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33화 (433/1,307)

# 433

검사가 마법사를 잘 모르듯 마법사 역시 검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참, 검사의 화후는 손을 보면 짐작된다고 했지?’

카트는 시선을 내려 현수의 두 손을 살폈다.

할아버지인 레더포드 백작은 두툼한 굳은살이 있지만 현수는 그렇지 않다.

‘행정가인가?’

카트는 또 고개를 갸웃거린다.

같은 순간, 현수는 눈을 감은 채 카트의 마나량을 체크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도 안 되었는데 벌써 3서클이라니 놀라워서이다.

비슷한 나이로 로즈가 있다. 지금쯤 코찔찔이 세실리아 여관 건물 2층에서 마법을 수련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마법을 가르쳤을 때 현수는 로즈와 릴리 자매의 재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열을 짐작해 낸다.

한자 성어로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천재이다. 그렇기에 금방 1서클이 되었고, 현재는 3서클에 오르려 한다.

‘으음! 로즈가 카트보다는 두 살쯤 어리니 서로 비슷한 건가? 그래도 그렇지 이제 겨우 스무 살쯤 되었는데 3서클이라니.’

현수는 아카데미에도 스승인 멀린이 설치해 놓은 타임 딜레이 마법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내심 감탄했다.

또 하나 모르는 것이 있다.

얼마 전 방문했던 미판테의 현자 아르가니 후작의 손녀 케이트 역시 3서클의 마법사이다.

열아홉 살이니 스무 살이 안 되긴 마찬가지이다.

케이트는 아주 어려서부터 아르가니 후작의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고, 본인도 열심히 수련한 결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마차는 쉼없이 굴러간다.

“백작님, 배고프지 않으십니까?”

“으응? 아니, 별로. 근데 벌써 점심때가 되었나?”

“지났는데요.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길 지나치면 한참 동안 식수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 그럼.”

일부러 사내처럼 말하는 카트를 일견한 현수는 마차 밖으로 나왔다.

“식사 준비해요.”

“네, 아가… 아니, 도련님!”

지근거리에 있던 기사가 얼른 말을 얼버무리곤 물러난다.

“오늘 점심 메뉴는 뭐지? 나와 라세안은 입맛이 조금 까다로운 편인데.”

“여행 중이라 정식 만찬 정도는 못 됩니다.”

“그래? 그럼, 기대하지.”

현수가 라세안 쪽으로 이동하자 카트는 병사들을 불러 무언가를 지시한다.

그러는 동안 시선을 들어 주변을 살피니 이곳은 평야지대가 거의 끝나가는 지점이다.

멀지 않은 곳에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인 산이 있다. 그런데 숲이 얼마나 울창한지 시커멓게 보인다.

누가 봐도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숲이다.

“흐음, 여기가 나이젤 산맥의 시작점이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아드리안 공국이 건국되면서 이름을 바꿨지.”

“그래? 숲이 너무 울창해서 몬스터들이 꽤 있겠는데?”

“꽤 정도가 아니네. 예전 이름이 뭔지 아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뭔데?”

“우글우글 산맥! 아르센 대륙에서도 몬스터들이 가장 많이 밀집한 산맥이네.”

“흐음! 그래?”

라세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수가 나직한 침음을 냈다.

“아드리안 공국이 이곳에 자리 잡기 전엔 나이젤 영지였지. 자네 스승이 카이엔 제국의 후작이었을 때 받은 봉토라네.”

“그래? 근데 왜 이런 델 받으셨지?”

“당시의 황제는 다른 봉토를 주려 했네. 자네의 스승이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지.”

“그런데?”

“자네의 스승이 이곳을 택했네. 마법사다운 선택이지.”

“그건 무슨 소린가?”

“아드리안 공국이 삼국연합의 공격을 받은 이유가 뭔가?”

“그야 미스릴 광산 때문이지.”

“그래, 그 미스릴은 마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네. 마법사는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고.”

“그런데?”

“그 미스릴 광산이 바로 나이젤 산맥 속에 있네.”

“…미스릴 광산의 위치는 공왕과 두 공작만 알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자네가 그걸 어찌 알지?”

“그야 나는 모르는 게 없어서이지.”

라세안은 모처럼 우쭐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잇는다.

“아무튼 이 산맥 속엔 상당히 많은 몬스터가 살아. 그리고 내가 전에 말한 드래곤도 있지.”

“흐음!”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보호해야 할 아드리안 공국인데 몬스터가 많다니 신경 쓰인 때문이다.

“두 분, 식사 준비 다 되었습니다. 오시지요.”

“응? 그, 그래.”

카트의 부름에 현수는 찌푸렸던 인상을 폈다. 마차 뒤쪽으로 가보니 그럴듯한 식탁이 차려져 있다.

하지만 음식은 별로이다. 스튜 비슷한 것에 빵 몇 개가 있을 뿐이다.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나는군.”

라세안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참, 카트. 여기서 수도까지 며칠이나 걸리지?”

“멀린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이젤 산맥을 빙 돌아가면 삼십여 일이 걸립니다.”

“다른 방법은?”

“말을 버리고 산맥 속을 도보로 이동하면 이십 일쯤 걸릴 겁니다.”

“걸릴 겁니다?”

“네, 그렇게는 한 번도 안 가봐서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여기서 하루 정도 더 가면 마레로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 가봐야 정확히 압니다.”

