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2
“뿐만이 아니라 우리 회산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유니콘 아일랜드 같은 사업도 해.”
“그래, 그건 탐나더라. 건축사로서 건축법과 부지에 신경 안 쓰고 마음껏 디자인해 보는 건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야.”
한창호는 꿈꾸는 듯한 표정이다.
“그 일을 형이 하게 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회사 사장님께 나이는 젊지만 진짜 설계 실력 좋은 건축사가 있다고 말했어. 그러니 포트폴리오7) 준비해 가지고 우리 회사 사장님을 만나봐. 얘긴 다 해놨으니까.”
“……?”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말대로 디자인 실력이 뛰어나다면 새로 시작할 아파트 단지 디자인 전체를 의뢰하신대.”
“저, 정말?”
한창호의 얼굴빛이 급속도로 환해진다.
아파트 설계의 경우 설계사무소마다 다르지만 대략 3.3㎡당 4만∼20만 원까지 다양하다.
건축사의 지명도에 따라 차등되는 것이다.
한창호는 실력은 있지만 업계에 널리 알려진 건축사는 아니다. 따라서 최하 등급인 3.3㎡당 4만 원 정도 예상된다.
천지건설이 새롭게 조성할 아파트 단지는 32평형 1,500세대이다. 실제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대로 계산해 보면 전체 설계 면적은 158,400㎡이다.
이에 대한 설계비는 19억 2천만 원이다. 여기에 단지 내 상가와 관리사무소, 노인정 등의 면적을 산입하면 최하 20억 원은 받게 된다.
한창호 설계사무소의 총인원은 소장 포함하여 20명이다. 20억이면 당분간 버티고도 남을 돈이다.
“형,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거 알지? 이번 설계, 최선을 다해. 그럼 자동으로 술술 풀릴 테니까.”
“오냐. 고맙다. 하하, 하하하!”
한창호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현수는 설계사무소에 머물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새로 지을 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킨샤사의 저택과 모스크바의 저택 사진도 보여주었다. 입을 딱 벌린다. 그야말로 호화의 극치라 할 정도로 많은 장식이 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하게 되면 지현의 부모님도 킨샤사의 저택을 보게 될 것이다. 한국에 있는 집도 최소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택 사진을 참고로 보여준 것이다.
한창호는 설계할 의욕이 솟는지 상당히 많은 메모를 했다.
현수가 나가고 난 뒤에도 한창호는 많은 스케치를 했다. 떠오른 영감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이날 밤 한창호는 심혈을 기울여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그리곤 다음 날 아침 시뻘건 눈으로 전화를 건다.
통화 상대는 조인경 대리이다.
신형섭 사장과의 약속이 전해지자 사우나로 직행한다. 그야말로 때 빼고 광낸 한창호는 천지건설 사장실을 방문한다.
신형섭 사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신 사장은 설계팀을 불러 한창호가 준비해 온 포트폴리오를 보며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날 한창호 설계사무소는 뻑적지근한 회식을 한다.
현수가 말했던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설계 의뢰를 받은 것이다. 설계비는 예상보다 많은 3.3㎡당 70.000원이다.
기타 건축물까지 포함한 계약 금액만 34억 5천만 원이다.
사실 한창호는 포트폴리오까지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신형섭 사장은 김현수를 철석같이 믿는다.
그렇기에 제주도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미 결정했다. 누구를 소개하든 이번 건은 그에게 맡기겠다고.
아울러 현수의 체면이 있으므로 설계비 역시 7만 원으로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한창호는 과녁 정중앙까지 연결되어 있는 대롱 속에서 활을 쏜 셈이다.
하지만 현수의 곁에 머물기만 해도 대박이 터진다는 걸 아직 사람들은 모른다.
* * *
“다 되었습니다. 전에 그곳으로 배달해 드리면 되죠?”
“네, 고맙습니다.”
항온 티셔츠, 재킷, 바지,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용 내복과 군복, 헬멧, 군화 등에 들어갈 마법진을 새겨 넣을 철판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국내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팔릴 티셔츠의 숫자만 30만 장이다. 지르코프 상사로 보내질 항온 재킷과 바지는 각기 100만 장씩이다.
미군은 군복용 10만 장, 헬멧 10만 장, 군화 10만 장이다. 다음은 기초생활수급자용 310만 장과 차상위 계층용 400만 장이다.
합계가 970만 장이다.
그래서 이번에 제작한 SUS304 0.35T만 1,000만 장이다.
철판 가공업체 사장은 뜻밖의 주문에 입이 벌어져 있다. 작업 공정은 어렵지 않고 일도 빨리 끝난다.
반면 돈은 제법 쏠쏠하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현수가 요구한 철판 상자를 만들었다.
가로, 세로 1m, 그리고 높이 0.5m짜리이다. 사방은 막혀 있지만 한쪽엔 가로세로 20㎝짜리 문을 만들었다.
이 상자의 중간엔 안을 살필 수 있는 아크릴 창이 있다.
실험용이고 인라지 마법으로 확대할 것이니 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지만 해달라니 만들어놓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하지만 묻지는 않는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참 손바닥만 한 철판이 또 필요하시면 직접 오지 말고 전화를 주십시오. 그럼 알아서 만들어놓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영등포를 떠난 현수는 황학동으로 향했다.
일전에 주문 의뢰한 리어카와 일륜차 때문이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네, 그간 안녕하셨지요?”
지난 9월 17일에 보았으니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그때완 낯빛이 달라져 있다. 환하고 기분 좋은 안색이다.
