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96화 (496/1,307)

# 496

하지만 현수의 눈빛엔 변화가 없다.

그랜드 마스터에 버금갈 실력을 지녔는데 어찌 소드 익스퍼트 중급짜리의 검법에 당황하겠는가!

어쨌든 기사의 검이 목에 닿으려는 순간 조금 전처럼 현수의 신형이 사라진다.

쉬익!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커억! 큭! 억! 커억! 크윽! 캐액! 컥!”

기사의 검이 허공을 베어가는 순간 현수는 검면으로 그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맞을 때마다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강력한 타격이다.

삽시간에 여섯 대를 맞은 기사의 뺨이 금방 부풀어 오른다. 커다란 눈깔사탕을 양볼 가득히 넣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

“어때? C급치곤 괜찮지?”

“……!”

거의 매일 진검으로 대련하는 기사들이기에 자신들의 실력으론 감당할 수 없는 고수를 만났음을 직감했다.

그렇기에 도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시선을 주고받는다.

캐플렛 영지 기사단의 일원이 C급 용병에게 망신당했다. 외부로 소문이 번지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다.

그렇기에 합공하여 현수를 베자고 의사를 묻는 것이다.

“그러게 한꺼번에 덤비지. 실력도 안 되는 것들이 기사는 무슨……. 갑옷이 아깝다. 솔직히 인정하지?”

“야아압! 죽엇!”

“이야압! 죽여주마.”

“에잇!”

쒜에엑! 쌔에엥! 쉬이익!

혼신의 기력을 실어 현수의 목과 심장, 그리고 오른손을 노린 검들이 허공을 찢어발기는 소리를 낸다.

챙! 파직! 채챙! 퍼석! 챙! 파악―!

“컥! 큭! 허억!”

허공에서 검이 격돌할 때마다 기사들의 검이 산산이 부서진다. 물론 현수의 검은 까딱없다. 삽시간에 벌어진 탓에 기사들은 사태 파악을 못했다. 그저 어이없다는 표정일 뿐이다.

놈들은 들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내던지더니 안쪽으로 뛰어간다. 모두 새 검을 가지러 가는 모양이다.

“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도망가면 죽는다!”

“……!”

현수가 검집에 검을 넣는 동안 머피는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때 앞장섰던 시녀 베시가 되돌아오며 앙칼지게 소리친다.

“뭐예요? 따라오라고 했잖아요! 어째 이상하다 싶었더니…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어서 따라와욧!”

마구간으로 향하던 베시는 뒤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되돌아왔다. 헛걸음을 하게 한 머피와 현수에게 욕이나 한 바가지 해줄 생각이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욕까지는 못하겠다. 상대는 무식한 용병이다. 욕을 했다가 자칫 패악을 부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싸늘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한 것이다.

“알았다. 앞장서라.”

“이번에도 안 따라오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요. 알았어요?”

“이거야 원! 이놈의 영지는 위나 아래나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나?”

베시의 뒤를 따라간 곳은 마구간이다. 영주 가솔과 사단의 말뿐만 아니라 손님의 말도 돌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일단 먹어요. 이거 다 먹으면 저기 저쪽 보이죠? 끝에서부터 열 칸을 청소해요.”

“……?”

“청소 도구는 저쪽에 있으니 꺼내서 쓰구요. 참, 말똥은 따로 모아놓는 곳이 있어요. 저기 저 문으로 나가면 어딘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저녁 먹고 또 열 칸을 청소해야 하니 이따가 하기 싫으면 열심히 일하세요.”

탕! 탕!

베시는 마구들을 담는 지저분한 상자 위에 딱딱한 빵 두 덩어리와 멀건 야채 스튜를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야멸친 표정을 지으며 되돌아 나간다.

“어휴! 냄새. 치, 저놈들 때문에 냄새나는 여기까지 왔네.”

베시가 사라지자 머피가 현수를 응시한다.

“마탑주님, 어째서 가만히 계십니까? 그냥 놔두실 겁니까?”

“흐음, 오십 명쯤 다가오는군.”

“뭐라고요?”

동문서답을 하기에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발걸음을 들어보니 정순한 녀석은 하나도 없군. 흐음, 하나 더 오는군. 이자는 괜찮은 것 같은데.”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 그 녀석들이 동료들을 데리고 오는 모양이야. 머피, 한바탕 해야 할 것 같으니 주변 좀 치우게.”

