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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472화 (472/1,307)

# 472

“저, 저쪽에… 저기 보이는 산에 커다란 동굴이 있습니다. 그 안에 계시는 걸로 짐작할 뿐입니다.”

길잡이 머피가 손짓한 곳을 보이 나이젤 산맥의 중심부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이다.

울창한 수림과 바위로 이루어진 악산이다.

“라세안, 자넨 여기에 있게. 나 혼자 다녀오겠네.”

“뭐라고? 설마 드래곤을 혼자서 상대하려고?”

“상대라기보다는 담판이네. 카트린느를 내놓으라고 말할 것이네.”

“안 들어주면?”

“드잡이를 하게 되면 해야겠지.”

말을 하며 현수는 아공간에 담겨 있는 보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인간 세상에선 투핸드 소드로 쓰일 대형 검과 전신을 가릴 수 있는 대형 방패이다.

현수는 아주 빠른 속도로 검과 방패에 각종 마법을 인챈트하였다. 혹시 있을지 모를 대결을 염두에 둔 마법들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라세안의 눈엔 우려의 빛이 감돈다.

다른 일족과의 교류를 끊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하여 얼마나 많은 일족이 세상에 남아 있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그런 일족 가운데 하나가 어쩌면 오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10서클 마법과 그랜드 마스터에 버금갈 수준의 검법을 구사할 상대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수는 분명 리치를 제압했다. 의복은 흐트러져 있었지만 상처 입은 곳은 없다. 비교적 여유 있게 수많은 언데드를 거느린 리치를 상대했다는 뜻이다.

리치가 데스 브레스를 썼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궁극 마법도 쓰지 않고 알아서 죽어주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데스 브레스는 드래곤의 브레스에 버금간다. 물론 마법이 지배하는 범위가 매우 좁기는 하다. 그래도 그걸 수없이 막아냈다면 드래곤의 브레스 또한 막을 수 있다.

게다가 골드 일족은 자뻑이 심하다. 자신들의 마법 성취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기에 브레스를 쓰지 않는다.

하여 사람들은 골드 드래곤이 어떤 브레스를 쓰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지난 수천 년간 브레스를 뿜어낸 골드 일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세안이 알기로 골드 드래곤은 모두 9서클 마스터이다.

더 이상의 성취는 없다.

10서클 부활 마법인 리저렉션(Resurrection)을 쓸 수 있다면 새로 로드가 된 옥시온케리안이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로드는 명예직이면서 속박직이다. 후임이 정해지기 전까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레어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10서클이었다면 전임 로드를 부활시켜 그 자리에 못 박아 두었을 것이다. 속박보다는 자유가 좋기 때문이다.

따라서 10서클 대마법사이자 소드 마스터 최상급인 현수와 9서클 마스터쯤 된 골드 일족이 맞붙으면 필패이다.

하여 우려의 빛을 나타냈다. 왕래는 없지만 일족이 죽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이다.

“갔다 올 테니 기다리게.”

“나도 같이 가세.”

“아니, 자넨 불편할 거야. 자넨 드래고니안이잖아.”

“그, 그런가?”

라세안은 신분은 감췄기에 머쓱해한다. 드래곤과 드래고니안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수준의 차이이다. 따라서 드래고니안 주제에 따라가겠다는 말을 해선 안 된다.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라세안이 대답하기도 전에 현수의 신형은 허공을 가르고 있다. 길잡이 머피가 일러준 바로 그 방향이다.

11장 드래곤과 싸우다!

“흐음, 여기군.”

높이 70m가 넘는 대형 동굴에 당도한 현수는 조심스런 눈길로 주변을 살폈다. 드래곤의 레어 인근엔 보호를 위한 가디언들이 있기 때문이다.

“와이드 센스! 어라? 없어?”

생물체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아 동굴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렇게 대략 200여m쯤 들어가니 대형 광장이 나타난다.

어마어마하게 크다. 산속에 어떻게 이런 공간이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헉?”

“너는 누구지?”

