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2
현관을 열고 나가보니 바닥에 쓰러진 녀석들이 소매를 문 늑대의 이빨을 떼어내려 발버둥치는 중이다.
“나자리노, 뒤로 물러나!”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자리노가 물러선다.
“그리셀다, 너도!”
명이 떨어지자 그리셀다 역시 물러선다.
하지만 형형한 안광으로 침입자들을 노려본다. 여차하면 다시 달려들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내가 물라고 명령하면 목덜미의 경동맥이 끊길 수 있다. 그러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
사내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현수의 눈치만 살핀다.
“신분증 꺼내.”
“…우린 그런 거 없다.”
둘 중 하나의 말에 시선을 돌려보니 무엇을 묻든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굳게 닫고 있다. 그러면서 대문 쪽을 힐끔거린다. 여차하면 도주할 생각인 것이다.
“그래? 나자리노, 그리셀다! 지금부터 이자들이 움직이면 먹어도 된다.”
크르르르렁―!
알아들었다는 듯 나자리노가 먼저 으르렁거린다.
“……!”
물어도 된다와 먹어도 된다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흠칫하며 늑대들을 바라본다.
나자리노와 그리셀다는 믿지 못하면 어디 한번 움직여 보라는 듯 이빨을 드러내며 노려보고 있다.
야생 늑대가 보이는 적의는 웬만한 사람은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한 녀석의 하의가 젖어든다.
겁에 질려 오줌을 싼 것이다.
현수가 한 발짝 다가가자 두 마리 늑대도 따라서 움직인다.
사내들은 현수가 품을 뒤져 지갑을 꺼내가도 움직이지 않았다. 늑대가 언제 덮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은 김일훈. 흐음, 어디 보자.”
지갑을 뒤졌으나 주민등록증 이외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또 하나의 낡은 지갑을 열었다.
“막도정? 넌 짱골라였어?”
바지에 오줌을 싼 사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늑대가 달려들까 싶어서이다.
“흐음, 둘 다 일어서.”
현수의 말에 둘은 늑대의 눈치부터 본다. 조금 움직였는데 가만히 있다. 하여 슬그머니 일어서려 한다.
크르르르렁―!
“허억!”
털썩―!
그리셀다가 나지막이 으르렁거리자 막도정이 도로 주저앉는다. 어린 시절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을 본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괜찮으니 일어서. 그리셀다 너는 조금 뒤로 물러나.”
크르르르렁―!
먹이를 눈앞에 두고 물러서는 것이 마뜩치 않다는 듯 나직이 으르렁거리고는 몇 발짝 뒤로 간다. 하지만 여전히 적의에 가득 찬 안광으로 막도정을 노려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둘 다 일어났다.
4장 움직이면 먹어버려!
“이 집에 침입한 목적은?”
“무, 물건을 훔치려고…….”
“명령을 받고…….”
서로 다른 말을 꺼낸 둘이 시선을 교환한다.
현수는 막도정에게 먼저 시선을 주었다. 자신이 한 말이 진실이라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김일훈에게 시선을 보냈다. 입술을 꾹 다문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누구지?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지? 아! 맞다.’
현수의 기억을 스친 영상은 열흘쯤 전의 것이다.
이현우, 조경빈 등 친지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 나이트클럽에서 보았다. 세정파의 실질적인 보스 유진기에게 뭔가 지시를 받던 인물이다.
“너! 세정파 유진기가 보냈나?”
“헉!”
작은 소리였지만 김일훈은 분명 당혹성을 냈다.
“너는 세정파와 손잡은 삼합회 소속이지?”
막도정은 단번에 자신들의 정체를 꿰뚫어보는 현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얘들이 니들을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
나자리노와 그리셀다는 현수의 말이 맞다는 듯 으르렁거리며 노려본다. 이에 막도정은 떨칠 수 없는 공포를 느끼는지 부르르 떨며 입을 연다.
“마, 말하겠소.”