“마레로 마을을 가봐야 알아? 왜지?”

“산맥을 가로지르려면 그 마을에서 길잡이와 용병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용병을? 기사와 병사들이 있음에도?”

“네, 우리 일행 이외에도 최소 B급 용병 30명은 더 있어야 나이젤 산맥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지?”

“그건 워낙 몬스터가 많기 때문입니다.”

“흐음, 그래? 그건 그렇고, 어느 길로 가든 계속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건가?”

“네? 아, 죄송합니다. 사실 두 분이 동행할 것을 예상치 못해 준비가 많이 미흡합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인 카트는 까탈 부리는 현수에게 미안한 마음보다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십 대의 마차가 늘어서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달랑 두 대의 마차가 움직인다.

나머진 기마를 하거나 도보로 이동한다. 큰 마차엔 현수와 자신이 탑승했고, 뒤따르는 마차엔 식재료 등 여행에 필요한 것들이 잔뜩 실려 있다.

따라서 이만한 식탁을 차린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화덕도 없고 요리 도구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요리사가 따라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영주성에서나 먹을 만한 음식을 내놓으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라세안, 우린 이런 식으론 못 먹지?”

“네, 영주님.”

라세안이 맞장구치자 현수는 아공간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현수의 손에 프라이팬이 들려 나오자 카트의 눈이 커진다.

“헉! 마, 마법사셨습니까?”

카트가 놀라거나 말거나 현수는 아공간에서 계속해서 요리 도구와 식재료들을 꺼냈다.

잠시 후, 모든 것이 갖춰지자 화력 삼삼한 버너에 불을 지피곤 현란한 솜씨로 요리를 시작했다.

기사 여덟 명, 병사 여든 명, 마부 한 명, 그리고 카트와 현수, 라세안 이렇게 총원 92명이다. 92명분 요리를 시작한 것이다.

카트는 현수의 현란한 요리 솜씨에 넋이 반쯤 나가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요리 도중 사용되는 마법 때문이다.

불고기를 양념에 재울 때와 미역을 물에 불릴 땐 타임 패스트 마법을 썼고, 김밥을 말아놓고는 타임 딜레이 마법을 건다. 양념이 충분히 밴 자료를 익힐 땐 초고온을 내는, 무려 6서클 마법인 플라즈마 볼이 동원되었다.

3서클 마법사이지만 카트는 본 적도 없는 고위 마법이다.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듣기론 하인스 백작은 소드 마스터라 했다.

그런데 6서클 마법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구사하기에 넋이 나간 것이다.

그러다 영주성에서도 볼 수 없던 화려하고 규격화된 그릇들을 보곤 아예 입을 쩍 벌렸다.

물론 너무도 아름답고 세련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긴 식탁이 마련되었다. 그리곤 식판을 꺼낸다.

반짝반짝 은빛을 내는 그것은 군대에서 많이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철판으로 만든 것이다.

이것이 카트의 눈엔 미스릴로 보인다.

불고기를 찍어 먹을 포크와 미역국을 떠먹을 숟가락도 마찬가지다.

‘이분은 대체……? 코리아 제국이라는 나라의 물건인가 본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카트는 밥 먹게 자리에 앉으라는 현수의 말을 두 번이나 씹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반 공황상태에 빠진 때문이다.

“자, 먹지!”

모두가 자리에 앉자 현수가 한 말이다.

“크흐흐! 이 불고긴 오랜만이군.”

라세안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카트 역시 조심스럽게 불고기를 입에 넣어 보았다. 냄새를 괜찮았는데 과연 맛은 어떨까 싶었던 때문이다.

“으음!”

잠시 후, 카트 또한 라세안과 다를 바 없어졌다.

귀족가의 여식으로 태어났기에 식탁 예절이라는 걸 철저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몸에 익어 언제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중이다.

그런데 그걸 깡그리 잊은 듯 허겁지겁한다.

수행하던 기사와 병사들이라 하여 어찌 다르겠는가!

모두 식판에 코라도 처박을 듯 고개를 숙인 채 폭풍 흡입 중이다

태어난 이래 가장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꺼어억―! 잘 먹었습니다, 영주님!”

라세안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 짓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카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식사 예절 따위는 모른다는 듯 숟가락질을 하는 그녀의 입가엔 불고기 양념이 잔뜩 묻어 있다.

“카트, 천천히 먹어.”

“쩝쩝, 네? 아, 네에. 쩝쩝!”

고개를 들었던 카트가 다시 음식을 입에 넣자 현수는 피식 웃었다.

“설거지는 자네 담당인 거 알지?”

“그러지. 워싱! 이베포레이션!”

개울까지 가려면 제법 거리가 있어서 마법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라세안이다.

“……?”

허겁지겁 음식을 먹던 카트가 움찔한다.

하인스 백작이 마법사라는 건 알게 되었지만 설마 수행하는 라세안마저 그럴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한 때문이다.

현수도 그랬지만 라세안 역시 몇 서클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하위마법사는 상위마법사의 화후를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백작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지?”

식사를 모두 마치고 마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트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은 말이다.

“외람된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백작님과 기사단장님은 마검사이신 건가요?”

“마법과 검을 쓸 수 있느냐는 물음이라면 그렇다.”

“역시! 몇 서클이나 되는지 혹시…….”

“별게 다 궁금하군.”

“네? 아, 네에. 죄, 죄송합니다.”

카트는 자라목처럼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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