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9
“그래서? 그럼 뭐 어떠나? 텐트 치고 자면 되는데.”
“하긴, 그 텐트라는 놈 속엔 이와 빈대, 그리고 벼룩이라는 놈이 없어서 좋더군.”
현수를 따라다니면서 라세안은 야영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라세안의 말처럼 세 시간쯤 지나니 사방이 어두워진다.
“마탑주님, 이 부근에서 야영을 해야 한답니다.”
“왜? 조금 더 가지.”
“식수도 그렇고 조금 더 가면 고블린 집단 서식지가 있어 불편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 그럼 여기서 쉬지. 카트린느, 너는 푹 쉬어.”
“네?”
“들었다. 우리 영지 기사단장으로부터 음식 솜씨가 완전 젬병이라며? 앞으로 음식 만드는 데는 얼씬도 하지 마라.”
“……!”
카트린느는 현수가 없는 동안 오면서 맛보았던 불고기를 만들어보겠다고 주방기구를 들고 설쳤다. 그리고 세 시간이 지났을 때 음식을 맛본 모든 사람이 토했다.
짜고, 시고, 떫고, 쓰고, 그야말로 인간이 먹을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여 배식하지 않은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그걸 주워 먹었던 굶주린 개도 토했다고 한다.
이후 카트린느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방 출입이 금지되었다.
오는 동안 이런 이야길 들었기에 농담 삼아 쉬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듣는 당사자인 카트린느는 몹시 무안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별일 있을까 싶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아공간에서 레인지와 냄비, 그리고 생수를 꺼냈다.
국물이 허연 라면이 생각이 나서이다.
라세안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러면서 소주도 꺼내 놓으라고 성화를 한다. 소주와 라면의 얼큰한 국물이 어떤 궁합인지를 알게 된 때문이다.
현재 일행은 넷뿐이다. 현수와 라세안, 그리고 카트린느와 길잡이이다. 하여 라면 여섯 개를 넣고 끊였다.
“자, 다 됐다. 이제 먹자.”
곁에서 침을 질질 흘리던 라세안이 가장 먼저 면을 떠간다. 이젠 젓가락질도 제법 하기에 용케 흘리지 않았다.
다가오기 어려워하는 길잡이에겐 현수가 떠줬다.
이실리프 마탑주가 직접 떠주는 음식을 받은 길잡이는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응? 카트린느는 왜 안 오지?”
“글쎄, 어디서 용변이라도 보나?”
“에이, 먹는 음식 앞에 놓고 용변이 뭐냐?”
“그, 그런가? 미안. 아무튼 난 모르겠네.”
남들이 있으면 존댓말을 써주지만 단둘이 있으면 늘 이런 식이다.
“면발 다 불면 맛이 없는데.”
자신이 먹을 분량을 담던 현수는 카트린느가 들어간 방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와이드 센스 마법을 구현시켰다.
“뭐야? 얼마나 멀리 갔기에…….”
와이드 센스 마법은 시전자를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번져 나가며 여러 가지를 탐색하는 마법이다.
200m 정도로 범위가 넓어졌음에도 카트린느를 찾을 수 없었다. 하여 차츰 범위를 넓혔다. 그렇게 2㎞까지 뒤졌지만 없다. 원래는 1㎞까지가 한계였지만 켈레모라니의 비늘을 얻고 난 이후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봐, 라세안, 카트린느가 감각에 잡히지 않는데?”
“어디까지 뒤진 건데?”
“2㎞. 근데 카트린느의 걸음으로 라면 끓이는 시간 동안 그 먼 거리를 갈 수 있을까?”
“뭐? 2㎞? 뻥치는 거 아니고? 8서클이라며? 근데 어떻게 2㎞를 탐색해? 안 그래?”
말은 이렇게 했지만 라세안의 시선은 현수에게 고정되어 있다. 지금 현수는 방심한 상태이다. 따라서 진정한 서클 수를 가늠할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다.
이런 속내를 모르기에 현수는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2㎞ 맞아. 근데 안 잡혀. 어떻게 된 거지?”
‘무서운 놈! 10서클 맞으면서 8서클이라 속인 거군. 하여간 이놈 속엔 대체 뭐가 있지?’
라세안이 알고 있는 인간의 마법은 8서클 마스터가 되어야 간신히 1㎞ 범위를 탐색한다.
9서클이 되면 1.3㎞이고, 10서클이 되어야 2㎞이다. 따라서 현수는 명약관화한 10서클 마법사이다.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현수의 말이 맞나 확인하기 위해 와이드 센스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런데 진짜 현수의 말대로 카트린느의 종적이 잡히지 않는다. 라면 하나 조리하는 동안 그만한 거리를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 납치당한 건 아닐까?”
“납치?”
“그래! 우리 너무 방심하고 있었잖아.”
“자네가 한번 찾아보게. 난 여길 지키고 있을 테니.”
“알았어. 내가 가지. 플라이!”
허공으로 솟아 오른 현수는 사방을 살폈다. 소드 마스터가 되면서 시력도 좋아져 5㎞까지는 선명하게 식별한다.
“카트린느!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라면 다 불어터지는데. 에잉!”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현수는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카트린느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혹시 몬스터에게 잡혀갔나 싶었지만 부근엔 아무것도 없다.
“이상하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원래 있던 자리로 와보니 라세안은 라면 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에구,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
“카트린느는? 찾았어?”
“찾았으면 혼자 오겠어? 아무래도 뭔 일 일어난 것 같아. 난 이쪽을 뒤질 테니 자넨 반대쪽을 찾아봐.”
후르릅!
“알았네.”
현수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며 숲 속을 뒤졌다.
