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68화 (468/1,307)

# 468

“그런데 그런 걸 왜 제게? 저, 그런 거 별로 필요 없는데.”

“라수스의 지배자 라이세뮤리안님과 동행한다고 했지? 그분은 8서클 마법사이면서 소드 마스터이네. 당해낼 수 있나?”

“네?”

무슨 의도인지 몰라 반문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즐 빌모아는 이를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사람과 어찌 비교하느냐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나는 헤르시온의 설계도에 따라 제작을 하네. 자넨 마법사이니 여기 있는 도해대로 갑옷 안쪽에 마법진을 그려 넣게. 그럼 유사시 자네를 보호할 것이네.”

“마법진이요?”

“그래. 우리 일족의 귀빈이기에 족장의 권한으로 금기를 깨고 맹약의 친구 하인스에게 선물하겠네.”

“아, 감사합니다.”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마법 갑옷 헤르시온의 설계도가 있다고 한다. 그걸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자, 이게 마법진이네. 잘 보게. 갑옷 제작은 이제 거의 끝나가니 자네가 거기에 그려 넣고 구동만 시키면 되네.”

“흐음, 네.”

현수는 일전에 나이즐 빌모아가 만들어준 의자에 앉아 헤르시온의 설계도를 살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르센 사람들이 만든 것 같지는 않다.

‘여기도 UFO가 왔었나? 이 사람들은 이런 걸 설계할 능력이 없을 텐데.’

9장 헤르시온의 설계도

아르센 대륙은 마법을 제외하곤 지구의 중세와 거의 흡사하다. 왕족, 귀족, 기사, 평민, 농노, 노예로 신분이 나뉘어 있다.

모든 것이 인력에 의해 작동되는 시스템인 곳이다. 이런 곳에 이렇게 차원 높은 설계도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족장님, 실례의 말씀이시만 이거 빌모아 일족이 설계한 겁니까?”

“아냐. 아주 오래전 우리 조상님께 어떤 드래곤이 헤르시온의 제작을 의뢰하면서 맡겨놓고 간 거야.”

“그런데 어찌 설계도가 남아 있는 거죠? 드래곤이 회수하지 않았나요? 아님 따로 복제하여 그려두었던 건가요?”

“아니. 그 드래곤은 오지 않았네. 조상님이 만드셨던 헤르시온은 마법진이 그려지지 않아 다 삭아버렸네. 벌써 천 년도 넘은 일이네.”

“헐!”

천 년 전의 설계도치고는 상태가 너무나 양호하다. 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니 보존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근데 누가 이걸 설계를 한 거죠?”

“모르네. 조상님들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에 사라진 마도시대 때 유물이라는 말도 있는데 확실하진 않네. 아무튼 그게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설계도일 거네.”

“아, 그래요? 제가 좀 자세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그럼. 얼마든지. 자넨 예외이니.”

고개를 끄덕이곤 망치를 잡는 나이즐의 말에 현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 맹약의 친구라는 말을 했네. 그 뜻이 뭔지 모르지?”

“네.”

“자넨 영원히 우리 빌모아 일족의 귀빈이라는 거네. 자네 덕에 흩어져 살던 동생들 다섯과 함께 있으니 참으로 노년이 행복하네. 그래서 만장일치로 자넬 우리 빌모아 일족의 맹약의 친구로 삼았네. 그런 의미에서 헤르시온을 선물로 선택한 것이고.”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계도에 시선을 주었다. 아주 섬세하면서도 복잡다단하다. 아이큐 200이 넘는 현수도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일부 이해할 수준이다.

“이런 걸 대체 누가 설계한 거지? 좋아, 마법진이란 건 대체 뭐야?”

안쪽에 그려 넣을 마법진을 살펴보니 이건 좀 알 만하다.

첫째는 경량화 마법이다. 육중한 갑옷이 깃털처럼 느껴지도록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다.

둘째는 스트렝스이다. 장인의 손으로 제작될 것이기에 경도가 대단하지만 거기에 추가로 강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셋째는 헤이스트이다. 헤르시온을 걸친 자의 움직임을 보다 빠르게 만들어준다.

