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75화 (475/1,307)

# 475

“오늘은 뭐할 거야?”

“자기야가 준 숙제 해야지요.”

“내가 준 숙제?”

“네, 크리스마스에 있을 우리 결혼식 준비를 해야지요. 자기야는 걱정 마요. 언니하고 잘 준비할 테니.”

“그래? 그럼 기대해도 되는 거야?”

“네, 걱정 말아요. 내가 알아서 잘 할게요. 내 실력 알죠?”

연희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만큼이나 야무진 일솜씨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들께도 잘해 드려. 비용 아끼지 말고. 알았지?”

“네.”

이곳 시간으로 어제 현수는 통장 하나를 연희에게 건넸다. 천지약품에서 발생되는 수익금이 들어오는 통장이다.

필요한 만큼 알아서 꺼내 쓰라고 했다.

샘내는 이리냐에겐 곧 지르코프 상사와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거기서 발생되는 수익금이 담긴 통장을 맡기겠다고 했다.

시무룩하던 표정이 금방 밝아진다.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을 연희와 동등하게 대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리냐는 지르코프 상사와의 거래에서 발생되는 수익금이 들어온 통장을 받고 기절한다.

물론 안에 담긴 액수가 너무나 어마어마해서이다.

* * *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하하, 네. 별일 없죠?”

“별일이야 많죠.”

현수가 자리에 앉는 사이에 민윤서 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이실리프 무역상사 이은정 실장님이 매일 약품 생산량 체크를 합니다. 조금이라도 양이 줄면 아주 야단을 쳐요.”

“후후! 후후후!”

뜬금없이 김상용 시인의 ‘남쪽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가 떠오른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호미론 메고

괭이론 파지요.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민 사장이 하는 말을 들으니 그냥 웃음이 나온다. 불평이 아니고 즐거워서 하는 소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뭐라시건 나는 하냥 웃지요.’

웃음 띤 현수의 얼굴을 보고는 같이 웃는다.

“근데 점심 식사를 했어요?”

“아직요. 민 사장님이 사주시는 맛난 걸 먹고 싶어서 일부러 굶고 왔습니다.”

“잘했네요. 그럼 같이 가서 먹읍시다. 참, 김지우 실장도 같이 갈까요?”

“그럼 우리끼리만 가려고 했습니까? 그러지 말고 전 직원이 다 갑시다. 우리만 맛난 것 먹으면 안 되잖아요?”

“하하! 그래요, 그럼.”

민 사장은 호탕하게 웃는다. 그리곤 밖으로 나간다.

“아아! 대표이사 민윤섭니다. 직원 여러분, 오늘 점심은 제가 쏩니다. 당장 하던 일 멈추고 모두 밖으로 나오십시오.”

“와아아아!”

사내 방송이 마쳐지자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져 나온다.

대한약품은 그동안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

매출이 얼마 안 되던 지난날엔 널널했던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루 종일 서류에 매달려 씨름하고, 틈나는 대로 생산 공장으로 달려가 이것저것 확인해야 했다.

월급이 제 날짜에 또박또박 나오는 건 좋지만 쉴 시간이 없다. 점심 먹는 시간마저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왔다.

당연히 회식은 없다. 퇴근할 무렵이면 거의 모두 파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사장이 점심을 쏜다니 이처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대한약품 직원들은 출근 버스를 타고 대형 갈비집으로 향했다. 그리곤 허리띠 풀어 놓고 마음껏 즐겼다.

비용은 당연히 회사에서 지불했다.

한바탕 잔치를 마치고 돌아와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저건 뭡니까?”

민 사장 책상 위에 잔뜩 쌓여 있는 서류철을 보고 한 말이다.

“내수 판매와 관련된 겁니다.”

“내수 판매보다 수출하는 게 더 많지요?”

“당연합니다. 내수용은 새 발의 피도 안 됩니다. 하지만 내수도 적은 양은 아닙니다.”

“그래요?”

“요즘 내수 판매량이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익금으로 직원들 급여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수출용으로 나가는 것에서 발생되는 이익금은 거의 전액 남는다는 뜻이다.

“잘된다니 기분 좋군요. 다 탁월한 경영 덕분입니다.”

“에구,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으로 송구합니다. 실은 러시아발 기사 때문에 내수용이 늘어난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실리프 무역상사를 통해 드모비치 상사로 간 저희 약품이 러시아에서 호평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게 뉴스가 되어 국내로 흘러들었고, 그 결과 내수 판매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기쁜 일이군요.”

현수가 웃자 민 사장이 서류철 하나를 뽑아 든다.

“그나저나 원료 수급 때문에 문제입니다.”

“……?”

“쉐리엔 말입니다. 이제 원료가 거의 다 떨어져 갑니다.”

“아!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오늘 오후, 아니면 내일쯤 당도할 겁니다.”

“다행입니다. 며칠 후엔 원료가 없어서 못 만들 뻔했습니다.”

민 사장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다.

“그나저나 신약 허가는 떨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그게… 문제가 좀 있습니다.”

환했던 얼굴에 그늘이 진다.

“왜죠?”

“기존 의약업계에서 반발이 심합니다. 그 압력이 식약청까지 가서 미라힐Ⅰ과 미라힐Ⅱ, 그리고 NOPA와 홍익인간 모두 발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우리 것의 약효가 너무나 뛰어난 결과입니다.”

