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21화 (421/1,307)

# 421

현수는 머릿속으로 암산해 보았다.

60센트씩 20만 4,000캔이면 12만 2,400달러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억 3,150만 원이다.

누가 아침 댓바람부터 맥주를 그만큼 사러 오겠는가!

모스크바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동양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략 10여 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발찌까를 팔지 않는다.

지나에서 들여온 청도, 하얼빈, 연경, 창장 맥주 등만 취급한다. 주인도 손님도 전부가 지나인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수는 지나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관광객도 아닌 듯싶다. 그렇지 않고야 이처럼 많은 맥주가 필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로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수는 대한민국의 맥주 값과 비교하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 맥주 공장도가를 100이라 하면 우선 72%의 주세가 매겨진다. 여기에 추가로 교육세 30%가 붙는다.

결과적으로 총 93.6%의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장도 가격과 세금을 합한 금액에 다시 부가세가 적용된다. 이를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00+100 0.72+100 0.72 0.3) 1.1=212.96

출고가에 대비 112.96%의 세금이 부과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유통 과정 이윤이 추가로 붙는다.

한국 맥주는 맛없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북한에서 생산되는 대동강 맥주보다도 맛이 없다는 평가이다. 이는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2년 11월에 보도한 내용이다.

그런데 맥주에 매겨진 세금은 왕창이다.

이에 반하여 외국 맥주는 맛도 있으면서 값도 싸다.

심지어 후진국인 콩고민주공화국이나 르완다에서 생산되는 맥주도 한국산보다는 월등히 맛이 좋다.

발찌까는 한국산보다 훨씬 풍미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값도 상당히 저렴하다. 참고로 발찌까는 500㎖짜리 캔이 1,500원 미만에 팔린다. 1.40달러 미만이다. 반면 한국산은 2,200원 정도에 팔린다. 미화로 2.05달러 정도 된다.

붙어 있는 세금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 생각할 것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모두 사죠.”

말을 마친 현수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돈을 꺼냈다.

이를 지켜보는 로만의 눈이 왕방울만 해진다. 100달러짜리 지폐가 수북했기 때문이다.

맥주 20여 만 캔을 팔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겠는가!

그런데 너무도 간단히 팔아치우게 되었으니 놀란 것이다.

“선금으로 반을 드리죠. 나머진 받는 대로 지급하겠습니다.”

얼떨결에 6만 1,200달러를 받은 로만은 멍한 표정이다.

“자, 이젠 저 맥주들을 가져다주십시오. 이것들은…….”

현수가 배송을 요구한 장소는 저택 인근 공터이다. 주변에 숲이 있어 사람들의 이목이 미치기 힘든 곳이다.

“어, 언제 가져다주면 되겠습니까?”

“지금 바로 가져다주십시오. 가능하죠?”

“그, 그럼요! 최대한 빨리 가져다드리죠.”

“네, 파레트는 나중에 회수해 가십시오.”

“그러지요.”

로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기를 붙잡는다. 이제부터 인근에 모든 화물차를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게차도 필요할 것이다.

그건 마당에 있는 걸 실어가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온종일 하역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류도매점을 떠난 현수는 곧장 저택으로 향했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잘 잤어?”

“그럼요.”

이리냐는 샤워를 마치고 화장까지 마친 상태이다. 당연히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가볍게 포옹해 주고 이마에 뽀뽀도 해주었다. 이제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 된 것이다.

“식사는요?”

“음, 다니면서 뭘 좀 사 먹었어. 오늘은 뭐할 거야?”

“새 아빠가 엄마 데리고 나가서 쇼핑 좀 하래요. 그래서 오늘도 외출하려 해요.”

“그래? 그럼 나는 나대로 일 좀 볼게.”

“네, 그러세요. 남자들은 쇼핑하는 거 질색한다는 거 알아요. 그러니 편한 대로 하세요.”

