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9
집사로선 적지 않은 급여이다. 그런데 새로운 근무지인 이곳의 보스는 그것의 네 배를 뛰어넘는 급여를 준다고 한다.
어찌 가슴 떨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또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가 들린다.
“직원들 보너스는 연 600%로 계산해서 지급하세요.”
“네에? 여, 연 600%라고요?”
“네, 이 집에서 일하는 분들은 모두 내 식구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건 공평하지 않지요. 모두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잘 배려하세요.”
“보, 보스!”
급기야 안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짐짓 모르는 척하고 주머니에서 반지함을 꺼냈다.
“크렘린궁 공보실장 드미트리 페스코프 씨에게 가져다주세요. 내가 푸틴 대통령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면 알 겁니다.”
“네에? 푸, 푸틴 대통령이요?”
안톤의 눈이 또 커진다. 대통령과 친분을 갖기 어려운 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다. 특히 러시아는 더하다.
푸틴은 절대 권력자이다. 예전으로 치면 임금쯤 된다. 그런 임금을 어찌 쉽게 만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네, 가져다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안톤은 떨리는 손으로 반지함을 받아 든다.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오늘 이곳을 떠납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곧 돌아올 테니 필요한 인원을 뽑아서 배치하세요. 그리고 경호 인력을 위한 방들도 준비해 주고요.”
“알겠습니다, 보스!”
“돈이 더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하세요. 필요한 건 뭐든 구입하구요.”
“네, 보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안톤의 뇌리엔 새로운 주인이 각인되었다. 물론 없던 충성심이 샘솟는 중이다.
그런 안톤의 뇌리로는 몇몇 이웃이 스친다.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사는 타찌아나, 뛰어난 음식 솜씨를 지녔지만 인정받지 못해 빈곤하게 사는 나탈리야 등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쁜 딸들이 있다는 것이다. 딸까지 고용하면 살림살이가 단번에 필 것이다.
안톤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좋아서 저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다 경호원들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레드 마피아에서 파견한 경호원은 이 저택에서 살지는 못할 것이다. 뒤쪽에 새로운 숙소를 지을 생각을 품은 것이다.
어찌 하늘같은 보스와 한낱 경호원들이 같은 지붕을 이고 살 수 있단 말인가!
현수가 출국하고 난 뒤 안톤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긴다. 크렘린궁을 방문하여 공보실장에게 반지함을 건넨 다음 날 일단의 무리가 출현한 때문이다.
이들은 크렘린궁 소속이라는 신분증을 디밀었다. 그리곤 저택 뒤쪽에 공사를 지시한다. 현수가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보호해 줄 경호원들을 위한 숙소 건설 공사이다.
이들을 보낸 이는 메드베데프이다. 그의 보스인 푸틴이 독살당하지 않도록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안톤은 다른 건설사를 골라 저택 입구 쪽에 새로운 숙소를 짓도록 했다. 레드 마피아가 파견한 조직원들을 위한 것이다.
현수의 저택에선 레드 마피아와 크렘린궁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 * *
킨샤사 공항에 당도한 직후 현수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저택 지붕에 당도하였다.
이리냐와 모친이 함께 오지 못한 것은 알렉세이 보스 때문이다. 이리냐를 수양딸로 맞이했으니 얼굴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남겨두고 온 것이다.
아무튼 계단을 딛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려던 현수는 멀리 정문 근처에서 서성이는 인영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누구지? 이곳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곳은 찾아올 사람이 없다. 현수가 저택의 주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벨을 누르긴 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모양이다.
하여 현수가 직접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딘가에 분명 인터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몰라 나간 것이다.
“누구십니까?”
“아! 김현수 전무님, 접니다. 저 박동현입니다.”
“네? 울림네트워크의 박 대표님?”
“네, 다행입니다. 저는 집을 잘못 찾았는지 알고 난감해하던 차입니다. 여기까지 데려다 준 택시가 가버렸거든요.”
“에구, 고생하셨습니다. 아무튼 환영합니다.”
문을 열자 박 대표가 손수건으로 이마에 솟은 땀을 닦아내고 있다. 아침이지만 더위를 느끼는 모양이다.
“근데 왜 안 들어오고 밖에 있었습니까?”
“벨을 누르고 누구냐고 묻는 것 같아서 대답을 했는데 문을 안 열어주더군요.”
“혹시 영어로 말씀하셨습니까?”
“네, 당연하죠. 아는 게 영어밖에 없으니.”
“에구, 여기선 불어를 씁니다. 아마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해 안 열어준 모양이네요. 미안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악수를 하곤 정원을 가로질러 실내로 들어갔다.
“어머, 주인님!”
“아! 알리사, 손님이 오셨어. 음료수 좀 준비해 줘. 그때 그거 있지?”
“네, 주인님!”
알리사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곤 물러간다.
“우와! 정말 집이 좋군요. 세를 내신 겁니까?”
“아닙니다.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았지요.”
“네에? 이 큰 저택을요?”
