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00화 (500/1,307)

# 500

소문이 번지면서 현수와 라세안 덕분에 대륙은 한바탕 홍역을 앓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세안은 깊은 잠에 취했고, 현수는 지구에 당도했다.

* * *

“휘유∼!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군.”

서둘러 의복을 갈아입고는 곧장 집으로 텔레포트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물컵을 들고 가던 어머니가 화들짝 놀란다.

“헉……! 누, 누구……? 아! 현수구나. 너, 언제 들어왔니? 내가 문 열어 준 적 없는데……. 열쇠로 열고 들어온 거니? 그럼 소리 좀 내지. 놀랐잖니.”

“어머니, 저 누군지 잊으셨어요? 마법으로 온 거예요.”

“아이구, 얘야! 이제 그러지 마라. 놀라서 간 떨어질 뻔했다.”

“아!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앞으론 주의하겠습니다.”

현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말대로 놀랄 만하기 때문이다.

“저 좀 나갔다 올게요.”

“나가? 금방 들어왔다며? 참, 나가기 전에 나 좀 보고 가라.”

“네? 무슨 일 있어요?”

“새아기들 뭘 좀 줘야 하는데 고르기가 너무 힘들구나.”

“네?”

“너는 매일 밖으로만 나돌고 지현이는 그렇다 쳐도 연희와 이리냐는 얼굴도 못 보잖니. 그래도 평생에 한 번 있을 결혼이니 반지 같은 예물을 준비해야 하잖아.”

“그, 그렇죠.”

“내 맘대로 고를 수도 없고 하니 네가 골라봐라.”

“그, 그거라면… 네! 알겠습니다.”

거실로 나가니 아버지가 가져오신 카탈로그가 여러 권 쌓여 있다. 각종 보석으로 만드는 목걸이, 팔찌, 티아라, 귀걸이, 브로치 등등이 보인다.

현수는 이것저것을 살펴보던 중 묘안이 떠올랐다. 현대식 디자인도 좋지만 드워프들의 솜씨 또한 상당히 세련되어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더 뛰어나기도 하다.

자신들은 탁월한 디자인 감각을 뽐내기 위해 만드는 것이지만 귀부인들은 그걸 갖지 못해 환장한다.

그러고 보니 아공간엔 상당히 많은 보석이 있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는 물론이고 지구엔 없는 것들도 있다.

“어머니, 이 카탈로그 제가 가지고 나갈게요.”

“왜?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아뇨, 그게 아니라 누구에게 부탁을 하려구요.”

“아이고, 얘야, 추씨 사장님이 특별히 공임 싸게 받는다고 했으니 그냥 하자.”

“추 사장님껜 어머니와 아버지 것만 만드세요. 제가 부탁드리려는 곳은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이에요.”

“해리 윈스턴? 뉴욕의……?”

어머니도 아버지로부터 들은 풍월이 있으신 모양이다.

“네, 뉴욕 5번가의 해리 윈스턴 맞아요.”

“거기 공임 비쌀 텐데…….”

“저는 추씨 아저씨네 공방 실력이 좋은 건 알아요. 하지만 지현이나 연희, 그리고 이리냐는 모르잖아요.”

“그, 그야 그렇겠지.”

“아버지 다니시는 공방에선 두 분 반지를 하나씩 만드세요. 보석은 제가 드릴 테니까요.”

“보석?”

“네, 어머닌 5월에 태어나셨으니 에메랄드로 하시구요. 아버진 9월이시니 사파이어를 드릴게요. 아공간 오픈!”

말 떨어지기 무섭게 시커먼 공간이 열리자 어머닌 이건 대체 뭔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만 보신다.

“……!”

아공간을 뒤져 보니 에메랄드와 사파이어는 상당히 많이 있다. 반지를 만들 것이니 너무 커도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고 적당한 것들을 꺼냈다.

“이 정도면 반지 만들기에 적합할 거예요.”

현수가 건네는 보석들을 받은 어머닌 귀한 물건 다루듯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그것들은 각기 4캐럿을 약간 상회한다. 반지로 만들어 팔 경우 1억 5천만 원 정도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근데 새아가들 예물을 해리 윈스턴에서 만든다고?”

