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7
그리고 구소련 연방의 제5대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레오니트 일리치 브레즈네프의 증손녀이기도 하다.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이름이 길다면서 까챠라 불러달라고 했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검정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몸매까지 좋았다는 것이 첫인상이다. 그래서 문득 떠오른 것이다.
‘오랜만에 드미트리에게 전화 한번 해봐야겠군.’
현수가 까챠와 드미트리를 떠올리는 순간 박 사장이 바싹 다가앉는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뜻이다.
“그래요? 아무튼 연락 한번 해주십시오. 곧바로 제작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러죠.”
“참, 그 이야기 하다 말았네요. 어제 만남 L백화점 바이어가 그러더군요. 자기들에게만 독점으로 공급해 줄 수 없느냐고.”
“그래서요?”
“백화점 입장에선 우리 이실리프 어패럴은 신생 의류회사입니다. 이런 경우 백화점 마진이 대략 35%쯤 됩니다.”
“네? 그렇게나 많아요?”
현수는 깜짝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화점이 어느 정도 이익을 남길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네. 예를 들어 옷 한 점을 10만 원에 판다고 치면…….”
잠시 박 사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의류회사에서 원가 2만 원짜리 옷을 가져오면 그 가격은 10만 원 정도로 정해진다.
백화점 마진 3만 5천 원, 매니저 수수료 1만 5천 원, 본부 판매 관리비 6천 원을 빼고 나면 2만 4천 원이 이익이다.
원가 대비 120% 이익률이다.
그런데 여기서 프로모션비와 홍보비 등이 빠져나간다.
백화점 홈페이지 메인 배너는 1회성이 3백만 원이다. 사이드 배너는 100만 원, 메일링이 50만 원이다.
이 밖에 매장 인테리어 비용도 지불해야 하고 사은품도 준비해야 한다.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남는 게 얼마 안 되거나 적자가 된다. 유통업체는 앉아서 돈을 벌고, 소비자는 비싼 의류를 매입하게 되는 것이다.
설명을 모두 들은 현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마진이 35%나 된다면 굳이 백화점에 진출할 필요가 없겠네요. 소비자들만 봉 되는 거니까요.”
“네, 그래서 그런 마진을 보겠다면 백화점 매장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뭐라던가요?”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길 하자더군요.”
“호오, 그래서요?”
점점 흥미로워진다는 표정을 짓자 박 사장이 개구진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따라갔죠. 크흐흐, 백화점 바이어가 사주는 술을 다 마셔보네 하면서요.”
“1차로 뭐 드셨습니까?”
“횡성한우 좋더군요. 육질도 맛도. 그거 다 먹고 룸살롱에 갔습니다. 크흐흐흐!”
박 사장은 그날의 일이 생각나는지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많이 드셨습니까?”
“많이 먹고 마셔서 바가지 팍 씌웠지요. 하지만 취하진 않았습니다. 아무튼 술을 마시는 동안 계속해서 독점 이야길 하더군요. 우리 것이 돈이 된다 생각한 모양이에요. 하여간 돈 냄새 맡는 데는 귀신이에요, 귀신!”
“바이어니 당연히 그렇겠죠. 그래서요?”
“독점 못해준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에 들어가도 마진 그렇게는 못 주겠다고 했죠.”
“후후, 뭐라던가요?”
현수는 백화점 바이어의 표정이 어떨지를 상상해 보았다. 보나마다 떫은 감이라도 씹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독점으로 해주면 마진을 조금 내리겠다고 합니다.”
“호오, 그래요? 얼마까지 내린다고 하던가요?”
“30%까지 내려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요?”
“낄낄,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원하는 수준이 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백화점 마진 10%라구요. 크흐흐, 그 녀석 얼굴이 시뻘게지더군요. 크흐흐흐!”
“후후, 통쾌했겠습니다.”
“크크크! 네, 앓던 이 빠진 것보다도 더 시원하더군요. 크흐흐흐!”
