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
권지현과 강연희, 그리고 이리냐, 이렇게 세 여인을 어찌하나 하는 문제와 이들과의 결혼을 허락받는 일은 그동안 마음을 무겁게 하던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나니 너무도 후련하여 과음을 했다. 하여 귀가 즉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북어국을 먹는데 곁에 앉은 어머니는 어젯밤 이웃집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신다.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어젯밤, 그러니까 2013년 10월 21일 새벽 두 시 무렵, 바로 옆집에 괴한 둘이 침입했다.
이들은 잠들어 있던 노부부를 흉기로 위협하여 깨웠다. 그리곤 곧바로 납치를 시도했다.
승합차에 태워 노부부를 데리고 가던 이들은 워커힐 조금 못 미친 지점에 둘을 내려놓고 가버렸다.
노부부는 마침 지나치던 순찰차를 불러 세웠고, 상황을 이야기했다. 경찰들이 들이닥쳐 수색을 했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다. 모두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지문도 남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노부부를 납치했으며, 그렇게 끌고 가다 왜 중간에 내려줬는지 궁금하다.
노부부는 아들의 이름을 대라는 괴한들의 물음에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진짜 아들이 없느냐고 물었단다.
없다고 하니 그대로 내려놓고 사라진 것이다.
별 미친놈들 다 봤다는 생각을 하던 현수는 숟가락질을 멈췄다. 부모님을 노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지나 놈들이 내게 원한을 품고? 흑룡이라고 했던가? 흐으음,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거군.’
서둘러 식사를 마친 현수는 다이어리를 펼쳐 들었다. 그리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했다.
가장 먼저 인간보다 감각이 예민한 개를 구할 생각이다. 마당에 풀어놓으면 침입자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여 경비견으로 적합한 개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러시아의 코카시안 셰퍼드, 터키의 캉갈 독, 로트와일러, 셰퍼드, 티벳탄 마스터프,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도베르만 핀셔, 이탈리아의 카네코르소 등이 접합하다고 올라와 있다.
값이 비싼 건 문제되지 않지만 덩치가 너무 크거나 폐사율이 높다는 등의 문제가 있다.
‘흐음! 그럼 진돗개를 키워?’
진돗개 역시 경비견으로 훌륭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침입자는 지나에서 파견한 첩보원일 확률이 매우 높다. 놈들은 칼은 물론이고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럼 일반적인 경비견은 감당해 낼 수 없어. 훨씬 더 용맹하고 사나워야 해. 호랑이나 늑대처럼. 아! 맞다. 그 녀석이 있었지?’
덕항산에서 상처 입은 늑대를 치료해 준 바 있다. 녀석은 자신을 구해줘 고맙다는 뜻으로 멧돼지를 사냥한 놈이기도 하다.
‘잘 있나 모르겠군. 일단 한번 가보자.’
현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좌표 확인부터 하고. 좋아!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스러진다.
“어디 갔나?”
덕항산 동굴에 당도한 현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녀석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는지 여기저기 먹다 남은 뼈다귀들이 보인다.
“와이드 센스!”
초감각 마법을 구현시켜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쥐새끼 한 마리 걸려들지 않는다.
“아주 이 근처를 씨를 말려 버린 모양이군. 하긴 배가 몹시 고플 테니.”
나직이 중얼거린 현수는 아공간의 돼지고기와 닭고기 남은 양을 체크했다. 여전히 많은 양이 남아 있다.
“흐음, 기다리는 수밖에.”
기왕 이곳에 왔으니 작업이나 하자는 생각을 한 현수는 습관처럼 결계를 쳤다.
“앱솔루트 배리어!”
결계 안쪽에 자리 잡고는 또 한 번 마법을 구현시켰다.
“타임 딜레이!”
다음은 아공간에 담겨 있는 마나 집적진이다. 이를 가동시키자 덕항산 인근의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편안한 자세로 그 위에 앉아서는 드래곤의 용언 마법과 멀린의 인간 마법 비교 작업을 시작했다.
수많은 도형이 그려졌고, 엄청난 계산이 이루어졌다. 단순 계산은 공학용 계산기를 꺼내 결과를 산출해 냈다.
인간의 마법과 드래곤의 마법은 근본부터가 다르다.
인간은 마나를 수식으로 제어하여 마법을 썼고, 드래곤은 강력한 의지력을 이용했다.
마나를 다루고 그 마나를 배열한다는 것 자체는 같지만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다. 이것들의 접점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능의 팔찌 안쪽에 새겨진 브레인 리프레시 마법 덕에 아이큐가 200을 넘은 현수에겐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인간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명석한 두뇌로 두 마법 간의 차이점을 찾고 접점을 강구해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비교적 간단한 저서클 마법은 용언 마법처럼 구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나머지도 차츰 정복될 것이다.
상당한 시간 동안 마법에 몰두했으니 몸을 풀어줘야 했다.
현수는 결계 안에서 그간 익힌 검법과 체술을 수련했다. 바디 체인지 이후 웬만한 수련으로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더위와 추위를 극복한 그 몸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강력한 수련을 거듭했다.
가장 큰 도움은 드래고니안 마을에서 있었던 소드 마스터들과의 대련이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모든 검법의 파훼식을 찾아냈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검식을 창안해 냈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여겨 아공간에 담긴 멀린의 수집품을 꺼내서 살폈다.
아르센 대륙에 있었던 거의 모든 검식이 망라되어 있기에 이 수련은 힘은 들었지만 매우 유익했다.
