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30화 (430/1,307)

# 430

“그래! 그러면 인간들의 못된 습성이 고쳐지겠지.”

라세안과 현수는 인간의 품성에 관한 여러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라세안이 인간에 대해 결코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고 있는데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경보로 다가온다.

“멈추십시오.”

“……?”

“두 분, 잠시 멈춰주십시오.”

현수와 라세안은 바쁘게 다가오는 사내들을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모두 기사 복장을 하고 있는데 정확히 열두 명이다.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자 선두의 인물이 묻는다.

“어느 분이 코리아 제국에서 오신 하인스 백작님이십니까?”

“날세.”

현수의 대답에 기사는 한 팔을 가슴 앞에 대며 정중히 고개 숙인다.

“백작님을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곳 피리안 영지의 기사단장 아크웰이라 합니다.”

“그래, 반갑네. 그런데 날 왜 불러 세웠나?”

“저희 영주님께서 백작님과 기사단장님을 정중히 모셔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특별히 바쁜 일이 없으시면 저희와 함께 성으로 가주시길 청합니다.”

“……?”

“영주님께서 두 분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라 명하셨습니다.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을 터이니 같이 가주십시오.”

라세안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유희이기 때문이다.

3장 소드 마스터 가르치기

“좋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무엇들 하느냐? 백작님 일행을 수행하라!”

“네.”

굵고 짧은 대답을 한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현수의 전후좌우를 둘러싼 이 대형은 혹시 있을지 모를 암습 등을 대비한 것이다.

“가시지요.”

“험, 그러세.”

기사단장 아크웰은 40대 중년이지만 새파랗게 젊은 현수를 대함에 있어 각별한 예를 갖춘다.

“이곳의 영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냥 가기 심심해서 물은 말이다.

“영주님은 레더포드 아물린 반 피리안 백작님이십니다. 본래의 성은 아스론이었지만 아드리안 공국의 시조이신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님을 기리는 뜻에서 피리안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드리안 공국은 시조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했다는 뜻인가?”

“예전에 나이젤 산맥에 살면서 온갖 횡포를 부리던 광룡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이곳을 방문하신 시조께서 그 드래곤을 제압한 것에 감명받아 성을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그런가? 그건 그렇고, 오다 보니 많은 사람이 봇짐을 지고 이동하던데 그건 어찌 된 영문인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드리안 공국은 현재 미판테 왕국 등 삼국연합의 위협 속에 놓여 있습니다. 겉보기엔 평온해 보이나 저희는 현재 전시 상태입니다.”

“흐음, 그런가?”

짐짓 모르는 척하자 부연 설명을 한다.

“다행히 시조님의 후계자께서 누구든 우리 공국을 공격하는 자는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이란 경고의 말씀을 남기셔서 그나마 온전하게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안 그랬다면?”

“솔직히 말씀드려 그 말씀이 없으셨다면 아드리안 공국은 벌써 3등분되었을 겁니다.”

“공국이 약해서인가, 아님 삼국연합이 강해서인가?”

“두 가지 모두 맞습니다. 우리 아드리안 공국은 타국에 비해 군사력이 약한 편이지요. 삼국연합은 강하구요.”

“그런 걸 알면서도 왜 군사력을 키우지 않았는가?”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 공국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입니다. 하여 치안 유지에 필요한 병력만을 보유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그건 바보 같은 전통이군. 스스로 화를 자초했어.”

“……!”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의 전통을 대놓고 폄하하자 아크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 고향엔 자강불식이라는 말이 있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쉬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라는 뜻이지. 내 몸이 쇠약해지면 병에 걸리기 쉽지?”

“그렇습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네. 스스로를 지킬 국방력이 없으면 언제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당할 수 있네.”

“그, 그렇지요.”

아크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엔 가깝게 지낸다 하여 항상 우방국이 아니네. 언제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안면을 몰수할 수 있는 것이 국제 사회지. 안 그런가?”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우방이 될 수 있고, 지금은 우방이지만 내일은 적이 될 수도 있네.”

“네.”

“그런데 아드리안 공국은 스스로 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네. 그러니 삼국연합이 우습게 알고 달려든 거지.”

“……!”

현수는 영주성으로 가는 동안 계속해서 아드리안 공국의 나태함을 까는 말을 했다.

너무나 심해 곁에 있는 라세안마저 조마조마할 정도로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그럼에도 아크웰 기사단장은 발작하지 않았다.

처음 들어보는 제국의 귀족이기에 억지로 참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려고 해도 도가 지나치면 욱하는 법이다.

현수가 국왕까지 무능하다고 까자 참고 참았던 아크웰이 입이 열린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백작님의 제국은 어떠합니까? 보유하고 있는 군사는 어느 정도인지요?”