말 한마디면 나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기존 의약품 업계는 대한약품이 새롭게 선보이는 미라힐과 홍익인간 등에 대해 강력하게 견제하는 중이다.

민 사장의 말대로 효능이 뛰어나 기존 의약업계를 죽이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라힐의 경우는 모든 상처 치유에 관련된 약품들을 고사시킬 수 있다. NOPA와 홍익인간은 진통제류 시장을 평정한다.

이런 상황이니 돈을 써가며 신약 허가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토종 제약 기업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입김이 훨씬 강하다.

“식약청에선 뭐라 합니까?”

“네, 식약청 담당자는…….”

민 사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신약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기존에 없던 완전한 신약과 현재 있는 성분을 개량하여 만든 개량 신약이다.

신약의 개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기초 탐색 과정

2) 전 임상 시험 과정

3) 임상 1상 시험

4) 임상 2상 시험

5) 임상 3상 시험

6) 임상 4상 시험

보통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년 정도이고, 비용은 4,000∼5,000억 원 정도 소요된다. 물질 특허 기간이 20년 정도이니 개발 후 10년 정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약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고가이다.

민 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식약청에서는 임상 시험에 관한 자료를 추가로 요구했다. 항목을 살펴보니 모두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내용들이라 한다.

적어도 몇 년간은 발목을 붙잡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흐음, 그렇다면 오히려 잘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네?”

“광동제약의 비타500을 아시죠?”

“물론입니다. 월 3천만 4천만 병씩 판매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건강 음료지요.”

“그건 의약품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방향을 바꿔보죠. 미라힐의 효능이 너무 뛰어나 기존 효능의 20∼30% 정도로 줄인 것조차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렇습니다.”

민 사장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라힐을 더욱 희석하여 농도를 3∼5%가 되게 하면 효능이 어떨 것 같습니까?”

현수의 시선을 받은 김지우 박사가 안경을 매만진다. 뭔가를 생각할 때의 습관인 듯싶다.

“당장의 효능은 떨어지지만 비타 500처럼 수시로 먹는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의도했던 대답을 들은 현수가 시선을 민 사장에게 돌렸다.

“의약품과 건강 음료는 허가 과정 자체가 다르죠?”

“그럼요. 근데 건강 음료라고 하는 제품은 건강 기능 식품이냐 혼합 음료냐에 따라 허가 내지는 신고 방법이 다릅니다.”

“그래요? 뭐가 다르지요?”

“네, 건강 기능 식품으로 허가받으려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를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식약청에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반면 혼합 음료의 경우는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됩니다.”

“흐음, 많이 다르군요.”

“네, 혼합 음료의 경우는 품목 제조 보고서와 유통 기한 설정 사유서를 작성해서 제품 생산 7일 전부터 생산 후 7일 이내 신고해야 합니다. 지자체 위생 담당자에게 하면 되죠.”

회복 포션의 어떤 자연 물질들을 혼합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서 이런 설명을 한 것이다.

“그래도 의약품보다는 건강 기능 식품으로 허가받는 게 쉽죠?”

“물론입니다. 미라힐의 경우는 이미 충분한 임상 결과가 있으니 희석하여 건강 기능 식품으로 바꿔 발매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김지우 박사님은 미라힐의 적정한 희석 농도를 찾아주세요. 아! 그렇다고 미라힐의 발매를 포기하는 건 아닙니다. 식약청에서 요구하는 대로 임상 절차를 밟아주세요. 단, 미라힐의 농도를 더 높이세요.”

“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자들에게 유용할 약품 발매를 막는 건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그런 자들은 망해야죠.”

“전무님, 그래도 50%는… 그럼 의사들도 굶습니다.”

“김지우 실장님, 미라힐 원액 100%는 말기 암도 치료해 낸다는 거 혹시 아십니까?”

“네에?”

김지우 박사와 민윤서 사장 모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미라힐 원액이 상처 치유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암까지 치료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때문이다.

“뿐만이 아닙니다. 미라힐 원액은 거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 냅니다. 다시 말해 원액은 만병통치약에 가깝습니다.”

“……!”

“믿기 힘드실 겁니다. 그러니 시험해 보십시오. 단, 엄격한 비밀 유지가 요구됩니다.”

김지우 박사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새롭게 발매할 미라힐은 항암 치료제로 팝시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브랜드 파워라는 것을 가져 봅시다.”

힘이 생기면 이런 부당한 압력 때문에 신제품 발매가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참, 이번 기회에 군용 미라힐도 연구해 주세요. 원액이라면 전투 중 총상 등 부상을 입었을 때 신속하게 상처를 아물게 해줄 수 있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김지우 박사의 표정이 더욱 굳어진다. 군용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다. 미라힐의 탁월한 효능이 알려지면 다른 나라에서 스파이를 파견해서라도 가져가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연구원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첩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무튼 김지우 박사는 앞으로 해야 할 과제들을 꼼꼼하게 메모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메모해 놓은 것 자체가 보안 유지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얼른 지웠다. 그러고도 불안하여 잘게 찢는다.

김 박사의 내심을 짐작한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보안에 상당한 신경을 쓰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민 사장님은 연구실 보안에 돈 좀 팍팍 쓰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사촌 처남이 국방과학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그리고 그는 늘 보안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전능의 팔찌』 제20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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