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5
“신문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회사의 지원도 없었다면서요.”
“……!”
“그리고 동영상 보면서 저 반했어요. 어쩜 그렇게 멋있어요? 이 세상 어떤 배우보다도 더 진짜 같았어요.”
“헐!”
라일라 아지즈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며 빤히 바라보기에 현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진다. 곤혹스런 순간이다.
“두바이에서도 김 전무님은 이제 유명인사예요. 학교 친구들도 만나기만 하면 전무님 이야기를 해요.”
“그, 그래요?”
“진짜 멋있었어요. 그래서 저 반했어요.”
환히 웃으며 바라보는 시선은 몹시 부담스러웠으나 애써 피할 일도 아니다 싶어 웃어주었다.
“에구, 그리 생각해 주시니 영광이네요.”
“어머! 정말인데. 두바이엔 كيم هيون - سو الحب(김현수 사랑)이라는 인터넷 카페가 있어요. 전 거기 운영진 중 하나구요. 보실래요?”
말을 마친 라일라는 객실에 비치되어 있는 컴퓨터에 전원을 켠다. 그리곤 웹 사이트 주소를 입력한다.
잠시 후 모니터 가득 티저 영상이 자동 재생이 된다. 그러다 차츰 크기가 줄어든다. 그러면서 여러 아이콘이 좌우에 뜬다. 그중 자유게시판을 클릭하니 게시물 목록이 나타난다.
“보세요. 벌써 10만이 넘었어요.”
가장 마지막에 작성된 107864번 게시물 제목을 클릭하니 화면이 바뀐다.
너무도 멋진 김현수 전무님!
아직 미혼이라면서요? 저는 이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어요. 하지만 우린 외국인에겐 시집을 갈 수 없는…….
불공평해요. 그죠?
무척 짧은 글이지만 달린 댓글은 그렇지 않다. 본문보다도 훨씬 더 장문의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다.
두바이의 남성은 유대교나 기독교 여자와의 결혼이 가능하다. 그리고 네 명까지 처를 둘 수 있다.
반면 여성은 단 한 명의 남성과 결혼하며, 외국인과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다.
이에 대한 항의성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는 것이다.
“제 말 거짓말 아니죠?”
“그러네요.”
현수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지구 저편의 여성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너무나 좋아서 글도 쓰고, 한국의 신문 기사 등을 번역해서 올려놓고, 여기저기서 이미지를 찾아 스크랩해 놓았다.
각각의 게시물엔 많은 댓글이 달려 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장난이 아니다. 가장 적은 게 22,384개이다.
열어보니 달랑 사진 한 장만 올라와 있다. 인터뷰하는 동안 찍힌 사진이다. 옆얼굴만 나온 사진이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려 있다.
꺄악! 너무 멋져.
김 전무 옵빠는 내 거!
나 시집 쉬퍼.
내 거다. 넘보지 마.
흥! 내 남편이 왜 니 거니?
이것 다음부터는 모두 소유권 주장에 관한 글이다.
김현수는 내 남편이고, 오른쪽 가슴에 반달 모양 점이 있고, 왼쪽 허벅지엔 어린 시절에 다친 상처의 흔적이 있다는 등 그럴듯한 거짓 증거들을 내놓은 글이 있다.
그 다음엔 시부모 될 사람과 인사를 했다면서 우미내 장독대 사진이라고 올려놓은 것도 있다.
물론 처음 보는 장독대 사진이다.
이 밖에도 이슬람 국가치고는 상당히 발칙한 내용도 많았다.
최고로 많은 건 7,259,145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물론 신화창조 티저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온통 찬사뿐이다.
간혹 여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에 질투를 느낀 남정네의 시기심 어린 글도 있지만 수많은 질타 속에 묻혀 버렸다.
“저도 이 영상을 수십 번은 본 거 같아요. 너무 멋져요. 그래서 생각했죠. 이건 분명 분장을 하고 찍은 거라구요. 그러니 실물이 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
“근데 아니에요. 실물이 훨씬 더 나아요. 정말 미남이세요.”
“에구!”
면전에 대놓고 하는 칭찬인지라 현수는 남세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여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만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다. 외국인 남성과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관습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대놓고 들이대는 것이나 거의 다름없는 대화가 오간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객실 문이 열린다.
“오오! 마법사! 여보, 내가 말한 바로 그 마법사야.”
라일라 아지즈의 부친인 아미르 아지즈이다.
그의 곁에는 곱게 성장한 중년여인이 있다. 40대 초반인 듯싶은 이 부인은 라일라의 모친인 나지마 알 막툼일 것이다.
이 이름은 조금 전 라일라로부터 들었다.
“반갑습니다. 김현수라 합니다.”
현수는 얼른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어찌 되었든 본인의 장난 때문에 먼 길을 온 손님이기 때문이다.
“……!”
나지마 알 막툼이 잠시 시선을 준다.
남편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호감 실린 시선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라일라의 미모는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듯하다. 나이가 있을 텐데 아직도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반가워요. 우선 자리에 앉죠. 여보, 당신도 앉아요.”
“그, 그래! 마법사님도…….”
“흠흠!”
현수는 나직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곤 맞은편에 앉은 아미르 아지즈를 살펴보았다. 라일라의 말대로 조금 맛이 간 듯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낡은 양탄자를 들고 있다.
한시도 손에서 떼지 않는다더니 실제로 그런 모양이다.
“라일라로부터 이야길 들었지요? 이 양반 좀 어떻게 해줘요. 정말 미치겠어요.”
나지마 막툼의 표정엔 짜증이 배어 있다.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 여인답지 않게 도도하다.
“일단 자리 좀 피해주시겠습니까? 아미르 아지즈 씨와 이야길 해보고 싶으니까요.”
