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7
“신혼여행을 그리로 가나?”
“아뇨. 신혼여행은 융프라우에 있는 사장님 별장으로 갈 겁니다. 괜찮죠?”
“그럼, 괜찮고말고. 언제든 쓰게. 근데 콩고민주공화국에는 왜 가는가?”
“거기 가면 신부가 두 명 더 있거든요.”
“뭐어? 그, 그럼 신부가 셋……?”
“하하, 네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하! 이 사람아, 축하하네, 축하해. 한꺼번에 세 여인을 얻다니. 모두 미인이지?”
“그야 당연하지요. 근데 이건 비밀입니다.”
“왜?”
“사모님이 아시면 절 짐승으로 여기실 것 아닙니까.”
“짐승? 짐승이 아니라 사내들의 로망이지. 안 그런가? 하하, 하하하! 하여간 자넨 대단해. 정말 대단해. 그나저나 신부들 사진은 있어?”
“사진이요? 아, 네. 여기…….”
현수는 카카오톡에 있는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의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이런, 세상에! 자넨 진정한 능력자이네. 부럽네, 부러워!”
아폰테 사장은 같은 사내로서 진심 어린 축하를 한다.
현수는 아폰테 사장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천지건설 본사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전무님!”
“조 대리님, 계속 그렇게 뚱해 있을 거예요?”
“네, 그럴 거예요. 제가 강연희 대리보다 못한 게 뭐죠?”
조인경 대리는 마음에 품고 있는 걸 터뜨린다는 표정이다. 소위 이판사판으로 대들어보는 것이다.
“조 대리님은 강연희 대리보다 못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강 대리를 택하신 거죠?”
그렇게 디밀었는데 왜 나를 버렸느냐는 원망 섞인 표정이다.
현수는 뭐라 할 말이 없어 잠시 머뭇거렸다. 이 순간을 모면케 해준 사람은 바로 신형섭 사장이다.
“어라? 이 사람, 왔으면 그냥 들어오지 왜 여기 있어?”
“아, 안녕하셨어요?”
“그래, 자네 덕분이네. 들어가세. 참, 나 화장실 좀 갔다 오겠네. 조 대리, 김 전무 좋아하는 그거 있지? 영국에서 가져왔다는 그거. 오랜만에 그거 내와.”
“네.”
대답은 했지만 조인경 대리의 시선은 싸늘했다. 현수는 얼른 사장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 조인경 대리가 전에 내왔던 음료수를 내온다.
탁―!
탁자에 컵 닿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저도 기획영업단에 지원할 거예요.”
“으잉?”
“안 된다고 하면……. 받아주실 거죠?”
“끄응!”
현수는 대답 대신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이번에도 분위기를 쇄신해 준 사람은 신형섭 사장이다.
“조 대리, 설마 기획영업단에 가겠다고 수 쓴 거 아니지?”
“쳇! 저 안 보내주시면 사표 낼 거예요”
“하하! 하하하! 우리 김 전무가 일등 신랑감이긴 하지. 좋아, 이번엔 내가 양보한다. 대신 시집가고 나면 비서실로 리턴이야? 알지?”
신형섭 사장이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11장 시집간 다음에 복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꼭 김 전무님에게 시집간 다음에 다시 복귀하겠습니다.”
조인경 대리는 얼른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튀어 나간다.
“하하! 우리 조 대리는 유머 감감이 탁월해. 안 그런가?”
“네? 아, 네에.”
현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상황에서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부터가 농담인지 확연히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신형섭 사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김 전무가 이렇게 아무 소식 없이 귀국한 거 보면 뭐 좋은 일 있는 거 같은데, 뭔가?”
“네? 아, 네에.”
잠시 조인경과의 관계를 걱정하느라 신 사장의 말을 설피 들은 현수는 얼른 정색을 했다. 미처 이런 상황을 캐치하지 못한 신 사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요즘 킨샤사는 어때?”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모든 업무가 순조롭습니다.”
“그래, 모든 게 자네 덕이네. 우리 천지건설이 1위 자리에 오른 것도 자네 덕분이고. 고맙네.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자네 같은 사람과 같이 있는지…….”
“에구, 사장님도 참…….”
면전에서 대놓고 하는 칭찬에 현수는 얼굴을 붉혔다.
“그나저나, 웬일인가? 진짜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네, 큰일은 없습니다. 다만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상의? 뭔가 말해보게.”
“혹시 통일부 사람 중 아는 분 있으신가요?”
“통일부? 갑자기 통일부는 왜?”
신 사장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너무나 뜬금없기 때문이다.
“제가 북한 사람들과 접촉해 봐야 할 일이 생겨서요.”
“북한 사람을 자네가 만나? 왜?”
“그게…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 사장님께 보고 못 드리는 일이 있습니다.”
“뭔가? 확정 안 되었더라도 회사 일이라면 말하게.”
신 사장은 소파에서 등을 떼었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란 예감 때문이다. 그래선지 전신의 솜털이 모두 일어서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친 신 사장은 형형한 안광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그게…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
현수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괜찮다니까. 진짜 뭐든 괜찮네. 그러니 뭔지 말만 하게. 내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돕겠네.”
“……!”