“네? 아, 알았습니다.”

이제야 사태 파악을 한 머피는 주변에 널려진 마구며 기타 등등을 한쪽으로 밀어놓는다. 그러는 사이에 일단의 무리가 마구간에 당도했다.

“어이, 거기!”

“나 불렀는가?”

“나? C급 용병 주제에 지금 내게 나라고 말했나?”

골격 굵은 텁석부리 기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이 녀석은 온전한 갑옷을 갖춰 입은 상태이다.

“한꺼번에 덤비지. 하나씩 상대하는 건 시간낭비니까.”

“뭐라고? 지금 이놈이 누구에게 감히……!”

“혼자 덤비다 맞으면 몹시 아플 거라는 경고를 하지. 어쩌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 검에는 눈이 없으니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아무튼 가진 재간을 다 부려봐.”

“이, 이런 개 같은! 죽엇!”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을 뽑음과 동시에 쇄도한다. 그리곤 지체없이 현수의 목을 베려 검을 휘두른다.

덩치가 큰 만큼 힘도 좋은지 녀석은 전체 길이가 180㎝를 넘는 투핸드 소드를 사용한다.

키가 크니 팔 길이도 길다. 게다가 검의 길이도 길다. 뿐만 아니라 넘치는 힘을 온전히 담을 수 있도록 무겁기까지 하다.

갑옷을 입고 있어도 단칼에 우그러지나 베어질 운동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이런 게 현수의 목을 향해 쏘아져 온다. 고된 수련을 거쳤는지 검의 방향과 각도 모두 정확하다. 뿐만 아니라 섬전과 같은 속도이다. 최고의 파괴력을 지닌 것이다.

현수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하의 실력을 가졌다면 단번에 목이 베이게 될 상황이다. 텁석부리는 허공으로 치솟을 현수의 수급을 상상하고 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쐐에에에엑―!

쇄도하는 검을 일견한 현수는 슬쩍 자세를 낮췄다. 그 순간 머리카락 위로 투핸드 소드가 스치며 지난다. 그 상태에서 한 걸음 내디디며 정권으로 놈의 명치를 가격했다.

방어할 틈이 없는 쾌속한 반격이다.

퍼억―!

“캐액―!”

와당탕탕―!

“우웩―!”

텁석부리는 머피가 모아놓은 마구들 위로 나가자빠졌다. 그리곤 조금 전에 무엇을 먹었는지를 적나라하게 토해놓았다.

“……!”

삽시간에 장내가 고요해진다. 텁석부리는 일행 가운데 가장 실력이 뛰어난 기사이다. 조만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를 것이라 기대 받았다. 그런데 단번에 무릎을 꿇었다.

“봤지? 혼자 덤비면 이렇게 된다. 그러니 한꺼번에 오도록!”

현수는 오연한 자세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기사들을 도발하려는 것이다. 그 즉시 모두의 표정이 바뀐다. 모두 한낱 용병에게 모욕당했다고 느꼈는지 일제히 검을 뽑는다.

“이노오옴! 죽어랏!”

“죽엇!”

바스타드 소드, 투핸드 소드, 클레이모어, 펄션, 프람베르그가 한꺼번에 쇄도한다. 그런데 현수가 자신들을 보고도 피식 웃더니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두른다.

아무튼 다섯 가지 검이 현수의 신형에 닿을 즈음 안개처럼 사라진다. 다음 순간 다섯 마디 비명성이 터져 나온다.

“캑! 큭! 억! 아악! 캐액!”

와당탕! 와당탕탕! 꽈당! 와장창! 와당탕!

“크윽! 으으윽! 아아악! 허어억! 으아악!”

쓰러진 채 비명을 토하는 기사들의 얼굴이 벌겋다.

검면으로 강력한 따귀를 맞은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가슴 어림에도 흙이 묻어 있다. 이는 발길질에 명치를 걷어차인 때문이다.

“……!”

성난 얼굴로 공격하던 기사들이 일제히 나가자빠지자 뒤쪽에 있던 녀석들이 검을 휘두르며 쇄도한다. 이들은 강력한 따귀와 더불어 엉덩이 걷어차기에 당해 엎어졌다.

다음으로 공격했던 자들은 아랫도리가 허전하게 되었다.

