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3
“네!”
“온 우주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는…….”
현수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하몬드는 정신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지금 전수되는 마나 심법은 멀린이 남긴 여러 검법 가운데 하나이다. 약 500년 전 세상을 풍미했던 소드 마스터의 심득이 담긴 것이다. 당연히 뛰어난 효율을 가진 것이다.
현수는 몇 번을 반복해 가며 심법을 전수했고, 그것이 체내에서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려주었다. 반나절이 지났을 즈음 하몬드는 마나 심법을 제대로 운용하게 되었다.
“자! 다음은 검법이다. 이건 웬만해선 익히기 어려우니 지식 전이 마법을 좀 쓰지.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지만 꾹 참아야 하네.”
“네, 알겠습니다.”
“눈을 감게. 좋아! 날리지 트랜스퍼(Knowledge transfer).”
“으응? 으으, 으으으으……!”
하몬드의 뇌리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은 카룬검법뿐만이 아니다. 소드 마스터의 독문검법인 카룬검법을 익히려면 그보다 하위 개념이 기초를 이루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 전이 마법은 9서클 마법이다. 따라서 9서클 마법사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어야 정상이다.
현수는 분명 8서클 마법사이다.
그럼에도 9서클 마법을 쓸 수 있는 이유는 희미하게나마 아홉 번째 서클이 생성된 때문이다.
그리고 9서클 마법 중 지식 전이 마법이 가장 쉽다.
아무튼 현수에 의해 많은 검법 지식이 하몬드의 뇌리로 스며들고 있다. 당하는 하몬드는 어질어질하여 죽을 지경이다.
현수 역시 적절한 수준만 보내지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너무 많은 지식이 전이되면 미치거나 바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살몬검법을 구사해 봐라.”
“네!”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몬드의 몸이 움직인다.
“좋아, 다음은 아캄포검법이다. 3식부터 시전해.”
“알겠습니다.”
아몬드가 운용하는 검을 살펴본 현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몸에 익지 않아 다소 밋밋하고 허술한 듯 보이지만 요체만은 그대로 운용되고 있다.
“레만검법 5식부터… 하룬검법 후반부… 알로이검법 전반부… 쿠리안검법 후반부를 시전해.”
현수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하몬드의 검이 움직인다.
그렇게 십여 가지 검법이 구사되었다.
“흐음! 이쯤이면 카룬검법을 익혀도 되겠군. 자, 카룬검법 시전해 봐.”
“네, 알겠습니다.”
하몬드가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그건 분명 카룬검법이다.
현수는 하몬드의 검이 조금 더 정교해지도록 자세를 수정해 주었다. 이미 익힌 검법이기에 숙달된 조교로부터 훈련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
하몬드와 현수는 수련장에서 4박 5일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검법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엔 대련으로 임기응변 상황을 만들어 적응시켰다.
5일 뒤 하몬드는 헤르시온을 착용한 채 검법을 수련했다.
그의 손에는 드워프가 만든 검과 방패가 들려 있고, 완호갑과 각반, 그리고 장갑을 끼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라세안 이외의 인물은 기사수련장 접근 금지였다.
몬테규 백작도 접근을 차단당했다. 물론 엄청 투덜거렸지만 그러면 훈련을 멈추겠다는 말에 물러났다.
7일이 되던 날, 하몬드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능력을 보였다. 이를 바라보던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몬테규 백작이 부른다는 라세안의 전갈이 있었다.
“하인스 경, 내일이 그날이네. 어느 정도 준비되었는가?”
“나가도 될 듯합니다.”
“흐음! 믿어도 되겠는가?”
몬테규 백작이 나직한 한숨을 내쉰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미덥지 않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몬드는 소드 익스퍼트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소드 유저일 뿐이다. 따라서 대결에서 져 10년간 검을 놓게 되어도 영지 전력이 누수되는 것은 아니다.
하몬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에도 지면 11연패라는 것이다.
아드리안 공국의 귀족들은 두 가문의 대결을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자고로 구경 가운데 최고는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다.
