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64화 (464/1,307)

# 464

“어머!”

“잊었어? 난 마법사잖아.”

“아!”

지현은 현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여 보듬어 안아주었다.

“추운 것 같은데 몸 좀 따뜻하게 해줄까?”

“치! 엉큼한 짓 하려고 그러는 거죠?”

“아니. 잠깐만 기다려.”

현수는 아공간에 담겨 있는 항온 마법진 하나를 꺼냈다. 지르코프 상사로 수출할 재킷에 끼워 넣을 것이다.

“안주머니 있으면 이걸 집어넣어 봐.”

“네? 아, 알았어요.”

항온 마법진을 안주머니에 넣은 지현은 이게 대체 무슨 효능이 있느냐고 물으려 했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매직 임플리먼트(Magic implement)!”

아르센 대륙어로 마법을 구동시키자 지현은 상체 전반에서 느껴지던 추위가 단번에 사라짐을 느꼈다.

조금 전 바람으로 인해 체온이 약간 떨어졌던 것이다.

“어! 이건……?”

“항온 마법진이 작용해서 그러는 거야. 이렇게 만든 옷을 러시아와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수출하게 될 거야.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현수 씨, 정말 대단해요.”

지현은 마법의 놀라운 효능을 느끼곤 감탄사를 터뜨렸다.

“뭐, 이 정도로…….”

현수는 짐짓 으쓱거리고는 지현의 어깨를 당겼다.

그 잠깐 사이에 가을비의 빗방울이 굵어져 있다. 하여 주위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으으음!”

입술과 입술이 달라붙자 지현이 나지막한 신음을 낸다. 현수와 지현은 잠깐이지만 꿈결 같은 시간을 보냈다.

“현수 씨, 사랑해요.”

“나도, 나도 사랑해.”

품에 안긴 지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자세를 바로 한다. 혹시 누가 볼까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도 볼 수 없다. 입술 박치기를 하기 직전 현수가 구현시킨 마법 때문이다. 일루전 마법은 이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현수 씨, 전 현수 씨만 믿어요. 정말 최선을 다할게요. 저를 아껴주세요.”

“그래, 나도 최선을 다할게. 지현 씨도 날 아껴줘.”

“네.”

지현이 살짝 고개 숙이며 귀밑머리를 쓸어 올린다.

아주 심한 유혹이다. 하지만 현수는 참아냈다. 벤치에서 사고 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참, 아까 말씀하신 거 있잖아요.”

“응, 그래.”

“아버지가 내사를 지시했는데 얽힌 게 너무나 많대요.”

“얽힌 게 많아?”

“네, 검찰 쪽도 그렇지만 정치권 쪽에도 관련자가 많이 있나 봐요. 구체적으로 누구누구라곤 말씀하시지 않지만 제일 윗선은 알아요.”

“그래? 누구지?”

“여당 사무총장인 박인재 의원이에요. 세정캐피탈을 이용하여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세탁까지 하고 있대요.”

“흐음.”

현수가 나직한 침음을 내자 지현의 말이 이어진다.

“정치자금법에 의하면 정치인에 대한 후원금은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하도록 되어 있어요. 정치자금법상…….”

잠시 지현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한 합법적인 정치자금 이외의 일체의 음성 정치자금 수수는 처벌을 받게 된다.

개인은 하나 이상의 후원회를 통하여 후원금을 기부할 수 있지만 법인이나 단체는 일절 정치자금을 기부나 기탁할 수 없도록 법률로 명시되어 있다.

개인의 후원회 납입 한도는 연간 2천만 원이며, 1회 익명 기부 한도는 10만 원이다.

1회 100만 원 이상 정치자금을 기부할 때엔 수표와 신용카드 등 실명이 확인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연간 1억 5,000만 원까지 후원 받을 수 있다.

세정캐피탈을 통해 조성된 후원금은 분명 이 액수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돈의 일부는 스위스 등 다른 나라 은행 계좌로 흘러들어 갔다.