“좋아, 너부터 말해. 이곳에 온 이유는?”
“당신 부모를 납치하기 위해서 왔소.”
“뭐라고? 누구의 지시지?”
“나, 나는 김 형을 따라온 것뿐이오. 누가 지시한 건지는 김 형이 아오.”
현수의 시선이 움직이자 김일훈은 슬며시 피한다.
“세정파 유진기가 우리 부모님을 납치해 오라고 시켰다고?”
“…그렇소!”
다 알고 묻는 듯싶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유는?”
“모르오. 나는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오.”
“옆집 노인들을 납치하려던 것도 너희인가?”
“맞소. 우리가 집을 잘못 알았소.”
막도정이 중간에 끼어 고개를 끄덕인다.
“너희 둘뿐인가? 밖에도 누군가 있나?”
“…차에 둘이 더 있소.”
말을 마친 김일훈은 모든 걸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떨군다.
“리노, 셀다, 여길 지키고 있어. 움직이면 먹어도 된다.”
나자리노와 그리셀다는 현수가 애칭으로 부르자 기분 좋다는 꼬리를 흔든다.
정원석을 딛고 담장 너머를 바라보는 순간 누군가 묻는다.
“어찌 되었나? 왜 이렇게 늦어? 노인네들은 잡았어?”
“홀드 퍼슨!”
“헉! 모, 몸이 왜 이래?”
사내가 당황한 듯 소리칠 때 현수는 훌쩍 담을 뛰어넘었다.
그리곤 시동이 걸린 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승합차로 곧장 다가갔다.
똑, 똑―!
“헉! 누구? 넌 누구냐?”
“홀드 퍼슨!”
“……!”
덜컥―!
운전석 문을 열고 사내를 끌어내렸다.
“어, 어? 내가 왜 이래?”
앉은 자세 그대로 끌려가던 사내가 당황한 듯 소리친다.
갑자기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담장 아래에 있던 사내마저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김일훈과 막도정 앞에 당도하자 나직이 중얼거렸다.
“매직 캔슬!”
크르르르렁―!
“헉! 느, 늑대야!”
“뭐? 늑대? 헉! 지, 진짜다.”
나자리노와 그리셀다의 형형히 빛나는 두 눈을 본 녀석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앉는다.
“리노, 셀다, 이 녀석들도 움직이면 먹어도 된다.”
“이봐!”
둘 중 하나가 발작적으로 소리를 치려 할 때 막도정이 입을 연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진짜로 먹힐 수 있어.”
“뭐?”
“이, 이놈들, 진짜 야생 늑대야. 어떻게 여기 있는지 몰라도 이놈들은 진짜 우릴 잡아먹을 수 있어.”
“……!”
막도정의 말에 둘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다.
현수는 전화기를 꺼내 112에 전화했다. 하수인에 불과한 이들로부터는 더 이상의 정보도 얻을 수 없다 판단한 것이다.
잠시 후, 순찰차가 당도했다. 범인들이 체포되는 동안 리노와 셀다는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갔다.
‘흐음, 유진기! 네놈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런데 왜 부모님을 납치하려 했을까? 내가 한 일을 모를 텐데.’
룸살롱 락희의 귀신 소동, 케이먼 제도에 은닉해 두었던 돈 증발 사건, 백두마트 보안요원 폭행 사건, 세정캐피탈 비밀 장부 고발 사건, 세정빌딩 매도 대금 증발 사건이 있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세정파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진기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상 부모님을 납치하려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나?’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부모님은 이게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이웃집 노부부 납치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몹시 불안해한다.
하여 당분간 경호원을 배치하겠다고 말씀드렸다.
* *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현수는 토탈가드에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링―!
“네, 토탈가드 양미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반갑습니다. 천지건설 김현수입니다.”
“어머! 김 전무님이시군요. 네, 반갑습니다. 현 팀장님 바꿔 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지요.”
