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67화 (467/1,307)

# 467

경호팀이 근무하기 시작한 날은 2013년 8월 29일이다.

그로부터 한 달이 되는 9월 29일에 처음 집으로 간 가가바는 가족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이야기를 듣고는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경호원으로 근무하기는 하지만 대통령궁을 떠나면서 이제 찬밥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귀한 대접을 받았기에 흘린 눈물이다.

그날 정말 최선을 다해 근무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현수를 진정한 보스로 받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보스의 비밀을 누설했다.

어쩌다 보니 한 말이다. 그리고 보스가 꽃다운 아가씨들과 결혼한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을 불러들이자 그때야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대통령궁에 있는 동안 수없이 받았던 보안 교육의 내용을 떠올린 것이다.

어쩌면 오늘 이 좋은 직장에서 잘리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쫓겨나면 대통령궁으로의 복귀도 어려울 것이다. 이미 다른 인원으로 충원을 마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축 늘어진 어깨로 들어섰던 것이다.

“알아들은 것 같으니 더 말 안 한다.”

“감사합니다, 보스!”

“그래, 나가봐도 좋다.”

“네, 보스!”

가가바는 너그럽게 용서해 준 젊은 보스에 대한 충성심이 솟아나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절도 있는 동작으로 머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잉! 자기야, 이제 나하고 놀아요.”

“그래요. 우리 수영해요.”

연희와 이리냐는 비키니 차림이었다. 현수는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응? 그래. 그럴게. 잠깐만 기다려.”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니 수영복을 꺼내 놓았다. 하여 피식 웃고는 갈아입었다.

“우와! 우리 자기! 정말 대단해요!”

“어머! 진짜! 현수 씨 하루 종일 운동만 해요?”

조각 같은 상체를 본 두 여인의 반응이다.

“보기 괜찮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에요. 정말 멋져요. 언니, 우리 자기야 사진 찍어놔요.”

“그래. 조금만 기다려.”

안으로 들어갔던 연희가 들고 나온 것은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다. 영국의 정원들을 찍던 것이다.

“현수 씨, 그러지 말고 포즈 좀 취해봐요.”

“그럴까?”

현수는 여러 자세를 취해 보였다. 이리냐와 함께 찍기도 했다. 어느 각도에서 찍든 현수의 근육은 예술이다.

하여 정신없이 수십 컷을 찍었다.

“이리냐, 나도 찍어줘.”

“네, 언니.”

“가르쳐 준 대로만 하면 돼. 알았지?”

“네, 언니.”

이번엔 연희와 사진을 찍었다.

마주 보고 웃는 모습, 뒤에서 살짝 껴안은 모습, 정면 포옹,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얹은 모습, 아예 번쩍 안아 든 모습, 이마에 키스해 주는 모습 등 다양한 자세였다.

“치! 나도, 나도!”

사진을 다 찍은 이리냐의 요청에 따라 같은 포즈를 또 취해줘야 했다. 현수는 환히 웃었다.

“자아, 이제 수영할 시간이다.”

와다다다다!

텀벙―!

이리냐가 먼저 뛰어들자 연희도 따라 한다. 현수는 멋진 입수 장면을 연출하며 수면 아래로 파고들었다.

두 마리 인어가 노니는 수영장 안으로 들어간 현수는 부드럽게 유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흐음! 엄청나군.”

맥주 200만 캔이 담긴 컨테이너를 보고 현수가 내뱉은 일성이다. 군화 6만 족이 담긴 쪽도 만만치 않게 많다.

“좋아, 아공간 오픈!”

말 끝나기가 무섭게 시꺼먼 구멍이 일렁인다. 눈앞의 컨테이너들을 집어넣는다고 생각하니 스르르 사라진다.

모든 것을 담은 후엔 차를 몰아 빈 컨테이너가 산더미처럼 쌓인 야적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빈 컨테이너 2,000여 개를 구입했다. 이것들은 나중에 가져가기로 했다.