“세정캐피탈이면 제2 금융권 아닌가? 그럼 제1 금융권에서 송금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일반적인 방법의 송금이 아니래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세정캐피탈에 돈을 맡겨요. 1년짜리 정기예금이요. 그럼 매달 이자가 발생되지요? 그 이자를 박인재 의원의 계좌로 보내도록 하는 거예요.”

“그럼 액수가 얼마 안 되는 거 아닌가?”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정기예금하고 이자율이 5%라고 쳐요. 그럼 월 41,666원의 이자가 발생돼요. 이중 이자 소득세를 떼고 나면 35,249원이 되죠.”

“그래. 얼마 안 되잖아.”

지현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각각의 계좌에서 매월 송금되는 이자액 자체는 작지요. 그래서 금감위에서도 파악하지 못했나 봐요. 그런데 그런 계좌가 하나가 아니라 1,000개라면요?”

“100억?”

“그럼 매월 3,500만 원 이상의 금액이 보내지죠. 일 년이면 4억 2천만 원이에요. 이게 쌓이면 금방 금액이 커지니까 약 백 개의 계좌로 자동이체되도록 해놓았다고 해요.”

“근데 요즘 정기예금 이자율이 그렇게 높지 않잖아?”

“맞아요. 보통은 연간 3.5% 정도 되죠. 나머지는 세정캐피탈에서 가산 금리를 주는 거죠.”

“자신들의 뒤를 봐달라는 뜻이군.”

“네. 세정캐피탈 입장에선 그리 큰돈이 아니니까요.”

“하긴 뒷구멍으로 수백%까지 이자를 받아먹는 놈들이니 가산 금리 1.5%는 껌 값이겠군.”

“상당히 지능적이에요.”

지현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그 정기예금 계좌의 주인은 누구지?”

“개인 명의로 되어 있지만 공통점이 있대요.”

“공통점? 어떤 기업의 직원들 명의인가?”

“맞아요.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네 개의 기업이에요. 모두 유해 환경 업체들이구요.”

기업들 입장에선 원금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므로 부담이 없다. 돈을 맡겨놓고도 이자는 못 받지만 여당 사무총장의 비호를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포기할 만한 액수이다.

“그 정도면 관련자가 꽤 되겠는데?”

“네, 박인재 의원 계파와 검찰, 그리고 경찰 쪽에 몇 명씩 있나 봐요.”

“흐음, 알았어. 근데 그건 아직 공개 못하는 거지?”

“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아주 지능적인 범죄라면서 뿌리를 뽑으려면 조금 더 수사를 해야 한대요. 근데 걱정이세요.”

“뭐가?”

“사무총장보다 더 윗선이 나오면 어쩌나 하세요. 월간 받아들이는 뇌물 액수가 7천만 원이 넘거든요.”

“헐!”

대졸 사원 연봉을 3,500만 원이라고 치면 두 사람 연봉을 세금 한 푼 안 떼고 매달 받아 챙긴다는 뜻이다.

“이경천 검사는 어떤 사람이야?”

“좋은 대학을 나와 단번에 사시에 합격한 인재지요. 욕심이 너무 과해서 탈이지만.”

“결혼은 했나?”

“아뇨. 소문에 의하면 재벌가 여자들 꽁무니만 쫓아다니느라 아직 미혼이래요.”

“설마 그놈이 지현이에게도 찝쩍거리는 건 아니겠지?”

“몇 번 그랬는데 나이 차가 너무 많아서 곤란하다고 정중히 사양했어요. 아버지 때문인지 그 뒤론 잠잠하고요.”

“짜식이 어디서 감히! 진짜 지현이에게 찝쩍댔어?”

“네, 두 번이나요. 나중에 혼내주세요. 헤에.”

지현이 혀를 내밀며 웃는다. 농담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수는 이경천 검사를 그냥 놔둘 생각이 없다.

검사면서 조폭의 뒤나 봐주는 놈이다. 세정캐피탈 조직원이 잡혀 오면 형량을 줄여주는 등의 불법을 저지를 것이다.

* * *

“주영아, 락희 임대 기간이 만료까지 얼마나 남았니?”