“어허! 괜찮다니까. 어서 말해보게.”
신 사장의 표정을 본 현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먼저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사항은 극도의 보안을 요구합니다. 상대에서 그런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겠네. 입을 굳게 다물지.”
“제가 말씀드리는 사항이 외부로 발설될 경우 이번 일이 무산될 수도 있으며 자칫 회사의 존망도 우려됩니다.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으음! 그 정도인가? 그럼 그룹 회장님은 어떤가?”
신형섭 사장은 전문 경영인이다. 반면 천지그룹 총괄 회장인 이연서 회장은 기업인이다.
자신은 감당할 수 없더라도 정재계에 두루 발이 넓은 이 회장이라면 우려하는 일을 커버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사장님이 계시는데 계통을 무시하고 회장님과 독대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들으시고 전해주십시오.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지극한 보안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현수의 심각한 표정을 읽은 신 사장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그럼 이렇게 하세. 내가 회장님께 전화를 하겠네. 자네가 직접 보고하게. 난 안 들어도 되네.”
“그건 안 됩니다. 누가 뭐래도 제 직속상관은 사장님입니다. 차라리 윤곽이 조금 더 드러나면 그때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니네. 내 직감상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인 듯싶네. 회장님을 만나게. 내게 먼저 이야기한 것처럼 하고 말씀드리면 안 되겠는가?”
신형섭 사장은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촉이 살아 있다.
그렇기에 현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라 판단하였던 것이다.
“사장님!”
“아냐. 그게 날 도와주는 일이네. 내 뜻대로 하세.”
“…네에, 알겠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 사장은 핸드폰의 단축 다이얼을 누른다. 나지막한 컬러링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연서 회장이 전화를 받는다.
“오! 그래, 신 사장!”
“회장님, 별고 없으시죠?”
“그럼. 내가 뭐 별일 있겠는가?”
“회사 일로 잠시 뵈었으면 합니다. 제주도에 있는 회장님 별장 어떨까요?”
“유니콘 아일랜드 말인가?”
유니콘 아일랜드는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일종의 콘도미니엄이다. 다만 여타 콘도와 다른 점은 300여 채에 이르는 별장식 콘도미니엄의 주인이 각기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 있는 부자들에게 별장을 분양하고 관리해 주는 회사가 바로 유니콘 아일랜드이다.
이곳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업가가 아니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분양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명인사, 또는 기업가라 할지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사는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다 하더라도 주위의 평판이 나쁘면 그 또한 분양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들에겐 분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설의 동물 유니콘은 영험한 능력이 무한대로 샘솟는 뿔을 가진 동물이다. 이 녀석은 순결한 처녀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 순결한 처녀를 만나면 그녀의 곁에 엎드려 잠든다고 한다. 하여 유니콘을 잡는 미끼로 순결한 처녀가 이용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아무튼 유니콘 아일랜드가 이 이름을 택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순결한 사람들에게만 멋진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별장을 분양하겠다는 의도이다.
다시 말해 인격 괜찮은 사람들에게만 판다는 뜻이다.
하여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건축된 별장 가운데 150여 채는 아직 미분양 상태이다.
“네, 거기서 회장님을 뵈었으면 합니다. 오늘 저녁에.”
“허어, 오늘 저녁에? 내 스케줄은 싹 무시하고?”
이연서 회장은 이 무슨 일이냐는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말하게. 대체 무슨 일인가? 건설에 뭔 일 났나?”
“김현수 전무이사가 중요한 보고를 드릴 게 있다고 합니다.”
“김 전무가? 알겠네. 지금 즉시 제주도로 가지. 어디에 있을 건지는 프런트에 말해놓겠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따 뵙지요.”
신 사장은 전화를 내려놓고는 즉시 인터컴을 누른다.
삐리리리리링―!
“네에.”
“조 대리, 제주도행 항공 티켓 두 장만 구해줘. 가장 빠른 걸로. 급한 거니까 꼭 구해야 하네.”
“네에, 사장님!”
“우린 출발할 테니 최 기사더러 차 대라고 하고. 가는 동안 티케팅이 끝나 있도록 조치해 줘.”
“네에, 알겠습니다.”
통화는 간단명료했다.
“진짜 지금 출발하실 겁니까?”
“가는 동안 조 대리가 알아서 티켓 구해줄 거네. 가세.”
“알겠습니다.”
본사를 떠나 김포공항에 이르기까지 둘은 평범한 이야기만 나눴다. 보안 때문이다.
김포공항에 당도하니 누군가 다가와 티켓을 내민다.
“여기가 제주도군요.”
“그래.”
제주공항에 당도한 현수는 촌놈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난생처음 제주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아! 저기…….”
신형섭 사장이 손짓한 곳을 보니 천지건설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사내가 있다.
“사장님, 그리고 전무님, 어서 오십시오. 제주도 오션뷰파크 현장의 최인세 과장입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정중히 고개 숙인다.
“그래, 반갑네. 그리고 수고가 많네.”
“저희 현장에 가려고 내려오신 겁니까?”
“아냐. 유니콘 아일랜드라고 알지?”
“그럼요. 저희가 시공한 곳인데요.”
“거기까지 데려다 주게.”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