목적을 달성한 현수는 다시 저택으로 향했다.

연희와 이리냐, 그리고 두 분 장모님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담소도 나누었다. 강진숙과 안나는 서로 살아온 환경은 달랐지만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서재에 들어가려는데 연희가 자꾸 보챈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자는 것이다. 챙 넓은 모자를 썼고, 한국에서 가져온 항온 티셔츠를 입었기에 야외 활동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리냐는 요즘 한류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하여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를 보느라 방에 있다고 한다.

“이런 시절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꿈만 같아요.”

“만족해?”

“그럼요. 엄마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겨울만 되면 삭신이 쑤셔온다고 걱정하셨는데 여긴 늘 덥잖아요.”

“다행이네. 근데 회사 일은 안 할 거야?”

“저야, 현수 씨 비서잖아요. 수행비서. 헤헤.”

혀를 내밀곤 웃는다.

“그건 그래. 아무튼 마냥 놀기만 하지 말고 뭔가 해. 연희 씨가 좋아하는 걸로. 알았지?”

“그렇지 않아도 요즘 브라질 건 자료 조사 중이에요.”

“그래?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어?”

“해외영업부는 거기에 목숨 걸었어요. 요즘 세계적인 불황이라 해외에서 발주되는 공사가 거의 없잖아요.”

“하긴…….”

현수는 굳이 반론을 재기하진 않았다.

“결혼하면 여기에 쭉 머물 거예요?”

“여기 많이 있겠지. 농산이나 농장, 축산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할 일이 엄청 많으니까.”

“한국에 오래 못 있으면 언니한테 미안하잖아요.”

“자주 왔다 갔다 할 거야. 뭐, 정 안 되면 지현 씨도 이리 부르지.”

“사이좋게 지내도록 애쓸게요.”

“고마워.”

현수는 진심을 담아 웃어주었다.

부처님도 시앗을 보면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기꺼이 남편을 나눠 준다는데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저택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이르자 작은 호수가 나타난다. 주변으로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이 저택의 전 주인이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이다. 호수 안엔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까지 갈 조각배가 떠 있다.

“배 타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대신 중간에 일어서면 안 돼. 그럼 배 뒤집어질 수도 있으니까. 알았지?”

“네.”

현수가 먼저 조각배에 올라 자리를 잡자 연희가 조심스레 올라탄다.

삐이걱! 삐이걱! 삐이걱! 삐이걱!

그리 크지 않기에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십여 분쯤 걸린 듯하다. 현수는 노를 저으면서도 혹시 있을지 모를 악어나 아나콘다를 경계했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확인해 보니 다행히 별다른 생물체는 없는 듯하다.

“현수 씨, 섬에도 가요.”

“그래.”

그동안 익숙해진 노를 이용하여 배를 대고 섬에 올랐다.

인공 섬의 크기는 사방 50m 정도 된다. 그중 삐쭉 튀어나온 암반 위에 자그마한 파고라9)가 있다.

목조인데 흰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지붕의 안쪽은 유리로 덮여 있다.

위는 등나무가 자라 있어 완벽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제법 크기가 커서 20여 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아래엔 잘 만든 목조 탁자가 있으며 주변으로 의자가 놓여 있다.

“여기 좋은데요?”

파고라 주변은 온통 꽃밭이다. 현수가 주인이 되기 이전부터 제법 오래 방치되었음에도 아직 기존의 체계가 무너진 것은 아닌 듯싶다.

“그러게. 잘만 가꾸면 멋지겠어.”

“여기 제가 손볼게요. 그래도 돼죠?”

“그럼. 이 집은 전부 연희 소관이야.”

“정말요? 정말 뭐든 마음대로 해도 돼요?”

“그래. 지붕부터 기초까지 바꾸고 싶은 데 있으면 바꿔.”

“호호! 고마워요. 자, 그런 의미에서 선물!”