문제는 산속은 어둠이 빨리 내린다는 것이다. 얼마 뒤지지도 못했는데 사방이 어두워진다.
“이런 제길!”
어둠을 뚫고 보는 오올 아이까지 구현시키며 뒤졌지만 카트린느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야영지로 되돌아오니 마침 라세안도 도착한다.
“찾았나?”
“아니. 이쪽과 이쪽, 그리고 이쪽을 뒤졌지만 성과가 없어.”
“그럼 대체 뭐야? 어디로 사라진 거야?”
“주변에 뭔가 다가온 것이라면 내 감각을 피할 수 없는데.”
라세안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게.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어도 자네와 난 소드 마스터잖아. 8서클 마법사이고.”
‘그건 나고, 인마. 넌 10서클이잖아. 이 자식은 끝까지 날 속이려 하네. 아무튼 10서클이 아니었으면 한바탕 하겠지만 지금은 내가 지니 속아주는 척하마.’
라세안은 대답 대신 속으로 투덜거렸다.
“우리 감각을 속이고 뭔가가 다가와 카트린느를 납치했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렇다면 이 근처 어딘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문제는 이제 깜깜해졌다는 거지. 이런 어둠 속에서 뭘 어쩌자고? 계속 수색할 거야?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찾아보세.”
“으음!”
라세안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여 침음을 내자 텐트를 꺼내라고 성화다. 하여 원터치 텐트 두 개를 꺼내 던졌다.
라세안은 즉시 공간 확장 마법을 걸고는 현수로부터 강탈 비슷하게 선물 받은 침대를 세팅한다.
쟈가드 원단 오리털 이불과 순면 패드, 그리고 라텍스 베개까지 풀 세트를 세팅하고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간다.
“아아! 좋다!”
노인이 뜨끈한 목욕탕 속에 들어가며 내는 소리를 내고는 눈을 감는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했을 땐 실제로 피곤을 느낀다.
그렇기에 잠을 자려는 것이다.
같은 순간, 길잡이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현수가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 던지는 순간 허공에서 일렁이더니 작은 집이 된다.
바닥으로부터 올라올 냉기를 막으라는 뜻으로 10㎝ 두께의 스티로폼을 바닥에 깔아주었다. 그리곤 오리털 침낭을 주었다.
이게 뭔가 하여 멍하니 바라볼 때 가서 씻고 오라고 한다.
대마법사의 명을 어찌 어기겠는가!
약간 추웠지만 옷을 다 벗고 수욕을 했다.
오들오들 떨면서 돌아오자 침낭 안에 들어가 자라고 한다.
혹시 있을지 모를 몬스터의 내습을 어쩌나 싶은데 걱정 말라며 라세안을 가리킨다. 감각이 예민하여 잠들었다가도 몬스터가 나타나면 도륙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한다.
길잡이는 시키는 대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약간 싸늘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차츰 더워지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혼곤한 수면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다시 한 번 와이드 센스 마법을 구현시켜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잠든 사이에 몬스터가 오면 귀찮을까 싶어 라세안이 여기저기 소변을 지려놓고 다녔기에 쥐새끼 한 마리 없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깜깜한 밤이 되었지만 현수는 야영장 인근을 시작으로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스승이 보호해 달라는 아드리안 공국의 첫 번째 영지에서 만난 여인이다.
레더포드 백작은 인품도 괜찮았다. 그런 사람의 손녀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중간에 사라졌다고 하여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그런 책임의식이 있었기에 밤이지만 사방을 뒤지고 있는 것이다.
단번에 납치당하여 하늘로 끌려 올라간 것이 아니라면 흔적이 남는다고 생각한 현수는 끈기를 가지고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다 야영장으로부터 100여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음산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느낌을 받은 곳이 또 있다.
권지현의 모친인 안숙희 여사를 치료하러 가는 중 보았던 한사랑 기도원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다.
‘흐음! 이건 대체 뭐지? 여기서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던 중 널찍한 바위 하나를 보게 되었다. 이런 큼지막한 바위가 있으면 비가 올 때 수분을 조금 더 오래 잡아놓는다. 그렇기에 바위 주변엔 풀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없다.
안력을 높여보니 웬만해서 보이지 않을 부위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흐릿하다.
뭔가 싶어 살펴보던 중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이 있다.
멀린이 남겨두었던 많은 마법서 가운데에는 흑마법사의 것들도 있다. 흑마법이라 하여 모두가 나쁜 것을 아니라 생각하여 보관한 것들이다.
그중 하나에서 이와 유사한 마법진을 보았다.
“흐음! 유추해 해석해 보건대 이건 공간 이동 마법진인데, 이 바위를 매개로 이곳과 다른 공간이 연결된다는 건가?”
주변을 더욱 세심히 살핀 현수는 작정을 하고 바위 위로 올라갔다. 마법진이 활성화되어 있다면 올라서는 즉시 어디론가 이동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뭐야, 이건? 공간 이동 마법진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려서려던 찰나, 바위가 있던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진다. 그와 동시에 현수의 신형이 빨려들었다. 저항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
8서클 마스터의 반열에 올랐으니 매직 캔슬 마법만으로도 마법진 구동을 멈출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았다.
카트린느를 찾을 유일한 단서라 생각한 때문이다.
츠라라라라랏―! 콰앙! 콰아앙―!
어딘가에 당도하는 순간 허공으로부터 오리 알 굵기의 쇠창살이 바닥으로 내려꽂힌다.
순식간에 감옥 비슷한 것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웬만하면 당황하겠지만 현수는 그러지 않았다.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날카로운 안광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대략 2∼3분쯤 지났을 때 무언가가 다가온다. 그런데 생기가 느껴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책에서만 보았던 골렘인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