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6
1장 말해줄 수 없습니다
“NOPA와 홍익인간 발매도 늦출까요?”
“아뇨. 그건 식약청에서 요구하는 대로 임상실험을 진행하세요. 그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나가야 하는 약이니까요. 특히 CRPS 환자들이 필요로 하잖아요.”
“알겠습니다.”
민윤서 사장과 김지우 연구실장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마땅한 진통제가 없어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내보내야 한다.
그런데 일부 다국적 제약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발목을 잡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참, 청향은 어떻습니까? 그건 의약품이 아닌 걸로 파니 큰 문제 없죠?”
“그게… 그것도 걸고넘어지는 데가 있어서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흐음, 누구죠?”
“딱히 누구라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다만 식약청에 상당한 압력, 또는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맑고, 향기롭고, 신선한 공기가 담겨 있을 뿐이라는데 아직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으니까요.”
“좋아요. 식약청에선 무얼 보완하라고 합니까?”
“청향에 들어가는 공기가 어디서 채취된 것이냐고 합니다.”
“헐!”
현수는 할 말을 잃었다. 청향의 성분을 분석해 보면 금방 나올 일이다. 공기를 어디에서 얻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리 공장에서 제조한 것이라 하니까 그게 무슨 맑고 신선한 공기냐고 합니다.”
“흐음! 그럼 이렇게 합시다. 공장 내에 공기 정화 장치를 다세요. 그리고 그걸로 정화했다고…….”
현수와 민윤서 사장, 그리고 김지우 박사는 오랫동안 논의를 했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조금의 틈도 내주지 않으려는 것을 깨부수기 위함이다.
* * *
“하하! 어서 오시게. 오랜만일세.”
“네, 늦었지만 국회의원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현수가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갖추자 국회의원 홍진표가 우리 사이에 왜 이러느냐는 듯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그래, 고맙네. 자, 앉지.”
맞은편에 앉자 누군가 커피를 내온다.
“제잔데 똘똘한 데다 정치에 뜻이 있다 하여 보좌관으로 삼았네. 인사해. 이 친구가 그 유명한 국민전무 김현수이네.”
“아! 안녕하십니까? 보좌관 정홍상입니다. 이렇게 만나 봬서 정말 영광입니다.”
“에구, 영광은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김현수입니다.”
인사가 끝나자 정홍상이 밖으로 나간다. 동석할 군번이 아닌 것이다.
“그래, 바쁜데 웬일인가?”
“축하도 드릴 겸 의논할 게 있어 들렀습니다. 괜찮죠?”
“그럼, 당연하지.”
홍진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는 현재 대한민국 사람 거의 전부가 아는 유명인사이다. 게다가 이미지가 너무나 좋다.
현수는 국가와 회사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다.
잉가댐 건설 현장을 반군들이 덮쳤을 때 세스나기를 타고 가서 공수특전 용사처럼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린 때문이다.
국내의 극성스런 언론은 그날 현장에 있던 천지건설 직원들은 물론 부상당해 신음을 토하고 있던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까지 모두 인터뷰를 하였다.
그 결과 백발백중하는 사격술의 달인이라는 것도 알려졌다. 한심당에 속한 일부 국회의원들처럼 병역을 기피한 게 아니라 당당한 예비역 병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대기업 전무이사이며, 보너스로 받은 돈만 100억 원이고 60세까지 최하 연봉이 60억 원이라고 한다.
결정적인 것은 미혼이다.
인터넷에 현수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할 것이라는 기사가 떴지만 이게 사실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에 최고의 신랑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현수와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홍진표 의원의 올곧은 이미지와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요즘 전투복 때문에 문제가 많죠?”
“그렇다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고 하네. 그런 게 무슨 전투복인가? 신형은 무슨. 요즘 조사 중인데 분명 군납 비리가 있었을 거네. 그런 놈들은 잡아서 족쳐야 하는데. 어휴∼!”
국민의 혈세가 어떤 놈의 주머니로 흘러든다는 생각에 열이라도 받았는지 홍진표 의원의 얼굴이 금방 달아오른다.
“저, 이실리프 어패럴이라는 회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 어패럴(Apparel)이라고 하면 의복, 또는 옷을 입히다는 뜻이니 의류회사겠구먼.”
“네, 맞습니다.”
“건설회사 다니면서 의류회사라…….”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듯 웃는다.
“그 회사에서 군복 납품을 추진했었습니다.”
“아! 그런가?”
자신이 관심 가진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반짝인다. 흥미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포기했습니다.”
“왜?”
“관행을 요구하더군요.”
“에잉, 어떤 빌어먹을 놈이. 그걸 해결해 주면 되는가?”
“아뇨, 군납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왜?”
“국방위원회에 계시니까 정보 차원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리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생산하려는 군복은…….”
현수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홍진표 의원은 크게 놀라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항온 전투복의 개념을 듣고는 크게 놀란다.
그리고 한국군에 대한 군납을 포기하는 대신 미군에 10만 벌을 납품할 생각이라는 말에는 짜증을 냈다.
들어보니 설명대로라면 국군의 전투력을 크게 상승시킬 아이템이다. 그런데 국내는 뇌물이 없으면 납품이 어렵다.
그 뇌물을 놈들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해 놓고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 혼자 먹는 게 아니라 상납에 상납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웬만해선 잡아내기 어렵다. 잡는다 하더라고 윗선에서 개입하여 큰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국방위원회에 배속되면서 이런 고질적인 병폐를 발본색원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기에 며칠 전에도 그 난리를 피운 것이다. 국민들이 알아야 힘을 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 의원의 이런 의도는 적중했다.
네티즌은 무조건적인 성원을 보내는 중이다.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여론을 읽은 방송국에선 심층 취재에 나섰다.