말을 마친 연희는 두 눈을 꼭 감는다. 그리곤 뒷짐을 진 채 입술만 쭉 내민다.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주어진 기회를 놓칠 현수가 아니다. 성큼 다가가 와락 껴안으며 입술을 탐했다.

입술이 닿는 순간 시간은 멈췄다. 그리곤 영혼과 영혼이 섬세하게 섞이기 시작했다.

* * *

“후후! 후후후!”

아르센 대륙으로 차원 이동한 현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연희와의 달콤했던 시간 때문이다.

호수 중앙의 섬에 머물며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저택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연희도 잠들고 이리냐도 잠들었음을 확인한 현수는 옥상에 올라 차원이동을 했다.

이쪽에서도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마나여, 이젠 저쪽 세상으로 보내줘.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이번에도 예상한 장소에 당도했다.

현수는 아르센 대륙에 적합한 의복으로 갈아입은 후 빌모아 일족이 사는 입구를 힘차게 두드렸다.

쿵, 쿵, 쿵―!

“뉘슈?”

“접니다! 하인스!”

“크크, 요즘 자주 보네그려. 어서 오게. 통행세는 알지?”

또 한쪽 눈을 찡긋거린다. 어찌 모르겠는가!

이번에도 캔 여섯 개 묶음을 건넸다.

“오오! 이건 처음 보는 모양이네?”

“네, 그래서 맛이 조금 다를 겁니다. 참, 시간이 없어 시원하게 만들지 못했으니 찬물에 담갔다 드십시오.”

“언제나 그렇지만 고맙네. 자, 자넨 통괄세.”

한쪽 무릎은 굽히고 손을 휘휘 돌리다 뒤로 뽑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다. 뮤지컬 같은 데 간혹 나오는 그런 동작이다.

그런데 워낙 짜리몽땅해서 그런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하하! 네, 감사합니다.”

통로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요란한 망치질 소리를 들어야 했다.

땅, 땅, 따땅, 따땅땅! 땅, 땅, 따땅! 따다다다당!

모두 작업 삼매경에 빠졌는지 현수가 지나감에도 시선 한번 주지 않는다. 그렇게 통로를 따라 가장 안쪽에 당도하자 지금까지의 작업장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한눈에 보기에도 개인 작업장이다.

땅, 땅, 따땅, 따땅!

열심히 망치질을 하는 드워프는 일족의 족장인 나이즐 빌모아이다. 현수는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소리의 간격이 약간 멀어진다 싶을 때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작업 삼매경에 빠진 장인을 방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똑, 똑, 똑!

“누구? 아! 하인스 군, 어서 오시게.”

족장은 이마에 솟은 땀을 닦아내며 환히 웃는다.

“뭐하시는 거예요?”

“자네에게 줄 선물 하나를 만드는 중이었네.”

“네? 제게요?”

“그래. 우리 일족에겐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금기가 있네.”

“금기라면……?”

“첫째는 인간에게 병장기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둘째는 마법 갑옷이 될 헤르시온은 만들지 않는다라네.”

“……!”

“그런데 그 두 가지 금기가 모두 깨졌네. 자네 때문이지.”

“병장기는 그렇다 치지만 헤르시온은 왜 저 때문이죠?”

“내가 자네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네?”

“자네 헤르시온이 뭔지는 아나?”

“그럼요. 대마법 기능이 있는 갑옷이잖아요.”

“그래, 헤르시온의 평상시 모습은?”

“목걸이, 또는 반지 아닌가요?”

언젠가 읽었던 책에 이렇게 적혀 있던 것 같다.

“아닐세. 내가 만드는 헤르시온은 평상시엔 허리띠 역할을 하네. 주인이 마나를 불어넣으면 전신을 감싸는 갑옷이 되지.”

“그래요?”

“숨 쉴 구멍과 소리를 들을 구멍 이외엔 모든 곳이 막혀 있어 용암 속에서도 얼마간은 버틸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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