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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432화 (432/1,307)

# 432

지력도 회복시켜 주고 단백질도 제공하는지라 콰시오커를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작물이다.

“어이쿠, 밤이 늦었군요. 이만 쉬십시오.”

“네.”

알프레드의 안내를 받아 손님용 방으로 가니 라세안이 명상을 하는 듯 앉아 있다 눈을 뜬다.

“자네가 말한 그 방법 말이네.”

“무슨 방법?”

“윤작과 휴경농법, 그리고 두엄과 퇴비 등등 말이야.”

“다 들었나?”

“그거 정말 괜찮은 거 같네.”

라세안은 코리아 제국이 더욱 궁금해졌다.

아르센 대륙에선 들어보지도 못한 것들이 줄줄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땅은 한정되어 있고 인구는 점점 늘어나니 당연히 그런 쪽을 연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 그래서 대단하다는 뜻이네.”

“칭찬인가?”

“물론이야. 언제고 나를 꼭 코리아 제국에 데리고 가주게.”

“글쎄… 너무 멀어서.”

“아무리 멀어도 괜찮네. 그러니 꼭…….”

“그러지. 기회가 닿으면. 이만 쉬세.”

라세안이 자신의 방으로 간 후 현수는 습관처럼 명상에 들었다.

드래고니안, 라이세뮤리안, 그리고 조금 전 레더포드 백작과의 대결을 떠올리고는 심상 수련에 들어간 것이다.

새벽 무렵엔 이실리프 마법서의 내용들을 떠올렸다. 8서클 마스터가 되었으니 9서클 마법들도 살펴본 것이다.

현재로선 구현 불가능하지만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마나 배열 등을 세심히 살폈다.

그러는 동안 새벽이 밝았다.

짹, 짹, 짹―!

“흐으으음!”

길게 숨을 내쉬고는 눈을 떴다.

사람들이 일어나 움직이는 기척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진다. 하녀와 시종들일 것이다.

“워싱!”

머리카락이 머금고 있던 기름기가 제거되자 멀쩡해진다.

“후후, 마법은 이럴 때 정말 편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쓱쓱 빗어 내리는데 나지막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네에, 들어오십시오.”

삐이꺽―!

“하인스 백작님! 편히 쉬셨소?”

“아! 레더포드 백작님, 아침부터 어떻게 이곳엘…….”

“하하, 이놈의 검이 밤새 울어서 말이지요.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소이다. 괜찮으시다면…….”

웃는 낯으로 애검을 흔들어 보인다.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레더포드 백작은 밤새 한숨도 자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자신과의 대결을 떠올리며 수련했을 것이다.

같은 검사로서 정진하기 바라는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지요. 잠깐만요.”

레더포드 백작은 손수 침상 정리를 하는 현수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태어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손으로 자고 일어난 침상을 정리해 본 적이 없다.

세숫물도 시녀들이 떠온 것으로 씻었고, 목욕도 늘 시중 받으며 했다.

용변을 본 뒤처리 역시 시종들의 몫이다.

보아하니 현수는 자신의 침상을 스스로 정리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야 이토록 자연스럽게 정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세수도 마친 모양이다.

언제 일어날지 몰라 시녀가 떠다 놓은 물이 문밖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혼자 밖에 나가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씻은 것 같다.

4장 부담스런 동행

같은 백작이다. 하지만 상대는 제국의 백작이고, 자신은 일개 공국의 백작일 뿐이다.

게다가 상대는 소드 마스터 최상급에 이르러 있고, 본인은 이제 간신히 검강을 뿜어낼 수준이다.

당연히 대우가 달라져야 한다.

하여 지난밤 레더포드 백작은 고심했다.

자신의 영지를 찾은 하인스 백작의 객고를 풀어줄 상대로 누구를 투입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다.

명색이 백작이니 허드렛일이나 하는 시녀 중 하나를 고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귀족가, 또는 기사 가문의 여식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현수가 젊어 보이니 나이든 여인은 안 된다. 그렇다면 아직 혼례를 올리지 않은 처녀여야 한다.

문제는 귀빈의 객고를 풀어줄 하룻밤 상대를 하고 나면 평생 결혼은 물 건너가는 일이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일생을 망치도록 강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결정이 쉽겠는가!

노심초사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만일 현수가 색을 밝히는 귀족이었다면 시종을 통해 계집을 넣어달라는 청이 들어오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무런 기척이 없기에 시종들을 불러 모아 혹시 들은 이야기가 없느냐고 물었다.

물론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레더포드 백작은 걱정되었다. 자신의 응대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러는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심야가 되었을 때야 긴장을 풀었다. 누군가의 신세를 망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이후엔 내내 심상 훈련을 했다. 그러는 가운데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이진 못했다. 그렇기에 아침 댓바람부터 실례를 무릅쓰고 대련을 청하러 온 것이다.

레더포드 백작과 현수가 연무장을 나선 것은 들어가고 거의 두 시간이 흐른 뒤이다.

현수는 멀쩡한 반면, 백작은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후후! 바디 리프레시.”

현수의 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뿜어져 레더포드 백작의 몸으로 스며든다.