이전에 당했던 것이 생각났는지 박 사장은 계속해서 웃기만 한다.
“잘하셨네요. 백화점이나 마트 영업에 관한 권한은 전적으로 박 사장님께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신 수준이 되면 들어가고 아니면 하지 마세요. 인터넷에 직영 쇼핑몰을 내면 되니까요.”
“아! 인터넷 쇼핑몰, 그거 좋군요.”
박 사장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는지 얼른 무언가를 메모한다.
“아무튼 수고 좀 해주세요.”
“물론입니다. 다 회사가 크는 일인걸요. 그나저나 인원이 조금 더 있어야겠습니다.”
“네, 알아서 뽑으세요. 단, 비정규직은 안 됩니다. 모두 정규직으로만 뽑으세요. 참, 화장실이나 복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모두 파견직이죠?”
“네, 현재는 용역회사와 계약을 해서…….”
“그분들,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세요.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현수의 뜻이 무엇인지 가늠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앞으로도 우리 회사는 비정규직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입사원 뽑을 때에도 인턴은 뽑지 마세요.”
“네?”
“기업들이 인턴사원을 뽑는 거, 그거 달리 보면 비정규직 뽑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인턴 기간 동안 월급 적게 주고, 그 기간만 지나면 곧바로 자를 수 있잖아요.”
“아, 네.”
박 사장이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사원을 뽑을 때 출신 대학은 보지 마십시오. 저 삼류대학 출신인 거 아시죠?”
웃음 띤 현수의 얼굴을 보며 박 사장은 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외국과의 직접적인 영업을 위한 영업직은 토익이나 토플 점수보다는 회화가 가능한지를 확인하십시오.”
토익의 경우 시험을 보기 위한 접수 비용이 42,000원이다.
특별 접수는 이보다 10% 많은 46,200원이다. 토플의 경우는 한 번 시험 보는 데 무려 20만 원이나 내야 한다.
2012년에 토익과 토플에 응시한 연 인원은 각각 235만 명과 12만 명이다. 응시 비용만 1,200억 원이 넘는다.
이 중 시험 주관사인 미국 ETS에 지급된 로열티만 339억 원이다. 영어 능력 시험 보느라 국부가 빠져나간 것이다.
“국내 업무만 볼 사람들에겐 굳이 영어 실력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그거 괜한 낭비입니다.”
“……!”
“대학의 학점도 볼 필요 없습니다. 회사 업무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대신 남자의 경우엔 군필 여부를 꼼꼼히 따져 주십시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면제받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가졌어도 가급적이면 뽑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경우는 어쩌죠?”
“여직원을 뽑을 땐 사진 없이 서류전형 먼저 하십시오.”
“아! 얼굴을 보지 말라는 말씀이신 거죠?”
“그렇습니다. 예쁘다고 뽑고 뚱뚱하거나 못생겼다고 내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필요한 건 외모가 아니라 업무 능력과 융화니까요.”
“전무님 말씀을 적극 적용하겠습니다.”
“에구, 그러고 보니 제가 경영에 간섭한 셈이네요.”
현수가 어색한 웃음을 짓자 박 사장이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다 맞는 말씀인데요.”
“아무튼 직원들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들어보세요. 많이 남을 테니 많이 베푸시구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박근홍 사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장인 대부분이 월요일이 오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그걸 깨달라는 뜻이다.
그러려면 회사에서의 생활이 즐거워야 한다.
높은 연봉을 준다 하여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박 사장은 어찌하면 그런 회사를 만들까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그런 직장에서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실리프 어패럴은 중소기업이지만 대다수 취업 준비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몇 안 되는 회사에 포함된다.
급여는 대기업과 동등한 수준이다.
출근은 오전 10시, 퇴근은 오후 5시이다.
하루 일곱 시간 근무인 셈이다. 이중 점심시간 한 시간을 빼고 나면 업무는 여섯 시간 동안 보는 것이다.
대신 업무 집중도를 높여달라는 요구를 한다.