“그래! 여기 일 다 보면 곧장 킨샤사로 가야 하니 그런 줄 알고 있어.”

“그럼요. 그렇게 할게요.”

현수는 이리냐와 차 한 잔을 마시곤 서재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주문하려는 러시아 군화 사이즈를 정리한 것이다.

문서 작성을 마치곤 다시 지르코프와 통화를 했다. 그리곤 최단 시일 내의 납품을 당부했다.

물론 흔쾌한 답변을 들었다.

일련의 작업을 마치고 나가보니 저택 인근 공터에 맥주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현수는 로만이 보낸 사내에게 잔금을 지급했다. 그리곤 그들 모두가 떠나자 맥주를 아공간에 담았다.

“흐음, 이제 조금 준비가 되었군.”

현수는 차원 이동 마법으로 다시 아르센으로 향했다.

“마나여, 나를 아르센으로……. 트렌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 * *

“오, 하인스! 어서 오시게.”

빌모아 일족의 족장 나이즐 빌모아는 현수를 격하게 반겨준다.

“하하, 네에. 여전하시죠?”

“그럼, 그럼! 우린 잘 지내고 있네.”

“작업은 많이 하셨습니까?”

“금괴는 30톤, 처음에 준 무구들은 거의 다 손을 봤네.”

“네에? 그 많은 걸 벌써 다 손보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가 맡긴 일이니 최우선적으로 그것부터 하였네. 우리 빌모아 일족 전부가 달라붙어 작업을 하니 금방 되더군.”

“정말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작업량이 많은 듯하여 현수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의뢰한 일이라 신경을 많이 썼네. 이건 모두 내 공일세.”

족장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기에 현수는 환히 웃었다.

“그럼요! 그래서 더 맛있는 맥주를 준비해 왔습니다.”

“오오!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네.”

“네에, 일단 창고로 가시지요.”

“그래, 그래야지.”

현수가 당도한 순간부터 빌모아 일족의 시선은 집중되어 있었다. 언제 얼마만큼 많은 맥주를 꺼내 놓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창고에 당도한 현수는 발찌까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꺼내는 건 쉬운데 쌓는 게 번거로웠다. 하지만 금방 해결되었다.

빌모아 일족 청년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재빠르게 운반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일종의 컨베이어 벨트 역할을 한 것이다.

20만 캔 모두가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두어 시간이다.

현수는 창고 내부의 온도가 4℃를 유지하는지를 확인했다. 이 온도의 맥주가 가장 맛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빌모아 일족은 무지막지한 양의 맥주에 한껏 고무된 표정들이다. 당분간은 원하는 대로 마셔도 될 것이라는 족장의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곧바로 잔치가 벌어질 분위기였다. 하지만 남은 일이 있기에 연회는 뒤로 미뤄졌다.

현수는 금괴가 쌓여 있는 창고에서 이것들을 아공간에 담았다. 다음엔 유카리안 영지에서 가져왔던 무구들도 담았다.

족장의 말에 의하면 너무 조악하여 대부분 용광로에 넣어 녹였다고 한다.

그리곤 아예 새로 만들었다면서 품질을 자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전과 확연히 다르기에 현수는 기분이 좋았다.

하여 구운 아몬드, 땅콩, 호두, 건포도 등을 꺼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양파링과 감자 칩도 수십 박스 꺼냈다.

맥주에 적합한 안주를 꺼내 놓은 것이다.

당연히 족장 등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맥주만으로도 만족하는데 곁들일 안주까지 있으니 왜 안 좋겠는가!

바야흐로 드워프에게도 안주라는 개념이 생기는 순간이다.

현수가 빌모아 일족과 헤어진 것은 느지막한 밤이다. 흥청망청하는 주회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휴우! 진짜 주량들 세군. 키는 작은데 그 많은 술이 어디로 들어가나 몰라. 어쩜 그렇게 많이 마시지?”

