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3
쉐에에엑! 화르르르르!
번쩍번쩍! 콰콰콰콰콰쾅쾅―!
궁극 마법 파이어 퍼니시먼트가 시전되자 광장 가득 시뻘건 불꽃이 날름거린다. 어찌나 뜨거운지 동굴의 벽면이 녹아내릴 지경이다. 뿐만이 아니다.
라이트닝 퍼니시먼트가 구현되자 이번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과 더불어 번개가 작렬하고, 그와 동시에 고막을 찢어발기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거대한 동굴이 지진을 만난 듯 흔들릴 정도이다.
한편 현수는 위기감을 느낌과 동시에 앱솔루트 배리어를 구현시켰다. 동시에 두 겹의 앱솔루트 배리어가 더 생성된다.
그렇다 하며 방어만 취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적의 공격은 광장 전체를 아우른다. 그렇다면 피할 곳이 없다.
앱솔루트 배리어를 믿고 전력을 다한 공격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헬 파이어! 야아아압!”
10서클 마법의 위력을 내는 헬 파이어를 시전하고는 곧장 검강을 일으켜 놈이 있는 곳을 휘저었다.
쐐에에에엑!
“으읏! 이놈이 감히! 블링크! 블링크! 앱솔루트 배리어!”
콰쾅! 콰콰콰쾅―!
“크으으윽!”
난무하던 불꽃이 사라지고 작렬하던 번개마저 자취를 감춘 광장은 한마디로 엉망이다. 사방 벽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고, 편평하던 바닥은 푹푹 파여 있다.
그런 가운데 둘이 마주 보고 서 있다.
현수의 신색은 멀쩡하다. 9서클 마스터 멀린이 만들어준 앱솔루트 배리어와 켈레모라니의 비늘이 조성한 앱솔루트 배리어는 글자 그대로 앱솔루트하기 때문이다.
반면 제니스의 동체엔 곳곳에 얼룩이 져 있다. 헬 파이어의 범위를 단숨에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폴리모프를 한 상태가 아니기에 동작이 다소 둔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처를 입은 듯 피를 흘린다. 검강이 할퀴고 간 흔적이다.
“으으으! 그놈, 그놈만 있었어도……. 개 같은 자식!”
제니스는 평생에 딱 하나의 가디언만 두었다. 오래전 유희를 나갔을 때 도망간 녀석이다.
녀석의 이름은 아무리안 델로 폰 타지로칸!
네크로맨서 계열의 9서클 마법사가 죽음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 리치가 되길 원했던 놈이다.
녀석에게 레어를 맡기고 유희를 나갔다.
많은 가디언을 두지 않은 이유는 녀석이 수많은 언데드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사라지고 없다. 종속 마법을 걸었음에도 도주한 것이다.
녀석만 있었다면 현수와의 대결에서 이처럼 창피한 결과를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기에 침음을 내면서도 욕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현수는 승기를 잡았다 판단하고는 일부터 여유있는 척했다.
“어때? 더 할까? 난 그대에게 원하는 것이 딱 하나야. 카트린느를 돌려달라는 것! 돌려줄 건가?”
“흥! 어림도 없는 수작! 차잇! 파이어 퍼니시먼트!”
화르르르―!
또다시 드잡이가 시작되었다. 현수는 녀석의 패턴을 읽었기에 조금 전보다는 여유있게 상대하고 있다.
이 여유 덕에 그간 한 번도 시전해 보지 못한 갖가지 마법들을 골고루 선보였다.
‘이놈은 대체 뭐야? 분명 드래곤은 아닌데 어떻게 용언 마법을 하지? 그리고 분명 인간의 마법인데 왜 이렇게 룬어 영창 시간이 짧은 거야? 대체 뭐지?’
제니스는 완벽한 수세에 몰려 블링크와 앱솔루트 배리어만 연신 시전했다.