일하는 시간으로 따져 보면 대기업보다도 급여가 세다.
모든 공휴일은 쉬며, 공휴일이 토요일, 또는 일요일인 경우 차주 월요일을 쉰다. 대체 휴일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 년을 넷으로 나눠 계절별 휴가가 주어진다.
3∼6월엔 봄 휴가 4일, 7∼9월엔 하계휴가 7일, 9∼11월엔 가을 휴가 4일, 12∼2월엔 동계휴가 7일이 주어진다.
모두 유급 휴가이다. 휴가 기간 동안 숙박업소를 이용한 비용의 3분의 2는 회사에서 부담해 준다.
이 밖에 장기근속 휴가도 있다.
근무 기간이 5년이 될 때마다 추가로 15일간 휴가가 주어진다. 이때엔 항공비 전액, 숙박비 전액이 지원된다.
직원 자녀들의 학비 지원도 있다.
근속 기간이 3년을 넘으면 자녀수와 관계없이 대학 졸업까지 모든 입학금과 등록금을 지급한다.
근속 기간이 10년을 넘을 경우엔 직급에 관계없이 차량 지원도 해준다.
점심 식사는 회사에서 제공한다. 뷔페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은 조만간 사옥을 이전할 계획이다. 하청업체들 역시 규모 확장을 위한 이전을 해야 한다.
이때 가급적 본사 인근에 모여 있도록 할 생각이다.
이럴 경우 하청업체 직원들 역시 본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 비용은 별도로 청구하지 않을 생각이다.
돈은 더 들겠지만 교통비 및 통신비용이 절감된다. 또한 본사와 하청업체 간의 긴밀한 협조와 융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참, 최 대령으로부터 별도의 전화는 없었습니까?”
“왜 없었겠습니까? 오늘도 벌써 여러 번 왔습니다. 우리가 미군과 계약한 걸 알게 된 모양입니다. 언제 부작용을 해결했느냐면서 빨리 계통을 밟아달라고 난리입니다.”
“강철환도 전화했습니까?”
“네, 조금 전에 전화 왔었습니다. 어쩌면 이따 이리로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흐음, 여전히 정신들 못 차리는군요. 이제 그 사람들과 통화하거나 대화할 경우 전부 녹음해 주세요. 국방장관님을 뵐 때 드려야겠습니다. 그럼 좀 조용해지겠지요.”
“…크흐흐흐, 알겠습니다. 녹음된 파일은 전무님께 이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강철환 예비역 대령은 아니지만 최세창 대령과 선진식 소령은 현재 국방장관 관할하에 있다. 군수품 납품 비리와 연관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 뻔하다.
그렇기에 나직한 웃음을 지은 것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을 나선 현수는 곧장 역삼동 이실리프 상사로 향했다. 거기엔 영등포에서 배달되어 온 SUS 304 0.35T만 1,000만 장이 모셔져 있다.
서둘러 아공간에 담고는 곧장 천지건설 본사 옥상으로 텔레포트했다. 이실리프 어패럴과 울림네트워크에 줄 마법진 제작을 위함이다.
결계를 치고 들어가 습관처럼 타임 딜레이 마법을 구현시켰다. 지금부터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곤 찬찬히 마법진들을 만들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에티오피아에 수출할 여름용과 이제 곧 다가올 겨울을 위한 항온 마법진부터 만들었다.
마법진은 처음 하나를 만들 때만 고도의 집중을 요구한다.
그다음엔 퍼펙트 카피라는 훌륭한 마법이 무수히 많은 복제품을 만들어준다. 마나석까지 모두 끼워 넣은 상태이다.
다행히 유카리안 영지 마나석 광산에서 가져온 마나석의 질이 좋고 수량도 많기에 가능한 일이다.
엔진 효율을 높여줄 마법진도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이것들도 언제든 가동 가능하도록 준비했다.
내친김에 발전소 보일러용 마법진을 만들었다.
공급되는 연료를 완전히 연소시키려면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너무 많아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