이런 시점에 현수로부터 귀한 정보를 얻었다. 최세창 대령이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현수의 이야기가 추가되자 홍 의원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강철환 예비역 대령과 선진식 기무사 소령에 관한 것을 들은 것이다. 기업이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거저 강탈하려는 놈들의 행태에 치를 떤다.
“내가 조사를 진행토록 하겠네.”
“네, 이건 반드시 고쳐져야 할 문제입니다.”
“그나저나 자네 참 대단하네. 어떻게 이런 물건을…….”
항온 전투복에 관한 내용이다.
“여러 사람의 머리가 합쳐진 결과이지요.”
“내게도 한 벌 샘플로 줄 수 있겠나? 국방장관에게 선물했으면 하네.”
“……!”
현수가 국방장관에게 선물하면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될 것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의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진표 의원이 선물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방장관은 홍 의원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항온 전투복을 입을 것이다. 그러면 그게 어떤 군복인지 알게 된다.
“현직 국방장관의 이름은 알지? 기왕이면 명찰도 박아서 가져다주시게.”
“알겠습니다. 그러지요.”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군에 군납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군납 비리를 없애려는 마음이다.
“또 하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지?”
“실은 제가 자동차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도 자동차 연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현수는 연료비를 12분지 1 이하로 줄일 수 있는 엔진 개발에 성공했음을 이야기했다.
또한 이를 응용하여 선박 엔진 역시 개조 가능하다는 말도 했다. 여기에 추진기 변동압력을 0.42㎜/sec 정도로 줄일 수 있음도 이야기했다.
소리와 민감한 관계가 있는 해군력엔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국방부에는 수없이 많은 차량이 있다.
이것들의 연료비가 일률적으로 12분지 1 이하로 줄어들면 무기를 신형으로 교체하거나 새로운 것을 도입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그걸 일일이 손봐줄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해군이 보유한 함선은 그리 많지 않다.
다음은 대양작전에 나설 수 있는 해군 전력이다.
만재배수량 11,000톤급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급 세 척.
5,500톤급 KD―2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급 여섯 척.
18,000톤급 LPH―5111 강습상륙함 독도함급 한 척.
9,000톤급 AOE―57 군수지원함 천지함급 세 척.
4,500톤급 SDT―681 전차상륙함 고준봉함급 네 척.
수중배수량 1,800톤급 214 디젤잠수함 손원일함급 세 척.
다 해봐야 20척이다. 나라를 위해 이 정도는 얼마든지 수고를 아끼지 않을 수 있기에 꺼낸 말이다.
세종대왕함의 경우 한 번 연료를 주입하면 부산항에서 하와이까지 운항 가능하다.
엔진이 개조된다면 이를 열한 번 더 갈 수 있게 된다.
운항 거리 연장이 필요 없을 경우 연료 탱크를 줄이면 더 많은 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다.
“비용은 많이 드는가?”
획기적인 연료 절감이 홍진표 의원의 마음을 움직인 듯싶다.
“비용도 시간도 그리 많이 들지 않습니다. 다만 신기술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군에서 함선을 내어줄까?”
“싫으면 말아야죠. 조만간 저희가 손본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와 컨테이너선들이 운항하게 됩니다. 그걸 보고도 못 믿는다면 할 수 없죠.”
“기술에 대한 특허는 냈나?”
“아뇨. 특허를 낼 생각은 없습니다. 베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베끼라고 할 겁니다.”
“그래도 특허 내는 것이 유리하지 않나?”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이다.
“그래 봤자 보호받는 기간이 길지도 않은데요, 뭐.”
현수의 여유있는 표정을 본 홍 의원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 그런 것이라 판단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나?”
“해군 관계자들을 먼저 만나야겠죠.”
“흐으음, 알겠네. 조만간 연락하겠네.”
“하하, 네. 그나저나 의정 활동을 하려면 정치자금이 필요할 텐데 그건 어떻게 충당하십니까?”
“국회의원에게 나라에서 주는 세비가 얼마인지 아나? 연봉으로 따지면 약 1억 5천만 원 정도 되네. 이것 외에도 연 2회 해외 시찰 지원, 그리고…….”
홍 의원의 말이 이어졌다.
국회의원에겐 사무실 전화 요금, 우편 요금, 차량 유지비, 사무실 운영비, 야근 식비가 별도로 지원된다.
정책 홍보물을 제작하는 비용 전액이 지원되며 KTX는 물론이고 선박과 항공기를 공짜로 탑승한다.
또한 4급 두 명, 5급 두 명, 6급 한 명, 7급 한 명, 9급 한 명 등 최대 아홉 명까지 보좌진을 거느릴 수 있다.
이로 인한 비용은 연간 약 3억 9,500만 원가량 된다.
게다가 상임위원장이 되면 월 1,000만 원의 판공비를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
후원회를 조직하면 매년 1억 5천만 원까지, 선거 때엔 두 배인 3억 원까지 정치자금으로 모금할 수 있다.
“국회 밖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건 너무 과도해. 그런데도 정치자금이 없다고 손 벌리는 것들을 보면…….”
홍 의원은 양심 없는 동료 의원들의 행태가 진저리난다는 듯 심하고 고개를 흔든다.
“……!”
현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홍 의원이 이를 타박한 것이라 여겼는지 얼른 수습에 들어간다.
“난 정치자금이 필요 없네. 이렇게 많이 주는데 뭐가 더 필요할까? 그러니 마음 쓰지 말게. 생각만으로도 고맙네.”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다른 의원들은 사리사욕을 위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도 있지만 홍 의원님만은 안 그러리라 믿으니 흔쾌히 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