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78화 (478/1,307)

# 478

아주 추울 때엔 ―70℃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 도시가 가장 더운 여름철 기온은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 정도 되는 15.3℃에 불과하다.

1년 중 평균 기온이 영상에 머무는 달은 5월부터 9월까지 불과 5개월뿐이다. 나머진 모두 영하를 기록한다.

건설 현장은 특성상 거의 대부분이 옥외 작업이다. 그런데 기온이 이러면 일하기 정말 곤혹스럽다.

추워서 몸이 굳는 것은 둘째이다. 손가락, 발가락, 그리고 귀와 코 끝의 동상을 먼저 걱정해야 한다.

동상이란 추운 환경에 노출된 신체 부위가 생리적인 보상기전의 작용 실패로 조직의 손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심하면 절단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돈 몇 푼 벌자고 시베리아 현장으로 갔다가 평생 장애를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공사가 시작될 야쿠티아 공화국은 동시베리아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국토의 40%가 북극권에 속하고, 전 면적의 2/3는 산지와 고원이다.

북동부는 베르호얀스크, 체르스크 산맥이고, 남부는 알단고원이고, 서부는 시베리아 대지이다. 중앙부와 북동쪽에만 평지가 있을 뿐이다.

국민은 바이칼호 연안에서 레나강 유역으로 이동해 온 터키계의 야쿠트인과 러시아인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주로 중부 지역에 머문다.

최근 야쿠티아 공화국 정부는 늑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늑대들이 공화국을 공격하는 수준으로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에 공화국 정부가 특수 사냥꾼 여단을 동원했다고 한다.

여단[Brigade]은 사단급의 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독립 부대의 성격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여단은 비록 규모가 작더라도 일반적으로 사단과 동급의 부대 단위로 인식되고 있다. 참고로 러시아 육군의 여단은 4,000∼5,000명의 병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악한 날씨와 굶주린 늑대 떼가 우글거리는 곳이니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공사가 될 수 있다.

“근데 그 추운 곳에서 작업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당연히 방한 의류 등 각종 장구에 각별히 신경 써야죠.”

“영하 50도를 견뎌낼 만한 방한 의류가 있을까?”

신 사장은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현수는 피식 웃었다.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런 게 있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대한민국은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네, 이실리프 어패럴이란 회사가 있습니다.”

“이실리프? 설마 그것도 자네 것인가?”

“어쩌다 보니 의류회사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자넨…….”

신 사장을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이다. 그 많은 일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그럴 정신이 있었느냐는 뜻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회사가 요즘 새롭게 발매하려는 의류가 있습니다. 항온 의류라는 겁니다.”

“항온? 뭐라고?”

잠깐 말을 놓친 듯 반문한다.

“항온 의류요.”

“그게 뭔가? 항온 의류라면 옷이 일정한 온도를 가진다는 뜻인가? 그런 건가?”

“그보다는 의복 내부의 공기 온도를 조절하여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돕는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현재로선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여름용은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고, 겨울용은 따뜻함을 부여하는 겁니다.”

말을 듣는 동안 신 사장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원, 세상에 어떻게 그런 옷이……! 그래, 그 옷은 비싼가?”

“당연히 비싸지요, 첨단 기술이 접목된 거니까요.”

“어, 얼마쯤 하나? 그리고 뭐로 유지되지? 배터리를 쓰나?”

“주한미군에 군복으로 10만 벌을 납품할 건데 현재로선 36만 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터리 같은 건 쓰지 않습니다.”

“36만 원? 흐음, 생각보단 값이 싸네. 근데 배터리 같은 걸 쓰지 않으면 뭐로 항온이 가능하게 하지?”

“첨단 기술이지요. 그래서 별도의 배터리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유효 기간은 대략 3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뭐, 3년? 그동안 아무런 동력도 필요 없어?”

“네, 그러니까 첨단 기술이 접목된 의류지요.”

현수가 싱긋 웃음 짓자 신 사장은 허탈하다는 표정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올 만큼 대단한데 너무나 쉽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옷, 자네가 방금 말한 그 옷 샘플은 있나?”

“당연히 있죠. 조만간 가져올 겁니다. 그리고 콩고민주공화국 현장과 가스전 현장에서 쓸 건 따로 제작할 겁니다. 우리 회사 로고가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천지건설, 아니, 회장님께 말씀드릴 터이니 우리 천지그룹 임직원 전체가 입을 옷도 만들어주게.”

“네, 준비시키지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지그룹 임직원 전체라면 그 수효가 만만치 않게 많다.

입어본 사람이라면 가족을 위해 더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소문이 번지고 번지게 될 것이다.

그럼 TV나 신문에 광고하지 않아도 된다. 이실리프 어패럴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일이다.

“하하, 이제 그 옷 덕분에 여름엔 냉방비를, 겨울엔 난방비를 획기적으로 낮추겠군.”

신 사장의 이런 생각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천지건설 사옥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사와 현장 사무소에서 납부하는 전기요금을 합하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만든 근무복을 걸치기 시작한 이후 여름이면 모든 에어컨의 실외기가 멈춘다.

겨울에도 손님이 드나드는 공간을 제외하곤 별도의 난방을 하지 않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임직원들의 가정까지 파급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천지그룹과 관련 없는 일반 가정도 에어컨과 난로를 줄여 쓴다.

그만큼 항온 의복이 보급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2년부터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블랙아웃1)을 심각하게 걱정했다. 2013년 1월엔 ‘겨울철 정전 대비 위기 대응 훈련’을 실시했다.