뭔가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느닷없이 엄청난 덩치가 나타나 입구를 막아선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골드 드래곤이다.

“네가 방귀쟁이 드래곤 제니스라는 노래를 만든 하인스라는 용병 나부랭이인가?”

“네?”

“드래곤 제니스의 방귀 냄새 지독해,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를 만든 장본인이냐고 물었다.”

캐러나데 사막과 마물의 숲을 거치는 용병행을 할 때 테일러 등 죽은 용병들을 위한 애도의 곡으로 클레멘타인을 개사해 불렀다. 그리고 침울해진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루돌프 사슴코를 개사하여 방귀쟁이 드래곤 제니스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현재 미판테 왕국 최고의 유행곡이다.

나후엘 자작이 다스리는 율리안 영지는 물론이고 서쪽 끝에 있는 테세린 영지까지 번져 있다.

뿐만 아니라 최대 폭이 30㎞나 되는 바벨 강을 건너 올테른에도 전해졌다. 이밖에도 방귀쟁이 드래곤 제니스라는 노래는 아르센 대륙으로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지는 중이다.

경쾌한 멜로디와 박장대소할 가사 때문이다.

현수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레어는 드래곤 로드인 옥시온케리안의 쌍둥이 동생 제니스케리안의 둥지이다.

그리고 로드는 동생의 이름을 반만 부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여 제니스케리안의 현재 이름은 제니스이다.

하필이면 아무렇게나 지어 붙인 방귀쟁이 드래곤의 이름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제니스는 500년 전 술에 취해 대지를 관장하는 가이아 여신의 신전에 대형 똥 덩어리를 퍼붓는 만행을 저질렀던 바로 그 골칫덩이 골드 드래곤이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임 로드에 의해 500년간의 자숙을 명령받고 은인자중하며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렸다.

할 일이 없기에 몇백 년에 걸친 긴 수면을 하다 깨어난 것은 얼마 전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일단의 무리가 나이젤 산맥을 지나치고 있었다.

상단 호위를 맡은 용병들은 길을 가면서도 노래를 불렀다. 물론 방귀쟁이 드래곤 제니스라는 노래이다.

가사를 들은 제니스는 분기탱천하였다. 감히 인간 주제에 골드 일족인 자신을 대놓고 폄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사의 말미엔 자신이 일족들로부터 왕따당한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하여 대체 누가 이런 못된 노래를 만들었는지 반드시 징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징계 날짜를 계산한 제니스는 금제가 풀리자마자 폴리모프하고 인세로 스며들었다. 그리곤 누가 노래를 만들었는지를 확인했다. 장본인이 C급 용병 하인스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은 행적 추적이다. 이것도 어렵지 않았다. 현수가 율리안 영지에서 행한 일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현수 근처에 레드 일족이 있다.

제니스는 라이세뮤리안을 알고 있다.

그는 상당히 포악하며 특히 색을 밝히는 웃기는 드래곤이다. 제니스에게도 여러 번 찝쩍거려 일부러 그를 피해 수면을 취하기도 했다.

그런 라이세뮤리안이지만 충분히 강하다.

마법 화후는 자신보다 조금 밑이지만 소드 마스터인데다 전투에 특화된 듯 아주 잘 싸운다.

따라서 라이세뮤리안이 있다면 현수를 징치할 수 없다. 따라다니며 확인해 보니 서로를 친구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곁에 머물던 카트린느를 납치했다.

현수와 라이세뮤리안은 8서클이고 제니스는 9서클인지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다시 묻는다! 드래곤 제니스는 방귀쟁이라는 노래를 네가 만들었느냐?”

“그렇소. 그게 무슨 문제가 되오?”

“되오? 인간 주제에 말끝이 짧구나.”

“그건 그렇고, 하나만 묻겠소. 혹시 내 곁에 있던 여인을 납치했소?”

“여전히 말끝이 짧은 건방진 인간이군.”

“내 말에 대답해 주시오. 카트린느를 데리고 왔소?”

