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29화 (429/1,307)

# 429

“뭐가? 뭐가 안 된다는 거지?”

현수의 물음에 라세안이 대꾸한다.

“인간 가운데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놈이 몇이며, 도리에 합당하게 사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나?”

“……!”

이 대목에서 현수는 대꾸하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지난 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튜브 최다 재생 기록이니 한류니 뭐니 해서 한국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는 있지만 속은 점점 쇠퇴한다는 느낌이다.

핸드폰과 가전제품, 그리고 반도체는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중이다. 이쯤 되면 국민 수준이 상향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재는 중산층은 점점 사라지고 빈곤층만 확대되는 중이다.

서민들의 삶이 나날이 팍팍해지면서 인정도 메마르고 있다.

그나마 딱 하나, 간신히 마련한 집은 나날이 값이 떨어지고, 전셋값은 반대로 치솟아 살아가기 어렵다.

그 결과 여러 종류의 푸어(Poor)가 나타나고 있다.

워킹 푸어는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에 상관없이 풀타임으로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집은 있지만 대출 이자 갚기에도 헉헉대는 하우스 푸어도 있고, 자녀 교육 때문에 빚이 늘어나는 에듀 푸어가 있다.

신혼집 장만 등 비싼 결혼 비용 때문에 신혼부부 때부터 가난한 웨딩 푸어도 있다.

자녀 출산에 이은 비싼 양육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베이비 푸어도 나날이 늘고 있다.

렌트 푸어는 급등하는 전세 보증금을 감당하느라 저축 여력도 없고 여유도 없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자녀 교육시키느라 정작 자신들의 노후 대비를 못한 실버 푸어도 있고, 보증금을 낼 여력이 없어 월세를 전전하는 고시원 푸어도 있다.

노후 대비를 못하고 직장을 떠나 어려움을 겪는 리타이어 푸어도 있으며, 경기 불황으로 장사가 안 되어 어려움을 겪는 영세 사업자들은 소호 푸어라 부른다.

이밖에도 비싼 등록금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캠퍼스 푸어도 있다.

그래서 요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해 3포 세대라 불리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을 지도자를 잘못 뽑은 결과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처절하게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날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한국의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면 군부 독재자 셋을 연달아 뽑았다. 많은 사람이 아픔을 당했지만 어디에 대고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암흑기이다.

그 뒤를 이어 권력욕 이외엔 아무것도 없이 뇌가 텅 빈 인간을 대표로 뽑았다. 그 결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많은 기업이 도산했으며, 쓸 만한 것 대부분이 외국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어 길거리를 방황했고, 많은 가정이 경제적 여건 때문에 파괴되었다.

졸지에 결손가정 자녀가 된 청소년들은 정서적 혼란을 겪으면서 빈곤이 어떤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다.

이후에 두 명의 지도자를 더 뽑았다.

이들은 전임자들이 싸질러 놓은 온갖 오물을 치우느라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반대편은 무엇이든 하려고만 하면 제동을 걸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는 동안 임기가 끝나 버렸다. 하고 싶은 것의 반의반도 못하고 끝난 정권이다.

그런데 사람 하나 잘못 뽑아놓으면 오래도록 고생한다는 것을 잊은 국민은 몇 마디 말에 현혹되어 최악의 선택을 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채권자의 자리에서 채무자의 자리로 주저앉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빚은 너무도 막대하다.

국가 경제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중산층은 사라지고 양극화 현상1)은 심화되어 갔다.

그리고도 정신을 못 차린 국민들은 또 잘못된 선택을 한다.

투표권을 가진 국민 중 상당수의 뇌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2) 수준이라는 것이 입증된 선거이다.

이제는 지금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세상이 다가올 것이다.

지금껏 잘살던 자들은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어렵게 사는 이들은 영하 50℃ 이하의 온도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물론 부자들은 그따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절대 다수인 가난한 자들이나 느낄 감상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어 잘못된 선택이라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냉정함을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OECD 34개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다. 이 기록을 8년 연속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9월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33.5명이 자살했다. 2위 일본은 21.2명, 3위 슬로베니아는 18.6명이다.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지난 정권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경쟁 일변도로 바꿔놓은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심각한 폐해이기도 하다.

친 부자 정책을 선호하는 이번 정권도 경쟁을 부추길 것이다.

그래야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점점 더 가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이러는지 모를 것이다. 교묘하게 사실을 호도해 가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펼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같은 인간이지만 지배하는 계급이 있고, 그 밑에서 시중들어줘야 간신히 먹고사는 계급이 생긴다.

그래야 부자들이 세상 살기 편해진다.

