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5
펼쳐 놓았던 마법서들을 다시 아공간에 넣고는 기관실로 향했다. 엔진 재조립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어느덧 깊은 밤이 지나 아침이 되었기에 고 대위와 배 상사, 그리고 최 상사의 얼굴엔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와 있다.
밤샘 작업으로 몹시 피곤한 것이다.
하여 나직이 입술을 달싹였다.
“바디 리프레시.”
샤르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세 사람의 체내로 스며든다. 그러자 다크서클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여기 일 마치시면 터빈도 재조립해야 하는데 다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하룻밤 새우는 정도는 거뜬합니다.”
고 대위의 말에 현수는 나직이 웃음 지었다. 그리곤 모든 작업을 마칠 때까지 이것저것들을 눈여겨보았다.
오전 9시 30분 경, 심 소장이 부관과 함께 양만춘함 기관실을 방문하였다.
“아! 오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김 전무님, 저희 군을 위해 고생하셨네.”
“고생은요. 저보다는 저기 있는 고 대위님과 배 상사님, 그리고 최 상사님이 애를 많이 썼습니다. 한잠도 못 잤거든요.”
“그래도 수고 많으셨소. 그나저나 엔진 개조 작업은 다 끝난 건가?”
“네, 세 분의 협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쪼록 김 전무님이 말한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네.”
심 소장은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는 셋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부관, 작업이 마쳐지는 대로 양만춘함을 출항시키게.”
“네, 사령관님!”
3장 상대를 봐가며 공격해야지
“자자, 밤샘 작업하여 입맛이 깔깔하겠지만 한술 뜨고 가시게. 입에 맞을 것이네.”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현수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식탁엔 이곳이 과연 군대인지 의심이 갈 요리들이 차려져 있다. 함대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주방이 새벽부터 부산을 떤 결과이다.
“홍 의원님도 많이 드십시오.”
“에구, 저는 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아무튼 오늘 김 전무 덕에 제 입이 호강하려나 봅니다.”
“무슨 말씀을! 김 전무님이 이곳에 올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신 분 아닙니까? 그것만으로도 큰 공을 세우신 겁니다.”
“하하, 그게 그렇게 되는가요?”
“물론입니다. 자자, 음식 식기 전에 어서 듭시다. 아! 고 대위, 배 상사, 그리고 최 상사, 자네들도 수고 많이 했어. 많이들 먹게.”
“네, 사령관님!”
고 대위도 그렇지만 상사가 언제 투 스타와 같은 식탁을 써보겠는가! 셋은 잔뜩 군기 든 신병처럼 대답하고는 눈치를 살핀다. 심 소장이 아직 수저를 들지 않은 때문이다.
“자, 맛있게 먹읍시다.”
“네.”
“쩝쩝! 우적우적!”
“쩝! 후르륵! 우걱우걱! 쩝쩝!”
한동안 대화 없이 식사에만 열중했다. 음식 맛이 상당히 좋았던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후 일행은 함대사령관실로 이동했다.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당번병이 음료를 내온다.
“테스트 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알려주십시오.”
“물론이네. 당연히 그래야지.”
2함대사령관 심흥수 소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결과가 좋다면 슈퍼링스도 맡겨주실 거죠?”
“엥? 슈퍼링스는 헬기인데? 하긴, 그것도 엔진이 달려 있으니. 알겠네. 반드시 그리하도록 하겠네.”
“참, 청상어도 손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청상어도? 청상어는 어뢰이네. 엔진이 달린 게 아닐세.”
“그래도 추진기는 달려 있잖습니까.”
“추진기? 추진기만 손을 봐도 나아지는가?”
“네, 양만춘함의 추진기도 생각난 김에 조금 만져 두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테스트할 때 주의 깊게 살펴보실 점은 연비뿐만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신가?”
모두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먼저 변동 압력도 측정해 보십시오. 선체에서 발생되는 소음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아울러 다른 선박이나 잠수함으로 하여금 양만춘함을 추적해 보라 하십시오.”
“추진기와 엔진을 손본다고 그런 것이 달라지나? 도무지 납득이 되지를 않네.”
“네, 그러시죠.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말씀드린 것들을 살펴봐 주십시오. 참, 순항 속도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고 속도도 측정해 주십시오.”
“……?”
심 소장을 비롯하여 김상우 대령과 고복현 대위, 그리고 배 상사와 최 상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봐주십시오. 결과는 꼭 통보해 주시고요.”
“알겠네. 반드시 그리하겠네.”
“네, 오늘은 이만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락 주시면 다시 내려오지요.”
“하긴 회사 일로 바쁜데 시간을 내주신 게지. 고맙네. 해군을 대표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일입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러시게.”
“고 대위님, 배 상사님, 그리고 최 상사님, 세 분 모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잠도 못 주무셔서 피곤하겠지만 조금 더 버텨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가 직접 어떤 변화가 있는지 측정할 것이니 염려 놓으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해서 올라가십시오. 필승!”
배 상사의 경례를 끝으로 일행은 헤어졌다.
“하루 만에 저 큰 전함을 손보다니 대단하네.”
출항 준비가 한창인 양만춘함을 바라보는 홍진표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수고했다는 뜻이다.
“대단하긴요.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 왔으니 그렇게 된 거지요. 준비 없이 왔다면 며칠은 걸렸을 일입니다.”
“그런가? 아무튼 수고했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나저나 국방장관님껜 언제 가죠?”
“잠깐만 기다려 보시게.”
홍 의원이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한다.
비이이이잉―!