모두의 허리띠를 베어버린 때문이다. 이들은 강력한 뒤통수 가격에 게거품을 문 채 기절했다.

그다음에 공격한 자들은 상의가 걸레가 되었다. 하지만 피를 보진 않았다. 현수가 검에 사정을 둔 덕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모두 멈춘다.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하여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것을 깬 사람은 뒤늦게 다가온 자이다.

“대체 뭣들 하는 거야?”

“아, 소영주님. 저, 저놈이 우리를…….”

다가온 자는 나이가 40쯤으로 보인다.

고된 수련을 거쳤다는 것이 한눈에 느껴질 정도로 다부진 체격과 형형한 안광을 빛낸다.

‘흐음,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군.’

현수는 단번에 수준을 파악했다.

몬테규 영지와 캐플렛 영지는 수십 년간 다툼을 벌여왔다. 영지 기사들이 동원되었고, 많은 돈을 들여 용병을 고용했다.

그러는 동안 영주와 그의 후계자는 단 한 번도 대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패자는 10년간 봉검해야 한다.

만일 영주, 또는 그의 후계자가 나섰다가 패하면 그 영지는 몰락의 길을 걸어야 한다.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영지의 최강 전력은 영주, 또는 그의 후계자이다. 그런 사람들이 검을 잡을 수 없게 되면 이웃 영지의 침공이 우려된다.

그걸 막기 위해선 더 많은 기사와 병사를 보유해야 한다. 그런데 기사와 병사는 생산 없이 소비만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영지 경제를 좀먹는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세율을 올리면 야반도주가 늘어나며 산적의 수효 또한 증가한다.

아무튼 몬테규 가와 캐플렛 가의 가주와 후계자는 대결에 임한 바 없다. 현수를 예리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자는 캐플렛 가의 후계자이다. 이토록 매운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가문의 기사단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네놈은 누구냐?”

“C급 용병 하인스라 하오.”

“하오? 하오라고? 네놈은 내가 누군지 모르나?”

“처음 보는데 어찌 알겠소? 그쪽은 누구시오?”

“이노옴! 네놈이 감히! 어떤 방법으로 이들을 이렇게 한 거냐? 비겁한 암수를 썼나?”

“암수라니요? 정정당당한 승부였소. 참, 그러고 보니 암수는 그쪽에서 썼소. 저 많은 인원이 나 혼자에게 덤벼들었으니.”

“…사실이냐?”

소영주의 시선을 받은 기사들이 쪽팔린다는 듯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다. 자랑스럽게 여기던 기사들의 모습이 아니다.

“흠, 믿을 수 없다. 뭔가 암수를 쓴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혼자서 영지의 기사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겠는가! 검을 뽑아라. 내 친히 네놈의 실력을 가늠해 보아야겠다.”

“뭐, 그러슈!”

스르르릉―!

집어넣었던 검을 다시 뽑자 소영주 역시 검을 뽑는다.

“먼저 덤벼라! 참고로 나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수급이 베어질 것이다.”

“거 말 한번 살벌하군. 내가 무슨 중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다짜고짜 목을 벤다는 말이오?”

11장 동공이 확장되는 이유

“정당한 방법이 아닌 꼼수나 암수로 가문의 기사들에게 치욕을 안겨준 것이 바로 중죄다. 덤벼라!”

소영주의 단호한 시선을 받은 현수가 피식 웃는다.

“좋소! 나도 참고로 말하는데, 이몸은 소드 마스터 최상급이오. 어쭙잖은 검기로 어쩌려거든 일찌감치 물러서시오.”

“무어라? 이놈이 감히……!”

상대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는 듯 부르르 떨던 소영주가 검을 고쳐 잡는다. 그리곤 싸늘한 안광으로 째려본다.

“소드 마스터라 했나? 흠, 상대할 만하겠군. 덤벼!”

“하수가 고수에게 덤비는 것이오. 그쪽은 소드 익스퍼트, 나는 소드 마스터! 누가 덤벼야 하는지 모르시오?”

“이, 이놈이 그래도? 좋아, 언제까지 헛소리를 하는지 두고 보자! 야아압!”

소영주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그 순간 현수의 검끝에서 시퍼런 검강이 쭈욱 솟아난다.

지이이이잉―!

“허억! 소, 소드 마스터!”

“히익! 진짜 소드 마스터다!”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당혹성이다.

이 순간 소영주의 검은 허공을 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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