“호호!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전히 싹싹하다. 하여 현수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 있다. 잠시 후, 현인구 팀장과 통화가 있었다.
현수는 부모님을 위해 열두 명의 경호 인력을 추가로 고용했다. 2인 1조로 3교대 근무가 필요한 때문이다.
혹시 몰라 권철현 고검장 부부와 권지현을 위한 경호원도 고용했다. 이쪽도 2인 1조 일일 3교대이니 18명이 필요했다.
극심한 불황으로 경호 인력이 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현 팀장은 반색하며 최고의 요원들로 구성하겠다고 했다.
경호 기간은 결혼식이 있을 크리스마스이브까지로 정했다. 돈은 꽤 많이 들지만 안전이 우선이다.
아침 식사 후 현수는 차를 몰아 내곡동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아침 일찍 국정원으로 향한 현수는 입구에서 어제 통화했던 엄규백 요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타난다.
“김현수 전무님, 어서 오십시오. 엄규백입니다.”
엄 요원은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 현수 역시 인사를 하곤 물었다.
“네,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3차장님이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네?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김현수 전무님은 지금 1차장님 휘하 해외 정보 분석팀에서 보자고 한 겁니다.”
“해외 정보 분석팀이요?”
국정원엔 세 명의 차장이 있다.
1차장은 해외, 대북 분석 업무를 맡고 있다.
2차장은 안보, 수사, 보안, 정보 담당이다.
3차장은 대북공작, 과학, 산업, 방첩 업무를 맡고 있다.
통일부에서 북한 주민 접촉 승인이 떨어졌기에 3차장 쪽과 관련된 호출인 것으로 알고 왔다. 그런데 해외 정보 업무 전담 부서에서 불렀다니 의아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자, 이쪽으로 가시죠.”
엄규백 요원의 안내로 들어간 곳은 평범한 사무실이다. 책상 몇 개와 소파가 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쪽 자리에 앉으시죠.”
“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소파에 앉자 엄규백 요원이 책상으로 가 파일을 들고 온다.
“해외에 파견된 저희 요원들이 보내온 보고에 의하면 김현수 전무님은 현재 테러의 대상이 된 상태입니다.”
“네? 테러요?”
“이건 지나에서 온 보고 자료입니다.”
엄규백 요원이 펼친 파일 속에는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가 암살 대상이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누가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는 파악 중에 있다고 한다.
“이 사진들 가운데 혹시 눈에 익은 인물이 있는지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여러 컷의 스틸 사진을 받아 든 현수는 사진 속의 인물을 하나하나 살폈다. 대략 20여 명이 찍혀 있는데 이 중 보거나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다.
“없는데요.”
“흐음, 혹시 왜 암살 대상이 되었는지 아십니까?”
국정원에 김현수 암살 음모에 관한 첩보가 접수되었을 때 담당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가 정보, 또는 국가 안위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보고가 다른 첩보원으로부터 중첩되어 들어왔다. 둘은 서로 다른 곳에서 활동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두 곳 이상에서 현수를 노린다는 뜻이다.
확인 중에 있지만 하나는 삼합회, 다른 하나는 지나 정부 쪽인 듯싶다.
그날 이후 현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두 조직에서 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천지건설을 위해 큰일을 해냈고, 우리 상품을 열심히 수출하는 일꾼일 뿐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러시아 노보로시스크를 관장하는 지르코프와의 만남이 파악되었다.
국정원에선 여러 나라에 요원들을 파견하고 있다.
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엔 없었다. 교류는 하고 있지만 중요하다고 분류된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지건설이 진출하고 계속하여 천지그룹 계열사들이 그쪽 일을 수주하자 한 팀을 보냈다.
그들로부터 온 첩보이다.
지르코프는 레드 마피아의 주요 보스 가운데 하나이다.
비록 2강 3약엔 끼지 못하지만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휘하 세력 등은 결코 만만치 않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의대를 졸업한 재원이기에 상당히 두뇌 회전이 빠른 인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