“으음, 좋아요. 라일라, 우린 잠깐 나가자.”
“네, 어머니!”
향수 냄새 풍기던 두 여인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아미르 아지즈가 양탄자를 펼친다.
“한번 해보게. 날아라, 양탄자라고 말이야. 자넨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거지?”
조금 전과 달리 아주 진지한 표정이다. 눈빛도 달라져 있다. 정신분열증이라도 겪는 모양이다.
“어서 해보게. 응? 날아라, 양탄자라고 말이야. 어서!”
“…그러죠! 날아라, 양탄자!”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탄자가 둥실 떠오른다.
“그, 그래! 바로 이거야! 하하하! 진짜 마법 양탄자였어. 하하하! 하하하하!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아미르 아지즈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일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자 통쾌한 기분이라도 느끼는 모양이다.
“매직 캔슬!”
현수의 입술이 달싹이자 양탄자가 바닥에 내려앉는다.
“이, 이보게, 이거 어떻게 하는 건가? 내게 가르쳐 주게. 왜 내가 하면 안 되는 건가?”
“아미르 아지즈 씨는 마법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그럼… 자넨 마법사인가?”
“맞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면 되고 아지즈 씨가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럼, 춤추는 밧줄도?”
“네. 저 이외엔 그걸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 그랬군. 그래서 그런 거였어.”
이제야 납득이 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전에 비해 많이 늙은 듯 보인다.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지즈 씨, 제가 마법사라는 것, 그리고 이게 마법의 양탄자라는 건 비밀입니다.”
“……?”
이게 왜 비밀이냐는 표정이다.
“아지즈 씨가 특별하기 때문에 제 신분을 밝힌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마법사라는 걸 알 자격이 없습니다.”
“아, 그래서……. 알겠네. 맹세하지. 자네가 마법사라는 걸 절대 발설하지 않겠네.”
“부인과 따님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 그러겠네.”
아미르 아지즈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마나여, 이 맹세가 영원하도록 속박의 힘을 발휘하라!”
샤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황색 마나가 아미르의 두뇌로 스며든다.
기억을 지워 버리면 문제점이 발생될 수 있다. 그간 했던 말과 행동을 부인과 딸이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셋 모두의 기억을 지울 순 없다. 두바이를 떠나 서울로 온 것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납득시켜 주고 그걸 비밀로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는 마법사와의 맹약이니 잠꼬대로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아지즈 씨!”
“왜 그러나?”
“부인께서 가게를 처분한 건 아시는지요?”
“아, 네. 날 위해 팔았다더군.”
“그럼, 돌아가시면 무엇을 하실 겁니까?”
“글쎄? 생각해 보지 않아 아직은 무얼 할 건지 모르겠네.”
“벌어놓으신 것은 많습니까?”
“돈 모아놓은 거? 조금 있기는 하네.”
“아! 그렇군요.”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서울에 오셨으니 구경 잘 하십시오.”
“고맙네.”
잠시 후 부인과 딸이 들어온다.
현수는 미리 약속한 대로 마법의 양탄자가 허공으로 떠올랐던 게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을 했다. 아미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정신과 의사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던 아미르였기 때문이다.
호텔을 떠난 현수는 곧장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되돌아갔다.
* * *
“사장님, 외출하신 동안 연락 온 곳이 있습니다.”
“그래요? 어디죠?”
“홍진표 의원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도착하시는 대로 연락 달라고 하더군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연락해 달라고 하셨어요.”
“네, 알았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 상의를 탈의한 현수는 전화기를 들었다. 계속해서 전화하라는 말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네, 김현수입니다.”
“아! 김 전무, 보내준 옷은 잘 받았네.”
“네, 그러셨어요.”
“일 처리가 빨라 참 좋았네. 국방장관의 군복도 건네주었네.”
어제 홍 의원을 만난 이후 현수는 이실리프 어패럴에 전화를 걸어 합의된 내용대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박근홍 사장은 이를 즉각적으로 처리했다. 그렇기에 감사 인사를 한다 생각한 것이다.
“네, 수고스러우셨겠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물건이네.”
“네?”
“자네가 보내준 항온 재킷 말이네.”
서울의 10월 평균 기온은 15.1℃이다. 그런데 오늘은 새벽에 비를 뿌렸다. 하여 다른 날과 달리 쌀쌀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수은주에 나타난 오전 10시 온도는 3℃이다. 어제 오전 10시의 온도는 10.8℃였다.
하루 만에 7.8℃나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권이다.
출근길 시민들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잔뜩 웅크려야만 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홍 의원 역시 그런 시민 가운데 하나이다.
의원 사무실에 당도했으나 난로는 없다. 하여 뜨거운 녹차로 몸을 덥혔다. 그러던 중 이실리프 무역상사 직원이 당도했다는 전갈을 받고 비서관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의 손에는 항온 재킷 다섯 벌과 국방장관을 위한 군복 한 벌이 들려 있었다.
현수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기에 얼른 입어보았다. 잠시 후, 조금 전까지 느꼈던 추위가 사라진다.
하여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 밖으로 나가보았다.
얼굴로는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지만 몸은 물론이고 주머니 속에 넣은 손은 전혀 그런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 비슷한 시각에 항온 재킷을 걸친 보좌관들 역시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그리 두꺼운 옷이 아니다. 겉보기엔 전혀 따뜻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겨울에 걸칠 오리털 파카보다도 더 보온성이 좋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옷을 벗어보니 금방 싸늘함을 느끼게 된다. 비서들도 그렇다고 한다. 홍 의원은 얼른 국방장관의 군복을 챙겼다.
마침 장관이 국회에 출석하는 날이다. 오늘 국방위원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잠시 후, 오정섭 국방장관은 홍 의원의 채근을 받으며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곤 놀라운 효능을 몸으로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