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1
1장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안숙희 여사는 홀짝홀짝 마셨던 술이 완전히 깼는지 잔뜩 긴장된 표정을 짓는다.
누워 있는 권철현 고검장 역시 굳은 표정이다.
“그, 그런데 어떻게 치료를 하려고 하는 거죠?”
아직 발병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은 조만간 당뇨병, 간경화, 동맥경화, 뇌졸중 등의 위험에 노출된다고 했다.
이 밖에도 관절염과 류머티즘까지 우려된다.
순환기와 관련되어 있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진행되는 퇴행성 질환도 있다.
이들 병의 공통점은 완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수술로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현수는 현재 맨손이다. 침이라도 들었다면 한방 쪽 치료가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겠는데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누우라고 하니 의아하여 물은 것이다.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보시는 것은 절대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될 일입니다.”
“……?”
“아공간 오픈!”
이 말은 아르센 대륙 공용어이다.
현수가 한 말이 대체 어느 나라 말일까 가늠하려던 권 고검장이 당혹성을 터뜨린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삼각 플라스크 하나가 불쑥 솟아난 때문이다.
“헉!”
뿅―!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니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현수는 권 고검장의 등 뒤로 손을 넣어 상체를 살짝 들어 올렸다.
“일단 이거 먼저 복용하십시오.”
“이, 이걸 먹으라고?”
“네. 몸에 이로운 것이니 마음 푹 놓고 드셔도 됩니다.”
“아, 알겠네.”
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풍기는 냄새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심신이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플라스크의 주둥이를 입에 대니 푸른 빛깔의 액체가 권 고검장의 목구멍 너머로 조금씩 흘러든다.
발병 상태가 아니기에 처음엔 반병만 복용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이제 곧 장인이 될 사람이다. 당연히 건강해야 한다. 그렇기에 플라스크가 완전히 비도록 복용시켰다.
“자아, 이제 다시 눕습니다.”
“알겠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식도를 타고 흘러드는 순간 늘 더부룩하던 뱃속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시키는 대로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현수는 허리띠를 풀어내고 상의를 약간 들춰 올렸다. 통통한 뱃살이 드러난다. 전형적인 복부 비만 상태이다.
안 여사는 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어 보고만 있다.
“장인어른, 저는 지금부터 마법으로 장인어른의 몸 상태를 회복시킬 겁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되도록 움직이지 마십시오.”
“마, 마법? 자네 방금 내게 마법이라 했나? 21세기에…….”
21세기에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망발이냐는 말을 할 틈도 없었다.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린 때문이다.
“마나여, 모든 장기와 세포를 원상으로 되돌려라!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르릉―!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권철현 고검장의 아랫배를 통해 체내로 스며든다. 물론 이 빛은 현수의 눈에만 보인다.
리커버리 마법이 구현되는 순간 권 고검장은 아주 아늑한 보금자리에 누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점차 생기로 가득 차는 느낌이다. 하여 말없이 눈을 감았다.
안 여사는 긴장된 눈빛으로 남편의 아랫배에 닿아 있는 현수의 손만 바라보고 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실내는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흐으으음!”
현수는 일부러 작게 침음을 내며 손을 떼고 옷을 여며주었다. 마법이 쉬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권 고검장은 나른하면서도 편안한 기분에 눈을 감은 상태이다. 반면 안 여사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하는 표정이다.
“마나여, 광휘를 밝혀라. 라이트!”
현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먹만 한 광원이 환한 빛을 뿜어낸다. 그 순간 안 여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갑자기 둥둥 떠 있는 광원을 보았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현수는 광원을 이동시키며 권 고검장의 신체를 샅샅이 훑어보는 척했다. 안 그러면 조금 전 보여주었던 리커버리 마법을 전혀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부러 보여주는 것이다.
잠시 후, 맥문을 쥔 채 상태를 체크했다.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연합군은 늘 그렇듯 성실히 임무 수행 중이다.
10% 이하로 떨어져 있던 췌장의 기능부터 살폈다.
마나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는 25% 상태로 회복되었으며 조금씩 그 수치가 오르는 중이라고 한다.
간도 살펴보았다. 간염은 치료되고 있고, 지방간도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상체 비만과 운동 부족으로 삐거덕거리던 무릎은 관절염으로부터 해방되는 중이다. 오른손에서 진행 중이던 류머티즘 역시 항복 깃발을 들고 물러나고 있다.
현수는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는 고검장을 그대로 둔 채 시선을 돌렸다.
“장모님, 놀라셨죠?”
“그, 그래요. 조금 전에 그건 뭐죠?”
사위로 맞아들이기로 했지만 아직은 서먹한지 말을 놓지 못하는 안 여사이다.
현수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껏 비밀로 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전 마법사입니다.”
“네? 마법사요? 설마 진짜인가요?”
조금 전에 본 게 있기에 뻥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영국의 건국왕인 아더를 보필하던 멀린이란 마법사의 유품을 얻게 되었습니다.”
“……!”
안 여사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하여 말을 이어갔다.
“그것을 통해 마법을 익혔지요. 많은 마법을 알지만 그중에서도 치료 마법을 가장 잘합니다.”
“그걸로 아버지를 치료해 준 건가요?”
“맞습니다. 장모님의 경우는 나쁜 기억을 지워 드린 겁니다.”
“……!”