“그럼요. 덕분에 아주 잘 지냈습니다. 우선 차부터 한잔하시지요. 뭘 드릴까요? 커피? 주스?”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얼마나 만들어졌는데 그러십니까?”
“현재 제작된 리어카가 약 2,000대입니다. 일륜차도 거의 그 정도 만들어졌고요.”
“그걸 쌓아둘 장소가 문제군요?”
“네, 죄송합니다. 노상에 방치하면 납품하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는데 더 이상 빌릴 창고가 없습니다.”
“흐음, 그도 그렇겠군요. 리어카는 층층이 보관할 수도 없는 물건이니. 알겠습니다. 그럼 만들어지는 대로 납품해 주십시오.”
“아! 정말입니까?”
“그래야지 어떡하겠어요. 저도 녹슨 리어카는 납품 받기 싫으니까요. 흐음, 그것들은…….”
그러고 보니 납품 받을 장소가 없다. 내 아공간에 넣어달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전화 한 통만 할게요.”
“아이고, 그럼요.”
리어카 판매점 사장이 얼른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간다.
“사수, 자재과 창고 공간 좀 있어요?”
“창고? 있지. 얼마나 필요한데?”
“상당히 넓어야 해요.”
“뭘 넣으려는 건 알 수 없지만 현재는 거의 비어 있어. 모두 현장으로 반출되었거든. 필요한 만큼 써. 비번은 알지?”
“알았어요.”
곽인만 대리와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니 리어카 판매점 사장 곁에 다른 사내가 있다.
“안녕하십니까?”
“아, 네. 제게 우물 펌프 파셨던 분이군요. 안녕하셨죠?”
“그럼요. 그때 전무님께서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놓으라 해서 잔뜩 가져다 놓았는데 안 오셔서…….”
현수는 그때 후한 가격에 사갔다. 그렇기에 본인이 구할 수 있는 최대한을 구해놓고 기다렸다. 물론 많은 돈이 들었다. 그런데 현수가 오지 않아 애만 끓이던 중인 모양이다.
“하하, 네.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바빠서요.”
“암요. 외국으로 다니시느라 바쁜 거 압니다.”
“사장님, 일단 여기 일부터 보고 사장님 가게로 갈게요.”
“그, 그럼 그래 주시겠습니까?”
사내가 물러가고 난 뒤 천지건설 자재과 창고 약도를 그려주었다. 상당히 넓어서 리어카 2,000대와 일륜차 2,000대는 거뜬히 보관할 수 있는 곳이다.
“일단 2,000대씩 납품된 걸로 하고 오늘 중으로 그것에 대한 대금은 보내 드릴게요.”
“아이고, 그래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리어카 판매점 사장이 환히 웃으며 좋아한다.
잠시 후, 현수는 500여 개에 이르는 우물 펌프를 마주하고 섰다. 구해달라니까 인근 펌프는 모두 가져다 놓은 모양이다.
“여기 이것들에 대한 나머지 부품도 다 있는 거죠?”
“아이고, 그럼요. 아프리카로 가지고 가신다면서요? 그래서 부품은 조금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대량 판매를 목전에 둬서 그런지 몹시 싹싹하다.
“좋습니다. 모두 사죠. 가격은 전과 동일하죠?”
“아이고,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지요. 사실 조금 깎으셔도 되는데.”
“아뇨. 그냥 종전 가격으로 하세요. 참, 이것 말고도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그것도 구해주십시오.”
“네? 뭐가 더 필요하십니까?”
“각종 농기구요. 삽, 쇠스랑, 호미, 낫 뭐 이런 것들 있죠?”
“당연히 있습죠.”
“품질이 괜찮은 것들로만 구해주십시오.”
“얼마나……?”
주인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현수의 입에서 나올 숫자 때문이다.
“여기 황학동에 있는 것 전부 다 모아주십시오.”
“헉! 네?”
황학동 시장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각 점포마다 따로 창고 하나씩은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현수의 말대로 황학동의 모든 농기구를 모아놓으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전부 모으라니 입을 딱 벌린 것이다.
“다 모아지면 제게 연락 주십시오. 물목과 수량, 그리고 가격을 팩시밀리로 보내주세요. 읽어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럼 여기 있는 이 펌프들도 함께……?”
“아닙니다. 펌프들은 오늘 보내주세요. 이것에 대한 대금은 오늘 지급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품질이 좋으면 추가로 주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물건이 제대로 된 건지 살펴서 괜찮은 것만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일일이 확인하는 한이 있더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걱정 말고 돌아가십시오.”
오늘 황학동 시장은 단체로 복권에 당첨된 기분에 들떴다. 오랜만에 대박 손님을 만난 때문이다.
어음도 아닌 전액 현금이니 기쁨은 배가되었다.
* * *
“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과 박새롬입니다.”
“저는 일전에 세정캐피탈 이중장부 사본을 보내 드렸던 곽해일이라 하는데 이경천 검사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누구요? 곽해일 씨요? 자, 잠시만요.”
띠리띠리, 띠리리리링!
잠시 대기음이 들린다. 그렇게 1분쯤 지났을 때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이경천 검사입니다. 곽해일 씨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흐음, 그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유예가 되었습니다.”
“네? 증거 불충분이요? 그 장부가 있는데도요?”
“보내주신 자료는 장부의 사본입니다. 충분히 조작될 수 있지요. 그래서 증거 불충분 판정을 내렸습니다.”
“으으음!”
현수가 나지막한 침음을 내자 이경천 검사가 말을 한다.
“곽해일 씨, 전에 제가 그랬습니다. 원본이 없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원본을 주지 않으시니 저희로선 어쩔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