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79화 (479/1,307)

# 479

모든 절차를 마친 뒤 바로 이곳 지하 금고로 옮겨졌다.

이곳엔 금괴 106톤가량이 있었다. 또한 그동안 수집한 각종 보석도 보관되었다. 그런데 모두 사라졌다.

먼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피터 로스차일드가 펄펄 뛸 때 집사 엘버튼과 경비대장 로렌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곳에 있다 사라진 금괴의 가치만 12조 8,000억 원어치이다. 보석은 약 5,000억 원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미국의 소더비와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장 등을 통해 매입한 가격이다.

합계 13조 3,000억 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런데 범인이 드나든 흔적이 없다.

CCTV 녹화 기록을 뒤진 결과 어젯밤 금괴를 옮겨놓은 이후 어느 누구도 드나들지 않았다.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 역시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귀신이 와서 그 무거운 금괴를 가져갔을 리 없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금괴와 보석 모두 사라졌다.

이것들은 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경찰에 신고한다 하더라도 단 한 푼의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은 로스차일드 가문이라 할지라도 122억 5천만 달러가 넘는 손해는 타격이 된다.

그렇기에 피터는 미친놈처럼 길길이 뛰고 있다.

이 모든 일은 현수가 푸틴에게 빌려준 금괴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금괴를 받아갈 장본인이 유태 자본의 대명사격인 로스차일드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현수는 꾀를 냈다.

모든 금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진을 그려 넣은 것이다.

금괴가 러시아에 도착하면 이것들은 반환을 위한 이동을 하게 된다. 푸틴은 가급적 빨리 금괴를 돌려줄 것이라 하였다.

하여 금괴가 한 장소에 하루 이상 머물게 되면 아공간으로 회수되도록 했다.

그런데 로스차일드에 금괴가 반환되면 검사를 위해 녹여보는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물론 전체가 아닌 일부일 것이다. 하여 금괴를 기준으로 1m 안에 든 것이 함께 옮겨지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회수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부작용으로 로스차일드 저택 지하 금고에 있던 금괴 106톤이 보너스로 딸려왔다.

뿐만 아니라 상질의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등을 포함한 5천억 원 상당의 보석까지 같이 왔다.

꿩도 먹고 알까지 먹는 일이 된 것이다.

아무튼 피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 서울에 있는 현수는 귀를 긁는다.

‘아, 근데 누가 내 욕하고 있나? 왜 이렇게 간지럽지?’

새끼손가락을 넣어 귀를 후빈 현수는 손가락 끝에 묻은 귀지를 훅 불어낸다. 그리곤 해외영업부로 걸음을 옮겼다.

“아! 어서 오십시오, 전무님!”

자재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이 마주친 윤 대리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그와 동시에 모든 직원의 시선이 쏠린다.

쑥스러움을 느낀 현수는 걸음을 빨리하여 해외영업부 부장실의 문을 노크했다.

똑, 똑, 똑!

“…누구야? 들어와.”

문을 열자 돌아앉은 최 부장의 뒷모습이 보인다. 창턱에 구두 신은 발을 얹은 채 의자에 기대 있다.

“결재받을 거 있으면 책상에 놓고 나가.”

“……!”

“못 들었어? 책상에 내려놓고 나가 있어.”

상당히 짜증 섞인 음성이다.

“최 부장님, 면담 좀 하고 싶어서 왔는데 바쁘십니까?”

“누구야? 누가 허락도 없이……. 헉! 저, 전무님! 여, 여긴 어쩐 일로……. 어, 어서 오십시오.”

빙글 의자를 돌리며 짜증을 내던 최 부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탈색된다. 그리곤 지나칠 정도로 굽실거린다.

“바쁘시면 나중에 봬도 되는데…….”

“아, 아닙니다. 아, 앉으십시오.”

조금 전까지 최 부장은 짜증나는 기억 때문에 불쾌했다.

근본도 모를 신입 하나가 해외영업부에 배속되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보냈다. 그런데 그놈은 까마득히 높은 전무이사가 되어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쓸모없는 인원이라 판단하여 만년 과장 하나를 일찌감치 킨샤사로 보냈다. 그런데 이놈은 자신보다 한 계급 높은 이사가 되었다.

그런데 자신은 뭔가? 손바닥의 지문이 사라질 정도로 비비고 또 비볐건만 여전히 부장이다.

박준태 전무라는 동아줄을 잡았었다. 그런데 허당이다. 그 양반은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쁘다. 실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낙하산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짜증이 나서 오늘 저녁엔 누구와 술을 마시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도 짜증난다.

해외영업부에 속한 부하 직원들이 자신만 보면 슬슬 피한다는 것을 느낀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심으로 충성하는 직원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현재 최 부장은 대경실색한 상태이다.

느닷없는 출현도 출현이지만 실세 중의 실세인 김현수 전무에게 짜증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때문이다.

“명색이 기획영업단 단장이고 천지건설 영업 전반을 아우르는 직책에 있으면서도 최 부장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왔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저야말로 전무님을 제대로 받쳐 드리지 못한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송구(悚懼)스럽다는 표현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몹시 죄스러움을 느낄 때 사용하는 어휘이다.

직급은 높지만 현수가 훨씬 어리니 이런 땐 유감(遺憾)스럽다는 표현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아부하고자 함이 아니다. 너무나 당황하여 적절한 어휘를 선택할 정신조차 없기 때문이다.

최 부장은 조금 전 혼자서 중얼거린 말이 있다.