넷째는 바디 리프레시이다. 전투 중 피로는 느낄 때 갑옷의 허리 부분을 치면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다섯째는 수렴과 발산에 관련된 마법진이다. 이게 있어 평상시엔 허리띠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조금 복잡해 보였으나 쉽게 이해했다.

여섯째는 보존 마법이다. 어렵게 만든 헤르시온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모두 상급 마나석을 박아야 작동하게 되어 있다.

‘나라면 여기에 추가로 몇 개의 마법진을 더 그려 넣겠어.’

현수는 눈빛을 빛내며 추가로 마법진을 그려 넣을 공간을 찾아보았다.

첫째, 항온 마법진이다. 갑옷이 착용된 동안 추위와 더위, 또는 과도한 행동으로 인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함이다.

둘째, 마나 집적진이다. 마나석이 담고 있는 마나가 모두 소진되면 헤르시온은 조금 단단한 갑옷 수준으로 전락한다.

만일 마나 집적진으로 끊임없이 마나를 채워준다면 언제까지고 사용할 수 있는 무적 갑옷이 될 것이다.

셋째, 인비저빌러티이다. 헤르시온을 걸친 보이지 않는 적을 만난다면 누구든 지리멸렬하게 될 것이다.

넷째, 반탄 마법진이다. 상대의 공격을 두 배의 강도로 퉁겨주는 마법진이 새겨진다면 방어할 필요가 없어진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현수는 설계도를 카메라로 찍었다.

작업을 하던 중 빛이 번쩍이자 나이즐 빌모아가 뭔가 싶어 온다. 하지만 이미 다 찍고 집어넣은 뒤이다.

두고두고 확인해 보고 싶어서이다.

“전에 말했던 나머지들은 다 끝난 건가요?”

“그래. 다 만들었지. 창고에 가보게.”

“같이 가세요. 저로 드릴 게 있으니까요.”

“오, 그래? 그럼 가세.”

창고에 가보니 검, 창, 방패, 각반, 장갑, 완호갑 등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

“이게 다인가요?”

“자네가 원했던 3만 세트를 모두 완성시켰네. 가져가게.”

“고맙습니다.”

현수는 두말 않고 모든 걸 아공간에 담았다. 대신 부드바이저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참, 작업을 도와주셔야 합니다. 오늘은 전보다 양이 훨씬 많거든요.”

“그, 그래? 잠시만 기다리게.”

잠시 후, 수십여 명의 드워프가 모여든다. 이에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인원으론 다 못해요.

“오! 그렇게 많아?”

족장의 입이 찢어진다. 물론 좋아서이다. 잠시 후 이백여 명이 드워프가 모여들었다.

“자, 이제 꺼냅니다. 제가 꺼내 놓는 대로 안쪽부터 차곡차곡 쌓으십시오.”

말을 마치고는 맥주 캔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안 그러면 움직이질 못하기 때문이다.

맥주 200만 캔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그렇기에 모든 일이 마쳐졌을 땐 작업의 도사라 불리는 종족인 드워프 일백여 명이 피곤에 지쳐 널브러졌다.

한편, 나이즐 빌모아를 비롯한 그의 다섯 동생은 산더미처럼 쌓인 맥주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두고두고 먹을 엄청난 분량이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나중에 드릴게요.”

“그럼, 그래도 되네. 하하! 정말 고맙네. 내 생전에 이렇게 많은 맥주를 보리라곤 상상도 못했네, 하하하! 하하하하!”

“다음엔 금괴를 가져가겠습니다.”

“걱정 말게. 자넨 우리 일족의 맹약의 친구이네. 언제든 자네가 부탁한 일이 작업의 최우선이 될 것이네, 친구.”

“하하, 네.”

빌모아 일족을 떠난 현수는 곧장 텔레포트했다.

“이봐, 대체 어딜 다녀오는 거야?”

“으응? 잠깐 어디 좀…….”

이곳에 와선 날짜 확인을 못했다. 드워프는 인간의 달력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 이틀이나 죽치고 있었네. 어딜 다녀오는 건데?”

