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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422화 (422/1,307)

# 422

루토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인 현수로부터 지도를 받으면 검술의 진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을 뒤로하고 실내로 들어가니 곳곳에 마법등이 밝혀져 있다. 돈 많은 상단답다.

“흐음! 조금 놀래켜 줄까?”

현수는 살금살금 걸어 카이로시아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원래는 시비들이 있어야 하나 밤이 깊은 관계로 모두 잠자러 간 모양이다.

삐이꺽―!

“쳇, 기름 좀 쳐야겠군.”

나지막한 마찰음에 현수는 아공간에 있던 재봉틀 기름을 꺼내 경첩 부위에 몇 방울 떨궜다.

몇 초 후, 슬쩍 여닫아 보니 소음이 확실히 줄어들어 있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니 카이로시아가 사용하는 침실로부터 불빛이 새어 나온다. 살짝 문을 여니 책상 앞에 앉은 카이로시아의 뒷모습이 보인다.

뭔가를 작성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

11장 이게 모두 드워프제 무구라고요?

“사랑하는 백작님께… 어휴, 아냐! 너무 남세스러. 그럼 보고 싶은 백작님께? 흐음, 이건 너무 의례적이고……. 그럼, 사랑하는 자기야에게? 히히, 이건 너무 그렇다. 그럼 뭐라고 하지?”

조용히 다가간 현수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카이로시아가 무엇을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기야에게. 너무 보고 싶어요. 제가 보낸 전언 통신문을 받았으면서 왜 답장 안 해줘요? 카이로시아는 자기야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속이 다 탔어요. 보고 싶어요. 와서 저를 꼭 안아주세요.”

말을 하면서 또박또박 글을 쓰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하여 뒤에서 와락 안아주려다 멈췄다.

너무 놀라면 심장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현수는 살그머니 물러났다. 그리곤 조용히 노크를 했다.

똑, 똑, 똑!

“누구……? 누구니? 무슨 일 있어?”

똑, 똑, 똑!

현수는 대답 대신 또 노크를 했다.

그러면서 아공간에 담겨 있던 꽃다발을 꺼내 들었다. 연인들에게 선물하라고 포장해 놓은 장미꽃 100송이 다발이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여겨 잘 포장된 초콜릿 상자까지 꺼내 들었다.

“누구야? 들어와도 돼! 들어와도 된다니까.”

시녀가 온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카이로시아!”

“……? 아아, 백작니임!”

우당탕탕! 와장창, 쨍그랑!

사내의 음성에 등을 돌렸던 카이로시아의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습막이 동공을 덮는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 달려든다.

이 때문에 탁자 위의 여러 가지가 바닥에 떨어져 소리를 냈다.

하지만 카이로시아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곧장 현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기야!”

와락 품에 안겨드는 카이로시아의 교구를 받아 안은 현수는 그 뭉클한 촉감에 잠시 아찔함을 느꼈다.

“로시아!”

“네, 백작님! 흐흑, 사랑해요. 정말 정말 사랑해요. 흐흑!”

“……!”

“백작님,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흐흑! 아아아앙!”

현수는 격하게 오열하는 카이로시아를 가만히 보듬어 안았다. 현재로선 그게 최상의 위안이기 때문이다.

“흐흑! 흐흐흑……!”

카이로시아의 오열이 나직한 흐느낌으로 변해간다. 그러다 점차 움직임이 줄어든다 느낀 현수는 살그머니 몸을 떼어냈다.

“로시아! 늦게 와서 미안해. 자, 이건 내 선물!”

로시아는 현수가 내민 장미꽃 다발을 받아 들었다.

“이건……! 흐으음, 향기로워요.”

그윽한 장미향을 맡은 카이로시아는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것도……!”

“이건 뭐예요?”

“먹어봐, 맛있는 거야.”

“어머, 정말요? 고마워요.”

카이로시아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어린다.

“거봐, 로시아는 웃는 얼굴이 예뻐. 뭐해? 어서 먹어봐.”

“네? 아, 네에.”

포장된 상자는 열었지만 담겨 있는 초콜릿의 껍질까지 벗기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다. 그냥 껍질째 입에 넣으려 한다.

“아, 아냐. 그렇게 먹는 게……. 줘봐, 내가 까줄게.”

“네? 아, 네에.”

노란 금박 껍질을 벗기자 진한 초콜릿색이 드러난다. 식감엔 별로 좋은 색깔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잠시 로시아의 눈빛이 흔들린다. 혹시 못 먹을 거로 장난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껍질 벗긴 초콜릿을 로시아의 입에 넣어주었다.

“……!”

“어때, 맛있지?”

“네? 아, 네에. 마시써요. 네에, 증말 마시쩌요.”

로시아는 부지런히 초콜릿을 씹어 삼켰다. 그래서 발음이 어눌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과 표정은 너무도 귀여웠다.

“이리 와!”

현수는 카이로시아를 와락 잡아당겨 안았다. 그리곤 이마에 뜨거운 입맞춤을 해줬다.

“로시아! 사랑해.”

“네, 저도요.”

카이로시아는 들고 있던 장미 꽃다발을 살그머니 곁의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초콜릿 상자는 소파 위로 던졌다.

그리곤 두 팔로 현수의 탄탄한 동체를 와락 안았다.

잠시 후, 정열적인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달콤한 초콜릿이 있었기에 달콤을 넘어 감미롭기까지 했다.

“로시아, 어떻게 되었다고?”

길고 정열적인 키스 이후 나란히 앉은 둘은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물론 로시아가 이야기하고 현수가 듣는 입장이다.

엘리터 습격 사건 이후 테세린 영지는 대체 누가 여왕 엘리터의 내단을 우물에 넣었는지에 대한 조사를 했다.

단서는 내단을 묶은 질긴 섬유였다.