“우리나라? 병사의 수효가 꽤 많지. 지금까지 말했듯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져야 하니까.”

“그래서 그 병사의 수효를 여쭈었습니다. 참고로 우리 아드리안 공국은 총 3만의 병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흐음, 우리 코리아 제국의 현역 병사는 약 64만이고, 유사시 참전할 예비군은 320만 명쯤 되지.”

“네에? 뭐, 뭐라고요?”

아크웰을 비롯한 기사들 모두 눈을 크게 뜬다. 그중엔 라세안도 포함되어 있다.

병사 몇 명만 나서도 능히 드래곤을 사냥한다는 나라이다. 그런데 병사의 숫자가 너무도 엄청나다.

“방금 현역 64만에 예비군 320만이라 하셨습니까?”

“물론이네. 병력을 감축해서 그 정도이지 전엔 더 많았네. 예비군은 450만이었을 때가 있었네.”

“그, 그 많은 병사가 다 무장하고 있는 겁니까?”

아크웰은 몹시 당황한 듯한 표정이다. 상상조차 못한 어마어마한 병력 수에 질린 탓이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히 모두 무장하고 있네. 뿐만 아니라 여분의 무구도 충분히 비축되어 있네.”

“그, 그렇다면 그 많은 병사를 다 무장시키고도 남는 무구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헐!”

아크웰 등을 할 말은 잃었다는 듯 입을 다문다.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나? 참고로 어스 대륙엔 약 230여 개 국가가 있네. 그중 우리 제국은 7위쯤 되지.”

“아, 네에.”

이 말을 끝으로 아크웰은 현수가 무어라 씹든 반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당장 전투 가능한 병사가 400만에 육박한다는데 어찌 국방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자아, 다 왔습니다.”

내성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쪽과 달리 차분한 모습이다.

밖엔 언제든 피난 갈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쿵, 쿵, 쿵―!

“코리아 제국의 하인스 멀린 드 셰울 백작님과 기사단장님인 라세안 옥타누스님이 드시옵니다.”

의전용 스태프를 두드리며 안에 고한 늙은 시종은 곁눈으로 현수를 살핀다.

그의 평생 습관은 독서이다. 하여 아드리안 공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서책을 독파했다 여기며 산다.

그럼에도 코리아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하여 제국의 백작이 대체 누군가 싶었던 것이다.

“드시게 하라!”

다소 창노한 음성에 현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영주가 젊을 것이라 상상했던 때문이다.

삐이꺽―!

꽤 높이가 높아서 그런지 육중해 보이는 문 열리는 소리 역시 나직한 저음이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

문이 열리며 드러난 인물은 60세 정도 된 혈색 좋은 사내다.

손님을 맞으려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있다.

“반갑습니다. 하인스 멀린 드 셰울 백작입니다. 아, 그리고 이쪽은 제 영지 기사단장인 라세안 옥타누스입니다.”

현수의 소개에 라세안은 내키지 않지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안 그러면 재미있을 것 같은 유희가 끝나기 때문이다.

“레더포드 아물린 반 피리안이라 하오.”

현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쪽의 예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왠지 이래도 될 것 같아서이다.

레더포드 백작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을 내밀어 맞잡는다.

“자아, 이쪽으로 앉으시오.”

“네에, 감사합니다.”

현수와 백작이 자리에 앉자 라세안은 현수의 뒤쪽에 시립했다. 동석할 군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 자넨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겠나?”

현수의 말에 라세안은 멈칫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불편해할 것을 배려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라세안은 현수와 레더포드 백작 모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주고는 당당한 걸음으로 나갔다.

“기사단장이 아주 당당하군요. 백작님도 기사단장님도 모두 상당한 수준인 것 같은데……. 하하, 이거 부럽습니다.”

“……!”

“작년에 소드 마스터가 되었는데 오늘 두 분을 뵙고 안목이 크게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레더포드 백작의 말은 사실이다.

작년 이맘때 소드 마스터 반열에 올랐다. 아드리안 공국 유일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삼국연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다.

하여 아드리안 왕궁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피리안 영지는 미판테 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를 지키는 변경백으로서 자신의 무력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현수는 상대가 자신을 파악하고 있음을 짐작하였기에 부인하지 않았다.

“이미 소드 마스터가 되셨음을 감축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성취가 낮아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외다. 백작께 한 수 가르침을 청코자 하는데 거절치 마시오.”

“…그러지요.”

아드리안 공국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는 것이 스승으로부터 받은 유일한 임무이다.

따라서 레더포드 백작이 강해지도록 돕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그러지요. 연무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레더포드 백작이 안내한 곳은 지하 연무장이다. 사방 벽이 강화 마법으로 도배되어 웬만한 충격엔 끄떡도 않는다고 한다.

“연무장이 널찍한 것이 아주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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