“그렇다면 어떻고 아니라면 어떤가?”

“데리고 있다면 주시오. 아무 죄도 없는 여인이오.”

“호오! 네놈의 연인이라도 되나?”

“그건 아니오. 아무튼 돌려주시오.”

“그건 네놈이 지은 죄에 대한 징계를 받은 후에 생각해 보지. 헬 파이어!”

화르르르르―!

“으읏! 블링크! 블링크! 배리어!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느닷없는 마법 공격이 시작되었다.

강렬한 화기를 느낀 현수는 급히 신형을 빼며 방어 마법을 구현시켰다.

“호오! 내 공격을 피해? 스톰 오브 아이스 크리스탈!”

이번엔 단단하면서 끝이 뾰족한 얼음덩이들이 쇄도한다.

“앱솔루트 배리어! 야아아압!”

방어 마법을 구현시킴과 동시에 방패로 몸을 보호하면서 검으론 쇄도하는 얼음덩이들을 쳐 냈다.

“흥! 제법 한다만 어림도 없다. 볼케이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시뻘건 용암이 솟구친다.

“플라이! 야아아압!”

현수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더니 쾌속하게 제니스의 동체로 쏘아져 간다.

“어림도 없다. 썬더 스톰!”

콰르릉! 콰르르릉! 콰콰콰콰쾅!

수없이 많은 번개가 현수를 향해 집중적으로 몰아친다. 하지만 현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벼락이란 회로가 구성되었을 때에만 해를 입힌다.

하늘을 나는 새는 벼락에 맞아도 별탈이 없다. 전기가 흘러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죽엇!”

쐐에에엑―!

“헉! 블링크!”

제니스의 입에서 급기야 당혹성이 터져 나온다.

현수의 검끝으로부터 무려 10m에 이르는 굵은 검강이 쭉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드래곤의 비늘은 매우 단단하다. 게다가 여러 겹으로 되어 있어 웬만한 충격은 흡수해 버린다. 하여 웬만한 병장기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

하지만 검강은 다르다. 현수의 검강은 그랜드 마스터의 그것과 비견될 만큼 길다.

제니스는 드래곤 슬레이어가 될 수 있는 그랜드마스터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여 황급히 몸을 피한 것이다.

그 순간 현수의 입에서 용언 마법이 튀어나온다.

“헬 파이어!”

화르르르! 화르르르르르르르르―!

“헉! 블링크, 배리어,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자신이 아까 만들어냈던 헬 파이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블링크로 또다시 몸을 피했건만 여전히 엄청나 화기가 뿜어져 나온다. 아예 광장 전체를 화염지옥으로 만들려는지 계속해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하여 황급히 보호 마법을 거듭 시전했다.

“이야아압!”

간신히 한숨을 돌리려는데 길이 10m짜리 굵은 검강이 또 쇄도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위력을 담은 듯 보인다.

“블링크! 블링크! 앱솔루트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신형을 옮기자마자 방어 마법을 구현시킨다.

“프로미넌스 매직 미슬 볼(Prominence Magic Missile Ball)!”

화르륵! 쐐에에엑!

태양의 채층(彩層) 전면, 코로나 속으로 높이 소용돌이쳐 일어나는 붉은 불꽃 모양이 구체를 이루는가 싶더니 제니스의 동체를 향해 쏜살처럼 쏘아져 간다.

“으읏! 이건 뭐야? 블링크! 블링크!”

두 번이나 공간 이동했지만 프로미넌스 볼은 그때마다 제니스를 향해 쾌속하게 방향을 바꾼다.

8서클 프로미넌스 볼과 3서클 매직 미슬을 결합한 신종 마법이 마법의 조종이라는 골드 드래곤을 당황시킨 것이다.

“으으읏! 블링크! 앱솔루트 배리어! 배리어! 배리어!”

콰아앙! 쾅! 쾅―!

“으으으! 내 이놈을! 파이어 퍼니시먼트(Fire Punishment)! 라이트닝 퍼니시먼트(Lightning Punis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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