“흐음, 답신이 왔군. 어디 보자. 잘되었네. 지금 와도 된다네. 계룡대 본관에 있다는군. 그리로 가세.”
“네, 알겠습니다.”
현수의 노란 스피드가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네.”
“네, 뭐요?”
“듣자 하니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나? 연비가 열두 배나 좋아진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
“아, 그거요? 의원님도 4사이클 행정에 대해서 아시죠?”
“당연하지! 흡입, 압축, 폭발, 배기 이 순서가 반복되는 거지. 안 그런가? 중학생 때 배웠네.”
“맞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과정이 상당히 오묘합니다. 자세히 설명드릴 순 없지만 우선 가솔린 엔진은 공기와 연료가 균일하게 섞이지도 않습니다.”
“흠, 그런가?”
홍 의원은 잘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만 갸웃거린다. 이럴 때 전문용어가 남발되면 상대를 괴롭히는 일이다.
“아무튼 엔진 내부의 흐름을 조절하면 연비가 좋아집니다.”
“그런가?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자넨 수학과 출신이네. 건설사에 근무하지만 무역회사와 의류회사를 운영하고. 맞지?”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 어떤 엔지니어도 해내지 못한 걸 그렇게 쉽게 해내지?”
어젯밤부터 가졌던 의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묻는 것은 심 소장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수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의원님, 사실 제가 말씀 안 드린 것이 있는데, 저는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머리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 그 나이에 어떻게 머리가 좋아지나?”
“못 믿으시겠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대학생 때 아이큐가 110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높아진 것 같습니다.”
“정말?”
홍 의원은 현수의 진지한 표정과 대답에 기대고 있던 좌석에서 등을 뗀다. 믿기 어렵기에 얼굴 한번 보려는 것이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그래서 아이큐 테스트를 한번 받아보려고 합니다. 생각난 김에 해보죠. 지금 저는 운전 중이라 안 되니 의원님께서 휴대폰으로 검색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뭘 말인가?”
“아이큐 검사 받는 데 좀 찾아봐 주십시오.”
“정말인가?”
“네. 요즘은 책을 한 번만 읽어도 내용의 대부분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또한 유기적인 사고력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 책 저 책 분야가 다른 것들을 읽어도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융화시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알았네. 한번 찾아보지.”
홍 의원이 휴대폰으로 검색하는 동안 현수는 라디오를 켰다. 잔잔한 기타 음이 흘러나온다.
Morning has broken like the first morning.
아침이 밝았습니다. 태초의 아침처럼.
Blackbird has spoken like the first bird.
검은 새가 지저귑니다. 태초의 새처럼.
Praise for the singing Praise for the morning.
새의 노래를 찬양해요. 아침이 온 것을 찬양해요.
Praise for them springing fresh from the world.
그들이 세상에서 싱그러운 모습으로 솟아남을 찬양합니다.
1971년에 Cat Stevens가 부른 ‘Morning has broken’이란 곡이다. 현수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곡이다.
이 곡은 원래 19세기의 찬송가로 1931년에 처음 출판되어 대중에게 알려진 곡이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좋아 현수가 애창하는 곡이다. 그렇기에 나직이 따라 부르며 운전했다.
운전을 할 때엔 바로 앞 차만 봐서는 안 된다. 앞의 앞의 차가 급정거할 경우 방어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좌우 차선의 차들도 눈여겨봐야 한다. 갑자기 끼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뒤따르는 차도 살펴야 한다.
돌발 상황이 생겨 내 차가 멈출 경우 추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급정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비상등을 켠다.
뒤따르는 차의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반대 차선에서 마주 오는 차도 봐야 한다.
졸음운전, 음주운전, 운전 중 전화 통화 등의 사유로 중앙선을 넘어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앞의 두 대, 좌우의 두 대, 그리고 뒤따르는 차와 마주 오는 차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운전했다.
그러는 동안 검색이 끝났는지 홍 의원이 입을 연다.
“K―WAIS(Korean―Wechsler Adult Intelligence Scale) 검사라는 것이 있네.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웩슬러 성인용 지능 검사지. 이건 일대일로 하는 것이라네.”
“그래요? 그걸 어디서 해주지요?”
“우리가 가는 곳이 계룡대이니 가까운 대전 어떤가? 거기 임상심리전문가가 개업한 심리상담소가 있네.”
홍 의원은 지도까지 검색하며 대답한다.
“좋네요. 국방장관님 뵙고 가면 되겠네요. 신청해 주세요.”
“그러지.”
전화번호를 확인한 홍 의원의 통화하는 동안 현수는 라디오 소리를 줄여주었다. 그러면서 전후좌우를 다시 살폈다.
앞뒤는 그대로지만 좌우를 달리던 차들은 바뀌어 있다.
“그나저나 조금 졸리신 거 같은데요.”
“하암, 그러게. 어제 심 소장과 새벽까지 바둑을 둬서 그런지 조금 나른하네.”
“그럼 좀 주무세요. 가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그럼 그럴까? 근데 자네도 밤새웠잖은가?”
“저는 젊잖아요. 시트를 뒤로 젖히고 편히 쉬세요.”
“하암! 그래야겠네. 몸이 좀……. 미안하네.”
“아이고,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홍 의원은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듯하다. 너무 피곤해도 이럴 수 있다.
“슬립!”
현수의 입술이 달싹이자 뒤척이던 움직임이 멈춘다. 그리곤 고른 숨을 내쉰다.
“기왕 쉬시는 거니까. 논 노이즈!”
현수의 입술이 또 한 번 달싹이자 묵직했던 엔진음이 사라진다. 차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없어지고 타이어와 노면과의 마찰음 또한 사라진다.