곳저곳을 뒤적였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룸 밖으로 나가 다른 방문을 열어보기도 했다.

누가 있는지 알아본 것이다.

현재 이 거대한 저택의 2층엔 현수와 이리냐 둘뿐이다.

레드 마피아와 크렘린궁에서 파견한 경호 요원들은 아래층 바깥에 대기 중이다.

전화기를 들자 호텔 룸서비스처럼 누군가가 응대한다.

이리냐는 와인과 간단한 안주를 부탁했다. 이바노비치의 저택에서 실컷 먹고 마셨지만 분위기 때문이다.

그리곤 다른 샤워실로 들어가 목욕재계를 마쳤다. 오늘 밤 진정한 현수의 여자로 거듭나기 위해 정성 들여 씻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목욕 가운을 걸친 채 나오자 현수가 입을 딱 벌린다. 뇌쇄적인 섹시함 때문이다.

촉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리냐가 신화에 등장하는 아프로디테와 다를 바 없이 보인 것이다.

문득 멍하니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현수는 얼른 상황을 바꿔야 한다 생각했다. 안 그러면 사고 칠 것 같아서이다.

몸의 일부분은 벌써 반응을 보인다. 하여 엉거주춤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참! 이럴 게 아니라 집 구경부터 하자.”

말을 마친 현수는 목욕 가운만 걸친 채 문을 열자 이리냐가 얼른 따라오며 팔짱을 낀다.

“같이 가요.”

이 층엔 50여 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주인이 쓰는 방은 4개밖에 없다. 부부가 사용하는 침실과 손님들을 맞이했을 때 사용할 거실, 그리고 당구대가 있는 오락실과 장서 10만 권이 채워져 있는 서재이다.

그리고 각각의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고, 시중드는 하녀들이 사용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리냐의 결론은 2층은 오로지 주인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흐으음!”

서재에 발을 들여놓았던 현수는 서가를 채운 한국 서적들을 보며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이바노비치의 배려가 느껴진 때문이다.

편안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으라고 준비해 놓은 소파엔 편지 봉투 하나가 놓여 있다.

펼쳐 보니 투박하지만 정성 들여 쓴 러시아어가 보인다.

длинная Русская зима

Отправить удобное для Вас время!

Надежда на yглуболeниe дружбьl бьlл готов.

-Ram друг Алексей Иванович

러시아의 겨울은 길다네.

이곳에서 편한 시간을 보내게!

우리의 우정이 깊어지길 바라며 준비했네.

―친구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가.

“……!”

현수는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보복 또는 위협이 두려워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가 자신에게 끝없는 호감을 갖도록 어펜시프 참 마법을 걸었다.

그 결과 상대는 진심으로 이러한 배려를 하는데 본인은 그저 단순한 거래 상대자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현수의 곁에서 쪽지를 읽었던 이리냐가 가만히 고개를 기대온다. 그녀 역시 이바노비치의 진심이 느껴진 때문이다.

“가자.”

“네.”

현수가 먼저 침대에 눕자 이리냐가 가운을 벗고 이불 안으로 들어온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채이다.

아내로 받아준다고 했으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의 결과이다. 하지만 현수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세월은 많이 지나지 않았지만 마법을 배워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지구와 아르센 대륙 양쪽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때마침 그것에 대한 진심 어린 상념에 잠긴 때문이다.

팔베개를 하고 누운 현수의 품을 이리냐가 파고든다. 저도 모르게 당겨 안고 보듬어주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진다.

하지만 현수에겐 여전히 욕념이 없다.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때문이다.

클럽에서 노느라 피곤했는지 이리냐는 이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든다. 혹여 깰까 싶어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잠시 기다려 주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왔다.

다시 가운을 걸치고, 천천히 서성이다가 아래층을 지나 넓은 정원으로 나왔다. 그리곤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달빛은 교교했고, 저녁때 잠깐 비가 와서 그런지 다소 선선한 온도이다.

하지만 바디체인지를 겪으면서 한서불침이 된 현수는 이를 느끼지 못하기에 천천히 걸으며 상념을 정리했다.

저택을 두 바퀴 돌고 다시 침실 아래쪽에 당도했을 때이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어디선가 휴대폰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감각이 고도로 발달되었기에 아래층 바깥에 있으면서도 침실 탁자 위의 진동이 느껴지는 것이다.

되돌아가 계단을 딛고 오를 때쯤이면 전화는 끊길 것이다. 왠지 이 전화는 꼭 받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지체없이 마법을 구현시켰다.

“플라이!”

신형이 둥실 떠오른다. 그리고 불과 1, 2초 만에 2층 침실에 당도한 현수는 손을 뻗어 탁자 위의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현수냐?”

“아! 어머니.”

이곳 시각은 현재 밤 1시 30분이다. 한국과의 시차가 5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우미내는 현재 오전 6시 반이다.

이른 새벽이지만 어머니의 음성은 잠겨 있지 않았다.

“현수야, 어찌 된 일이냐?”

“네……? 뭐가요?”

“새아가에게 이야기 들었다. 거기에 살림을 차렸다며? 여자가 다섯이라고 들었는데 진짜 아니지?”

“네? 다섯이요?”

“그래. 그 나라 아가씨 셋에 요즘 광고에 나오는 아가씨. 그리고 너 전무 된 다음에 뽑은 비서 이렇게 다섯을 데리고 산다면서?”

“어머니! 데리고 사는 건 아니고 그냥 같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나라 아가씨들은 그냥 고용되어 있는 거구요.”

현수의 말에도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이다.

“네 아버지 화 단단히 나셨다. 고검장님 얼굴 볼 면목이 없다면서…….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

화를 내면서 큰 소리를 지른다면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어머니의 음성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머니,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그게 말이죠.”

현수가 말을 이으려 할 때 어머니가 먼저 말씀하신다.

“국제 전화라 길게 통화할 순 없으니 일단 귀국하거라. 집에 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알았니?”

“네……?”

“회사고 뭐고 일단 들어오란 말이야. 네 아버지 지금 술병 나서 돌아가시게 생겼어, 이것아!”

“……!”

“너무 여자를 안 사귀어서 걱정을 했더니 이게 뭐니? 다섯 명이라니? 거기에 새아기까지 여섯을 데리고 살 생각이었어?”

“어머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긴말 필요 없다. 최대한 빨리 집에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안 그럼 네 아버지 장례식 치르게 생겼어. 알았지?”

“끄응! 알았습니다. 여기 일 정리 되는 대로 들어갈게요.”

“그래. 그리고 새아가 화가 단단히 났으니 알아서 잘 풀어야 한다. 알았지? 다른 아가씨들은 모르겠지만 새아가는 절대 놓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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