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0
“네에? 정말요? 여긴 회장님이 너무도 아끼시는…….”
“내 말대로 하게. 이 집보다 그 녀석이 더 중요하니.”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험험, 그럼 다금바리 한번 먹어볼까?”
이 회장은 뒷짐 진 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아버님, 이제야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허허, 아닐세, 아니야. 자, 안으로 들어가지.”
“네. 이건 아버님 좋아하시는…….”
“어허, 뭐 이런 걸 다……. 고맙네.”
권철현 고검장은 현수가 내민 쇼핑백을 받는다. 안에는 시바스 리갈 로얄 샬루트 50년산이 포장되어 있다.
이 술은 1953년에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취임식을 기념하여 특별히 제조되었으며 딱 255병만 생산되었다.
희귀한 만큼 엄청나게 비싼 술이다.
원래는 가격이 책정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 술을 미국의 한 부자가 병당 1만 달러씩 열 병을 사 가면서 가격이 붙었다.
한국엔 딱 한 병이 있는데 1,200만 원이다.
언젠가 지현이 말하길 아버지의 버킷 리스트12) 가운데 하나가 로얄 샬루트 50년산의 맛을 보는 것이라 하였다.
애주가인 고검장은 많은 양주를 마셔보았지만 이것만은 너무 비싸 눈으로만 마셨다고 한다.
“마침 아버지도 와 계시네.”
“아! 그렇습니까?”
“아버지, 김 서방 왔습니다.”
“오! 그래? 어서 오게, 어서 와!”
안준환 옹은 환한 미소로 현수를 맞아주었다. 회복 포션의 과도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60살 정도로 보인다.
얼굴을 뒤덮었던 모든 검버섯이 사라졌고, 쭈글쭈글했던 주름도 거의 다 펴졌다.
혈색도 매우 좋아 보인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보면 권 고검장과 형제 사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먼저 절부터 받으세요.”
“오! 그래, 그래!”
안준환 옹이 보료에 앉아 현수는 정중히 큰절을 올렸다.
“허허, 허허허! 허허! 허허허허!”
안준환 옹은 계속해서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자네 덕에 건강이 좋아지셔서 요즘은 변호사 사무소를 다시 여셨네. 하여 잘나가는 인권변호사가 되셨지.”
권철현 고검장의 말에 안준환 옹이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자네 덕이네. 고맙네.”
“무슨 말씀을……. 건강해 보이셔서 좋습니다. 참, 진맥 한번 해볼까요?”
“오! 그래, 그래! 얼마든지.”
현수는 안준환 옹의 맥문을 잡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나 디텍션!”
스르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맥문을 타고 들어가 오장육부는 물론이고 손끝과 발끝, 그리고 머리끝까지 휘돈다.
‘거의 모든 것이 정상이네. 이 정도면 혈기왕성한 40대나 다름없을 거야.’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이상 없으신 것 같네요. 그래도 너무 기름진 음식만 드시지 말고 운동도 하셔야 합니다.”
“하하, 그래, 그래! 당연하지. 요즘엔 아침마다 조깅도 하네.”
“네에, 그러셔야죠.”
안준환 옹은 잠시 담소를 나누다 외출해야 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님, 어머님, 절 올리겠습니다.”
“으응. 아닐세. 새삼스레 절은 무슨…….”
“지현 씨를 주시는데 당연히 절을 올려야죠.”
“그, 그런가? 좋아, 그럼 그러세. 험험, 여보, 당신도 이리 와서 앉아.”
“아닙니다. 첫 절이니 따로 드리는 게 예일 듯합니다.
“그, 그래? 좋아, 그럼 그러게.”
권철현 고검장에겐 자식이라곤 하나뿐이다. 따라서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에 몹시 어색한 듯싶다.
그래도 자리를 잡고 앉는다.
“지현일 부족한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프지 않도록, 울지 않도록 잘 보살피고 사랑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그래, 그래! 내 딸 울지 않게 잘해주게.”
“네, 그럼 절 올리겠습니다.”
현수가 가지런히 모았던 손을 짚으며 정중히 고개 숙이자 권철현 고검장 역시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춰준다.
그런 그의 눈가가 축축하다. 하나뿐인 딸이 영영 가버리는 기분이 들어서일 것이다.
“제가 잘할 겁니다. 자주 찾아뵐 거구요. 지현이를 잃어버리시는 게 아니라 제가 아들이 되는 겁니다.”
“그래, 그래! 고맙네, 고마워!”
검찰청에선 대쪽 같은 성품으로 유명하지만 집에선 딸 가진 아빠 중 하나이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어머님도 절 받으세요.”
“그, 그래요.”
곁에 있던 안숙희 여사가 자리에 앉는다.
“어머니, 평생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지현이 눈에 눈물 나오게 하면 저를 흠씬 패주세요.”
“그래요. 지현이 마음에 몹시 여린 애예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잘 다독이며 아껴줘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절 올립니다.”
이번에도 더없이 정중한 절을 했고, 안 여사 역시 허리 숙여 예를 갖췄다.
현수는 잠시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앉아 있었다.
“다리 저릴 테니 소파에 편히 앉게나.”
“네, 그럼 그러겠습니다.”
현수는 사양치 않고 자리를 옮겼다.
“여보, 김 서방이 가져온 거 있지? 그거로 한잔하게 술상 좀 봐줘.”
“네에.”
안 여사가 주방으로 가자 고검장이 웃는 낯으로 바라보았다.
“지난 며칠간 참 조마조마했네. 지현이가 자네와 잘못되어 싸운 줄 알았거든.”
“……?”