“장인어른의 몸 상태는 차츰 나아질 겁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질병들과는 당분간 안녕입니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간염, 간경화, 관절염, 류머티즘, 이런 것들이 다 치료된다고요?”
“아마 거의 모두 완치 수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몸은 조금씩 젊어질 겁니다. 할아버님이 젊어지신 것처럼 말이지요.”
“세상에!”
“……!”
안 여사가 나직한 탄성을 낸 반면 누워 있던 고검장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혹시 방금 전의 치료 행위가 꽝이 될까 싶었던 때문이다.
“제가 알기로 지구의 마법사는 저 혼자입니다. 그러니 비밀은 지켜주십시오.”
“그럼요. 그럴게요. 걱정 마요.”
안 여사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장인어른, 이제 일어나셔도 됩니다. 말씀을 하셔도 되고요.”
“…고맙네. 정말 몸이 편해진 것 같아.”
“당연히 그래야죠. 조금 전에 복용하는 액체는 회복 포션이라 하는 것으로, 그거 한 병이면 어떠한 말기 암이라도 단번에 치료할 수 있습니다.”
“말기 암을 치료해?”
“그리고 제가 구현한 리커버리 마법은 장인어른의 모든 세포를 젊은 시절로 되돌려 보내는 효능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로?”
“네. 장인어른은 별다른 질병이 없으셨으니 최소한 20년은 젊어지실 겁니다.”
“허어, 20년이나?”
권 고검장은 올해 나이 56세이다. 20년이 젊어진다 하면 36세 때의 몸이 된다는 뜻이다.
이마의 굵은 주름과 입가의 팔자주름 등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서서히 펴질 것이다.
이런 주름은 크게 나눠 두 가지 이유로 생성된다.
첫째는 노화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피부 진피 내의 탄력성을 유지하는 콜라겐1)과 엘라스틴2)의 합성이 감소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주름이 발생되는 것이다.
또한 노화되는 세포의 수는 늘어나지만 새로운 세포의 생성을 돕는 회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는 외부적 요인이다.
자외선, 음주와 흡연, 무리한 다이어트, 건조한 환경 때문에 주름이 발생될 수 있다.
어쨌거나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마법은 세포의 탄력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원상으로 되돌린다. 그렇기에 주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서서히 사라진다.
권 고검장은 젊어진다는 말에 상당히 고무된 듯 눈빛을 반짝인다. 요즘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근력은 떨어지고 몸은 점점 무거워지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팔팔했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다니 상기되는 듯하다. 곁에 있던 안 여사 역시 눈빛을 빛내고 있다.
어찌 속내를 모르겠는가!
“장모님도 여기 누우시겠습니까?”
“그, 그거, 그냥 써도 되는 거예요?”
“아뇨. 당연히 아니죠. 회복 포션은 이제 몇 병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모님께는 드려야죠. 자, 이쪽으로 누우세요.”
“그, 그럼 그럴까요?”
안 여사는 젊어진다는 말에 체면을 버린 듯 얼른 눕는다.
“아이구, 이 사람도 참, 사위 앞에서…….”
“치, 당신만 젊어지면 난 어쩌라구요? 당신만 청년 시절로 되돌아가고 난 이대로 할망구가 되라고요?”
“후후!”
가벼운 부부싸움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현수는 나직한 웃음을 지었다.
“쳇! 못됐어요. 자기만 젊어지려고. 김 서방, 나도 젊어지게 해줘요.”
“하하! 네, 장모님!”
현수가 안 여사의 맥문을 쥐자 뭐라 한마디 하려던 장인이 입을 다문다.
“마나여, 체내의 상태를 조사하라! 마나 디텍션!”
이번에도 아르센 대륙 공용어이다. 마법사임을 드러냈기에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의도이다.
아무튼 마나는 안 여사의 체내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흐으음! 신장 기능이 많이 떨어졌네요. 자궁엔 근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화 기능도 약해요. 대장에도 용종이 있다네요. 그리고…….”
현수는 중계하듯 마나의 보고를 읊조렸다.
나이가 있다 보니 안 여사 역시 조금씩 신체 기능을 잃고 있는 중이다. 폐경 이후 시력이 저하되었다. 시시때때로 안면 홍조 증상이 나타났으며, 치아가 급격히 나빠지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골다공증이 진행되고 있다.
이밖에 척추 디스크에 문제가 발생되어 있다. 이 정도면 허리가 아파 꼼짝도 못하는 날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안 여사는 맥문만 짚고도 모든 증상을 낱낱이 이야기하는 현수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용한 점쟁이를 만난 아낙네의 모습과 같다.
“자아, 이제 일어나셔서 회복 포션을 드십시오.”
아공간에서 또 하나의 삼각 플라스크를 꺼내는 모습을 본 권 고검장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아까는 제대로 못 보았던 때문이다.
꿀꺽꿀꺽―!
한 병의 회복 포션을 모두 복용한 안 여사는 알아서 다시 눕는다.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짓고는 복부 가까이 손을 가져갔다.
옷 속으로 손을 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나여, 모든 기능을 원상으로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안 여사의 체내로 스며든다.
현수는 이번에도 아르센 대륙 공용어로 마법을 구현시켰다. 영어나 불어에 비해 훨씬 더 중후한 느낌을 주는 언어이다.
권철현 고검장은 현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틀림없이 마법사들만 쓰는 언어라 생각했다.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지나어, 러시아어, 일본어를 모두 조금씩 구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언어에 없는 말이기에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