“아뇨, 알아보는 김에 반클리프 & 아펠스(Van Cleef & Arpels)와 까르띠에 등도 알아볼게요.”

“……!”

어머닌 대체 어쩌려고 이러느냐는 표정이다. 보석보다도 공임이 더 비쌀 것 같아서이다.

“어머니, 저 돈 많잖아요. 그리고 지현이나 연희, 그리고 이리냐더러 고르라고 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자아, 예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어머닌 다른 거 신경 쓰세요.”

“에휴! 알았다. 네가 그 일을 맡아서 해주면 난 편하지.”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표정으로 금방 바뀌신다. 연봉이 60억이라는 걸 떠올리신 것이다.

“네, 이건 제가 할 테니 믿어주세요. 참, 혼배성사 끝나면 신부님께 뭐 좀 드려야 하잖아요.”

“그래, 예물을 좀 드려야지. 돈을 조금 드리면 어떨까?”

“돈보다도 묵주반지는 어떨까요?”

“묵주반지?”

“네, 금으로 만든 조금은 특별한 기능이 있는… 그걸 끼고만 있어도 감기 같은 건 걸리지 않게 하는 그런 거 어떨까요?”

“그런 것도 만들 수 있니?”

“어머니와 아버지 손에도 끼어져 있잖아요.”

“이거? 이게 그런 기능이 있는 거였어?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끼고 난 이후 감기 같은 거 한 번도 안 걸렸다. 그래, 묵주반지 좋다. 그걸로 만들어오너라.”

“아뇨, 그건 추씨 공방에 주문하세요. 신부님은 해리 윈스톤 같은 데서 만든 묵주반지 안 끼실 거예요. 안 그래요?”

“하긴, 허튼 데 돈 쓰는 거 못 보시는 분이지. 알았다. 그럼 아버지께 만들어달라고 하지. 근데 그게 어떻게 효과가 나는 거냐?”

“다 만든 다음에 제가 마법을 좀 써야 해요.”

“아! 그렇구나. 그나저나 지금 나가려고?”

“네, 오늘 회사 일로 만나 봬야 할 분들이 좀 있어서요.”

“그래, 알았다. 나가 돌아다니더라도 끼니 거르고 그러지 마라. 알았지? 잠은 집에 와서 자고.”

“에구, 걱정 마세요. 제가 뭐 애인가요? 저 그럼 나갑니다.”

“오냐! 조심히 다녀오너라.”

집을 나선 현수는 곧장 울림네트워크로 향했다. 여전히 연비 측정 중이다. 하긴 믿기 힘들 것이다.

“아! 오셨어요?”

박동현 대표가 반색을 하며 웃는다.

“에구, 나 이 차 좀 써야 하는데…….”

자동차에 뭔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한 이야기이다.

“아! 그래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되니까요. 이 팀장, 얼른 원상 복구! 알지?”

“네, 사장님!”

이 팀장이 팀원들에게 뭔가 지시를 내리자 일제히 달려들어 붙어 있던 것들을 떼어낸다.

“근데 연비 측정은 뭐하려고 자꾸 해요?”

“자꾸 해봐야죠. 그래야 뭐가 어떻게 작용해서 그렇게 되는지 알게 되잖습니까.”

“후후, 그래서 알아낸 거 뭐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래서 미치는 중입니다. 대체 엔진에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다른 엔진과 다른 게 하나도 없는데 이것만 연비가 달라요.”

“후후, 그게 기술이지요. 뜯어봐도 모르겠죠?”

“네, 엔진을 제조한 회사 직원들까지 와서 아예 완전 분해를 했다가 재조립을 하면서 하나하나 따져 보았습니다.”

“그런데요?”

“기존과 달라진 부분이 손톱만큼도 없답니다. 그러니 미치죠. 대체 뭡니까? 저한테만 살짝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후후, 미안합니다. 그건 비밀이거든요.”

“……!”

박동현 대표는 자기를 믿지 못하느냐는 듯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에 마음 흔들릴 현수가 아니다.

그래도 한마디는 해줘야 하기에 시선을 주었다.

“대신 울림네트워크에만 주잖아요. 그나저나 생산설비 확충은 어떻게 되어갑니까?”