아무래도 차원 이동 할 때 날짜 계산을 잘못한 모양이다. 현수는 순간적으로 무어라 둘러대야 하나 싶어 머뭇거렸다.

“설마 자네…….”

“설마라니? 뭐?”

라세안의 눈빛이 묘해진다.

“자네, 조금 피곤해 보이는데, 설마 그 케이트하고 즐거운 밤을 보내고 온 거야? 그런 거야?”

“뭐?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아니긴, 근데 뭐하러 거기까지 갔다가 와? 여기도 있잖아.”

“여기? 뭐가 있는데?”

“저기, 쟤. 카트린느 말이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케이트와 카트린느, 그리고 다프네는 자네에게 기꺼이 양보하겠네.”

“뭐라고?”

“셋 다 정말 탐나지만 친구인 자네를 위해 흔쾌한 마음으로 양보하는 것이니 받아들이게.”

지난 이틀간 라세안은 카트린느를 어떻게 할까 말까 고민했다. 소드 마스터에 8서클 마법사라는 것을 알았으니 손가락만 까딱하면 꾀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 세상의 여자들은 대개 강한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다프네가 생각났다. 그 아인 현수에게 호감을 품은 것 같다.

다프네와 현수를 엮어놓으면 라수스 협곡 어딘가에서 핵 배낭이 작동하는 끔찍한 일은 생각지 않아도 된다.

엮어주어야 하는데 마땅치 않다. 마침 현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보아하니 케이트를 눌러주러 간 듯하다.

하여 케이트와 다프네를 한꺼번에 엮어주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런데 만일 케이트만 취하고 다프네를 포기한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하렘이다.

눈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카트린느도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소유자이다. 키도 적당히 크고 얼굴도 예쁘다.

게다가 현수가 도와줘야 할 아드리안 공국 변경백의 손녀이다. 같이 엮기에 딱 좋은 대상이다. 이것이 현수가 없음에도 카트린느가 여전히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 친구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어? 케이트는 그렇다 쳐도 다프네는 미혹의 숲을 안내해 준 걸로 끝이잖아. 저기 있는 카트린느는 나이젤 산맥을 통과하면 끝이고.”

“아, 이 사람아, 젊은 사내가 왜 이렇게 야망이 없어? 사내란 모름지기 삼처사첩, 아니, 팔처구첩을 거느려야 하네.”

“뭐라고?”

“자네가 뭐라 하든 난 다프네와 케이트, 그리고 저기 있는 카트린느를 자네의 여인으로 인정하겠네.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마음대로 하게.”

“헐! 이건 무슨…….”

현수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을 끊었다.

마침 카트린느가 다가온 때문이다.

“아! 오셨습니까, 마탑주님?”

“그래, 길잡이는 구했나?”

“네, 그럼요. 언제든 명만 내리시면 출발해도 됩니다.”

“그래? 그럼 곧바로 출발하지.”

“네. 잠시 후에 나오세요.”

카트린느가 바쁘게 밖으로 나가자 라세안이 입맛을 다신다.

“자네 진짜 저 아가씰 안 취할 생각인가?”

“그건 왜 물어?”

“뭐, 자네가 싫다면 내가…….”

라세안의 말이 끊겼다. 현수가 버럭 소릴 지른 때문이다.

“아니! 내 것이네! 내가 가질 테니 자넨 꿈도 꾸지 말게!”

“허험, 내가 뭐라 했나? 자네가 안 가지면 그런다고. 그럼 라수스 협곡 입구에 남겨놓고 온 다프네는 내가 가져도…….”

“그것도 안 되네.”

“쩝! 거봐. 결국 자네가 다 가질 거면서 조금 전엔 왜 뺐나?”

라세안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다프네를 엮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수는 세 여인 모두 취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드래고니안에게 순결을 잃는 일을 막아주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일행은 출발했다. 그런데 길잡이 표정이 묘하다.

“이보게, 길잡이의 표정이 왜 저런가?”

“왜긴, 오후에 출발하는 건 처음이라 그렇지. 이렇게 가면 불과 몇 시간 후에 야영을 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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