물론 현수와 이춘만 이사를 씹는 말이다. 그걸 들었을까 싶어 전전긍긍하기에도 바쁜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재건축 사업에 관한 내용을 알고 싶습니다. 간단한 브리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건…….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최 부장은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직원들에게 뭔가를 지시한다.

“전무님, 5분쯤 계시다가 저쪽 세미나실로 자리를 옮기시죠. 빔 프로젝터가 저쪽에 있어 그렇습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박진영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네, 박진영입니다. 전무님!”

“박 과장님, 지금 본사 건물에 있습니까?”

“네, 기획영업단 사무실에 있습니다.”

“그럼 해외영업부 세미나실로 내려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박진영 과장은 아주 깍듯하게 전화를 받았다.

통화 종료 버튼을 건드리면서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이는 이연서 회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수가 유니콘 아일랜드로 내려간 다음 날 이 회장은 계열사 순시에 나섰다.

천지건설도 당연히 방문했다. 이날 이창진 천지건설 회장 및 신형섭 사장, 그리고 박준태 전무가 따라다니며 수행했다.

쭉 둘러본 이 회장은 임원진에게 노고가 많다면서 저녁을 샀다. 이 자리에서 김현수 전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연희가 있어 손서가 된다는 사실과 러시아 가스전 개발 공사 및 파이프라인 공사를 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둘 다 극비이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얼마나 김현수 전무를 아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곤 조만간 승진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뉘앙스를 풍겼다.

천지그룹은 요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갖 공사를 다 주워 먹는 중이다. 건설은 물론이고 정유, 전자, 통신 부문은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룹 전략기획실장의 보고에 의하면 천지그룹이 100년간 할 일이 단기간에 수주되거나 이루어지는 중이다.

이것은 김현수라는 개인이 가진 힘 덕분이다.

따라서 천지건설 전무이사라는 직책은 공에 비해 너무나 작다고 평했다. 이연서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임원진은 긴장했다. 전무이사보다 더 높다면 부사장, 사장, 부회장, 회장 이렇게 네 자리뿐이다.

각기 한 명씩인 T.O2)이다. 이 회장이 겨우 한 등급 올려 부사장에 임명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장, 부회장, 회장의 순이다. 사장은 신형섭이, 회장은 이 회장의 아들인 이창진이 맡고 있다.

그렇다면 부회장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이 경우 티오를 하나 늘릴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나이 29세에 재벌 그룹 계열사 부회장이 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는 재벌가의 직계 자손이라 할지라도 없던 일이다. 그렇기에 임원들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박진영 과장은 아버지인 박준태 전무보다도 더 높아질 현수를 더 이상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기로 했다.

손에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간 존재쯤으로 여기기로 한 것이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편했다.

나이가 어린 것도 문제되지 않고, 강연희를 빼앗아 간 것도 더 이상 마음 쓰이지 않는다.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크리스마스이브에 권지현이란 아가씨와 결혼을 한다고 한다. 이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연희가 현수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생각하였기에 현수에 대한 적의를 버린 것이다.

“에, 이것으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물으실 것이 있습니까?”

지금껏 지시봉 대신 사용하던 레이저 포인터를 끄며 최 부장이 한 말이다. 이 자리엔 해외영업부 차장 및 과장 전원이 배석해 있고, 박진영 과장도 있다.

현수는 최 부장이 어떻게 해서 해외영업부의 총책임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브리핑은 간결하면서도 짚을 것은 모두 짚어 탁월했다.

뿐만 아니라 업무 전반에 대해 소상히 파악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신 사장의 말대로 업무 능력 하나는 괜찮다.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 대부분이 파악되었습니다. 추가로 발생되는 것이 있으면 기획영업단에도 사본 한 부를 보내주십시오.”

“네, 전무님! 앞으로 작성되는 서류는 전부 보내겠습니다.”

최 부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자, 이제 저는 갑니다. 박 과장님, 갑시다.”

“네, 전무님!”

박진영 과장의 뒤를 따라 34층에 위치한 기획영업단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못 보던 얼굴 셋이 있다.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현수가 들어서자 일제히 일어선다.

“어서 오십시오, 전무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현수는 자연스럽게 박진영 과장을 바라보았다.

“기획영업단 업무를 지원해서 일단 받았습니다. 개발사업부와 공무부, 그리고 총무부에 근무하던 직원들입니다.”

“우리 부서의 업무가 많아졌습니까?”

“전무님께서 브라질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관심 가지신 것 같아서 그쪽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중입니다. 당연히 저 혼자 힘으론 어려워서 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불안한 시선으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원래의 부서로 되돌아가라는 말이 나올까 싶어 그러는지 잔뜩 긴장해 있다.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

“네, 전무님! 저는 개발사업부에서 온 김지윤입니다. 특기는 자료 수집 및 분석입니다.”

“저는 공무부에서 온 황만규입니다. 건설 사업 전반에 대한 업무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총무부에서 지원한 구본홍입니다. 관공서 쪽 일에 자신 있습니다.”

“좋아요. 나는 해외업무가 많아서 자주 자리를 비울 겁니다. 그러니 없는 동안엔 여기 있는 박진영 과장님의 지휘를 받으세요. 이따 퇴근 후에 가지 말고 남아요. 회식 한번 합시다.”

“네, 전무님!”

쫓겨나지 않고 실세 중의 실세가 있는 기획영업단에 남게 된 것이 좋은지 다들 웃는 낯이다.

전무실로 들어간 현수는 박진영 과장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곤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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