“2년 전세 계약을 맺은 건 끝났지만 앞으로 1년 2개월은 더 두고 봐야 해. 통상적으로 상가는 5년간 상권을 보호하니까.”

“임대료는 제대로 내?”

“그래. 아직 밀린 적은 없어.”

“손님이 많은가 보지?”

“늘 북적이더군. 근데 왜? 그 자식들이 너한테도 전화했니?”

“전화? 무슨 전화?

현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주영이 핏대를 세운다.

“그 자식들, 자기들이 지하에 있는 체력단련실을 쓰겠다는 거야. 그것도 무상으로.”

보아하니 세정파 조직원들이 머물 장소가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이쪽을 우습게 안 것이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우리 이실리프 상사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뭐랬는지 아니?”

“뭐라는데?”

“거기 있는 운동기구, 원래 자기들 거래. 그러면서 전부 가져가겠다고 하더라.”

“이 건물 잔금 치르고 전 주인과 통화했을 때 분명히 건물 내에 남겨놓고 간 건 우리 임의대로 해도 된다고 했어. 그러니까 촌보도 물러서지 마.”

“그래, 알았다. 미스 윤, 들었지? 그 자식들한테서 전화 또 오면 사장님이 절대 안 된다고 했다고 그래. 알았지?”

“네.”

윤성희 비서가 배시시 웃으며 물러간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고자질하는 모습을 본 것만 같아서일 것이다.

“그나저나 넌 퇴근 안 해? 이 시각까지 왜 회사에 있어? 그리고 윤 비서는 왜 퇴근 안 시키는데? 너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구속당하고 싶어?”

“끄응!”

주영은 침음을 낸다.

“야, 난들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아냐? 오늘 은정 씨랑 윤 비서 집에 인사하러 가기로 했어. 결혼하면 윤 비서 아버님이 이모부가 되니까.”

“그래? 근데 왜 안 가?”

“그야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사장인 김현수라는 악덕 기업주 때문이지. 대체 얼마나 일이 많기에 아직까지 퇴근도 못하고 있냐? 일솜씨 빠르기로 이름난 은정 씨, 아직도 사무실에 있다. 그러고 보니 구속당할 놈은 내가 아니고 너야.”

“뭐? 이 실장님이 아직도 사무실에 있다고? 전화 걸어봐.”

“오냐. 걸어주마.”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주영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그리곤 곧장 현수에게 주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주영 씨? 나 바쁘다고 했잖아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아직 일 안 끝났단 말이에요.”

“험험! 이 실장님, 저 김현숩니다.”

“에그머니나!”

우당탕, 퉁탕!

화들짝 놀라 전화기를 떨어뜨린 모양이다.

“사, 사장님이 어떻게 이 전화로…….”

“지금 주영이랑 같이 있어요. 근데 오늘 어디 가기로 했다면서요?”

“네. 오늘 이모네 인사 가기로 했어요. 사장님이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한다니까 우리도 결혼하자면서…….”

“근데 왜 이 시각까지 사무실에 있어요? 일이 많아요?”

현수의 물음에 은정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네, 요즘 업무량이 점점 많아져서…….”

은정은 무엇이 미안한지 말꼬리를 내린다. 현수는 은정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애정을 갖고 회사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손이 부족하면 사람을 더 뽑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업무는 내가 일일이 관여하지 않을 거예요. 이 실장님이 사장이다 생각하고 필요한 만큼 충원해요.”

“그래도 어떻게……. 얼마 전에 네 명이나 뽑았잖아요.”

“네 명 아니라 사십 명이라도 필요하면 뽑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요. 우리 회사 수익이 얼만지는 알죠?”

“네.”

“그럼 사람 더 써도 된다는 거 알겠네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좋아요. 그건 그렇고, 오늘은 일 그만하고 오세요. 어른들 기다리게 하는 거 아닙니다. 아셨죠?”

“알겠습니다.”

“주영이하고 윤 비서는 곧장 보낼 테니 이 실장님도 거기서 이모님 댁으로 곧장 가세요. 왔다 가면 시간 걸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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