같은 시각, 레어 바깥쪽에서 은밀히 안을 살피는 시선이 있다. 현수의 뒤를 따라온 라세안이다.
‘무서운 놈. 제니스는 9서클인데 저렇듯 몰아붙이다니. 지금은 뭐야? 제니스를 상대로 마법과 검법 수련을 해? 헐!’
드래곤과의 목숨 건 대결에서 인간이 승기를 점하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아예 여유만만하게 봐주기까지 하고 있다.
실제로 제니스의 목은 몇 번이나 베어질 뻔했다.
길이 10m짜리 검강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교묘하게 검을 회수했다. 그리곤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제니스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아무튼 현수와 제니스의 대결은 다섯 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다. 그러는 동안 현수의 검법과 마법은 더 정교해졌고, 더 섬세해졌으며, 더욱 강렬해졌다.
수세에 몰린 제니스는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길 수십 차례가 진행되는 동안 상대가 봐주고 있음을 눈치챘다.
드래곤으로서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의 무력이 우위에 있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만! 그만! 알았어! 돌려줄게! 돌려주면 되잖아!”
“……!”
허공에 떠 있던 현수는 목을 찔러가던 검을 회수했다. 이젠 아예 마법과 검법을 동시에 시전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데려다 줄 테니.”
제니스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현수가 만류했다.
“잠깐!”
“왜?”
“맨입엔 안 되지. 이렇게 간단히 데려다 줄 거면서 지금껏 날 힘들게 한 것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어?”
“내가 이렇게 당해서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래야 해?”
제니스는 엉망진창이 된 동체를 드러내 보인다.
“그 정도야 컴플리트 힐 한 방이면 해결되는데 뭘 그래?”
“뭐라고? 좋아, 뭘 더 원하는데?”
여기서 따지고 들다간 또다시 대결이 시작될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지긋지긋하게 당했는데 또 그런다는 게 싫은 제니스는 원하는 게 뭐냐는 표정을 지었다.
“내 부탁 한 가지 들어줘.”
“부탁? 좋아, 뭔지 말해봐. 들어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줄 수도 있어.”
제니스는 레어에 모아둔 보석만은 달라고 하지 않기를 바랐다. 애지중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말고 나중에 할게. 조금 더 상황을 두고 봐야 하거든. 아무튼 네게 뭘 달라고 하는 건 아니야. 나쁜 짓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좋아, 그 정도라면. 아무튼 여기서 기다려.”
말을 마친 제니스의 신형이 사라진다. 텔레포트 마법을 쓴 것이다. 현수는 폐허 비슷하게 된 거대한 광장을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기가 아닌 벌판에서의 대결이었다면 내가 졌을지도 몰라. 덩치는 크고 그에 비해 공간이 협소해서 유리했던 거지.’
냉정한 평가이다.
제니스는 끝까지 브레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큰 덩치를 유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인간, 또는 엘프 등으로 폴리모프하여 대결에 임했다면 승세를 굳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하지 못하도록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마법을 난사하고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라세안 말대로 자신의 마법을 너무 과신해서 그런 거지.’
현수는 제니스의 패배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대결을 하든 자만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대략 5분쯤 기다리자 눈앞에서 마나 유동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곤 카트린느가 나타났다.
“흐흑! 마탑주님! 흐흑!”
얼마나 겁에 질렸었는지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있다. 그런데 현수를 보자마자 또 눈물을 흘리며 와락 안겨든다.
“괜찮았어? 어디 다친 덴 없고?”
“흐흑! 네.”
울면서도 고개는 끄덕인다.
“이제 가자.”
“흐흑! 네, 어서 가요.”
“좋아, 내 목을 잡아. 플라이!”
카트린느의 동체를 안아 든 현수는 하늘을 날아 곧장 야영지로 되돌아왔다. 길잡이 머피만 기다리고 있다.
“라세안은……?”