드워프들의 쏟아붓기식 주법에 질린 현수이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테세린 성 첨탑의 좌표를 확인했다.

“좋아, 오랜만에 카이로시아를 볼까?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신경이 허공 속으로 꺼져 들었다.

* * *

“야심한 시각에 누구냐?”

“흐음, 목소리를 들어보니 발루네군.”

“어라! 거기 계신 분은 누군데 저를 아십니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얼굴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 하여 이레나 상단 수문위병인 발루네는 횃불을 앞으로 내밀었다. 누가 장난치나 싶었나 보다.

장난기 많은 현수가 어찌 그냥 넘어가겠는가!

훌쩍 다가가 얼굴을 드러내며 환히 웃는다.

“날세. 하인스! 카이로시아를 노리던 불나방.”

“네에? 헉……! 배, 백작님! 백작님께서 어떻게 이 야심한 시각에……? 아,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발루네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하하, 요즘은 불나방들이 하루에 몇 마리씩 날아오는가?”

“네? 아, 네에. 요즘도 하루에 최소 30마리씩은 옵니다만 걱정 마십시오. 제 선에서 전부 싹을 자르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전부 평민들만 온다는 소린가? 귀족들은 없나 보지? 우리 카이로시아가 그렇게 인기가 없었나?”

“네? 그, 그게……. 사실 귀족님들은 제가 어찌할 수 없기에……. 죄송합니다. 앞으론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발루네의 허리가 또 한 번 접힌다.

“귀족들을 자네가 어떻게? 목숨이라도 걸 건가?”

“네? 그, 그럼요. 백작님의 명이시니 그러라면 그래야지요.”

진짜로 그럴 생각인지 낯빛이 변한다. 앞으로 다가올 상황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하하! 되었네. 농담이네. 그나저나 카이로시아는 안에 있나?”

“그럼요. 지부장님 안에 계십니다. 제가 모실까요?”

“아닐세. 이곳 지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니 내가 가지.”

“네, 그럼 살펴 가십시오.”

“그래, 그리고 이건 불나방 제거 비용이네. 얀센네 가게 가서 한잔하게.”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헉! 이, 이건……!

현수가 건넨 것은 1골드짜리 금화이다. 당연히 발루네의 눈이 커진다. 월급보다도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현수의 신형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지부장님은 제가 잘 지키겠습니다.”

어둠 속의 현수더러 들으라 하는 말이다.

“고맙네. 자네만 믿겠네.”

현수의 대답을 들은 발루네는 정중히 허리를 꺾었다.

고위 귀족임에도 늘 소탈하고 아랫사람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깊기에 저도 모르게 숙여지는 고개와 허리이다.

본관 건물로 들어가려는 데 또 누군가가 나선다.

“멈추시오! 이곳부터는 용무가 확인되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는 자네는 누군가?”

“본인은 A급 용병 루토라 하오. 신분을 밝히십시오.”

어둡기는 본관 역시 마찬가지인지라 상대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차하면 칼을 뽑을 기세이다. 이때 안쪽으로부터 누군가가 나서는데 횃불을 들고 나온다.

그러자 삽시간에 어둠이 밀려나고 현수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 B급 용병 토마스군. 잘 있었는가?”

“앗! 백작님. 백작님께서 이 시간에 어떻게 여길……?”

현수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루토였다.

“헐……! 백작님께 인사드립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둘 다 오랜만이네. 별일 없지?”

“그, 그럼요. 어서 오십시오.”

대답은 토마스가 했다. 일찍이 유카리안 영지를 찾았을 때 고용했던 용병이다. 그때 몇 수를 알려주어 실력이 늘었다. 하여 현수에게 지극한 호감을 가진 자이다.

“참! 루토, 자네 이야긴 전에 들었네. 내일 날이 밝으면 수련장에서 보세. 토마스도 같이 오고.”

“헉……! 저, 정말이십니까? 가, 감사합니다. 백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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