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23화 (423/1,307)

# 423

“그, 그럼. 자네, 아니, 백작 덕분에 아주 좋았네. 지난번엔 정말 고마웠는데 금방 가서 고맙다는 말도 다 못 전했네.”

로니안 자작은 진심을 담아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엘리터들의 무차별 습격으로 영지 전체가 쑥밭이 될 위기의 상황이었다.

게다가 본인과 로잘린은 오크에게 잡아먹힐 뻔한 위기도 겪었다. 그때 현수가 나타나 도와주지 않았다면 테세린의 오늘은 없다.

그러니 정중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현수는 장인이 될 자작이 고개 숙이자 얼른 맞절을 했다.

“에구, 이러지 마십시오.”

이때 곁에 있던 세실리아 자작부인이 한마디 한다.

“백작님, 이제 여행을 마치신 건가요?”

“아직 아닙니다. 하지만 조만간 끝날 수도 있습니다.”

“다행이에요. 그동안 로잘린이 아주 많이 기다렸거든요.”

세실리아 자작부인의 시선이 로잘린에게 미치자 기다렸다는 듯 치마를 잡고는 살짝 고개를 숙인다.

깜찍하면서도 성숙한 아름다움을 흩뿌린다.

“어서 오시어요. 백작님!”

“로잘린 영애! 그간 잘 있었소?”

“그럼요. 그간 안녕하셨지요?”

로잘린은 말을 하면서도 현수의 신상에 혹시라도 이상이 생겼을까 싶은지 세심한 시선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인사가 끝난 후 모녀를 위한 자그마한 선물을 주었다.

장미와 초콜릿이다. 전에 주었던 화장품들은 아직 남았다고 하지만 언제 또 올지 몰라 더 꺼내 주었다.

모녀가 자리를 비우자 현수가 로니안 자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작심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자작님, 혹시 유카리안 영지와의 영지전을 계획하시는지요?”

“으음, 그걸 어찌 아셨나?”

장래의 사위가 될 것이지만 높은 귀족이기에 반 공대를 한다. 만날 때마다 잘 정리가 안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를 집어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니안 자작은 흉중에 담고 있는 것에 대한 언급이 나왔지만 부인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하인스 백작은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레나 상단에도 못된 짓을 했더군요. 그래서 징치하고픈 마음이 있어 되돌아왔습니다.”

“아! 그런가?”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흐음, 지금이라도 데니스 백작을 칠 수는 있네. 문제는 그 후의 일이지. 케일론 영지의 칼멘 후작의 욕심이 워낙 사나워서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네.”

“이웃에 있는 드리안 영지의 칼루센 백작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흐음, 그분의 도움은 아마 어려울 것이네. 요즘 좋지 못한 사정이 생겨 제정신이 아니시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백작부인과 영애들이 타고 나간 마차가 실종되었네. 하여 전 병력을 풀어 영지 곳곳을 뒤지느라 여념이 없네.”

“아……!”

“몬스터의 짓이라는 설도 있지만 흑마법사들의 출현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네. 그것도 아니라면 귀족파의 음모일 수도 있다고 하네. 하여 신경이 곤두서 있어 우릴 도울 처지가 아니시네.”

“그렇군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누라와 자식이 없어졌는데 남 도울 정신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말에 동의한 것이다.

“칼멘 후작만 잠잠해진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 그쪽 전력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시죠?”

“그럼, 후작 본인은 일단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네. 그리고…….”

로니안 자작의 설명은 이어졌다.

칼멘 후작에겐 전원 소드 익스퍼트로 이루어진 3개 기사단이 있다.

기사 총원 120명 중 40명은 소드 익스퍼트 초급, 40명은 중급, 나머지 40명은 상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각각의 기사단엔 병사 4,000명씩 배속되어 있는데 가장 약한 기사단에 가장 강한 병사를 포진시켜 전력의 균등화를 이루고 있다.

이게 대외적인 전력이고, 대내적으론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 200여 명이 더 있다고 한다.

물론 수련 기사와 훈련 중인 인원은 제외다.

모든 설명을 다 들은 현수는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로니안 자작은 느닷없이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엔 뭔가 있다 싶었는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생각을 정리한 현수가 묻는다.

“그러니까 욕심 사나운 칼멘 후작의 병력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해볼 만하다는 거죠?”

“그렇다네. 그런데 그 방법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고 있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작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때 현수의 뇌리로 번개처럼 스치는 묘안이 있었다.

“혹시… 전장의 학살자 토마스를 아시는지요?”

“뭐어? 전장의 학살자라면… 특급용병 토마스를 말하는 겐가? 소드 마스터 전쟁용병……? 맞나?”

로니안 자작은 다소 흥분한 듯하다. 토마스만 가담해 주면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 사람은 왜……? 혹시 불러올 수 있는 겐가?”

“아뇨. 하지만 그 대역은 해볼 만해서요.”

“대역……? 누가……?”

“누구긴요? 제가 하죠.”

“뭐어……?”

로니안 자작은 입을 딱 벌렸다. 전장의 지배자 소드 마스터는 함부로 사칭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소드 마스터를 사칭했다가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처절한 응징을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당한 사람이 여럿이다.

어느 왕국에선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인 후작이 소드 마스터라 거짓말을 했다가 손목을 잘리기도 했다.

당시 징계에 나섰던 소드 마스터는 왕국의 추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하지만 왕국은 그러지 못했다. 그랬다간 대륙의 모든 소드 마스터에게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국의 후작이 이러한데 평범한 일반인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렇기에 함부로 사칭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려 섞인 로니안 자작의 얼굴을 본 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리곤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일전에 가보라 하면서 주었던 그것이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던 로니안 자작의 눈이 커진다. 현수의 검에서 시퍼런 검강이 쭉 뻗어 나왔기 때문이다.