“지,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 공장을 짓는 게 아니라면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지읍시다. 어차피 엔진 제조 공장이 필요하니까요.”

“네?”

“이실리프 엔진이라는 회사 만들기로 했잖습니까. 그 회사 경영은 김형윤 선배에게 맡기고 대표님은 울림네트워크에서 울림모터스를 분사하십시오.”

“……?”

“연간 최소 100만 대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배, 백만 대요?”

놀란 표정이다.

“리터당 연비 112㎞짜리 가솔린 엔진 자동차가 우리 것 말고 또 있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주문이 밀려들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당연하죠. 아마 없어서 못 팔 겁니다.”

“우리 둘 다 이렇게 확신하는데 왜 머뭇거립니까? 힘 날 때 밀어붙여야죠. 안 그래요?”

박 대표는 입술을 지그시 다문다. 뭔가 결심할 때의 습관이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즉시 시행하지요.”

“돈이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저 돈 많이 버는 거 아시죠?”

“그, 그럼요. 알겠습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전화 드리지요.”

“공장을 새로 짓는 것보다 매입하는 쪽을 알아보세요. 그게 시간 절약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기술자 확보도 쉽구요.”

“그럼 고용 승계를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사람 보는 눈이야 저보다 더 좋잖습니까. 그러니 대표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맡겨만 달라는 표정이다.

“참, 저도 울림모터스의 주주가 될 테니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가급적이면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십시오.”

“네? 전부 정규직으로요?”

“고용이 안정되어야 일할 맛도 나는 것이고, 애사심도 샘솟는다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전무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렇게 하죠.”

자금 경색 때문에 한 달에 겨우 몇 대 생산해 내던 시절이 엊그제이다. 그땐 직원들 급여도 제대로 못 줬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의 이자납입일은 왜 그렇게 자주 오는지 괴롭기만 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생산대수는 많이 늘었고, 급여는 제날짜에 제대로 지급된다. 그리고 은행 빚은 전혀 없다.

오히려 여유자금이 이자를 불리는 중이다.

앞으로는 이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이다.

지구 최강 연비를 자랑하는 가솔린 엔진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김현수 전무 덕분이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대표님! 원상 복구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이 팀장!”

“수고라니요. 당연한 일이지요.”

이 팀장이 물러나자 현수가 운전석에 앉았다.

“다 쓰면 도로 가져다 줄 테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그리고 엔진 공장 매입은 좀 서둘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부우우우웅―!

노란색 스피드가 속력을 높여 울림네트워크 공장을 떠났다. 그렇게 200여m쯤 가는데 전화가 진동을 한다.

현수는 블루투스를 가동시켰다.

“여보세요. 김현수입니다.”

“김 전무. 홍 의원이네. 자네 좀 보고 싶은데 시간 되나?”

“그럼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여기 평택이네. 2함대 사령부가 있는 곳이지.”

“제가 그리로 가면 됩니까?”

“올 수 있다면 오게.”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곧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현수는 아공간에 담긴 마법진들을 떠올렸다.

현재 2함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양만춘함이 있다는 것뿐이다. 한국형 구축함 사업인 KDX―Ⅰ사업에 따라 제작한 3,200톤급 세 번째 구축함이다.

신호대기에 걸릴 때마다 검색을 해보니 58,200마력짜리 가스터빈 엔진 2기와 8,000마력짜리 디젤엔진 2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 배는 최대 30노트의 속력을 내며, 18노트 항주 시엔 4,000해리를 이동한다.

“경량화와 그리스 마법진이 적용되면 속도는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겠군. 근데 헤이스트 마법도 적용될까? 경량화가 되어도 엄청 무거울 테니 최상급 마나석을 박아야 하나? 어렵겠지?”

운전을 하며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는 동안 스피드는 평택항을 향해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흐음 4,000해리라면 약 7,800㎞인데 기름값 엄청나게 들겠군. 좋아, 그걸 12분지 1로 줄여주지. 기다려라, 양만춘함! 지구 유일의 마법사가 달려간다. 후후후!”

현수는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문 채 서늘해진 공기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오늘은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대한민국 해군이 환골탈태를 시작하는 날이다.

『전능의 팔찌』 제21권에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