하여 거의 모든 귀족가에서 참관인을 보낸다. 이들은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재간꾼들이다.
만일 또 지게 된다면 지독한 가문의 망신이 된다. 그리고 이건 전설처럼 공국 전체로 번질 것이다.
공국 전체에서 가장 찌질한 가문이 되는 것이다.
대결이 이어지는 동안 두 가문의 사이는 많이 벌어졌다. 계속된 대결에 둘 다 자존심이 상한 때문이다. 하여 다시는 두 가문 간의 혼사는 없을 것이란 선포를 했다.
이에 공국 귀족들도 한 가지 선언을 했다.
어떤 가문이든 12연패를 하면 그 가문과는 어느 누구도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12연패를 당하면 외부와의 혼사가 끝난다.
정략혼조차 못한다면 가문의 영달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몬테규 백작은 조바심이 났지만 방법이 없다.
소드 마스터인 라세안이 나서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절대 나서지 않겠다고 한다.
“만일 이번 대결에 지면 라세안 경이 나서야 하네.”
“우리에게 그럴 의무가 있는 건가요?”
현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건 계약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0골드! 그거 그냥 지불하는 거 아니네.”
“여기 있는 헤르시온의 임대료도 못 된다는 거 아시죠?”
“이기기만 하면 문제가 없네. 근데 못 미더워서 그렇지.”
“한번 믿어보십시오. 헤르시온이 있잖습니까.”
“그거 좋은 거야 알지만 하몬드는 소드 유저였네. 헤르시온 덕에 두 단계 오른다 해도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네. 상대는 그보다 두 계급이 높은 최상급이고. 이기기 힘들어.”
“이길 겁니다. 그러니 기대하십시오.”
“처음부터 중급을 택하지 왜…….”
몬테규 백작은 몹시 아쉽다는 표정이다.
캐플렛 가도 10연패를 당한 적이 있다. 따라서 지금 기록하고 있는 10연패는 창피스러운 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여기서 11연패로 이어지면 개망신이고, 12연패는 작위를 잃는 것과 같은 대치욕이 된다.
“허어, 이거야 참! 아무튼 지면 나서게 해주게.”
“백작님,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저는 C급이고 그 친구는 A급입니다. 아시죠? 용병들은 급수가 계급이라는 걸.”
“알긴 아네만, 아무튼 자네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은가? 응? 그러니 대결에서 패하면 라세안 경이 나서도록 해주게.”
“장담할 순 없습니다.”
“그래도 부탁하네.”
“왜 벌써부터 질 거라고 생각하시죠?”
“하몬드는 소드 유저네. 상대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고! 헤르시온이 있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네. 오크가 오우거 갑옷을 입는다고 드레이크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전 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해보나 마나 질 것이네. 나는 그리 생각하네.”
“그럼 저랑 내기하실래요?”
“내기?”
“지는 사람이 2,000골드 내는 걸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2,000골드라면……. 오호라! 지면 내게 받은 수임료를 내놓고 가겠다고? 이런 괘씸한! 그런 속셈인가?”
이번 용병 계약은 다른 때와 달리 임무 실패에 따른 보편적인 페널티가 없다. 지면 10년간 검을 놓아야 한다는 항목이 너무나 부담되기 때문이다.
백작은 페널티 조항을 뺀 것을 후회했다. 이런 상황이 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 * *
“와와와와와와!”
이곳은 몬테규 영지와 캐플렛 영지, 그리고 두 영지와 인접한 로미오 영지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대련장이다.
규모는 1만여 석.
수도인 멀린에도 없는 대규모이다.
이곳은 현재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빽빽하다.
참관석의 중앙엔 귀족 셋이 나란히 앉아 있다.
심프슨 알몬 드 몬테규 백작과 그레고리 가렌 폰 캐플렛 백작, 그리고 할렌 모리스 반 로미오 자작이다.
로미오 자작은 왕궁에서 지정한 인물이다.