그러기 위해 무능, 부패, 독선, 부정, 독재, 편협, 무식으로 중무장한 정권을 계속 유지시키려는 것이다.

“확실히 인간은 미성숙한 존재야. 자네 말에 이의가 없어.”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세안은 기회가 이때라는 듯 말을 잇는다.

“뛰어난 인간이 있으면 다수의 욕심 사납고 무식한 인간들이 어떻게든 음해하곤 하더군. 그게 인류 발전을 저해시킨 거지.”

이 말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다.

라이세뮤리안의 용생은 5천 년에 달한다. 그 5천 년 동안 여러 번의 수면기인 몇 백 년을 제외하면 4천 년 이상 활동했다.

그동안 레어에 머물며 수련을 하거나 유희했다.

둘을 비교하자면 유희 기간이 훨씬 길다. 따라서 인세에 대한 평가는 라세안의 의견이 훨씬 더 합당하다.

진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편협한 사고를 가진 인간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곤 했지. 자네 말을 인정해.”

현수는 억울하게 죽은 남이 장군을 떠올렸다.

남이는 태종의 딸인 정선공주의 손자이다.

16세에 조선 역사상 최연소 무과 장원급제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27세가 되었을 땐 병조판서의 직에 오른다. 이 역시 조선 500년 역사상 최연소 판서이다.

남이는 도적떼를 소탕하고, 이시애의 난을 편정하였으며, 건주 여진을 정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공신 대우를 받았다.

그리곤 유명한 시 한 수를 지었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닳게 하고

斗滿江水飮馬無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앴도다.

男兒二十未平國 사나이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컫겠는가!

젊은 혈기가 끓어 넘치는 장부의 기개가 서린 글이다.

그런데 늘 남이의 승승장구를 시기하던 유자광이 이 시의 한 글자를 고의로 바꾼다.

남아이십미평국을 남아이십미득국(男兒二十未得國)으로 고친 것이다. 그래놓고는 역모를 꾀하려는 증좌라며 이를 내놓았다.

그 결과 남이 장군은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의 형을 당하고 말았다.

남이가 더 오래 살았다면 드넓은 만주 땅을 정벌하여 조선의 성세와 영토를 크게 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쥐새끼만도 못한 자의 시샘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너무나 일찍 잃은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도 많은 견제와 시기, 그리고 모함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백의종군까지 했다.

이순신을 누구보다 견제한 인물은 조선 500년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속 좁았던 선조이다. 그리고 그에게 아첨하던 권력자들 역시 시기와 질투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전투에서 장군 스스로 갑옷을 벗었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어도 그 승리는 폄하되었을 것이고, 자그마한 실수는 크게 부풀려져 모든 공은 사라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오욕의 길뿐이다.

전란 중임에도 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을 졸병으로 끌어내린 자들이 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허준 등 위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 거의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권력욕에 눈먼 쥐새끼만도 못한 인간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군소리 없이 라세안의 말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 자네 말이 전적으로 옳아. 인간은 미성숙한 존재야. 그리고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많은 시기와 질투를 받지.”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있는데 궁금한가?”

“그게 뭔지는 나도 알아.”

“정말?”

라세안은 진짜 아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이에 단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 누구보다도 강하면 되지.”

“단순히 강하다 하여 진심으로 승복할까? 난 아니라고 보네. 인간들은 자신보다 강자 앞에선 고개를 숙이지만 뒤돌아서면 씹고, 씹고, 또 씹는 족속이네.”

“그 말도 맞아. 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 버리면 못 그러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랜드 마스터에 10서클 마법사라면 그러지 않겠는가?”

현수는 예를 든 것이다. 하지만 라세안이 듣기엔 아니다.

‘무서운 놈! 지금 내게 경고하는 거지? 그랜드 마스터에 10서클을 이루었으니 까불지 말라고. 제기랄!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라수스의 지배자인 내가. 쩝, 마음에 안 드는군. 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이기지 못할 존재인데. 끄응!’

착각은 자유이고 망상은 해수욕장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아무튼 라세안은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면 감히 어쩌진 못하겠지.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건 아나?”

“물론이야. 내가 사는 곳엔 이런 속담이 있어.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라는 말이지.”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 흐음, 그 말, 일리가 있네. 맞아, 아주 강력하면서도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겁 없이 까부는 놈들은 사라지겠지. 하지만 가끔은 시범을 보여야 하네. 안 그러면…….”

라세안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인 때문이다.

“맞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그래서 내 고향엔 일벌백계라는 말이 있네.”

“일벌백계? 무슨 뜻인가?”

“일벌백계(一罰百戒)란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다른 이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본보기로 아주 중한 처벌을 내리는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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