“밤에 화장실에 가려는데 지현이가 흐느끼고 있었네. 그 아이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이었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지현 씨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고맙네. 겉보기엔 센 거 같아도 여인 아이니 그래 주게.”
주당의 부인답게 안 여사의 술상 차리는 솜씨는 번갯불에 콩 튀길 정도이다. 탁자는 금방 육포와 피스타치오, 마른 김, 참치 샐러드, 치즈, 과일 등으로 뒤덮인다.
물론 얼음도 준비되어 있다.
“헉, 이건……!”
가장 마지막에 꺼내온 술병을 본 권 고검장의 눈이 커진다.
“지현 씨가 그러더군요. 아버님이 눈으로만 마시는 술이 있다고. 그래서 그걸 가져왔습니다.”
“이, 이거 엄청나게 비쌀 텐데……. 어, 얼마나 받던가?”
현수는 이 말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안 여사가 끼어든 때문이다.
“여보, 이 술이 그렇게 비싼 거예요? 금박으로 뒤덮여서 조금 비싸 보이긴 하는데 당신이 놀랄 정도예요?”
“그럼! 이거 세상에 딱 255병밖에 없는 거야. 말해보게. 이거 가격이 얼마던가?”
“1,200만 원 조금 더 줬습니다.”
“아……!”
“네에? 처, 천이백만 원이요? 이깟 술 한 병에요?”
감탄사의 종류가 달랐다. 권 고검장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고, 안 여사는 뭐가 이렇게 비싸냐는 얼굴이다.
“아버님, 어머님! 저 돈 많이 버는 거 아시죠?”
“그래, 엄청나게 벌지.”
현수의 급여는 전 국민이 알고 있다.
고검장도 물론 안다.
자식의 연인이니 더 관심 갖고 신문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연봉 60억이니 월 5억을 버는 셈이다. 물론 엄청난 세금이 빠져나간다.
그래도 상당히 많은 액수이다.
둘은 모르지만 현수는 이보다 훨씬 많이 번다.
킨샤사의 천지약품에서 받는 배당금만 월 5억을 넘겼다.
이제 곧 대한약품과 대한동물의약품에서도 배당을 받게 된다.
이실리프 어패럴과 울림모터스, 그리고 울림엔진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금액을 보낼 것이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십시오.”
“그, 그래, 사위 덕분에 오늘 내 입이 호강하려는 모양이네. 하하, 하하하!”
“어머, 이이는! 이거 한 병에 천이백만 원이라면서요? 이걸 다 마시려구요?”
“다 드셔도 됩니다. 다 드시면 또 가져오죠. 자아, 아버님부터 한잔 받으십시오.”
“험험! 그래, 그래!”
고검장의 잔을 채운 현수는 안 여사에게도 술을 따라줬다. 현수의 잔은 고검장이 채웠다.
“자아, 우리 딸의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한잔하세.”
“호호, 네에.”
“네, 지현 씨를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술을 마셨다.
“크으으으! 역시… 흐으으음.”
고검장은 숨으로 빠져나가는 술 냄새까지 음미하는 듯 코를 벌름거렸다.
“하여간 이이는……. 김 서방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어머님. 이 술이 워낙 비싸서 그러시는 거니까요. 그렇죠, 아버님?”
“아버님? 흐흠, 그럼, 그럼! 내가 아버님이지. 크흐흐흐!”
고검장은 나사 빠진 사람처럼 혼 빠진 웃음을 짓는다.
“하여간……. 칫, 나도 모르겠네요.”
안 여사도 기분 좋은지 평소엔 즐기지 않던 술을 홀짝거리며 줄여 나간다. 몇 순배가 돌자 고검장과 안 여사의 얼굴이 붉어진다.
반면 현수는 멀쩡하다.
현수는 계속 잔을 채우면서 기회를 노렸다.
지현 이외에도 연희와 이리냐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 아버님, 아버님도 진맥 한번 해볼까요?”
“그래? 그럼 그러게. 근데 술 먹고 해도 되나?”
“원래는 안 되지만 뭐 어떻겠습니까? 전 한의사가 아닌 돌팔이잖아요.”
“무슨 소리! 병원에서도 손 놓은 장인어른을 쾌차하게 하고, 우리 안 여사까지 멀쩡하게 해놓고서.”
“하하, 그건 운이 좋아서입니다. 아무튼 진맥 한번 해보지요.”
“그러게.”
고검장의 맥문을 쥔 현수는 마나 디텍션 마법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마법이기에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상관없다.
‘흐음, 역시 간이 안 좋군. 췌장의 기능도 많이 떨어졌다고? 좋아, 다음은? 대장에도 문제가 있고, 동맥경화까지?’
권철현 고검장은 겉보기에 아무런 이상도 없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문제가 있다.
술을 즐기기에 지방간이 있으며 간염의 우려도 있다.
췌장은 조만간 활동을 멈출 기세이다. 당뇨병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소화 기능도 저하되어 있고 대장에도 문제가 있다.
고지혈증으로 인한 동맥경화도 진행되는 중이다. 멀쩡한 건 호흡기와 뇌이다.
“흐음, 아버님도 치료를 좀 받으셔야겠어요. 제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현수는 숨김없이 권 고검장의 몸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부부의 얼굴은 금방 굳어진다. 여기저기 나쁘지 않은 곳이 없다는데 어찌 마음 편하겠는가!
모든 설명을 들은 부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표정이다. 이에 현수는 싱긋 웃음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현 씨 아버님인데 제가 그냥 놔두겠습니까? 일단 누우세요.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여, 여기?”
권 고검장이 소파에 눕느냐는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검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누웠다.
『전능의 팔찌』 제19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