혹시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임명된 자로 공국의 두 실세 중 하나인 필립스 공작의 사위이다. 그래서 작위는 낮지만 두 백작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와와와와와와!”
빽빽이 들어찬 관중들은 함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제 곧 시작될 대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몬테규 가에선 겨우 소드 유저인 풋내기를 기사로 내보낸다고 한다.
캐플렛 가에선 6연승을 거둔 A급 용병 플랙스가 나온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중에서도 강자로 소문나 있다. 6연승 중 다섯 번이 최상급과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자아! 양가를 대표하는 기사들 입장하겠습니다! 먼저 몬테규 가의 기사 하몬드 경 들어오십시오.”
“와와와! 하몬드! 하몬드! 하몬드! 와아아아아!”
관중들의 환호 속에 하몬드가 등장한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기에 한눈에 봐도 풋풋하다.
“다음은 캐플렛 가의 A급 용병 플랙스 입장하십시오.”
“와와! 플랙스! 플랙스! 플랙스! 7연승! 7연승! 와와와!”
당당한 기세로 입장한 플랙스는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옷 밖으로 드러난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벤치프레스나 덤벨 등으로 키운 우람한 근육이 아니다. 수련을 통해 얻은 근육이다.
덩치, 키, 근육, 나이 모두 플랙스가 우세하다. 관중들은 구경을 하며 누가 이기는지 돈을 건다.
지금까지는 거의 대부분 100대 180이었다.
양쪽에서 100골드씩 걸면 이긴 쪽이 180골드를 가진다. 20골드는 중간 거간꾼들의 몫이다.
그런데 이번 대결은 100대 105이다. 플랙스 쪽이 너무나 우세하여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관중들 입장에선 플랙스가 이겨도 몇 푼 못 벌지만 그래도 오늘은 즐거운 하루이다. 이긴 쪽 가문에서 관중들에게 술 파티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메인 게임이 있기 전까지 십여 쌍의 대결이 있었다. 분위기 고조를 위한 일종의 애피타이저(Appetizer)였다.
“그럼 이제부터 양쪽 대표의 대결이 있겠습니다. 준비!”
심판의 말에 하몬드와 플랙스가 시선을 마주친다.
하몬드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표정이다. 플랙스는 네까짓 게 감히라는 얼굴이다.
“시작!”
심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몬드의 눈에 열망의 빛이 흐른다.
“온!”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헤르시온이 하몬드의 전신을 감싼다. 대결에 임한 플랙스는 물론이고 관중들까지 잠시 움찔거린다.
약 3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누군가의 외침에 의해 깨졌다.
“저, 저, 저건… 헤, 헤르시온이다!”
“…헤, 헤, 헤르시온? 지, 진짜 헤르시온?”
“헤르시온이 나타났다! 헤르시온이다!”
관중석의 누군가로부터 시작한 이 말은 관중석 전체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몬드가 소드 유저라는 걸 플랙스는 모른다. 혹시 나태할까 싶어 캐플렛 백작이 듣지 못하도록 차단한 때문이다.
그래서 기세당당하던 플랙스가 움찔거리며 물러선다.
상대는 애송이다. 그런데 만일 검에 대한 소질이 대단히 뛰어나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었다면 이제 소드 마스터와 같은 위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현수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일 때 소드 마스터들을 이겼다. 타임 딜레이라는 마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이 없었다면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은 결코 소드 마스터를 이길 수 없다. 이건 거의 절대적인 법칙이다.
그렇기에 위축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선 것이다.
스르르르릉―!
하몬드가 먼저 검을 뽑았다. 장인 종족인 드위프가 만들어낸 것이다. 당연히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다.
시종이 다가와 방패를 건넨다. 이것 역시 예사롭지 않다.
“헐! 저, 저건… 드, 드워프제 무구 아냐?”
“뭐라고? 드워프제 무구? 저게?”
“맞다! 저거 드워프제 무구다.”
플랙스는 또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면서 자신의 검을 들여다본다. 좋은 것이지만 드워프제 무구와 맞부딪치면 분명히 부서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