블랙아웃이 발생되면 정전이 점점 번져 국가 전체가 암흑기로 접어든다. 일반 전화와 휴대전화, 인터넷은 당연히 사용 불능이 된다. 모든 방송이 중단되며 지하철은 정지한다.

신호등이 먹통이 되면서 자동차의 운행도 어렵다. 모든 은행과 관공서, 상점은 문을 닫는다.

공장들도 당연히 멈춘다.

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가스도 공급되지 않는다.

블랙아웃은 국가 경제를 퇴보시키고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리고 졸지에 18세기쯤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2004년 미국에서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졌다.

초고압 송전 선로가 나무에 접촉하면서 누전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그 지역 전기가 부족해졌다. 그리고 정전이 점점 번져 뉴욕 등 동부 지역 전체가 멈췄다.

사흘 만에 간신히 복구된 이 사태로 인해 6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으며, 5천만 명 이상이 생고생을 했다.

한국은 23기의 원전 가운데 고리3호, 영광3호, 울진4호, 울진6기가 계획 예방 정비로 가동 중단된 상태이다.

여기에 추가로 원전 고장이 발생되면서 열대야나 강추위가 계속되면 블랙아웃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면 복구하는 데만 3일∼10일 정도 걸린다고 추정하고 있다.

발전소를 가동시킬 전력부터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국가 전체가 10일간 전기 없이 보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병원의 환자들은 수없이 죽을 것이고, 고층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은 한번 외출하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항온 의류가 그것에 대한 위험성을 현저하게 낮춰줄 수 있다. 이것은 현수가 미처 생각지 못한 영향이다.

실제로 항온 의류가 주는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 이건 나중에 일어날 일이다.

신형섭 사장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현수를 바라본다.

“근데 옷만 따뜻하면 뭐하나? 머리야 모자를 쓰면 된다지만 손과 발이 시린 건 어떻게 하나? 그런 장갑도 있나?”

“물론 있지요. 항온 부츠와 항온 장갑도 제작 가능합니다.”

현수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자 세웠던 허리를 낮춘다.

“아, 그래? 그렇다면 안심이네.”

춥디추운 동토에 직원들을 파견할 생각을 했던 신 사장은 적이 안심된다는 듯 소파 깊숙이 몸을 묻는다.

이제 마음이 편하다는 뜻이다.

“참, 조 대리는 어찌 된 건가? 자네 결혼한다고 짜증내고 그럴 줄 알았는데 너무 멀쩡해.”

“아, 그거요? 제가 아는 형님을 소개해 줬습니다. 왜 전에 말씀드렸던 S대 건축과를 나온…….”

“아! 그 친구? 하하, 다행이구만. 다행이야.”

조 대리를 아끼는 신 사장이기에 현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저어했던 모양이다.

“흐음, 그럼 이제 어찌할 건가? 북한에 대해 공부를 하면 곧바로 들어갈 건가?”

“그래야지요. 그전에 그쪽에 선부터 대야지요.”

“그래, 그럼 친 러시아 인사가 누군지는 내가 수배해 줌세.”

“고맙습니다. 한결 일이 덜어지겠습니다.”

“후후, 내가 누군가? 나만 믿게.”

“하하, 네에.”

현수는 신 사장과 담소를 나누었다.

* * *

현수가 신 사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시각, 다섯 개의 화살을 하나로 묶은 문장이 보이는 어떤 방에선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사실 방이라 하기엔 너무나 큰 공간이다.

사방 벽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모든 집기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한 인간이 핏대를 세우고 있을 뿐이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되었다고?”

“주인님, 지하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금괴가… 금괴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금고에 있던 금괴가 모두 사라지다니? 그게 말이 돼? 도둑 든 거야?”

“아, 아닙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데? 왜? 돈을 처발라서 온갖 첨단 장비를 다 갖췄는데 그게 왜 없어져?”

버럭 화를 내고 있는 사내는 마흔 살쯤 된 장년인이다.

에블린 로스차일드의 장남인 이 사내는 현재 영국 버킹엄셔(Buckinghamshire)에 위치한 로스차일드 저택의 주인 피터 로스차일드이다.

이 저택의 지하엔 거대한 금고가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연방준비은행(FRB) 금고에 버금갈 것이다.

피터 로스차일드가 말한 대로 온갖 도난 방지 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무장한 경비원들이 24시간 지키는 곳이다.

탱크가 동원된다 하더라도 쉽게 털 수 없다.

그런데 그 금고 내의 금괴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가만,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내려가 보겠어.”

“네, 주인님!”

로스차일드가의 집사 엘버튼은 피터의 뒤를 따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때문이다.

“뭐야? 이거… 왜 아무것도 없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로렌, 말을 해봐!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피터의 시선을 받은 로렌은 지하 금고 경비대장이다.

“그, 그게… 저희도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 조사 중에 있습니다. 조,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죄송합니다.

로렌은 고개를 푹 숙인다. 면목이 없어서이다.

이곳은 드나드는 인물 모두 CCTV에 찍힌다.

그리고 일지엔 누가 몇 시가 들어갔다 몇 시에 나왔는지, 안에선 어떤 일을 했는지 모두 기록하게 되어 있다.

이는 경비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근무 전과 근무 후의 체중 변화까지 기록한다.

로스차일드 저택의 집사인 엘버튼은 물론이고 경비대장인 로렌도 피할 수 없는 규칙이다.

딱 하나, 피터 로스차일드만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이런 철저한 보안으로 보호되는 금고 안의 금괴와 보석이 모두 사라졌다.

피터는 사흘 전 러시아로부터 89톤을 받았다. 이것들은 면밀한 조사 끝에 순도 99.9%라는 것을 확인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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