그러자 헐떡이던 숨이 금방 가라앉는다. 느낌이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며 피식 실소 지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곤 곧장 여장을 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레더포드 백작은 몹시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룻밤 잘 지냈습니다. 다음에 또 뵙지요.”

“무슨 말씀을……. 백작님 덕분에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레더포드 백작은 시선을 돌려 라세안을 바라본다.

“기사단장이라 했는가? 백작님을 잘 보필하시게.”

“그러지요.”

라세안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주었다.

레더포드 백작은 별 반응 없었지만 곁에 있던 피리안 영지의 기사들은 무례하다며 발작하려 한다.

분위기를 파악한 레더포드 백작이 손을 들어 휘하 기사들을 제지한 후 다시 입을 연다.

“이쪽은 제 손자입니다. 멀린까지 백작님을 보필토록 하였으니 편하게 대하십시오.”

레더포드 백작의 오른쪽엔 청년이 다 된 소년 하나가 있다. 신장은 170㎝ 정도, 체중은 53㎏ 정도로 보인다.

나이는 이제 20살이 갓 된 듯하다.

“……?”

현수가 시선을 주자 청년이 얼른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카트 조핀 반 피리안이라고 합니다. 카트라고 불러주십시오.”

현수가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는 뜻을 표하기도 전에 레더포드 백작이 먼저 입을 연다.

“우리 영지에서 멀린을 가장 자주 왕래한 녀석입니다. 길을 잘 아니 안내도 잘 할 겁니다.”

“……!”

“아,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침 이 녀석도 멀린에 있는 아카데미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기 잠시 다니러 온 거거든요. 그러니 동행해 주십시오.”

“잘 모시겠습니다, 백작님.”

라세안에게 시선을 주자 두 손을 벌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을 표한다. 현수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카트, 가는 동안 결코 무례해선 안 된다. 알겠느냐?”

“네, 할아버지. 걱정 마십시오.”

“자, 그럼 편한 여정이 되길 기원 드립니다, 백작!”

“네, 잘 쉬고 갑니다. 그럼 안녕히……”

인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카트의 입이 열린다.

“자아, 이쪽으로 가시지요.”

“……!”

카트가 손짓한 곳엔 두 마리 백마가 마주 선 채 앞발을 치켜든 문장이 그려진 마차가 서 있다. 육두마차이다.

“편히 가시라 제가 마련했습니다. 마다하지 말고 가십시오.”

“흐음, 고맙습니다.”

현수가 먼저 마차에 오르자 카트가 따라 오른다. 라세안은 마차 곁에 있는 백마에 올라탔다.

호위기사가 같은 마차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출발하라!”

“이럇―!”

“촤악―!”

마부가 가볍게 채찍을 흔들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차의 앞에는 영지의 기사 넷이 있고 뒤에도 넷이 따른다. 그들의 뒤엔 병사 80명이 부지런히 발을 놀리고 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카트 조핀 반 피리안이라고 합니다. 카트라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수도까지 가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주십시오.”

“흐음, 알겠네.”

짧은 대답만 하고 현수가 눈을 감자 카트는 뭔가 말을 하려던 입을 닫았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잠시 말발굽 소리만 들린다. 카트는 계속 눈치를 살피다 포기했는지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이 동네는 백작도 꼼수를 부리는군. 크흐흐, 좋겠네.]

[좋기는 개뿔, 불편하기만 하네.]

라세안의 전음에 현수가 대답한 말이다.

라세안과 현수는 카트라 불러달라는 청년이 여인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르는 척하는 이유는 레더포드 백작의 복안이 무엇인지 짐작해 보려 한 때문이다.

손자라 했으니 카트는 손녀일 것이다. 그리고 본래 이름은 카트린느 조세핀 반 피리안 정도가 될 것이다. 아는 척할까 하다가 안 그러기로 했다. 그래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출발하고 거의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현수가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에 다닌다고?”

“아, 네에. 현재 10학년입니다. 이제 졸업반이지요.”

“그래? 아카데미에선 무엇을 배우나?”

“저는 마법반입니다. 그리고 3서클 유저입니다.”

“그래?”

대답을 하곤 말을 끊었다. 카트는 또 입을 열려다 닫는다. 선천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인 듯하다.

그리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마법사는 귀한 존재이다.

우선 똑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나 배열 수식이 워낙 난해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치면 미적분을 능수능란하게 암산할 능력이 없으면 마법사가 될 수 없다.

여기에 마나 친화력까지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똑똑한 천재라 해도 마법사가 될 수 없다.

아무튼 둘 다를 갖춰도 20세 미만에 3서클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큐 200에 육박하는 현수 역시 결계 안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수련했던가!

따라서 20세 미만에 3서클이라고 하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다음엔 대단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현수는 거의 무반응이다.

‘검만 다루셔서 마법사에 대해 잘 모르시나?’

고개를 갸웃거린 카트는 눈을 감아버린 현수를 살폈다.

대륙에선 보기 드문 검은 머리카락의 소유자이다. 나이는 25세 정도인데 작위를 가진 귀족이다.

검을 패용하곤 있는데 장식용인지 실전용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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