그것은 유카리안 영지와 테세린 영지 사이를 흐르는 야호니강 저편에서만 서식하는 아마과(亞麻科 Linaceae) 식물의 섬유였다.

결론은 범인이 유카리안 영지 사람이라는 것이다.

테세린의 영주 로니안 자작은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상대 진영에 대한 조사를 했다.

유카리안 영지엔 기사 20명과 병사 1,000명이 있다. 이밖에 17세 이하 기사 예정자가 20명, 병사 1,000명이 있다. 물론 17세 이하 병력은 즉시 전력감은 못 된다. 이제 겨우 12살짜리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대적인 용병 모집에 들어갔다.

이밖에도 추가로 병사를 뽑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한편, 테세린 영지는 기사가 10명, 병사 700명이 있다. 이밖에 감춰둔 병력으로 기사 10명, 병사 1,000명이 있다.

이들은 영주성 깊숙한 곳에 마련된 비밀 훈련장에서 훈련 중이다.

당장 영지전을 선포하고 맞붙어도 결코 지지 않을 군세이다.

저쪽은 기사 10, 병사 1,000이고, 이쪽은 기사 20, 병사 1,700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부로 달려들 수는 없다.

유카리안 영지 뒤쪽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케일론 영지의 칼멘 후작 때문이다. 기사만 120명, 병사 12,000명을 거느리고 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물이다.

그에게 있어 유카리안의 드넓은 곡창지대와 두 개의 구리 광산, 그리고 철광 하나와 최근 발견된 마나석 광산은 아주 맛있어 보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물이 오가는 테세린의 항구도 탐날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세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이 상잔하면 보나마나 공격할 것이다.

평판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 확률은 거의 1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다.

아무튼 테세린 영지의 비밀 훈련장에서는 맹훈련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레나 상단과 유카리안 영지와의 일도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로시아의 오빠인 일루신 에델만 드 로이어로부터 받은 15,000골드는 반환해 줄 수 없다고 한다. 물론 마나석 광산의 채굴권 역시 단 1%도 양도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괘씸하기 이를 데 없는 반응이다.

이레나 상단으로서는 없고 화가 났지만 어쩌겠는가!

타국에 근거지를 둔 상단이 고위 귀족을 상대로 공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현수는 어금니를 슬쩍 깨물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 데니스 백작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야, 이제 자요. 여기 이거 보이시죠?”

카이로시아는 손을 내밀어 반지를 보여준다. 언제든 품에 안겨 잘 수 있다는 증표로 준 바로 그것이다.

“그래, 그래!”

잠시 후, 현수는 품에 안긴 카이로시아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잘 자요! 나의 천사.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잠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주는 이 한밤.

잘 자요! 나의 여인. 당신을 사랑하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자장가를 개사한 이 나지막한 노래를 들으며 카이로시아는 심연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져든다.

꿈에서도 감미로우면서 부드러운 음색을 즐기는 듯 입술을 비쭉이기도 하며 현수의 품을 파고들었다.

언제나 그러했듯 가만히 보듬고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현수의 뇌리엔 내일 있을 일들이 스친다.

짹, 짹, 짹!

창가를 찾아온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뜬 카이로시아는 기지개를 켜려다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곤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시무룩해진다.

어젯밤 너무도 사랑하는 님을 만나 무척이나 행복했는데 그게 꿈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쳇……! 좀 빨리 오시면 안 되나? 이렇게 보고 싶은데.”

어린아이 투정부리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삐죽이던 카이로시아는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는 고개를 숙인다.

그 짧은 순간에 한 방울 눈물이 이불에 떨어진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해 우울증이 생겼는지 요즘 툭하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치잉! 사랑한다 해주셔 놓고 오지도 않고. 흐흑! 자기야, 너무 보고 싶어요. 흐흑! 흐흐흐흑!”

무릎을 감싸 안으면서 카이로시아는 오늘도 아침부터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룬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달콤한 향기가 느껴진다. 로잘린을 겁먹게 만들었던 가짜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다시 말해 헤이즐넛 커피 향이다.

“……!”

고개를 들어 이제 뭔가 싶었던 카이로시아의 동공이 부르르 떤다.

“로시아! 이거부터 한잔해야지?”

“자, 자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카리로시아가 와락 달려들자 현수는 얼른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교구를 받아 안았다.

“아앙! 꿈인 줄 알았잖아요. 아아앙!”

“으이그, 울보! 진작에 이런 울보인 줄 알았어야 하는 건데.”

“네에?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로시아가 이런 울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어야 한다고 했어.”

“왜요? 일찍 알았으면요? 그랬으면 저를 버리시려고……?”

카이로시아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아니! 더 일찍 와서 더 세게 안아주려고 했지.”

“아앙, 자기야! 흐흑! 너무 사랑해요. 흐흐흑!”

“하하, 울보 맞아. 그러니까 지금부터 아주 꽉 안아줄 거야. 그러니까 아프다고 울면 안 돼.”

“흐흑! 네에. 갈비뼈가 다 으스러져도 좋아요. 꽉 안아주세요.”

카이로시아는 행복에 겨운 눈물을 흘렸다. 이때 진짜로 세게 안아주었다.

“으윽! 자, 자기야. 나 아파요. 으으윽! 너무 세요.”

“하하! 하하하하! 로시아, 사랑해! 으읍!”

정열적인 모닝 키스가 시작되었다. 이때 카이로시아의 시중을 들어주려 다가왔던 시비들은 토마스와 루토의 제지를 당하는 중이다.

잠시 후, 이레나 상단 사람 거의 전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하인스 백작이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함이고, 다 같이 식사하기 위함이다.

* * *

“오오! 이게 누구신가? 어서 오시게. 백작!”

“하하, 네에. 그간 강녕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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