지이이이잉―!

“허억……!”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 로니안 자작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빈다. 그런다고 뻗어 나온 검강이 사라지겠는가!

“얼마 전 작은 깨달음을 얻어 이렇게 되었습니다.”

“세, 세상에……!”

로니안 자작은 말을 더듬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뒷말은 잇지 못했다.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인스 멀린 백작은 여행 중인 타국의 귀족이다. 그런 사람이 수행원 하나 없이 남의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다.

용병행도 아니고, 기사수련도 아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고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로니안 자작이 너무도 놀라 말을 잇지 못할 때이다.

“제가 복면을 쓰고 전장의 학살자 역할을 하겠습니다. 자작님은 병사들을 준비시켜 주십시오.”

“……?”

“참, 병사들에게 지급할 무구들이 있습니다.”

“무, 무구……?”

“네, 이걸 기사들에게 보급하십시오.”

아공간에 고이 간직되어 있던 아머를 꺼내자 자작의 눈이 커진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던 때문이다.

아머에 이어 검과 방패, 그리고 투구와 완호갑, 마지막으로 장갑과 각반까지 꺼내 놓자 입을 딱 벌린다.

이건 누가 봐도 세트 아머이다. 그런데 늘 보던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한눈에 딱 보기에도 명품 중의 명품이다.

“이, 이건 대체……? 호, 혹시 드워프제가 아닌가?”

로니안 자작이 놀라서 부들부들 떨 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역시, 안목이 높으시군요. 맞습니다. 드워프제! 제게 테세린 영지의 모든 기사와 병사에게 지급할 만큼 있습니다. 이게 몸에 익어야 하니 훈련장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그, 그러세!”

허둥지둥 안내하는 로니안 자작의 뒷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현수는 웃지 않았다. 누구라도 이럴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테세린 영지의 병사들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드워프제 세트 무구들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은 직후이다.

현수는 인원을 파악하는 즉시 무구들을 꺼냈다.

“헐……! 이, 이 모든 게 정녕 드워프제 무구란 말인가?”

로니안 자작은 입을 딱 벌렸다.

“세상에, 맙소사……!”

드워프가 만든 무구는 왕궁에서나 볼 수 있다. 아니면 최고위 귀족의 식솔들이나 가진다.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고, 설사 돈 주고 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가격이 너무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래된 드워프제 무구는 장검 한 자루에 200골드이다. 한화 2억 원가량 된다.

방패는 180골드, 투구 120골드, 완호갑 60골드, 장갑 30골드, 각반 40골드 등이다. 이렇게 한 세트를 모두 갖추려면 630골드 이상이 소요된다. 한화로 환산하면 6억 3천만 원이다.

기사가 100명 있다면 무장하는 데만 630억 원이 든다. 이밖에 랜스, 말 등이 따로 있어야 하니 웬만해서는 절대 가질 수 없다.

그런데 현수는 이런 걸 기사와 병사들 수효에 맞춰 꺼내 놓았다.

기사 20명과 병사 1,700명에게 지급된 무구를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기에 로니안 자작은 계산해 보지도 않았다.

영지를 통째로 팔아야 간신히 감당할 거액이기 때문이다.

“자, 자네!”

로니안 자작이 격동에 겨워 부르르 떨든 말든 현수는 병사와 기사들에게 무구를 지급했다. 그리곤 다시 집무실로 되돌아왔다.

이번엔 아밍 소드를 꺼냈다. 로잘린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했을 때 로니안 자작이 가보라면서 준 것이다.

“자작님, 이 검엔 샤프니스와 스트렝스, 그리고 체인 라이트닝 마법이 인챈트되어 있습니다. 체인 라이트닝의 경우는 하루에 3번까지 시전되며 마나는 자동으로 채워집니다.”

“……!”

얼떨결에 검을 받아 든 로니안 자작은 멍한 표정이다. 자신이 주었던 검의 놀라운 변신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체인 라이트닝을 구현시키려면 검에 마나를 주입하면서 ‘시전’이라고만 외치면 됩니다. 아셨죠?”

“이, 이걸 어떻게…….”

“여행을 하다 만난 마법사가 인챈트해 준 겁니다. 이걸 쓰십시오.”

“고, 고맙네. 정말 고맙네!”

로이안 자작은 또 격동에 겨워 부르르 떤다.

이제 오랜 염원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테세린 영지에서는 3명의 전령이 출발하였다. 하나의 목적지는 테세린 영지를 관장하는 할만 공작성이다.

미판테 왕국의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영지전을 일으키려면 먼저 관할 공작이나 후작에게 보고를 한다. 그러면 그걸 왕궁에 보고하여 최종 인가를 받는 형식이다.

따라서 공작에게 영지전 발발을 통보하면 즉시 왕궁에 이를 알리고 판정관을 파견할 것이다.

다른 한 전령의 목적지는 영지전의 상대인 유카리안 영지이다.

마지막 전령의 목적지는 드리안 영지이다.

테세린에 지극히 우호적인 칼루센 백작에게 영지전이 일어나게 되었음을 알리려는 목적이다. 혹시 전투에 패하더라도 그쪽으로 도주하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여 유사시 도주로 확보를 위한 통보이기도 하다.

같은 시각, 현수는 이레나 상단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아, 이번엔 둘이 같이 덤벼보게.”

“네, 백작님!”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B급 용병 토마스와 A급 용병 루토가 땅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고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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