“잠깐 산책하신다며 숲으로 가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카느린느는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아공간에서 각종 요리 도구를 꺼내 부엌을 세팅한 현수는 현란한 솜씨로 먹기 좋은 만두를 만들어냈다.
잠시 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찜통 뚜껑을 열어보고는 만족한 듯 웃음을 짓는다.
“이건 뭐예요?”
“만두라는 거다. 자, 앉아. 머피도 게 앉게.”
“아이고, 아닙니다요. 저 같은 놈이 어떻게 위대하신 마탑주님과 함께 앉겠습니까? 전 그냥 여기가 편합니다.”
“흐음,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자, 이건 이렇게 먹는 거야.”
현수는 아직 뜨거운 만두를 집어 간장에 찍었다. 그리곤 한입 베어 물었다. 그 순간 오묘한 맛과 향이 입안을 감돈다.
“흐음! 그래, 이 맛이야. 자, 어서 먹어.”
“네? 아, 네.”
카트린느는 처음 보는 음식이지만 용감하게 간장에 찍어 맛을 보았다. 한입 베어 물더니 눈을 크게 뜬다.
물론 너무 맛이 있어서이다. 길잡이 머피도 찍소리 않고 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게 일인당 서너 개씩 해치웠을 때 라세안이 나타났다.
“영주님, 저도 주실 거죠?”
“물론이네. 자, 여기.”
라세안은 사양하지 않고 앉아 만두를 먹었다. 너무 맛있어 그러는지 혼자서 거의 5인분은 먹었다.
배를 쫄쫄 굶은 카트린느 역시 2인분은 먹었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쉬자.”
“그러시죠.”
머피의 말에 각자 텐트로 들어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했다. 카트린느를 위한 배려였다.
한편, 라세안은 아까의 대결을 떠올리고는 진저리를 친다. 현수는 무시무시한 9서클 궁극 마법을 앱솔루트 배리어로 모조리 막아냈다. 그리곤 그에 못지않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마법과 검법으로 제니스를 몰았다.
그게 만일 본인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승리를 자신하기는커녕 브레스를 쓰고도 당할 것이란 생각이 든 때문이다.
‘역시 전임 로드의 말씀이 옳아. 10서클 마법사에겐 함부로 대들면 안 돼.’
라세안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녁에도 열화와 같은 청에 따라 만두로 배를 채웠다. 식사 후, 현수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라세안에겐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하였다. 또 케이트를 접수하러 가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그러면서 오늘 카트린느가 대단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라 말한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드래곤과 싸운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온다면서 멀리 갈 것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한다면 자리를 피해주겠다고 선심을 쓴다. 현수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곧바로 텔레포트했다.
* * *
“누구냐?”
“하인스 멀린이다.”
“아! 마법사님, 어서 오십시오.”
알베제 마을 외곽에 쳐진 목책의 문이 열리는 순간 어디선가 송아지만 한 것이 맹렬히 다가온다.
크와와앙―!
“어어! 아이쿠, 이놈아!”
어느새 어미만큼 커진 샤벨타이거이다.
“오셨습니까?”
“그래, 잘 있었나?”
“그럼요. 덕분에 저흰 아주 잘 지냅니다.”
“그래, 그래야지. 자, 가세.”
“네.”
알베제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엘베른은 지극히 공손한 자세로 현수를 안내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마법사님!”
마레바 촌장이 반색하며 다가온다.
“그래, 잘 있었는가?”
“하이고, 그러믄입쇼. 저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쉐리엔은 많이 채취해 두었나?”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더 쌓아둘 곳이 없어 고심하던 참인데 정말로 잘 오셨습니다요. 자아, 이쪽으로…….”
촌장이 안내한 곳은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오두막들이다. 주문한 대로 열매와 줄기, 그리고 뿌리가 잘 분류되어 있다.
정성 들여 흙을 닦아냈음이 한눈에 보인다.
“흐음, 좋군. 수고했네.”
“아이고, 수고라니요. 당연히 해드려야 할 일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