박동현 대표는 몹시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긴 한국에서 이만한 저택을 보유하려면 최소한 200억 원은 지불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에, 어쩌다가요. 아무튼 먼 길 오느라 애쓰셨습니다. 여기 찾기가 조금 불편하셨죠?”
“네, 그래도 천지약품을 먼저 찾아가 보라는 이은정 실장님의 조언 덕분에 고생을 덜 했습니다.”
사실 박동현은 천신만고 끝에 이 집을 찾았다. 공항에 내려 보니 가장 큰 문제가 언어였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바디랭귀지로 천지약품의 위치를 물었다. 그런데 천지약품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하여 고생 끝에 천지약품을 찾았고, 그곳에서 이춘만 사장을 만나기 위해 열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새벽 이곳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이 사장이 친절하게도 택시를 태워서 보냈다. 하여 내리라 하여 내렸는데 만일 아니라면 하는 생각이 들자 등에서 진땀이 솟는다. 되돌아갈 일도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거야 전무님 차 때문이죠. 말씀해 주십시오. 엔진을 어떻게 손을 보셨기에 그런 성능이 나오는 겁니까?”
“에? 겨우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
“겨우라니요, 전무님! 연비가, 연비가 무려 31.8㎞/h입니다. 그것도 혼잡한 시내 주행에서요. 대한민국에, 아니, 전 세계 어디를 가봐도 이런 차 없습니다.”
“참, 그거 아직 미완성이라니까요.”
“전무님, 정말 우리 차가 리터당 100㎞ 이상 달리는 게 가능하다 여기시는 겁니까?”
“물론이에요. 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어디선가는 눈부신 기술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박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이곳에 와서도 엔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성과가 있을 거 같아요.”
“……!”
“사장님은 돌아가셔서 양산 체제를 준비하세요. 그리고 엔진 제조 공장도 하나 설립하시구요. 언제까지나 남들이 개발한 엔진을 돈 주고 사서 조립할 수는 없잖아요?”
“엔진 회사요?”
“네, 울림엔진이라는 회사를 하나 만드세요. 자본금은 제가 충당할 테니까요.”
“자본금 전부를요?”
“사장님도 투자를 하려면 하셔도 되구요. 김형윤 선배를 대표이사 자리에 앉히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박동현 대표는 현수와의 만남이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차이다. 그렇기에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자본 참여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래 봐야 불과 10%이다. 그것도 현수가 많이 양보해 줘서 그만한 지분을 갖는다. 대표이사를 맡게 되는 김형윤 상무 역시 10% 지분을 갖는다. 나머지 80%는 현수의 것이다.
나중에 이실리프엔진으로 명칭이 변경될 울림엔진은 상장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코스닥6)에 상장하는 이유는 원활한 자본 조달을 위한 것도 있지만 상장 평가 차익을 실현시키고자 함이다.
그런데 현수는 돈이 썩어날 지경이다.
따라서 자본 조달에 조금의 어려움도 없다. 평가 차익을 남길 생각 또한 없으니 굳이 상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박동현 대표와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동안 현수는 여러 가지를 스케치하였다. 물론 스피드에 장착될 엔진 개선 작업을 하는 것이지만 박 대표가 보기에 현수는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렸다 지우는 것의 반복일 뿐이었다.
“아! 사장님 오셨어요?”
“그간 별일 없었죠?”
이은정 실장은 현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사장님, 잘 다녀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김수진과 이지혜 역시 서둘러 인사를 한다.
“모두 잘 있었죠? 근데 책상이 좀 늘어난 것 같습니다?”
“아! 그건 제가 보고 드리겠습니다. 저희 업무량이 너무 많이 늘어 직원을 조금 더 뽑았습니다.”
“그래요? 그 이야긴 저기서 듣죠.”
현수가 사장실로 들어서자 이은정 실장이 쪼르르 달려온다. 물론 현수가 좋아하는 사과주스를 들고서.
“자, 이제 말해봐요.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선 대 러시아 수출량이 대폭 늘었어요. 어제 드모비치 상사로부터 팩스가 왔는데 앞으로는 물량을 늘려달랍니다.”
“지금까지는 월 5천만 불 수준이었는데 그게 늘어난 겁니까?”
“네, 1억 불까지 받아준다고 해요.”
이리냐를 수양딸로 받아들이면서 보다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보로시스크에 있는 지르코프 상사라는 곳에선 의류 수입을 하겠다는 팩스가 왔습니다.”
“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하니 신경 덜 써도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직원은 추가로 네 명을 더 뽑았습니다. 현재 이실리프 상사에 위탁 교육 중이에요.”
“잘했네요.”
“급여 체계는 수진이나 지혜에 맞췄어요. 괜찮은가요?”
“이 실장님이 그렇게 정했으면 그런 거죠. 그것 외는요?”
“없어요. 너무나 순조로워서 오히려 불안할 지경이에요.”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앞으론 점점 더 나아질 테니까요.”
“네에, 그랬으면 좋겠어요. 참, 라일라 아지즈라는 분으로부터 여러 번 전화가 왔어요.”
“라일라 아지즈?”
“네. 중동 쪽 같은데 아는 분 아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