결계 안 수련인지라 현수는 검에 마나를 불어넣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전과 크게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의 현수는 소드 마스터 최상급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랜드마스터라는 경지는 넘사벽 저쪽에 있었다.
만일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면 완전하진 않지만 그랜드마스터에 버금가는 강력한 검강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켈레모라니가 남긴 비늘 덕분이다.
여기엔 드래곤이 무려 천 년 동안 정제해 놓은 순수 마나로 가득하다. 인간을 기준으로 보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마나 공급력이다. 이것이 점에 주입되면 검강의 길이와 농도, 그리고 파괴력은 대폭 상승된다.
아무튼 현수는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검법을 더 가다듬었다. 그러는 동안 전신 세포의 활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엔 이처럼 극한에 이를 정도로 강한 수련을 한 바 없다. 그러다 전신 세포 거의 모두를 활용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또 한 번 대폭발을 일으키려는 조짐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또 한 번의 바디체인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완전한 그랜드마스터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는 유사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본인이 모를 뿐이다.
검법 수련을 마치고는 마법을 현실에 응용하는 방법들을 모색했다. 문득 작년에 보았던 신문 기사가 떠오른다.
생활보호대상자인 ‘독거노인들의 겨울나기’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어느 추운 날, 리포터가 어렵게 사는 노인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 안에 텐트가 쳐져 있다.
왜 이렇게 했느냐는 물음에 노인은 집안이 너무 추워 궁여지책으로 누군가 버린 텐트를 주워 와 쳤다고 한다.
측정해 보니 실외 온도는 2℃, 실내 온도는 4℃이다.
이런 방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전기장판을 보여준다. 총 열 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이것을 삼단 이상 틀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러느냐는 리포터의 물음에 노인은 비싼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루에 딱 두 번 한 시간씩 틀어서 얻는 온기로 혹한을 견디는 중이라는 노인이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다음 같은 방법으로 요금이 부과된다.
신문 기사를 보면 일곱 평(23㎡) 남짓한 집에서 사는 어떤 독거노인은 매달 12,000원 정도 요금을 냈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수도와 변기가 꽁꽁 얼자 화장실에 설치한 전기 히터를 틀었다.
그 결과 전기요금 7만여 원이 적힌 고지서를 받았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얼마 안 되는 돈 가운데 전기요금 7만여 원을 내고 나면 먹고살 일조차 막막하다는 노인의 하소연으로 기사는 끝맺음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일반 가정에서 겨울철 난방을 위해 전기장판, 또는 전기온풍기 등을 과하게 사용할 경우 6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이는 전기를 많이 쓰면 쓸수록 훨씬 더 많은 요금을 지불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에너지 수입국이다. 그렇기에 전기 과소비를 막기 위한 방편이다.
아무튼 전기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늘어나니 요금 또한 상승하고 있다.
혹시 마법이 도움 될까 싶어 화력발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관건은 보일러와 터빈의 성능 개선이다.
‘흐음! 보일러는 새는 열을 차단하는 실(Seal) 마법을 적용하고, 열을 더하기 위한 플라즈마 마법 정도면 도움이 되겠구나. 터빈은 구동될 때 발생되는 마찰을 최소화해 주는 그리스 마법으로 어떻게 되지 않을까?’
아직 발전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잉가댐 수력발전 공사가 떠오른다.
제반 건설은 천지건설이 맡지만 발전 설비 설치 등은 한전에 하청을 주었다. 그렇다면 업무 협조 요청을 하여 발전 설비들을 견학하거나 움직여 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내친김에 수력발전의 원리도 살펴보았다.
물의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꾼 뒤 이를 다시 전기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수차를 개선하면 나아질 듯싶다.
‘일단은 한전 사람들을 만나보는 게 우선이겠군. 흐음, 보다 정확한 자료를 보여달라고 해야지.’
결계를 해제하고 나와 보니 녀석이 엎드려 있다.
“어! 와 있었네?”
엎드린 채 눈알만 굴리며 현수를 바라보는 녀석은 마치 길들여진 강아지 같다.
“흐음! 어디 보자. 어이쿠! 이 녀석, 엄청 험하게 사나 보구나. 좋아, 치료해 줄게. 컴플리트 힐!”
샤르르르르릉―!
마법이 구현되자 녀석이 입은 상처들이 급속하게 아문다. 녀석은 이런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지 얌전히 엎드려 있다.
그러다 치료 작용이 모두 끝나자 발딱 일어난다. 그리곤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현수의 손을 핥는다. 자신을 치료해 준 마나가 뿜어져 나온 손이라는 걸 안다는 듯하다.
“녀석, 혼자 있으면서 심심하지 않았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굴 입구에 무엇인가가 나타난다. 눈앞에 있는 녀석보다는 덩치가 약간 작다.
“으르르렁―!”
“응? 네 짝이야?”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늑대는 손을 핥는다.
“하하! 녀석, 능력 있네? 너! 이리로 와봐.”
“크르르, 크르르르―!”
녀석이 나지막한 소리를 내자 암컷이 다가온다. 시선은 현수에게 고정되어 있다. 여차하면 달려들 기세다.
“오베이!”
샤르르릉―!
마나가 뿜어져 나가자 언제 사납게 굴었느냐는 듯 눈빛이 양순해진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Animal Communicator)!”
동물 교감 마법이 구현되자 녀석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현수의 생각이 전해진 때문이다.
[나랑 같이 갈래?]
[네, 주인님!]
[너는 이제부터 나자리노라 부를게. 넌 그리셀다이고. 어때, 이름 마음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